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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108/434)

제108화

세이지는 이를 바득 물었다.

몽환의 성에서 신유성의 강함은 이미 확인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번 공격으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건물의 그림자를 이용한 인술 제5형 월식.

그리고 이어지는 연타는 체술의 묘리를 극대화한 세이지의 비장의 공격인 제4형 비섬.

‘이 단검만 박아 넣으면! 배리어를! ……승리를!’

세이지의 속도는 엄청났다.

이것이 바로 비섬의 효과.

온몸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기분이었지만 세이지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세이지의 쾌속은, 어디까지나 세이지의 최속.

자신의 모든 전력을 다했음에도 신유성에겐 너무 느렸다.

‘보인다.’

특성인 [집중력 강화]로 잘게 쪼개진 시간. 신유성은 자신에게 파고들려는 세이지의 동작과 단검의 검로가 멈춘 듯 보였다.

‘노리는 건 심장.’

검로를 깨달은 이상.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단검이 가까워도 흑룡강신을 사용한 신유성의 속도는 추종을 불허했다.

‘왼발을 딛으면서.’

해답을 보고 푸는 문제.

‘반대편으로 몸을 비튼다.’

신유성에게 세이지의 공격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파앗!

부웅-!

신유성이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자. 세이지의 단검은 허공에 꽂혔다.

‘아-!’

등골이 서늘해지는 오싹한 기분.

세이지는 실패를 직감한 순간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팟!

부웅-!

아니나 다를까 신유성은 곧바로 손을 뻗고 있었다.

‘저건 피해야 한다!’

세이지는 땅에 발이 닿기도 전에 고개를 틀었다.

파앙!!

신유성이 손을 뻗자. 마나의 파동이 세이지의 옆을 스쳤다.

“크윽!”

옆을 지나친 것만으로 머리가 어질해지는 충격파. 하지만 세이지는 직격을 피했기에 데미지는 없었다.

‘다행이다. 빗맞춘 건가? 이걸로 기회가…….’

세이지가 다시 인을 맺으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쿠구구궁-!

폭음의 정체는 무너지는 건물.

인을 맺던 세이지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빗맞춘 게 아니야.’

신유성은 처음부터 건물을 노렸다.

그 이유는 당연히 건물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츠츠츳!

세이지가 마나를 부여하자 땅에서 그림자가 치솟았다.

“제1형 그림자 포박!”

신유성을 향해 퍼부어지는 그림자들. 하지만 건물이 무너지며 세이지의 힘의 원천인 거대한 그림자가 사라졌다.

세이지의 그림자는 닿기도 전에 흑룡강기의 마나에 지워져 버렸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

상황을 파악했을 땐 세이지의 눈앞엔 이미 신유성이 보였다.

‘이게. 한국의 대표…….’

강함의 차원이 달랐다.

자신이 몇 번을 덤비든 이길 수 없는 존재. 그럼에도 세이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번 공격만! 이번 공격만 피하면!’

세이지는 몸을 그림자로 바꿔 숨으려고 했다. 그림자가 된 순간에는 물리적인 타격을 무시할 수 있었다.

“세이지. 이걸로 끝이야.”

하지만 그 모든 걸 예상한 신유성의 목소리. 신유성의 마나가 부여된 손바닥이 세이지의 가슴에 닿았다.

탓.

투신류 흑룡암쇄장(黑龍巖碎掌)

퍼억!

둔탁한 소리.

가슴에서 퍼지는 격렬한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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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뿜어져 나온 흑룡암쇄장의 파괴적인 힘은 전방의 모든 걸 일그러뜨렸다.

콰콰쾅!!

마치 전원이 내려간 것처럼, 꺼져버린 정신. 세이지는 마치 온 세상이 하나의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

마치 세이지는 공허한 우주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 들었다.

가상 포탈에서 탈락처리 된 이상. 곧 현실로 퇴출될 게 분명했다.

‘내가…… 졌구나.’

세이지는 분한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너무 강했으니까.

‘류코였다면…… 어땠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세이지는 그만 웃고 말았다.

[난 말이지. 일본 최강의 헌터가 될 거야! 그다음은 세계에서 최고가 될 거야!]

세이지의 별은 지고 말았다.

하지만 져버린 별을 위해.

그 꿈을 쥔 채 스스로 별이 되고자 했다. 누군가의 꿈을 이어간다는 건 그 짐을 짊어지겠다는 것.

‘……미안, 류코.’

지금까지 세이지는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특성과 체술을 연마해 쵸텐에 들어왔고, 학교의 이름처럼 모든 일본의 1학년 중 정점이 되었다.

무수히 많은 상대를 추락시키며 실력으로 쟁취해낸 승리. 그러나 이번에는 세이지가 추락하고 말았다.

‘역시…….’

결국 지금의 목표는 세이지 자신의 꿈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빌려낸 꿈. 자신이 가짜라면 신유성은 진짜였다. 진짜 최강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류코처럼.

‘난 널…….’

깊은 물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 별은 추락했고, 세이지의 몸은 현실로 추방되고 있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     *      *

요코하마 경기장의 선수 대기실.

세이지는 합장을 하며 팀원들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사죄를 했다.

“미안! 져 버렸어!"

그러나 일본 팀은 패배한 세이지를 누구도 추궁하지 않았다.

씁쓸한 표정의 사쿠라와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잇신.

“……세이지. 괜찮아?”

평소와 달리 사쿠라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묻자. 세이지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더니 평소처럼 웃어주었다.

“응…… 괜찮아!”

사쿠라에게 보이는 건 오직 세이지의 웃고 있는 입.

“내가, 내가 다음에는 더……. 강해지면…… 되지!”

하지만 애써 담담해지려는 목소리와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

5년의 시간이 흐르고.

세이지는 류코의 꿈을 좇아 일본의 최강이 되었다.

‘류코…….’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12살의 그때와 같았다. 만약 류코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한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한 상황.

[남자가! 울지 마!]

그러나 세이지는 그 잔소리가 그리웠다.

*     *      *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

신유성은 가온의 1위였던 아델라를 이겼다. 그런 신유성에게 세이지는 상대가 아니었다.

승자의 당당한 귀환.

“유성 씨!”

“유성아!”

스미레는 환해진 얼굴로 신유성을 반겼고, 이시우는 쌍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떻게 S급 특성을 그렇게 쉽게 이기냐? 진짜 쩔더라! 역시 이길 줄 알았어!”

“쿠로키 씨를 그, 그렇게 쉽게……. 역시 대단하세요!”

일본에서 온 스미레는 세이지의 소문을 익히 들었다. 그림자를 다루는 S급 특성을 이용해 단 1년 만에 일본의 최강이 된 학생.

그건 모두 세이지가 류코를 위해 노력을 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세이지도 신유성에겐 간단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제 네 차례야. 힘내. 시우야!”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웃는 신유성. 양심이 찔린 이시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 그래! 나만 믿어줘!”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이시우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 궁술로 쵸텐의 세븐넘버를 이길 수 있을까?’

일본의 하나사키 사쿠라.

궁술을 배운 이시우로선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이용이 쉽고 편리한 헌터 용품의 등장으로 활용 난이도가 높은 활은 헌터계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는 무기였다.

하지만 사쿠라는 수많은 무기들 중 오직 활만을 사용했다. 특히 특성을 제외하더라도 사쿠라의 궁술은 사수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실력.

‘……차라리 내가 총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저벅저벅.

이시우는 포탈이 있는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 와아아아아!!

파도 같은 인파의 환호.

‘……아버지도 가족들도. 모두 보고 있겠지.’

아버지를 떠올리자 이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저벅저벅.

이시우가 애써 찝찝한 기분을 참으며 포탈 앞에 서자.

“너…….”

옆에 있던 사쿠라는 미간을 좁히며 말을 걸었다.

“일본에 온 적 있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쿠라는 확신을 하지 못하는 얼굴로 보였다. 마치 손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퍼즐을 맞추는 모양새.

“하하, 아니 착각한 거 같은데?”

이시우가 웃으며 말을 하자. 사쿠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왔었잖아? 시티가드의 총장이랑 우리 도장에…….”

무언가 일이 떠오른 듯 서늘해진 사쿠라의 목소리.

“글쎄~ 난 기억이 잘.”

이시우가 여전히 웃자.

고개를 돌린 사쿠라는 똑바로 이시우를 노려보았다.

“……너흰 잊었을지 몰라도. 내가 그 일을 잊을 거 같아?”

미간을 좁힌 사쿠라의 표정은 평소의 싱긋싱긋 여유롭게 웃어주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제야 이시우는 무감한 말투와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몰라. 너희 사정 따위. 알고 싶지도 않고.”

그 말을 끝으로 쯧- 하고 혀를 차는 이시우. 대회의 시작부터 긴장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진행자인 유키는 둘의 사정 따윈 알지도 못한 채 해맑게 웃으며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그럼 한일! 국가 대항전의 2라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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