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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105/434)

제105화

스카이 호텔의 복도.

이시우는 꿀꺽 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고. 신유성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할게 시우야.”

신유성의 밝은 미소에 따라 같이 웃어주는 이시우.

“어, 으응, 유성아……. 근데, 진짜 괜찮아? 솔직히 난 은아보다…….”

“괜찮아. ……최선만 다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말을 하며 웃는 신유성.

이시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그, 그렇지? 최선을 다해야지. 이게 어떤 기회인데…….”

말을 하면서도 양심이 쿡쿡 찔려오는 이시우. 신유성은 이시우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힘내보자. 시우야.”

그 말을 끝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신유성.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지만 이시우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 내가…… 대항전에 나가게 되다니.’

자신의 어중간한 마음으로 대항전에서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 이시우는 고민에 빠지자.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활로 이길 수 있을까?’

이시우에게 총을 사용한다는 건 아버지와 가문의 교육을 인정한다는 뜻. 그건 생각만으로 기분 나쁜 거부감이 튀어 올랐다.

총을 잡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되는 듯 차가워지는 정신. 계속해서 고양되는 기분. 심장박동마저 느껴지는 예민한 감각.

이시우는 그 모든 게 싫었다.

아니 질려버렸다.

국가대항전에 나간다면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그 기분을 느껴야했다.

‘……난.’

이시우의 아버지는 호흡을 정돈하기 위해서라며 10살에 불과했던 이시우를 눈밭에서 총을 들고 뛰어 다니게 만들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

턱이 덜덜 떨리는 추위에서 쏘는 총알이 맞을 리가 없었고, 호흡이 정돈될 리가 없었다.

‘……그딴 총질. 가르쳐달라고 한 적 없다고.’

무엇보다 총을 든다는 건 전 세계가 보게 될 국가대항전에서 가족을 인정하는 일.

[그것 보아라. 이 활약은 모두 너의 재능을 알아본 내 안목 덕이다]

이시우는 아버지의 권위적인 말투를 떠올릴 때면 괜히 이를 꽉 물게 됐다.

‘망할…….’

*     *      *

납골당.

고인의 유골을 모시는 엄숙한 장소. 세이지는 유리관 너머 종이학과 조화 꽃다발이 함께 담긴 함을 보며 무안한 듯 스윽- 코를 닦았다.

“오랜만이다! 류코!”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납골당.

세이지는 납골당에 아무도 없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윽.

세이지는 익숙하게 자리에 앉더니 낮은 위치에 있는 함과 정면으로 눈을 맞췄다.

“역시 오늘도 대답이 없구나~”

푹-

장난 같은 과한 제스처로 고개를 숙이는 세이지.

“유령은 존재한다고 그렇게 우기더니~ 실은 없는 거 아냐?”

세이지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활발하게 웃었다.

“근데 그 편이 나을지도? 만약 내 말이 들리면 역시 너도 질려하지 않았을까?”

세이지는 함을 보며 평소처럼 자상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5년이나 지났으니까.”

세이지는 다시 코를 슥- 닦더니 함에 담긴 사진을 보았다. 짧은 머리카락에 주먹을 쥐고 당당하게 웃고 있는 여자아이.

미나가와 류코.

세이지의 유일한 소꿉친구의 시간은 12세의 여름에 멈춰버렸다.

“……이상하네. 역시 유령은 있나? 뭔가 들리는 거 같기도 해.”

정적만 흐르는 납골당에서 세이지는 귀를 기울였다. 류코가 버릇처럼 하던 말.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5년이 지난 지금도 정말 류코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자가! …지 마!]

쨍쨍 내리쬐는 여름의 햇볕.

수련을 빙자한 아지트였던 깊은 산속.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남자가! 울지 마!]

류코를 만난 건 5살.

그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친해지게 된 세이지는 그 후, 무려 7년 간 류코와 같이 다니게 됐다.

[야! 오늘도 수련하러 가자!]

[나? 응, 근데……. 류코. 나는 산은 좀 무서워.]

지금보다 훨씬 여린 체격.

12살의 세이지는 오히려 체격이 여자애인 류코보다 연약해 보였다.

[무서워? 으휴, 전에도 담력시험 좀 했다고 울더니! 자꾸 남자가 울지 마!]

류코는 주먹을 쥐더니 허공에 휘익! 하고 정권을 지르며 멋있게 소리쳤다.

[헌터는 뭐든지 패기야!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라고! 괴수가 나타나도 절대로 쫄지 않는 그런 거!]

세이지는 류코의 연설에 우와- 하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역시, 멋있어. 류코……. 나도 너처럼 용감해지고 싶은데…….]

[나?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 용기만 있으면! 그러니까 걸핏하면 울지 좀 마. 알았냐?]

류코가 등을 두드려주자. 세이지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류코!]

소심한 자신과 정반대인 류코의 모습은 정말이지 세이지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류코는 강했다.

12살. 소학교를 다닐 나이에 중등부와 시비가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헌터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1급은 물론 2급 괴수까지도 상대할 실력이 있었다.

[멋있어! 류코!]

단짝인 류코는 늘 세이지의 자랑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류코에겐 잘 보이고 싶었다.

아마도 첫사랑.

[난 말이지. 일본 최강의 헌터가 될 거야! 그 다음은 세계에서 최고가 될 거야!]

장황한 꿈을 이야기하며 호탕하게 웃는 류코. 그러나 세이지의 꿈은 류코였다. 류코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될 때까지 언제까지 곁에 있겠다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맹세했다.

[류코는 분명 할 수 있어!]

하지만 12살의 아이들에게 세상은 잔인했다.

[……나. 이제 세계 최강은 좀 힘들지도…….]

이름도 모르는 불치병.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류코는 병실에 누워 세이지를 맞이했다. 며칠 사이 생기를 잃은 눈.

[세이지. 나. 이제 얼마 못산대. 살고 싶으면…… 순환석이라는…… 돌이 필요하다나?]

[……류코?]

별이 떨어졌다.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던 사람이 빛을 잃어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것.

세이지는 류코에게 죽지 말라고 소리쳤다.

[내가, 내가! 사줄게! 류코! 그러니까 주, 죽지 마!]

[……바보. 어른들도 못 사. 집을 100개는 팔아야 할 돈이래.]

세이지는 울기만 하고 있는 류코의 부모님에게 화가 났다. 무능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하지만 아무리 분해도 흘릴 수 있는 건 역시 눈물밖엔 없었다.

[남자가…… 울지 마…….]

그리고 그날.

세이지는 처음으로 류코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같이 올랐을 때도 무서웠던 산.

하지만 세이지는 그날 혼자서 산을 올랐다. 눈앞에 보이는 건 아득한 밤하늘. 그리고 빛.

밤하늘엔 별이 무수했지만.

세이지의 별은 떨어졌다.

류코가 죽었던 그날.

세이지도 죽었다.

남아 있는 건 오직 꿈.

탓!

정적만이 흐르는 납골당.

호쾌하게 일어난 세이지는 함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보았던 별처럼 밝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역시 안 들리네!”

혼자서 내는 쾌활한 웃음소리.

마음을 다진 세이지는 뒤로 돌아서며 오래된 친구에게 약속했다.

“류코! 나! 세계 최강이 되어서 돌아올게!”

세이지의 목표는 다름아닌 국가대항전의 우승. 첫 상대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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