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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110/434)

제110화

파아아앙!!!

사쿠라의 화살은 빛을 머금고 숲을 가로질렀다.

우드드득-!

바람의 힘이 담긴 화살은 주변을 가볍게 초토화시켰고, 이시우는 어떻게든 몸을 날려 화살을 피했다.

쿵!

“컥!”

바닥에 쓰러진 이시우는 최대한 빠르게 기어서 몸을 숨겼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공기의 파열음.

‘무슨 저딴 공격이…….’

이시우의 공격은 배리어에 데미지를 준 정도였지만 사쿠라의 공격은 궤가 달랐다.

화살에 스치는 것만으로 배리어는 전면파괴. 그대로 바로 탈락이었다.

‘……그래도 일단 도망치기만 하면 괜찮아. 기회가 있으니까.’

이시우가 몸을 숙이고 기척을 죽이고 있을 때, 사쿠라의 방향에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파아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쏜 사쿠라의 두 번째 화살.

우드드드득-!!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살벌한 소리에 이시우는 몸을 회전시켰다.

콰과아앙-!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이시우의 옆을 완전히 휩쓸어 버린 바람. 부서진 나무의 파편과 흙들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야말로 분쇄.

이시우가 가진 F급 특성 천리안은 원거리 공격에 탁월한 도움을 주었지만 사쿠라의 S급 특성은 궤가 달랐다.

화살의 파괴력 증폭.

바람을 이용한 배리어.

규모가 다른 전용 스킬까지 아주 화력이 강력했다.

‘다행인 점은 시야인가…….’

이시우는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사쿠라의 공격으로 탁 트인 숲의 시야. 천리안을 가진 이시우에겐 은폐물이 없는 편이 유리했다.

꽈악!

하지만 문제는 속도와 정확성.

이시우는 숲을 가로질러 달리며 생각했다.

‘……내 화살은 저 녀석보다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아.’

지금까지 궁술을 연마한데다 S급 특성을 가진 사쿠라에게 똑같은 활로 전력으로 승부하는 건 자살행위.

‘하지만 무기가 활이 아닌 총이라면…….’

그럼 분명 승산은 생긴다.

하지만 여전히 총을 쥐는 건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망할…….’

포기라는 선택지가 없었던 비인간적인 훈련. 그 모든 노력을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권위적인 모습.

이시우에게 아버지는 최악이었다.

‘……총을 잡는 건. 결국 아버지가 옳았다고 인정하는 꼴이잖아.’

타악.

나무에게 등을 기대고 기척을 죽이며 생각에 빠진 이시우. 사쿠라는 분노를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고- 아주 천천히 이시우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답해. 날 놀리는 거야?”

화가 서린 사쿠라의 목소리는 어딘가 슬퍼보였다. 사쿠라는 이시우가 주무기인 총이 아닌, 활을 든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궁술은 사쿠라의 자랑.

그런데 이시우가 총을 들지 않는다는 건, 자신을 상대함에 있어서 전력을 다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쓰레기 같은 놈. 너희가 낡았다고 비웃은 궁술은…….”

떨리는 사쿠라의 목소리.

그제야 이시우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궁술을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

[활도! 궁술로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어요!]

‘저 녀석은 그때…….’

사쿠라는 저벅저벅- 느릿하게 걸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우, 우리. 아버…….”

갑자기 막혀버린 목소리.

사쿠라는 우뚝 그 자리에 멈추어버렸다. 쵸텐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사쿠라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집을 나왔다.

아버지가 자신의 추억이 깃든 도장을 폐관하는 게 너무나도 화가 났으니까. 처음에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막연한 분노.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사쿠라는 알게 됐다.

사쿠라는 아버지가 도장을 포기하고 부드럽게 웃는 게 아닌,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다시 소리쳐 주길 원했다.

궁술은 낡지 않았다.

우리들은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포기하지 않길 원했다.

“궁술은……. 나의 자랑이야.”

노여운 눈으로 이시우의 방향을 노려보는 사쿠라. 어린 시절부터 도장을 다녔던 사쿠라는 아버지가 얼마나 궁술에 진지하게 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너희가 비웃고……, 장난을 쳐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고…….”

아버지는 사쿠라가 활을 들게 되면 언제나 고리 타분한 마음가짐을 읊어주었으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총을 들어.”

단호한 사쿠라의 목소리.

이야기를 듣던 이시우는 나무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한 이시우와 사쿠라. 나무를 통과하고 내리쬐는 눈부신 햇빛. 그 빛에 번쩍이는 은색의 권총.

이시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사쿠라를 바라보았다. 경험이란 신기했다. 단순히 쇠붙이를 든 것만으로 머리가 텅 빈 것처럼 고요해졌고, 빠르게 뛰던 심장은 안식을 찾았다.

자신이 사쿠라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일까. 계속해서 고민하던 이시우는 권총을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도전해볼 가치는 있겠는데.’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 나온 이시우는 손에 들고 있는 권총을 보여주었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그 모습에 사쿠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자신의 오해가 아니었다.

‘역시 이 녀석은…….’

도장에서 궁술을 비웃었던 이성환이란 남자의 아들. 사쿠라는 이시우에게만큼은 절대 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우의 생각은 달랐다.

“근데 어쩌지.”

탁.

이시우는 제 자리에서 권총을 놓아버렸다.

덜그럭!

흙바닥에 떨어져 버린 권총.

이시우는 사쿠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난 네 기분에 맞춰주고 싶지 않은데?”

사쿠라가 상상도 하지 못한 도발.

사쿠라는 벙찐 얼굴로 바라보더니 곧 표정이 흉악해졌다.

“너-!”

이시우에게 겨눈 사쿠라의 활시위.

“……우리를! 궁술을-! 끝까지 바보 취급할 셈이야?”

사쿠라의 분노 섞인 목소리에 이시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빈정거렸다.

“……음 글쎄?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네 활과 달리. 나에게 총은 그런 존재가 아니거든.”

이시우는 차가운 눈으로 사쿠라를 마주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넌 활을 쏘는 게 행복했을지 몰라도. 난 총을 든 1분 1초가 지옥 같았어. 총 같은 건 다신 안 잡아.”

이시우는 단호하게 이야기 하더니 사쿠라를 향해 도발적이게 웃었다.

“그냥 비무장 상태인 날 쏴버리는 게 어때? 네 잘난 활로.”

도발에 참지 못한 사쿠라는 이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너-!”

이시우의 멱살을 잡은 사쿠라는 다리를 지렛대처럼 이용해 간결한 자세로 이시우를 때려눕혔다.

콰앙!

이시우가 쓰러진 장소는 권총의 바로 옆. 사쿠라는 이시우에게 검지를 겨누며 작게 읊조렸다.

“……총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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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잉-!

사쿠라의 검지에서 뭉치기 시작하는 바람의 힘. 그런데도 이시우는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싫어.”

지금까지 본 사쿠라의 모습으로 이시우는 알고 있었다. 사쿠라는 이시우를 절대 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무방비한 상태가 너무나도 안전해진 아이러니한 상황. 사쿠라는 쓰러진 이시우에게 올라타 멱살을 잡고 억지로 상대의 고개를 치켜세웠다.

“총을 들어-!”

살기가 형형한 사쿠라의 눈빛.

하지만 사쿠라에게 멱살을 잡혔음에도 이시우는 여유로웠다.

“……그럼 이건 어때?”

오히려 이시우는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제안을 했다.

“특성을 쓰지 마.”

굳어버린 사쿠라는 미간을 좁혔다.

“……뭐라고?”

“말했잖아. 특성을 쓰지 말라고.”

탁.

이시우는 멱살을 잡은 사쿠라의 손을 쳐내더니 말을 덧붙였다.

“나와 특성 없이 오로지 순수한 사격술로 겨루는 거야.”

그리곤 씩 웃었다.

“……그럼 얼마든지 총을 잡아줄게. 왜? 나와 실력을 겨뤄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

눈빛이 변한 이시우는 사쿠라에게 쐐기를 박았다.

“……설마 S급 특성으로 날 이기고. 활이 총을 이겼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야?”

사쿠라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이야기. 이시우의 말은 이미 제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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