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스크린으로 대진표가 모두 공개되자. 유키는 마지막 설명을 덧붙였다.
“포탈을 통과해서 펼쳐지는 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장소! 갈고 닦았던 모든 힘을 아끼지 않고 발휘 할 수 있습니다!”
깔끔한 진행과 함께 유키는 환하게 웃었다.
“맵 추첨은 일본을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랍니다~ 자 그럼 모두 선수들에게 힘찬 응원 보내주세요!”
관중들의 함성.
자신의 승리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 계속해서 쿵쿵 울려대는 가슴의 진동. 세이지는 웃으며 신유성에게 악수를 신청했다.
“우리 최선을 다하자!”
신유성은 그런 세이지에게 웃어주며 악수를 받았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로 나서게 된 두 파티장의 악수. 관중석의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포탈이 작동됐다.
지이잉!!
전투에 돌입할 상황이 다가오자.
신유성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첫 라운드.’
김은아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지금, 한국의 우승을 위해 신유성의 승리는 필수적이었다.
‘일본 팀은 전원이 S급 특성.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머지 1명의 능력을 체크하지 못했어.’
새롭게 얻은 편린의 힘으로 스미레는 엄청나게 강해졌지만, 그녀에겐 대련의 경험이 많은 게 아니었다. 마냥 낙관적으로 보긴 힘든 상태.
신유성은 포탈을 노려보며 승리를 다짐했다.
‘무조건 이긴다.’
* * *
[- 실버문 시티 -]
신유성은 포켓이 비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실버문 시티는 그 이름처럼 하늘 위에 은빛의 달이 떠있었다.
‘……특이한걸. 이 맵의 시간은 밤으로 고정인가 보군.’
실버문 시티는 마천루와 같은 거대한 타워들이 즐비한 인공도시로 대항전을 위해 준비한 가상의 공간 중 하나였다. 하늘에서 비추는 은은한 달빛은 보기 좋게 내리 쬐고 있었다.
‘나에겐 잘된 일인가?’
상대방이 어떤 방식의 전투로 유도할지 모르는 상황. 신유성은 차분하게 주위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세이지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 감각을 깨웠다.
‘그림자가 자연적으로 생기는 곳을 조심하면 되겠지.’
물을 다루는 특성을 가진 박수현이 수영장에서 강한 것과 같은 원리. 그림자가 진 곳은 공격에 사용하는 그림자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맵의 시간은 밤.
하늘에는 태양 대신 달빛이 내리쬐고 있었고, 달빛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저벅저벅.
신유성은 세이지를 찾아내기 위해 기척을 감추고 밤의 도시를 걷기 시작했다.
* * *
기다란 리무진 안.
김은아는 심각한 얼굴로 입술을 질근 물었다.
“으…….”
“……센 척하더니. 긴장한 거야?”
한숨을 쉰 이수현이 걱정되는 얼굴로 묻자. 김은아는 착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끄러…….”
김은아의 어머니인 김윤하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결국 직접 김윤하를 찾아가기 위해 리무진의 안에 타게 된 김은아.
이수현은 김은아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지만 김윤하를 설득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꼴로. 사모님한테 어떻게 말하게? 진짜 할 수 있겠어?”
김윤하가 김준혁을 통해 헌터 생활에 위험성을 느낀 이상. 절대 김은아를 가만히 둘 이유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사모님이 널 지금까지 가만히 둔 게 신기할 정도야. 현실적으로 너희 오빠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잖아?”
“……말조심해.”
싸늘해진 김은아의 목소리.
하지만 이수현은 진지한 얼굴로 충고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이야기야!”
경호원들이 놀랄 정도로 소리를 치는 이수현. 그녀는 김은아를 쳐다보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네가 지키고 싶은 게 있으면. 당당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전부 말해! 떨어서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알았어!?”
이수현의 기세에 김은아는 결국 고개를 움직였다.
“……알았어.”
“네 말이 맞아. 이제…… 아니 난 원래 알았어. 네가 새롭게 얻은 파티가 너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파티에서 지내며 바뀐 김은아의 성격. 즐거워하던 김은아의 모습. 진지하게 임한 김은아의 마음.
이수현은 그걸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바로 이수현 그녀가 김은아를 위해 김윤하의 명령에 거스른 이유.
“……전부 설명해드려. 사모님은 너에게 파티가. 헌터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시니까.”
이수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무진은 한 건물에 도착했다.
신성그룹의 일본 본사.
신성그룹의 사모님인 김윤하가 직접 관리하는 곳. 김은아는 건물 앞에 선 것만으로 절로 긴장이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은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좋아, ……알았어. 엄마를 보러 가보자.”
* * *
태양이 없는 도시.
세이지는 실버문 시티의 중앙에서 당당한 자세로 팔짱을 낀 채 크게 소리쳤다.
“하하! 경기장의 시간이 밤이라니. 정말 예상 밖이었어! 포탈 밖은 대낮인데 말이야.”
마치 기척을 숨긴 신유성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모습. 신유성은 멀리서 세이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상대도 나처럼 정면 승부를 원하고 있어. 하지만 특정 장소를 벗어나진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세이지의 특성은 그림자. 분명 이유는 그림자와 관련이 있을 게 확실했다. 하지만 세이지가 택한 곳은 4개의 타워가 벽처럼 감싼 공원의 중앙이었다. 단순히 시야만 생각하면 탁 트인 평지.
기습의 가능성이 없는 장소였다.
저벅저벅.
당당하게 세이지의 앞에 나선 신유성. 세이지는 해맑게 웃었다.
“미안! 준비를 한다고 좀 늦었어.”
신유성조차 세이지가 힘의 근원인 그림자를 어떻게 만들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최대한의 방비는 긴장을 곤두세우는 것뿐.
타앗!
신유성의 선공.
신유성은 땅을 박찼다.
너무 빨라 평범한 헌터는 반응하기조차 힘든 속도.
쐐액!
신유성의 주먹은 쾌속으로 세이지의 머리에 꽂혔다.
퍼엉!
세이지의 머리가 터져서 흩어졌다.
하지만 보이는 건, 피육이 아니라 연기 같은 검은 잔상이었다.
“제 1형 그림자 포박!”
미소를 지은 세이지가 인을 맺자. 바닥에 있던 세이지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이건 세이지가 마나로 직접 만들어낸 그림자. 위력은 강하지 않았다.
파바밧!
그림자가 촉수처럼 휘감으려 하자, 간단한 동작으로 쳐낸 신유성은 뒤로 물러났다.
탓!
그림자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백스탭. 그 모습에 세이지는 웃으며 팔을 휘둘렀다.
“바로 거기야!”
세이지의 신호와 함께 공원을 향해 쏟아지는 엄청난 빛.
번쩍!
빛의 정체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세이지가 미리 포켓에 준비해둔 설치형 후레쉬였다.
설치된 장소는 거대한 타워의 꼭대기. 설치된 후레쉬는 하나가 아니었다. 몇몇 후레쉬는 타워보다 작은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설치용 후레쉬는 세이지가 준비한 일종의 헌터용품. 강력한 빛은 여러 가지 각도로 건물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제 5형! 월식!”
마치 기다렸다는 얼굴로 눈을 부릅뜨며 인을 맺는 세이지. 후레쉬 덕에 여러 각도로 만들어진 거대한 그림자에선 안개 형태의 그림자가 신유성을 향해 퍼부어졌다.
휘이익!
월식으로 만들어진 안개는 마나로 질량이 부여된 그림자. 닿는 모든 물체를 으스러뜨릴 수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 파도가 자신을 압사시키기 위해 다가오자. 신유성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좋은 작전이었어.”
투신류 4장 흑룡강신(黑龍强身)
츠츠츠츳!!
신유성에서 치솟는 검은색의 강기는 다가오는 월식의 그림자를 먹이처럼 집어삼켰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마나의 밀도. 신유성이 가진 압도적인 힘.
“이건…….”
세이지의 최고의 공격이 너무나도 허망하게 막혀버렸다. 세이지는 이를 아득 물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제4형 비섬!”
그림자로 변한 세이지는 섬광과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손에는 입자가 모여 단검이 만들어진 상황.
파앗!
이번 공격에 전력을 담은 세이지는 신유성을 향해 질주하며 이를 꽉 물었다.
“이게 내 전부다!”
전략을 통해 만들어낸 유일한 기회. 이제 세이지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