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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103/434)

제103화

10분도 쉴 수 없이 꽉꽉 들어찬 피곤한 스케줄. 한국으로 돌아온 메이린은 한숨을 쉬며 백명호에게 물었다.

“……여긴가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메이린. 백명호는 메이린을 확인하자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마, 맞습니다! 여기 보이시는 모든 물건은 국가 대항전에서 보상으로 증정될 아티팩트입니다!”

“……그렇군요. 아, 그리고 죄송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걸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메이린의 정중한 부탁.

같은 6급 헌터임에도 왜인지 백명호는 상사를 대하듯 깍듯하게 메이린에게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메이린은 그런 백명호의 태도가 부담스러웠지만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목록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메이린.

“이무기의 비늘. 피의 성배. 성자의 시계……. 음? 별의 산호석은 어디 있죠?”

메이린의 질문에 백명호는 곧바로 구석에 있는 함을 가리켰다.

“협회장님의 지시로 아티팩트를 교체 했습니다! 별의 산호석 대신 저 함에 담긴 구슬로요!”

메이린은 의아한 얼굴로 함을 바라보았다.

“협회장님께서 직접 교체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구슬이라니…….”

“아, 잠시만 계시면 제가 한번 꺼내 오겠습니다!”

메이린에게 과할 정도의 친절을 베푸는 백명호.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잠깐 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백명호는 스윽. 안경을 만지며 허허- 웃더니 곧바로 함을 향해 달려갔다. 재빨리 뛰어가 귀중하게 들고 온 함을 곧바로 열어주는 백명호.

“여기! 이 물건입니다!”

함이 열리자 메이린은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는 메이린.

“혁, 크흠! ……협회장님이 주신 아티팩트는 확실하군요. 근데 정말로 이 아티팩트를……. 상품으로 주신다고 했습니까?”

“역시 놀라시는 모습을 보니. 협회장님의 말씀이 맞으셨나보군요!”

백명호는 놀란 메이린의 반응에 자신이 더 뿌듯해졌다.

‘이, 이건 ……감히 학생들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천년옥.

권왕과 강유찬. 마녀. 검신 등등.

세계의 정점들이 모인 6명의 파티가 50층을 클리어 하고 얻은 보상.

천년옥의 무서운 점은 그것에 담긴 힘 자체다. 용신의 지맥에서 흐르는 마나가 무려 천년의 세월 동안 응축된 광석.

그러니 천년옥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 힘에 휘말릴 수도 있는 위험한 아티팩트였다.

‘역시 협회장님께선 천년옥을 신유성 학생에게 주려는 생각이신가?’

아무리 그래도 과한 처사.

그리고 한일 대항전은 어디까지나 3대3의 팀전. 신유성이 아무리 강하거니와 대항전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좀처럼 생각을 알 수 없는 분이라니까.’

그래도 메이린은 한 사람의 헌터로서 호기심이 들었다. 권왕의 제자로서 이미 엄청난 잠재력을 보이는 신유성. 그런 신유성이 천년옥의 힘까지 흡수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인류가 막혀버린 탑의 더 더욱 높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알겠습니다. 지금 보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누가 알고 있죠?”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메이린이 묻자. 부끄러운 표정으로 백명호는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저, 저와 메이린 씨뿐입니다!”

“아, 예…… 좋습니다. 내일 벌어지는 개최까지 ……이 사실은 최대한 비밀로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끄덕끄덕.

“믿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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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호의 힘찬 대답을 뒤로하고 메이린은 또각또각- 걸어 나갔다. 백명호는 그제야 후우- 하고 숨을 내쉬더니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헌터가 되길 잘했어.”

너무 습한 탓일까. 안경에 김이 서린 백명호. 그는 포켓에서 안경닦이를 꺼내 습기를 닦았다.

[날개 없는… 학원도시의 요정★]

특이한 글자가 새겨진 안경닦이.

백명호는 순수하게 감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메이린 님의 실물을 영접하다니.”

그는 메이린 팬클럽의 명예회원이었다.

*     *      *

잠에서 덜 깼는지 몽롱한 정신.

김은아는 천천히 눈을 비비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서서히 눈앞에 보이는 건 처음 보는 침대.

‘여긴…….’

여전히 정신을 못차린 김은아에게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깨어나셨나요?”

들린 건 이수현의 목소리.

김은아의 머리에는 퍼뜩- 이전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화악- 뒤로 물러나며 김은아는 이수현을 경계했다.

“너-!”

노여움에 찬 김은아의 목소리.

이수현은 이런 김은아의 반응을 예상한 참이었다.

“아가씨. 목이 잠겼던 상태로 소리를 지르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피곤하실 테니 다시 누우세요.”

“……왜? 대체 네가 왜 날?”

김은아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묻자. 이수현은 최대한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를 이 방에서 내보내지 말라는 사모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왜!!”

김은아가 짜증 섞인 얼굴로 소리치자. 이수현은 천천히 김은아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직접 생각해보십시오. 사모님이 ……왜 이런 일을 시키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수현이 다가오자. 김은아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툭.

하지만 김은아는 마치 투명한 벽이 있는 것처럼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뭐야 이거? 침대에서 나갈 수가 없어…….”

코앞까지 다가온 이수현.

“제 특성인 언령의 힘입니다. 아가씨가 주무시는 사이에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뒀죠.”

김은아는 밀쳐내려고 했지만 이수현의 몸에 손이 닿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이, 이상해…….”

심지어 특성인 전기의 힘도 발휘되지 않는 상황. 이수현은 다시 김은아에게 물었다.

“……아가씨. 다시 묻겠습니다. 사모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밀폐된 방안에 울리는 이수현의 목소리. 김은아는 입술을 질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몰라. 모른다고……. 내가 묻고 싶어, 나한테 왜 그러는데…….”

이수현은 한없이 싸늘해진 눈으로 김은아를 내려다보았다.

“그걸 알아야합니다. 그게 아가씨의 특권이 가진 무게니까요.”

그리곤 이수현은 김은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가락 3개를 올렸다.

“제가 당신에게 건 제약은 3가지입니다.”

그리곤 이수현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을 했다.

하나-

“침대를 벗어나지 말 것.”

둘-

“저를 공격하지 말 것.”

셋-

“특성을 발휘하지 말 것.”

이수현은 언령 때문에 반항하지도 못하는 김은아를 힘으로 눕혔다.

“으끅! 너! 너, 이게…….”

놀라서 딸꾹질까지 하는 김은아.

이수현은 그런 김은아에게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역시, 감기에 걸리실 수도 있으니. 언령을 추가해야겠군요.”

“미쳤어!? 절대 싫어! 하지 마!”

그러나 6급 헌터인 이수현에게 반항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불에서 나오지 마.”

방안에 울려 퍼지는 이수현의 목소리. 이수현은 김은아를 보며 정색을 했다.

“제 언령은 밀폐된 공간에서 강해집니다. 어기려 해봤자. 아가씨의 심력만 소모될 뿐…….”

이불을 덮은 김은아는 정말이지 우스운 꼴이 됐다.

“……아니 이게 뭐야. 나한테 왜 이러냐고…….”

김은아는 분한 마음에 이수현을 노려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이수현은 가볍게 김은아를 무시했다.

“마음 같아선 잠을 재워드리고 싶지만. 한번 쓴 언령은 다시 쓸 수 없다는 게 규칙이니…….”

아! 하고 무언가를 떠올린 이수현은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가씨가 잠들 때까지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려드릴까요?”

“아, 진짜 꺼져…….”

언령에 저항한 탓인지 힘이 빠진 김은아. 이수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 어쩔 수 없어.’

김은아는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수현에게 말했다.

“……엄마도 너도, 뭔 짓거리인지는 모르지만. 나, 내일 대항전이야.”

“알고 있습니다.”

“뭐?”

“그러고보니…… 깜박 잊을 뻔 했군요.”

김은아에게 다가가 손목의 포켓을 조작하는 이수현.

“죄송하지만 잠깐 아가씨의 손을 빌리겠습니다.”

이수현은 김은아의 손을 잡아 홀로그램의 이리저리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 메시지 창에는 신유성의 이름이 보였다.

“역시 닉네임이 아니라. 이름이군요. 다행이네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아가씨는 절대 이 방을 나가실 수 없습니다.”

“너 설마…….”

이수현은 다시 김은아의 손을 잡아 메시지에 내용을 입력했다. 그리곤 전송.

[KimSilverA: 유성아. 미안한데 이번 대항전은 참가 못할 거 같아. 가족의 일이야. 미안.]

상상도 못한 상황에 벙찐 얼굴의 김은아. 이수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김은아를 내려다보았다.

“……말투도 정말. 감쪽같죠?”

“난, 진짜 모르겠어……. 왜 이러는지…….”

김은아가 이수현을 올려다보며 토로하듯 이야기하자. 이수현은 재빨리 김은아의 시선을 피했다.

“전 제법 오랜 시간 아가씨의 곁에 있었으니까. 전 알 수 있어요.”

오늘의 이수현은 평소의 김은아가 알던 이수현이 아니었다.

“아가씨라면 절대 사모님의 말을 받아들이시지 않겠죠. ……그래서 제가 투입된 거랍니다.”

하지만 같이 웃고 떠들던 대상을 모질게 대하는 건 너무나 힘들었다. 이수현은 입술을 꾹 물더니. 다급하게 방에서 걸어 나갔다.

‘……미안. 은아야.’

지금 이수현은 정을 준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건 김은아에게도 이수현에게도 실수라고 생각했다.

‘난 힘이 없어.’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는 이수현.

안에선 김은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수현은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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