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9화 (99/434)

제99화

사아악.

기척 따윈 없는 숲속.

사쿠라는 활시위를 과녁에 겨누었다. 무언가를 조준할 때 온몸의 감각이 일깨워지는 이 기분.

탓! 쐐애애액! 푸욱-!

사쿠라가 쏜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과녁을 꿰뚫었다.

‘……이 정도론 안 돼.’

사쿠라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항상 동료들에겐 밝은 모습만 보여준 그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내 궁술은…….’

궁도 도장을 운영했던 사쿠라의 집은 늘 엄숙한 분위기였다. 정갈한 마음. 단정한 몸가짐.

사쿠라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모두가 활을 쏘는 걸 보고 자랐고. 그걸 동경했다.

특성인 바람의 힘을 궁술에 접목한 것도 어린 시절에 배운 궁술의 영향. 1년 전의 이야기. 사쿠라가 고등부에 입학하기 전. 사쿠라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사쿠라. 할 이야기가 있다.]

언제나 엄했던 사쿠라의 아버지는 힘없이 웃고 있었다.

[난 내가 느껴온 삶과 지혜를. 그대로 너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말이 끝난 사쿠라의 아버지는 얼굴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뀐 모양이구나. 나의 고리타분한 철학도. 그리고 내가 갈고 닦아온 궁술도.]

얼굴.

[……이젠 모두 부질없어진 모양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거늘.]

목소리.

[그게 아닌 모양이다. 모두 낡아 버린 게지.]

어깨.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전통에 집착했던 건. 어쩌면 변하기 두려워서 했던 변명이 아닌가 싶구나.]

당당하고 강인했던 아버지는 중학생인 사쿠라에게도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의 궁술은 최강이에요! 낡다니…….]

사쿠라가 분한 얼굴로 소리치자. 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사쿠라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사쿠라. 활은 다루기 어려운 무기란다. 마음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수백 번을 넘게 들은 이야기.

[떨림을 잠재워 평정을 유지해야 하지. 자신과 활이 모두 일체를 이루어야만 비로소 과녁을 마주할 수 있단다.]

하지만 오늘만큼 아버지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게 사쿠라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었다.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건, 살상의 무기가 아닌. 무술에 임하는 마음가짐 그 자체였단다.]

사쿠라가 말이 없자. 아버지는 뒤에 두었던 나무판자를 꺼냈다.

그곳에 적힌 단어는 폐관(閉館)

도장은 어린 시절부터 쭉, 사쿠라가 있어 왔던 장소. 사쿠라는 손을 떨며 나무판자를 노려보았다.

[……말도 안 돼.]

[……미안하다. 사쿠라. 하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더 간편하고 강력한 무기란다. 가령, 총과 헌터용품 같은 무기 말이지…….]

사쿠라는 꽈악- 주먹을 쥐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 대체, 누구야?]

눈시울이 붉어진 채 자신의 아버지를 노려보는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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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말이 온통 변명 투성이잖아. 내 아버지는…… 절대, 절대!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야!]

사쿠라는 폐관이 적힌 나무판자를 보며 으득- 이를 갈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쵸텐에 입학을 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은 지도 1년. 사쿠라는 본가에 돌아가지 않았다. 아버지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탓! 탓! 탓! 탓!

사쿠라의 엄청난 속도의 연사.

화살은 계속 과녁의 정중앙에 꽂혀나갔다. 특성을 논외로 치더라도 무시무시한 실력.

‘대항전이라면…… 분명 아버지도 나를…….’

사쿠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일본, 아니 전 세계에…… 내 실력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거야.’

아버지와의 화해는 그 다음의 목표.

탓! 탓! 파앙!

쉴 새 없이 활을 쏜 사쿠라가 이마의 땀을 닦자. 멀리서 손을 흔들며 세이지가 다가왔다.

“여기 있었어! 사쿠라?”

“뭐야, 나 찾았어?”

평소처럼 싱글싱글 웃는 사쿠라의 미소. 세이지는 기지개를 펴더니 먼 산을 가리켰다.

“새로운 임무야!”

“잇신은?”

“그게, 아직…….”

“에휴. 폐관수련이니 뭐니. 이상한 데서 겉멋만 잔뜩 들었다니까.”

투덜거린 사쿠라는 활을 포켓에 넣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둘이서 가자!”

*     *      *

신성그룹의 대표이사. 김윤하.

개인 시티가드를 호위로 둔 그녀는 기다란 리무진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 당신이 절대 못 가도록 만들어. 알겠지? 이제 내 애들이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건 질색이야.

통화의 대상은 김은아의 아버지인 김성한. 김윤하는 빙긋 웃었다.

“명령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아버님께서 알면 가만두지 않으실걸? 그리고 은아는 내 딸이잖아. 고집이 보통 세겠어?”

김윤하의 대답에 길게 이어진 침묵. 김성한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 그래서! 지금 은아를 그 위험한 곳에 보내겠다는 이야기야?

김성한이 목소리를 높이자. 김윤하는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졸업까지 놔두자고 한 건 당신 의견이었잖아.”

평소보다 다운된 김윤하의 목소리.

기분이 상한 게 분명한 상황.

-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자기 지금. ……화났어요?

“쪼금.”

- 미안.

“……뭐 당신 말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김윤하는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내 딸인데 어쩌겠어. 이번 일은 내가 할게.”

두 부모님 모두 김은아가 헌터가 되는 걸 반대하게 된 상황. 언젠간 벌어질 일이었지만 이 모든 시작의 불씨를 던진 건, 다름 아닌 신하윤이었다.

*     *      *

신유성. 김은아. 스미레.

회의를 위해 모인 3명의 선발 인원. 그들에게 대회의 규칙을 알려주게 된 에이미는 열띤 연설을 하고 있었다.

“자자!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 대회는 1대1 대전으로 3판 2선승! 기선 제압으로 어떤 카드를 내미느냐가 중요하단 말이죠!”

“……잠깐. 그게 무슨 차이야?”

오르카를 껴안은 김은아가 시큰둥한 얼굴로 묻자. 에이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에…… 은아가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그럴 리가 없어…….”

에이미는 의심의 눈초리로 김은아를 바라보았다.

“……다, 당신 누구?”

파짓.

김은아의 검지에서 피어오르는 정전기. 에이미는 침을 삼키더니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이런 대회는 선발선수가 먼저 이겨줘야, 다른 팀원들이 기세가 등등해지는 거야! 대회는 다 기세라고 기세! 알았지?”

김은아는 여전히 못마땅해 보였지만 에이미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대회는 가장 강한 사람이 첫 선발로 나가는 게 정석! 우리 파티에선…….”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신유성에게 향한 상황.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당연히 파티장님이겠지. 그리고 두 번째는…….”

에이미는 흐음- 하고 고민에 빠지더니 김은아와 스미레를 번갈아 보았다. 김은아는 순서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무 데나 해줘.”

“저, 저는 세 번째가 좋아요!”

스미레의 자진포기.

에이미는 알겠다며 웃었다.

“좋아! 그럼 순서는 파티장님! 은아! 스미레! 이렇게 정해졌네!”

소파에 앉아서 경청을 하던 신유성은 손을 들었다.

“에이미. 대항전의 맵은 이번에도 랜덤이야?”

“흠, 그렇죠. 근데 아마 일본에서 하니까 그쪽 지역과 관련된 맵이 나오지 않을까요? 흐음…….”

에이미가 곰곰이 생각에 빠지자. 김은아는 휘휘- 손을 저었다.

“됐어. 어차피 유성이랑 내가 다 박살내면 되는 거잖아?”

여전히 자신만만한 얼굴의 김은아.

에이미는 흐응- 하고 그런 김은아를 보며 웃었다.

“역시. 김은아 변했어…….”

“부, 분명…….”

동감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스미레. 김은아는 귀를 파더니 시큰둥한 눈으로 둘을 쳐다봤다.

“내가 뭘?”

히죽거리기만 하며 대답이 없는 에이미. 스미레는 그저 해맑게 웃었다.

“아니 내가 뭐?”

김은아가 다시 캐묻자. 이번에는 신유성까지 김은아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은아는 확실히 바뀌었지.”

“아오! 그러니까 뭐가!”

미간을 찡그리며 오르카를 무기처럼 들이미는 김은아. 하지만 이전과 달리 김은아의 위협은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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