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스카이 호텔.
협회가 지원해준 특급 호텔의 스위트 룸. 데스크에선 세련된 옷을 입은 여성이 모두를 맞이했다.
“여기가 손님들께서 예약을 하신 7층입니다. 모쪼록 서비스에 불편함이 없길 바라겠습니다.”
헌터 협회가 출전 선수들을 위해 대관을 한 건 무려 7층 전체. 에이미는 감탄했다.
“우와, 여기 전체가 전부…….”
“헉……. 방이 어, 엄청 커요!”
시설을 확인하며 놀란 스미레.
재벌 출신인 김은아는 팔짱을 끼고 호텔을 훑어보았다.
“뭐, 이 정도면 괜찮네.”
“에이, 그렇게 재지 말고~ 이럴 때는 즐거워해야지!”
에이미는 시큰둥한 김은아를 보며 헤헤- 웃었다.
“……사람은 5명인데. 방을 12개나 빌릴 필요가 있을까?”
협회의 낭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신유성. 그때 멀리서 하이힐의 굽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또각.
차이나 드레스 사이로 이따금 보이는 쭉 뻗은 각선미.
발소리의 주인공은 학원도시의 지부장. 메이린이었다.
“여러분들은 이 정도 대우를 받으실 자격이 있기 때문이죠.”
“맞아. 자격이 있지.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가 낸 기부금이면 여길 몇 채는 사고도 남을걸?”
김은아가 조금씩 성격을 건드렸지만 메이린은 꾹 참고 웃었다.
“……김석한 회장님께선 확실히 헌터 협회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시죠.”
“들었지?”
자랑스럽게 뻐기는 김은아.
에이미는 그런 김은아의 모습에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질색을 했다.
“와아~ 저엉말 대단해~ 은아느은 최고야아아~”
김은아를 놀리는 에이미.
그 사이에 끼게 된 스미레는 멋쩍게 웃었다.
“아 그리고…… 바로 밑인 6층은 일본팀이 머물고 있습니다. 모쪼록 대항전에 앞서 불미스러운 소란은 삼가 주십시오.”
담담한 메이린의 이야기에 스미레는 표정이 굳었다. 얼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감각이 예리한 신유성은 떨고 있는 스미레를 보았다.
‘……스미레.’
신유성이 본 스미레는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실력은 물론이고, 내면의 상처에도 정면으로 맞섰다. 하지만 여전히 떨리고 있는 스미레의 손.
“그럼. 내일 다시 뵙도록 하죠.”
메이린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돌아가자, 김은아는 스윽 숙소를 둘러보더니 엘리베이터를 향해 몸을 돌렸다.
“뭐, 난 들를 곳이 있어서. 숙소는 너희들끼리 정해.”
“어? 은아 어디가?”
에이미가 행선지를 묻자. 김은아는 그런 게 있다며 설렁설렁- 손을 흔들었다.
“에이, 너무해. 일본까지 왔는데 혼자 다니고.”
“숙소는 마음대로 정하랬지…….”
이시우는 슬쩍 에이미를 보더니. 갑자기 구석에 있는 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자리는 내꺼다!”
“헉! 뭐래. 웃기고 있어! 저긴 당연히 내꺼지! 난 베스트 오션뷰를 촬영해야 해!”
방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에이미와 이시우. 복도는 어느새 신유성과 스미레만 남아 있었다.
“음……. 오랜만에 같이 산책이나 할까?”
신유성이 웃으며 묻자. 스미레의 얼굴에는 조금 화색이 돌았다.
“아, 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미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웃었다.
“여, 역시…… 유성 씨는…… 참 자상하시네요.”
스미레는 신유성이 산책을 제안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죄, 죄송해요. 기쁜 날인데 제가 표정이 너무 어두웠죠?”
“괜찮아. 고민은 누구나 있으니까.”
신유성의 위로에 스미레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스미레의 눈은 평소보다 어쩐지 슬퍼 보였다.
“흐흐, 유, 유성 씨가…… 보셨을 땐 바보 같은…… 고민일 거예요.”
그렇게 말을 하며 씁쓸하게 웃는 스미레. 신유성은 한참 동안 스미레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산책보단 식사가 좋겠어.”
고개를 숙였던 스미레는 슬쩍 신유성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 그럼…… 패,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괜찮을까요? 저, 한 번도 안 가봐서…….”
그렇게 말을 하며 멋쩍게 웃는 스미레. 신유성은 스미레를 따라 웃어주었다.
“좋아.”
* * *
스카이 호텔의 1층.
눈이 부시다는 듯 김은아가 인상을 찡그리자.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이 선글라스를 내밀었다.
“어디야? 엄마가 불렀다며?”
선글라스를 낀 김은아는 평소처럼 도도했다. 본래 가지고 있던 엉뚱함은 가족이나 신유성의 곁에서만 나오게 되는 모습.
지금의 김은아는 신성그룹의 후계자인 재벌 김은아였다.
“사모님께선 이미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깍듯하게 답하는 경호원.
그의 옆에는 익숙한 얼굴과 일본의 시티가드가 섞여 있었다.
‘……엄마가 데려온 경호원인가.’
김은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머리카락을 넘기며 경호원에게 물었다.
“들었어. 호텔이라며? 근데 왜 스카이 호텔을 두고 왜 다른 호텔에서 불렀대?”
“이유에 관해선 전해들은 사항이 없습니다.”
흐음- 김은아는 가만히 서서 기다란 리무진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뭐, 좋아~ 엄마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가자!”
건들거리며 김은아가 리무진에 타자. 이번에도 익숙한 얼굴인 이수현이 인사를 했다.
“아! 오셨네요! 아가씨?”
“에!? 네가 왜 일본에 있어!?”
“좀 비싸지만 포탈을 이용했죠! 이번에 사모님께서 ……특별한 임무를 맡겨주셨거든요.”
그렇게 말한 이수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결의와 고민. 상반된 감정이 감도는 얼굴.
“아가씨 졸리지 않으세요? 목적지까진 제법 먼데.”
이수현이 묻자. 김은아는 시큰둥한 얼굴로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 전혀. 멀쩡한데?”
타악!
갑자기 김은아의 팔을 부여잡는 이수현. 놀란 김은아가 팔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놓치지 않는 이수현. 김은아는 결국 소리쳤다.
“너, 너 뭐야! 갑자기!”
동공이 커질 정도로 놀란 김은아.
“……아가씨 죄송합니다.”
이수현은 김은아를 붙잡은 채로 거리를 좁히며 마나를 담아 속삭였다.
“잠들어라.”
“윽, 너, 너!!”
김은아는 버둥거렸지만 이곳의 장소는 좁은 리무진. 너무나도 방심한 상태였다.
이게 이수현의 특성인 언령(言霊).
사용하기 위해선 제한이 수도 없이 많은 스킬이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상대와 접촉할수록.
상대가 당황했을수록.
공간이 밀폐되어 있을수록.
그 외에도 언령의 힘을 백분 발휘하려면 많은 제약을 충족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덫을 놓은 기습. 김은아는 피할 새도 없이 당해버렸다.
“왜? 대체……. 왜…….”
졸려오는 눈.
힘이 빠지는 팔.
푸욱-
결국 김은아는 이수현을 품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김은아를 괴로운 얼굴로 바라보는 이수현.
처음 그녀가 김은아를 맡게 된 이유는 하나. 위험한 헌터 생활을 하지 않는데도 주는 돈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행동도 업무의 연장.
하지만 이수현은 기분이 이상했다.
[아가씨! 이제 내용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하시면!]
[좀 더? 근데 그건…… 어, 너무 간지럽지 않나?]
김은아가 어떻게 파티에 들어갔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바뀌었는지.
[추우실 텐데……. 제 외투라도.]
[됐어. 괜찮아.]
지금까지 무슨 고민에 빠져있었는지 이수현은 너무 많이 지켜보고 말았다. 만약 말을 안 듣는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너무 정을 줘 버렸나…….’
업무라고 되새겨도 김은아가 했던 말들을 떠올릴 때면 이수현은 가슴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후우…….”
결국 내뱉은 깊은 한숨.
이수현은 자신의 무릎 위에서 잠에 빠진 김은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 * *
정적만이 흐르던 가온의 학생회에는 웬일인지 리드미컬한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톡톡- 톡톡-
평소와 달리 검지로 책상을 두 번 두드린다는 건, 신하윤의 기분이 좋다는 신호. 이혁은 서류를 내밀며 신하윤에게 말했다.
“저번 명단 전부 처리했어.”
“잘했어.”
짧은 신하윤의 대답.
업무를 끝낸 이혁은 슬쩍 신하윤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같은 여유로운 미소였지만 항상 신하윤의 곁에 있었던 이혁은 알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네?”
“아, 좋은 일? 후훗, 그냥 장난이야……. 재밌는 장난.”
신하윤의 이야기에 이혁은 표정이 굳었다.
‘……하윤이에게 재밌는 장난? 그게 뭐지.’
이건 아무리 이혁이라도 좀처럼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 뭔데?”
결국 호기심을 못 참고 묻자. 신하윤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