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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100/434)

제100화

가온의 포탈존.

대항전을 위해 일본으로 출발하는 첫날. 가온의 1학년들은 줄을 맞춰 도열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사람은 대항전의 참가자인 신유성과 파티원들. 교장인 진병철은 흡족한 얼굴로 말을 했다.

“헛헛! 우리 명문 중의 명문 가온 아카데미에서! 국가 대항전의 참가자가 나온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몇몇 교수들과 교관들의 박수.

“국가대항전은 자신의 국가와 아카데미의 명예와 드높이는 증명의 장! 부디 신유성 학생과 파티원들이!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기를 바라며! 가온의 배움을 토대로…….”

진병철의 끝없는 연설.

학생들이 지칠 즈음 신유성이 마이크를 향해 걸어 나왔다.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포탈존에 울려 퍼지는 신유성의 굵고 짧은 한마디. 학생들은 모두 신유성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신유성! 신유성!”

“힘내라아아-!”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의 이야기도 서서히 들려왔다.

“에이미! 나 열혈팬이야!”

“은아야! 빨리 돌아와라!”

“F반 파이팅!”

“뭐야 이시우도 유성이 파티임?”

“스미레! 네 카레는! 최고였어!!”

레니아의 말을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응원이 끝나자. 진병철은 웃으며 포탈을 작동시켰다.

위이잉-!

푸른색 물결이 일렁이며 빛을 내는 포탈. 이제 신유성과 파티원들은 일본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진병철은 떠나가는 신유성에게 다가와 응원을 건넸다.

“유성아. 네 실력은 최고다. 네겐 권왕님보다도 강해질 잠재력이 있지! 그러니 부디 이겨다오!”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싱긋 웃어주는 신유성.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신유성은 진병철에게 너무나도 든든한 존재였다.

“그래! 유성아! 가온에서 국가대항전의 우승자를 또 탄생하게 만들어다오!”

진병철의 염원. 동급생들의 응원.

이시우는 뒷목을 긁적이며 웃었다.

“이거 참, 내 차례도 안 올 텐데 괜히 긴장되네.”

“그럼! 그럼~ 우리 은아랑 파티장님을 응원하는 게! 바로 우리의 일이지~”

그렇게 말한 에이미는 방실방실 웃으며 신유성을 쳐다봤다. 거기다 자신도 모르게 신유성의 옷을 꾹 잡는 스미레. 신유성은 자상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가볼까?”

*     *      *

내일은 국가 대항전을 치르는 날.

일본의 국가대표인 잇신은 연습에 매진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 잇신은 기분이 이상했다.

‘이 기분은 대체…….’

스미레를 쵸텐에서 만난 이후, 잇신은 줄곧 기분이 나빴다.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스미레는 잇신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 파티원을 버리고 한마디의 말도 없이 한국으로 넘어간 일에 잇신은 줄곧 분노했었다.

저벅저벅.

말없이 텅 빈 학교를 걷는 잇신.

걸으면 걸을수록 잇신에겐 익숙한 물건과 장소들이 보였다. 잇신이 도착한 곳은 한 교실.

‘여긴…….’

맨 앞줄. 창가에 가까운 구석.

잇신의 시선이 거기서 멈추자. 잇신의 머리에선 오래된 기억이 선명해졌다.

[잇신.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에이~ 오늘도 무뚝뚝하네~]

[바보! 잇신은 그 무뚝뚝한 점이 정말로 멋진 거야!]

자신의 주위에서 무리를 지어 떠들던 여자들. 잇신이 바라본 자리에는 항상 누군가 공책을 피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서걱. 서걱서걱.]

소문으론 필기 성적만으로 상위권을 따냈지만. 특성은 F급. 잇신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는 상대. 여자애들의 평가도 비슷했다.

[뭐야, 하나지마잖아? 쟤는 왜 보고 있어~ 잇신~ 차라리 날 봐~]

[근데 쟤 능력. 좀 기분 나쁘지 않아? 머리카락으로 해골이라니……. 뭔가 음습하고…….]

[으으- 기분 나빠. 내건 죽어도 빌려주기 싫어.]

그때까지만 해도 잇신은 스미레에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스미레는 같은 반의 평범한 학생 중 하나. 감상은 그뿐이었다.

저벅저벅.

다시 교실을 걷는 잇신.

발자국 소리가 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이번에 도착한 건, 학교의 중앙현관이었다. 잇신은 말없이 마른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미레를 봤던 두 번째 기억은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이었다.

쏴아아아.

스미레는 우산을 옆에 둔 채, 무언가를 품에 안아주고 있었다.

[아직도 추, 춥지?]

무언가의 정체는 비를 맞아 벌벌 떨고 있는 고양이. 어떤 질병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스미레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교복 재킷을 벗어 춥지 않게 고양이를 감싸주었다.

[냥, 냐아앙. 냥…….]

따뜻해진 고양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자. 스미레는 고양이를 보며 배시시- 웃더니 한손엔 우산을 쓰고, 나머지 손엔 고양이를 껴안은 채 집으로 향했다.

당연히 다음날에는 감기가 걸렸는지 스미레는 기침을 했다.

그 모습에 잇신은 스미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쯧- 혀를 찼다.

[……멍청하긴.]

여전히 쨍쨍 화창한 하늘.

잇신은 다시 기분이 이상했다. 심장은 불안한 사람처럼 빠른 박동으로 뛰기 시작했고, 가슴은 무거운 짐이 얹어진 듯 답답했다.

‘……멍청한 건 나다. 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터벅터벅.

힘없이 걷던 잇신은 화단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머문 곳에선 멍한 얼굴로 흰색 제비꽃을 바라보는 스미레가 겹쳐 보였다.

분명 스미레를 향한 잇신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쳐다보고만 있어도.

이상하고.

답답하고.

멍청해 보이는.

완전히 자신과는 정반대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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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잇신은 스미레에게 손을 뻗었다.

[하나지마. 내 파티에 들어와라.]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잇신은 그때도 지금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미레와 함께한 파티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나지마. ……대체 왜 너는 동네의 고양이란 고양이는 모두 끌고 다니는 거지?]

[그, 그게 저도 잘…….]

잇신의 생각한 스미레는 보기처럼 이상하고.

[하나지마. ……대체 네 어깨에 붙어 있는 새는 뭐지?]

[흐이익!]

답답하고.

[여, 여기 출구가 있어요!]

[하나지마. ……그건 입구다. 우리가 들어온 곳이지.]

[아……. 죄송합니다.]

멍청한 여자.

하지만 누구보다 신경이 쓰이는 파티원. 잇신이 천천히 마음을 열 때 사건은 터졌다.

[잇신! 이야기 들었냐!? 어제 던전에서! 스미레가…….]

언데드 던전에서 벌어진 사고.

스미레의 특성이 폭주하는 바람에 사상자는 없었지만 반 하나가 통째로 휘말린 사건.

[……그래서 지금 ……하나지마는 어디 있지?]

[몰라. 걘 다치지도 않았으니까. 병원에도 없고, 어제부터 학교도 안 나와. 왜? 나 집 아는데 알려줘?]

[……아니. 필요 없다.]

잇신은 그때부터 계속 스미레를 기다렸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파티는 공석이 됐지만.

[잇신~ 파티 공석이면~ 나 좀 끼워주면 안 돼? 응~?]

누가 부탁을 해도 잇신은 그 자리를 비워두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한 달. 두 달. 세 달. 부족한 인원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잇신은 계속 스미레를 기다렸다.

잇신에겐 그걸 감당할 실력이 있었고, 비어 있는 자리는 스미레의 것. 파티원을 바꿀 생각 따윈 없었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올 즘.

잇신은 그제야 소식을 듣게 됐다.

스미레의 말도 아닌, 편지도 아닌, 교내의 소문.

[들었어? 하나지마 한국으로 갔다던데.]

[그렇게 학교를 안 나왔는데 진학을 해주네? 나도 빠질 걸 그랬다~]

[그러게 손해 본 기분~]

떠드는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잇신은 믿지 않았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말해줬을 테니까.

그때의 잇신은 미친 듯이 달렸다.

[아직도 추, 춥지?]

이상하고.

[그, 그게 저도 잘…….]

답답하고.

[흐이익!]

멍청하지만.

잇신은 스미레와 보낸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분명 스미레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이라면. 이야기도 없이 훌쩍 한국으로 떠날 리가 없었다.

[하, 하아……]

스미레의 집 앞에서 숨을 고르던 잇신. 그리고 벨을 누르자 나온 건 스미레가 아니었다.

[어머, 넌…….]

상대는 스미레의 어머니인 스이카.

[하나지마. 하나지마는 어디 있지?]

잇신은 무턱대고 스미레의 행방을 물었다.

[저런, 모처럼 찾아왔는데……. 미안하게 됐구나. 그 아이는 어제 한국으로 떠났단다.]

그때 잇신은 알게 됐다.

하나지마 스미레는 자신과 파티원을 버린 배신자라는 걸. 파티라고 생각했던 건 그저 자신의 착각일 뿐이라는 걸.

[……내가 바보였군.]

스미레와의 만남은 그걸로 끝.

잇신은 스미레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사라졌던 스미레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 또 잇신을 뒤흔들었다.

햇볕에 오랫동안 서 있었기 때문일까. 뜨거워지는 머리에 잇신은 발걸음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산책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은 답답했지만. 잇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숙소를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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