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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109/434)

제109화

이제 곧 시작하는 2라운드.

스미레는 대기실에서 이시우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만약 이번 경기에서 이시우 씨가 이긴다면…….’

대항전의 룰은 3선 2승.

스미레는 3라운드에 나가지 않아도 됐다. 그럼 스미레가 잇신과 전투를 할 일도 없었다.

잇신과 ‘그 사건’이 떠오르자 스미레는 손이 떨려왔다. 억지로 쥐어보는 주먹.

‘내가…….’

마음이 복잡해진 스미레는 옆에 앉은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사실 대항전의 무대가 일본만 아니었다면 스미레는 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신유성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잇신과의 대면은 그런 마음을 집어삼킬 만큼 무서웠다.

스미레는 학교조차 나오지 않고 일본을 떠났고, 잇신과 파티원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때문인지 스미레를 보는 잇신의 눈은 너무나도 서늘했다.

그러니 스미레는 차라리 출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비겁한 생각이 깊어질수록 스미레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정말…… 유성 씨의 파티원으로 어울릴까?’

꾸욱.

스미레는 입술을 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설령 아니라고 해도.’

스미레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난 바뀔 거야. 유성 씨의 파티원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이제 스미레는 신유성이 없는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신유성과 함께 했던 시간과 파티생활은 이제 스미레의 모든 것. 선택지는 처음부터 하나뿐이었다.

*     *      *

[- 메아리 숲 -]

홀로그램에 맵의 이름이 보이자마자. 이시우는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전투 장소가 숲이라고?’

숲은 사수에게 있어 장단점이 뚜렷한 곳이었다.

쉽게 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지만, 동시에 우거진 나무와 거대한 바위가 깔린 지형 등으로 인해 조준이 어렵다는 것은 최악이었다.

‘뭐, 나한테 이정도 숲은 껌이지.’

극지방의 추위.

습한 열대 정글.

극심한 추위의 극지방.

아버지의 특수 훈련으로 모든 지형을 극복해본 이시우였다.

‘내가 은폐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노릴 수 있는 곳으로 유도해야 해.’

호흡을 죽이며 이시우가 천리안을 사용하자. 돋보기를 사용한 것처럼 눈앞이 확대됐다.

‘……딱히 흔적은 안 보이네.’

하지만 천리안으로 볼 수 있는 건 엄폐물이 없는 장소뿐. 이렇게 엄폐물이 많을 땐 효과가 떨어졌다.

‘이럴 땐 방법이 있지.’

이시우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곳을 짚어 거리를 가늠했다. 나뭇가지들이 떨어진 장소.

‘저렇게 구석이라면 확인하기 위해선 무조건 위치가 드러나겠지.’

생각을 마친 이시우는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보자 바닥이 흙이고, 숲이면 3번으로…….’

무언가의 정체는 숫자 3이 적힌 아주 작은 스피커. 이시우는 화살에 스피커를 매달았다. 그리고 아까 보아둔 장소를 향해 쏘았다.

쐐액! 퍽!

수풀 사이에 꽂힌 화살.

이시우가 달아둔 스피커는 그제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인위적이지 않은 누군가의 발소리.

심지어 소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수풀을 뒤지는 소리와 숨기라도 하는 듯 잠깐 멈추는 소리.

이시우는 기척을 죽이고, 기회를 기다리며 나무에 숨어있었다.

스스.

조심스럽게 나뭇잎을 밟으며 걸어오는 누군가의 발소리. 이시우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바보. ……직선으로 오다니.’

이시우는 아무 것도 없는 수풀을 향해 활을 겨눴다. 그러자 곧 수풀에선 몸을 숙인 사쿠라가 걸어 나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모양.

이시우는 시위를 더 팽팽하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제법 가까운 거리.

하지만 사쿠라는 기척을 숨긴 이시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시우의 화살촉은 사쿠라의 머리에 겨눠진 상태. 이시우는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더 가까이 와라. 한 발자국만.’

스슥.

마침내 다가온 결전의 순간.

스피커를 확인한 사쿠라의 동공이 커졌다. 그리고 그 순간.

‘끝이다!’

이시우는 시위를 놓았다.

파앙-! 쐐애액!!

자세 때문에 힘은 부족했지만 화살이 노려진 곳은 정확히 사쿠라의 머리.

“크윽! 너-!”

사쿠라는 눈을 부릅뜨며 손을 뻗었다. 바람의 힘으로 화살을 막아보려는 판단이었다.

부우웅-!

하지만 급하게 발휘한 특성의 힘은 한없이 약했다.

쩌정-!

기껏해야 화살을 늦추는 게 전부.

사쿠라의 배리어는 홀로그램 파편을 튀기며 부서졌다.

[배리어를 79% 파괴하셨습니다.]

[남은 배리어 21%]

이시우는 홀로그램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방엔 못 끝낸 건가.’

사쿠라는 도망치는 이시우를 보며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활?”

뭔가 이상했다.

절대 활을 사용할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시우는 기억조차 못하지만.

사쿠라에겐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치욕의 기억.

‘……네가?’

멍한 표정이던 사쿠라는 곧 노여워진 얼굴로 이를 꽉 깨물었다.

‘활을 비웃은 건……. 다름 아닌 너희였잖아…….’

7년이 지났지만 생생했다.

분한 마음 때문일까 사쿠라는 그의 이름조차 까먹지 않았다.

한국 시티가드의 총장. 이성환.

생각해보면 도장이 기울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이곳입니까?]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

이성환이 차가운 시선으로 도장을 둘러보자 오키나와의 서장은 애써 도장을 두둔해주었다.

[예. 꽤 유서가 깊은 곳입니다. 궁술로서는 오키나와에서 유일하게 시티가드의 훈련장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고…….]

한국의 총장과 오키나와의 서장의 출두에 사쿠라의 아버지는 하카마를 입은 채로 달려 나왔다.

[서장님! 갑자기 어쩐 일로…….]

[그게 말일세…….]

갑자기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

이성환은 사쿠라의 아버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역시 활은 시대착오적인 무기. 이곳도 훈련장으론 제외하는 게 좋겠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쿠라의 아버지가 불같은 목소리로 따지자, 이성환은 오히려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찡그렸다.

[활은 시대착오적인 무기라고 했소. 그러니 이 도장은 시티가드들의 훈련장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고.]

사쿠라의 도장은 7할 이상이 오키나와의 시티가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갑자기 그들 모두가 그만두게 된다면 사쿠라의 도장은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

그러나 이성환은 도장의 사정 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으면 실전에서 괴수를 상대로 활을 사용하기까지 몇 년이 걸립니까?]

이성환이 질문을 하자. 서장은 눈치를 보더니 결국 대답했다.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3년에서 4년 정도가 걸립니다.]

[시티가드들은 무술을 추구하려고 훈련을 받는 게 아닙니다. 시민을 괴수와 빌런에서 지키기 위해 살상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이야기를 하던 이성환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헌터 용품이 널린 지금 시대에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낡은 도장에서 3년이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빠득-

10살에 불과했던 사쿠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책가방을 멘 채 이성환에게 달려왔다.

[궁술을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

[사쿠라!]

아버지가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사쿠라는 오늘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활도! 궁술로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어요!]

이성환은 사쿠라의 이야기에 비릿한 웃음을 흘리더니. 옆에 있는 서장에게 말했다.

[헌터 용품은 얼마나 쉽고, 얼마나 강력한지 직접 눈앞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성환은 과녁장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시우야. 총을 들어라.]

사쿠라는 그제야 과녁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못 보던 남자아이가 서있었다.

자신보다도 작은 키.

딱 맞게 제작된 신기한 총.

남자아이는 능숙하게 권총을 쥐더니 그 자리에서 연발을 쏘았다.

탕탕탕탕!!

절제된 동작과 함께 쏘아진 푸른빛. 총알의 힘은 과녁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압도적인 파괴력과 적중률.

사쿠라는 얼이 나간 얼굴로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오키나와의 서장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건…….]

다시 비릿하게 웃어 보이는 이성환. 사쿠라의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석의 힘이 담긴 총이라면. 이렇게 어린아이조차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괴수를 처치할 수 있습니다.]

총알이 발사된 순간 이미 승패는 결정 지어진 것이다.

[괴수를 처리하는 정도라면 사격술을 가르치는데 한 달이면 족합니다. 총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작전에도 투입이 가능하지요.]

이성환의 이어지는 설명에 사쿠라의 아버지는 입을 닫고 가만히 침묵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패배.

이성환은 마치 들으라는 듯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티가드인 저희까지 낡아빠진 유산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성환의 말이 끝나자. 서장은 곤란한 얼굴로 사쿠라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됐네. 미안하지만 이제 대원들이 이곳에 훈련을 위해 오는 일은 없을 걸세…….]

그렇게 사쿠라의 도장에 내려진 사형선고.

[……아버지?]

사쿠라가 애타게 불러도.

언제나 담담했던 사쿠라의 아버지는 허망한 얼굴로 과녁만을 바라보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던 기억. 사쿠라는 그날의 일이 떠오르자 활을 꽉 쥐었다.

“……아버지를! 궁술을 비웃은 너희가! 왜 활을!”

메아리의 숲이란 이름처럼.

쩌렁하게 외친 사쿠라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숲에 울려 퍼졌다.

“나를 바보 취급하는 거야!?”

분노한 사쿠라를 향해 이시우의 화살이 날아왔다.

쐐애액!

하지만.

부웅!

사쿠라가 온 힘을 다해 손을 휘두르자. 바람이 몰아치며 이시우의 화살은 땅에 꽂히고 말았다.

퍼억!

“……거기구나?”

곧바로 냉정을 찾은 사쿠라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화아악- 돌풍이 일며 화살을 휘감는 바람의 힘.

사쿠라는 숲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파아아앙!!!

시위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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