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갑자기 온 김은아의 불참 메시지.
[KimSilverA: 유성아. 미안한데 이번 대항전은 참가 못할 거 같아. 가족의 일이야. 미안.]
당황할 만한 상황인데도 신유성의 태도는 의외로 차분했다.
‘……어쩔 수 없지.’
갑자기 벌어진 설마 했던 상황.
그래도 다행인 건 신유성이 2군을 준비했다는 사실이었다.
‘남은 건…… 에이미와 시우.’
거의 두 번째로 강한 김은아의 출전이 막히게 된 건 크나큰 전력 손실이었다. 하지만 벌어진 일에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
‘에이미와 시우 중 하나를 택한다면 지금은 시우야.’
누가보아도 A반인 에이미가 승리 후보에 가까운 상황. 하지만 신유성은 이시우를 택했다.
물론 신유성이 이시우의 진짜 실력을 알아 낸 건 아니었다.
이시우는 가온에 입학하기 한참 전부터 총을 손에서 놓았다.
이시우의 실력을 알고 있는 건 어린 시절에 만난 극소수.
신유성이 알아챈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쐐액! 퍽!]
신유성이 이상함을 느낀 건 이시우의 첫 사격이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과할 정도로 팽팽하게 당긴 시위. 굳은 자세.
하지만 초보자에 불과한 자세에도 이시우가 호흡을 고르는 방식은 너무나도 정갈했다.
그저 호흡만을 기준으로 둔다면.
무신산에서 12년을 수련에 집중한 신유성에 비견될 정도였다.
[아자! 신난다! 10점!]
결정적으로 엉성한 자세에도 믿기 힘들 정도의 명중률. 이시우는 신유성에게 숨기는 무언가 있었다.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자지만 그게 신유성이 이시우를 파티원으로 택한 이유.
‘……시우가 왜 실력을 숨기는 진. 알 수 없지만. 시우는 지금의 에이미보다도 훨씬 강해.’
설령 이시우가 지더라도 그것만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결국 선택을 마친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미레와 시우. 둘은 모두 내가 선택한 파티원이야.’
포켓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신유성. 파티원을 믿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건 자신이었다.
“내가 믿어주는 수밖에 없어.”
마음을 정한 신유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 * *
점점 흘러가는 시간.
방에는 하얀 쌀죽이 담긴 그릇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결국 걱정이 된 이수현은 김은아를 쳐다보았다.
“……아가씨?”
이수현의 부름에도 말없이 침대에 앉아 있는 김은아. 이수현은 그릇을 들고 말했다.
“언령의 힘은 특성. 결국 마나입니다. 그런 힘에 대항하셨으니……. 기력이 쇠하셨겠죠? 얼른…… 소화가 쉬운 죽이라도 드세요.”
이수현이 내밀자. 김은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싫어. 안 먹어.”
“아가씨. 부디 한 입이라도…….”
“나한테…… 부탁할 필요 없잖아? 네 그 잘난 특성으로 억지로 먹여.”
이수현을 바라보는 김은아의 눈은 힘이 없어 보였다. 6급 헌터인 이수현을 상대로 하루 종일 대항했기 때문. 하지만 조건이 갖춰진 언령의 힘은 강대했다. 김은아의 자력으로 깨버리는 건 불가능한 일.
아무리 가온에서 세븐넘버인 김은아라도 상대는 현역 6급 헌터. 애당초 김은아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가씨. 제발.”
“싫다고…….”
축 늘어진 김은아의 목소리.
이제 김은아는 반항이 안 통한다는 걸 명백히 알아버렸다. 멍하니 있던 김은아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수현을 쳐다보았다.
“나, ……엄마가 왜 이러는지. 알 거 같아.”
조금은 분노가 섞인 목소리.
김은아는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다.
“오빠가 그렇게…… 됐었으니까. 무서운 거잖아. 그렇지? 응?”
입술을 질끈 무는 이수현.
김은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이수현은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가씨…….”
“이해해. 그래, 걱정 되겠지. 나도 갑자기 병원에서 못 일어나면 어떻게 해? 이해해, 다…….”
김은아는 뚝뚝 눈물을 흘리더니 이수현을 노려보았다.
“……근데. 넌 그러면 안 되잖아.”
최대한 울음을 참는 모습.
이수현은 김은아가 눈물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김준혁의 병실에 다녀온 날이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참고 우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넌……, 다 봤잖아.”
배신감에 흐느낌도 없이 계속 눈물만 뚝뚝 흘리는 김은아. 이수현은 그런 김은아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수현은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아가씨. 어쩔 수 없습니다.”
최대한 단호하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이수현은 담담히 말했다.
“아가씨는 신성그룹의 후계자가 될 몸입니다. ……많은 권력을 가진 왕일수록 왕관의 무게는 무거운 법.”
이수현은 절대 김은아를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아가씨는 가장 무거운 왕관을 쓰실 분입니다. 헌터는…… 다른 인원으로 대체 할 수 있지만. 신성그룹의 후계자는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수현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끝내자. 김은아는 고개를 숙였다.
“누가 그딴 거…… 쓰고 싶대? 내가 이런다고 파티를…… 헌터를 그만둘 거 같아?”
“아가씨…….”
김은아는 이수현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 봤으면서…… 유성이가 내 오빠를 구해준 것도……. 내가, 유성이한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계속 중얼거리는 김은아.
“이제야 겨우 친해지려고 마음먹었는데…….”
김은아가 말을 뱉을 때마다 이수현은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이제야 쭉, 유성이의 파티에 남기로 했는데…….”
김준혁의 일로 남들에게 마음을 여는 걸 무서워한 김은아. 이수현은 휙-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김은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연회에…… 초대한 것도. 축제에서 만난 것도 모두 알면서……. 엄마보다 네가 더 나빠…….”
천천히 고개를 드는 김은아.
아니나 다를까, 역시 김은아는 울보였다.
“……억지 부리지 마. 김은아.”
이수현이 억지로 인상을 쓰자.
김은아는 이수현을 노려보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내 이름 부르지 마-!”
이수현은 김은아가 느끼는 배신감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른인 자신과 다르게 김은아는 17살에 불과했다. 이수현은 김은아를 보며 자신에게 여동생이 있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분명 나보다 더 믿었겠지.’
그런 이수현의 배신.
김은아는 울먹이는 눈을 찡그리며 읊조렸다.
“배신자…….”
하지만 김은아는 화를 내는 것조차 이제 버거운 듯 보였다.
“너, 엄청 믿었는데……. 우린, 이제, 흐윽- 엄청,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한 이수현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지끈거리는 머리. 이수현이 눈을 감자.
최근에 김은아와 보냈던 시간들이 계속 이수현을 지나쳤다.
[……오.]
[이거 보세요!]
같이 메시지를 보내고.
[그, 시,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걷어차기까지 하냐?]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같이 방송을 보고.
[아 그래! 좀 쪘다! 그만 만져! 내 배가 찰흙이야? 뭘 그렇게! 주물럭거려!?]
[다시 저기 앉아있어. 파란색 드레스로 입고 나올 테니까!]
같이 옷을 고르고.
‘진짜. 미치겠네…….’
이수현은 이마에서 손을 뗐다.
김은아와 지낸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면 그건 이수현에게도 거짓말이었다.
결국 한숨을 쉰 이수현은 김은아의 침대로 올라갔다.
“……야, 밥 먹어.”
절레절레.
김은아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젓자. 이수현은 손가락으로 김은아의 입술을 쥐었다.
“윽! 으브!”
“……그만 찡찡거리고 밥 먹으라고. 내일 같이 너희 엄마한테 말해줄 테니까.”
이수현이 쥐었던 손가락을 놓자.
놀란 얼굴로 몸을 움찔거리는 김은아. 이수현은 불량한 눈으로 김은아를 쳐다보았다.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이거 버릴까?”
“아니 머, 먹을게…….”
슬쩍.
김은아는 숟가락을 들더니 이수현의 눈치를 봤다.
“근데 나, 내일 대항전인데……. 내일 말하면…… 좀 늦지 않나?”
눈이 붉어진 채로 조심스럽게 묻는 김은아. 이수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또 욕심을 부리네? 그 몸 상태로 대항전은 무슨 대항전이야. 그냥 쭉 있을래?”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이수현의 시선을 피해 죽을 한술 뜨는 김은아. 이수현은 다 내려놓은 모습으로 김은아에게 말했다.
“야, 내일 너희 엄마한테 잘릴 거니까. 미리 반말한다? 불만 없지?”
“어, 어어, 응!”
고개를 끄덕이는 김은아.
이수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후우- 하고 내쉬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딴 고집불통 꼬맹이한테…….’
두 모녀에게 이래저래 너무 휘둘려버린 이수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