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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106/434)

제106화

한바탕 벌어졌던 소란.

김은아와 이수현. 둘은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푹신한 침대 위. 잠옷을 입고 죽을 먹으며 어느 정도 기력까지 회복한 김은아. 그 옆에는 같이 잠옷을 입고 한숨을 쉬는 이수현이 있었다.

“에휴…….”

이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김은아를 흘겨보았다.

“야, 알고 있지? 내일 네 엄마 찾아가면 난 바로 해고인 거? 넌 고마운 줄 알아야 해.”

김은아는 그 말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흥, 배신자.”

화는 안내지만 퉁명스러운 표정. 김은아는 조금 삐진 듯 보였다. 이수현은 그런 김은아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시키는 걸 어떻게 하니? 너희 가족들이 얼마나 입김이 센지 몰라?”

이수현의 말에 칫-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는 김은아. 이수현은 마음이 복잡했다.

‘진짜, 내가 미쳤지. 사모님한테 개길 생각을 하다니…….’

김은아의 어머니인 김윤하는 신성그룹에서 김석한 다음가는 권력가였다. 아무리 6급 헌터인 이수현이라도 김윤하의 명령을 어기는 건 부담스러운 일.

그런 와중에도 이수현은 김은아의 걱정을 했다.

“너, 내일 100퍼 몸살이니까. 얼른 자는 게 좋을 걸?”

“……그게 누구 때문인데.”

김은아는 작게 투덜거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내일 ……엄마한테 데려다준다는 거 진짜지?”

“그래.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줄게.”

김은아의 이야기에 대답한 이수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근데 넌 왜 헌터를 하려고 하니? 집도 재벌인 애가.”

“그냥 하고 싶으니까.”

김은아의 심플한 대답.

이번에는 김은아가 이수현에게 물었다.

“그러는 넌 왜 현역을 그만뒀는데? 예전엔 잘 나갔다며.”

“그건……. 하아, 그래. 궁금해?”

무언가를 말하려던 이수현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 어떤 헌터라도.”

이수현은 문득 김윤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헌터가 되는 건 자신의 딸에게 너무 위험하다는 이야기.

6급 헌터인 이수현은 그 이야기에 백번 공감했다.

“분명 슬퍼하게 되는 날은 와.”

진지한 이수현의 목소리.

이수현은 씁쓸한 어투로 말을 덧 붙였다.

“난 그걸 버티지 못했을 뿐이야.”

이수현은 6급 헌터가 되는 과정까지 많은 전투를 겪었다. 그 중에는 던전이나 탑을 공략하기 위해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이 작은 실수 하나에 종잇장처럼 휘둘리는 상황.

이수현은 그런 헌터들의 생활이 너무 싫었다. 차라리 신성그룹에서 위험하지 않은 비서 생활을 하는 편이 백배 나았다.

김은아는 다리 위에 올려둔 오르카를 쓰다듬으며 한참동안이나 생각에 빠졌다. 그리곤 깊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 거야?”

김은아의 질문에 이수현은 한참 동안 정적을 유지했다. 입을 연 건 생각이 정리된 다음이었다.

“그래. 넌 절대 감당할 수 없거든.”

이수현은 자신이 가진 기억을 더듬었다. 김은아는 겉으론 까칠한 척 굴지만 속마음은 정이 많았다.

병실로 면회를 갈 때면 하루를 꼬박 김준혁의 곁에서 울고 있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네가 용기가 없다는 게 아니야. 헌터는 말이지. 잔인한 직업이야.”

그렇게 말한 이수현은 괴로운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엔 최선이라는 이름으로 선택을 내리게 되는 때가 와.”

말을 하지 않지만 이수현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결과에 따라선 동료들을 직접 희생시켜야 할 수도 있어.”

이수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본 김은아라면 절대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김은아의 그 연약한 마음이 더 큰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넌 네가 서 있는 곳의 위치를 몰라. 넌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

이수현은 신성그룹의 고용인이 아닌, 김은아의 언니로서 차분하게 말을 했다.

“넌 헌터가 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을 할 수도 있어.”

휙-

이야기를 하다 감정이 격해진 이수현은 김은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거기엔 이수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진 김은아가 있었다.

잠에 빠진 순간만은 누구보다 순한 얼굴의 김은아. 이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피곤할 만도 하지.’

김은아는 이수현의 특성인 언령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그건 엄청난 마나를 소모하는 일. 이수현이 어깨를 빼고 빠져나오려 하자.

김은아는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으으응…….”

김은아의 갑작스런 앙탈.

결국 이수현은 김은아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하지만 이수현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역시 이럴 땐 귀엽네.’

마나를 많이 쓴 탓일까.

졸고 있는 김은아를 보고 있으니 이수현도 점점 졸려왔다. 거기다 코 닿을 거리에서 색색거리는 김은아의 숨소리는 마치 자장가 같았다.

‘으음……. 똑바로 누워서 자야 하는데…….’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점점 눈이 감기는 이수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서로에게 기댄 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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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

수용인원이 7만 명이 넘는 거대한 경기장은 빽빽한 관중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열혈 소년! 세이지! 파이팅!]

[사쿠라 최고다!]

[잇신!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줘라!]

[여기는 우리의 홈 그라운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화려하게 걸린 플랫카드. 세이지를 비롯한 일본팀이 입장하자 관중들은 박수 세례를 보냈다.

그리고 신유성을 포함한 한국팀이 입장하자 확실히 작은 박수 소리.

요코하마는 어쩔 수 없는 일본 팀의 홈그라운드였다. 대부분의 일본 관중으로 구성된 경기장에서 일부의 관객들이 예의상 박수를 쳐 줄 뿐 타국의 팀을 응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 안녕하세요! 이번 대항전의 진행을 맡게 된 유키!

- ……6급 헌터 쇼이치입니다.

밝게 웃고 있는 진행자와 떨떠름한 표정의 해설위원. 둘은 일본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이었다.

특히 쇼이치는 심안이라는 이명으로 한국에서 활동을 했던 6급 헌터. 실력은 세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

- 이번 한일전은 국가대항전의 첫 경기! 전 세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는데요!

유키는 활발한 목소리로 진행을 이끌더니 카메라가 줌이 되자 방긋 웃었다.

- 쇼이치 해설위원님은 시작에 앞서 관전 포인트를 어느 부분이라 생각하시나요?

- 뭐, 저는 아무래도……. 대진이라고 봅니다. 1대1로 3판 2선승제 경기인 만큼. 파티장이 확실히 점수를 따내는 게 중요합니다.

쇼이치의 말이 끝나자.

유키는 아하-! 하고 과한 제스처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크린을 가리켰다.

- 그럼 대진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참고로 대진표는 시험의 하루 전. 파티장들이 사전에 정해주셨습니다! 정말이지 공정하고 공정한 룰! 그럼 어디 확인해볼까요?

[한: 1라운드-신유성]

[일: 1라운드-쿠로키 세이지]

대진표가 공개되자. 쇼이치는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잠깐 인상을 찡그렸다.

반면 유키는 오오- 하고 신기하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 아하! 1라운드는 두 파티장의 승부가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분위기를 가져오기 위해 선발을 가장 강력한 대표 선수로 택한 모양입니다!

유키의 말은 사실이었다.

첫 라운드의 분위기를 잡기 위해.

한국 팀은 신유성을.

일본 팀은 세이지를.

각 파티장들은 자진해서 1라운드의 출전을 택했다.

“음! 파티장끼리의 전투라! 이거 긴장되는걸!”

말은 그렇게 하지만 웃는 세이지.

사쿠라는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내 말대로 신유성은 피하지 그랬어. 다른 애들이면 안전하게 1점을 따올 수도 있는데.”

“믿어줘. 최선을 다할게.”

“바보.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고. 점수를 따오라고~”

사쿠라와 세이지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 유키는 대진표의 두 번째 라운드를 공개했다.

-자~ 두근두근! 그럼 두 번째 라운드의 대진표도 공개합니다! 짠!

[한: 2라운드-이시우]

[일: 2라운드-하나사키 사쿠라]

스크린을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얼굴로 웃는 사쿠라.

“헤에? 뭐야~ 쟨? 스미레도 김은아도 아니잖아?”

사쿠라는 의외라는 얼굴로 맞은편을 바라봤다. 그제야 보이는 이시우의 얼굴.

“쟤는…….”

사쿠라는 무언가 떠오른 모양인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세이지는 하하- 하고 웃었다.

“그럼 3라운드가 김은아인가?”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여긴 어색한 관계도 있고…….”

그렇게 말을 하며 잇신을 흘기는 사쿠라. 3라운드에서 스미레를 빼고 김은아가 들어온다고 하여도 이상할 건 없었다. 가온의 랭킹 2위인 김은아의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한: 3라운드-하나지마 스미레]

[일: 3라운드-키리시마 잇신]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깬 결과.

무심하게 스크린을 바라보던 잇신의 미간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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