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8화 (98/434)

제98화

천장을 보며 침대에 누운 스미레.

“으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스미레는 몸을 뒤척였다. 고민에 빠져 베개를 꼬옥 껴안은 스미레.

[잘 들어라. 편린의 힘을 일깨우는 방법은……. ……너의 ■■하는 마음이다. 알겠지?]

스미레의 머릿속에선 라플라스가 해주었던 말이 둥둥 떠다녔다.

‘……나의 마음.’

중요한 건 스미레의 마음.

하지만 사악의 마녀가 원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유성씨의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신유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강해진다. 그게 스미레의 목표. 정말 이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스미레는 딱히 욕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스미레는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유성 씨…….’

자신이 만들어준 밥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해줄 때.

공략이 끝나고 잘했다며 칭찬을 해줄 때.

부족한 자신을 도움 된다고 위로 해줄 때.

늘 강하지만 비 오는 날은 유독 쓸쓸한 표정을 지을 때.

부족한 행동에도 자상한 미소를 보여줄 때.

스미레는 신유성을 생각하면 시시각각 감정이 달라졌다. 스미레에게 신유성은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즐거운 사람. 그러니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당연했다.

‘제가…….’

스미레의 생각이 강한 열망으로 바뀌어 갈 즈음.

‘제가 꼭…….’

잠에든 스미레의 오른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빛나고 있었다.

*     *      *

오전 11시.

모두가 모여 시끌벅적한 부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스미레와 소파 위에서 범고래 인형 오르카를 껴안고 있는 김은아.

밤새도록 총기 손질을 한 탓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이시우.

좋은 일이 있는지 잔뜩 눈을 빛내는 에이미.

‘이제 다들 부실이 익숙해졌구나?’

신유성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나, 둘씩 모였던 파티원이 이제는 자신까지 합쳐서 다섯으로 숫자가 불었다.

모두가 신유성을 파티장으로서 믿고 따르게 된 파티원들. 덕분에 신유성은 강함 책임감을 느꼈다.

“저, 저기 다들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멀리서 스미레가 외치자. 각자 다른 일을 하던 파티원들은 한마디씩 말을 뱉었다.

“나? 아무거나.”

여전히 오르카와 뒹굴거리며 대답을 하는 김은아.

“난 홍차!”

포켓을 바라보며 번쩍 손을 드는 에이미.

“물.”

눈을 비비적거리는 이시우.

주방에 있던 스미레는 주먹밥이 잔뜩 담긴 접시를 가져왔다.

“간식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음료는…….”

파티원들을 익숙한 모습으로 하나씩 챙겨주는 스미레. 신유성은 그 광경에서 익숙한 장면을 떠올렸다.

‘똑같은 장면을…… 일본에서 본 거 같은데.’

아마도 동생들과 식사를 하기 전이었다.

[누나! 나는 콜라!]

콜라를 외치며 손을 드는 스이토

[언니 난 녹차!]

웃으며 녹차를 외치는 스구하.

[와, 진짜 싫어. 누가 스키야키랑 녹차를 먹냐?]

[남이 뭘 먹든 뭔 상관?]

지금의 모습은 신유성이 일본에서 보았던 장면과 정확히 오버랩 됐다.

‘……스미레가 너무 잘 챙겨주는 느낌인걸.’

신유성이 스미레를 지켜보자. 시선을 느낀 스미레는 힐끗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아, 그, 유성 씨 음료는……. 이거 맞으시죠?”

스미레의 손에 들린 건 빨대가 꽂힌 바나나우유. 신유성은 웃으며 바나나우유를 받아들었다.

“고마워. 마침 이게 마시고 싶던 참이야.”

“아…… 역시…….”

자신이 맞췄다는 사실에 배시시 웃는 스미레. 에이미는 김은아의 오르카에게 관심을 가졌다.

“근데, 은아 너. 이 인형은 뭐야?”

에이미는 손을 가리고 히죽 웃더니. 김은아의 허리를 검지로 콕콕 찔렀다.

“으응? 빨리! 이거 뭐야! 뭐야! 축제 때 생긴 거 같은데. 설마~ 누가 준 거야?”

우뚝.

인형을 들고 멈춰선 김은아.

김은아는 슬쩍- 신유성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돌렸다.

“그냥 범고래 귀엽잖아.”

“에이, 직접 산 거야? 하긴, 너~ 은근 귀여운 걸 좋아하니까…….”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김은아는 오르카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당연히 알지. 넌 일단 A반에서 날 제일 좋아하잖아!”

허리를 곧게 편 당당한 자세의 에이미. 김은아는 정색을 했다.

“뭐라는겨.”

“그리고! 솔직히…‥ 내 입으로 말하는 건 부끄럽지만. 난 귀여운 편이라고 생각해!”

에이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김은아는 오르카를 잡아 에이미의 팔을 덥썩 물어버렸다.

쑤욱!

오르카의 입에 깊이 들어가는 에이미의 팔.

“……이거 은근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되게 잘 만들었네?”

에이미가 감탄을 하자. 김은아는 은근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에이미는 보며 감개무량한 얼굴로 웃었다.

“헤헤, 근데 다행이다~ 축제 때는 귀찮다고 카페에만 있을 줄 알았더니. 나름대로 엄청 즐겼나 보네? 성장했구나! 우리 은아!”

에이미가 김은아의 품에 안기자. 김은아는 쉽게 떼어내지 못했다. 신유성의 지금까지 일들을 떠올리며 김은아를 바라보았다.

‘……귀여운 거에 약하다는 거. 사실인 거 같은데.’

김은아는 에이미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에이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르카를 껴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기뻐 보이는 김은아.

“넌 뭐 했는데?”

김은아의 질문에 에이미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나? 엄청 재밌었어. 공포의 집은 좀 무서웠지만…….”

에이미가 으으- 하며 몸서리를 치자. 은근히 뿌듯해하는 스미레. 에이미는 그래도 김은아를 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리고 방송 끝나고. 학생회장님도 만났다? 나한테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시더라고! 팬이래!”

“……팬? 흐응, 그래?”

시큰둥한 김은아의 반응.

오히려 에이미의 이야기는 신유성을 반응하게 만들었다.

“에이미. 학생회장이……. 너에게 왔었어?”

“네? 네! 맞아요! 파티장님이 잘해주시냐고 물어서, 엄청~ 잘해주시고 너무 좋다고 잔뜩! 칭찬하고 왔죠!”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는 에이미.

‘……누나가 에이미에게?’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신유성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분명 의도가 있어.’

신유성이 아는 신하윤은 절대 목적 없이 다가올 사람이 아니었다.

*     *      *

신성그룹의 사무실.

철혈이라 불린 김석한의 아들.

사장 김성한이 안경을 닦으며 신하윤에게 물었다.

“네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교내에서 꽤나 재밌는 사업을 하고 있다지?”

“후훗, 별거 아닌 일이에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결사를 붙여주는 일이죠.”

김성한의 앞에서도 여유롭게 웃는 신하윤. 김성한은 다시 안경을 쓰며 신하윤에게 말했다.

“……겸손 떨 필요 없다. 난 네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널 부른 거니 말이다.”

김성한은 서류로 된 명단을 신하윤에게 건네주었다.

“너희에게 의뢰를 맡기게 될 길드의 명단이다. 그중에는 하청이지만 국가기관도 있지. ……이제 학생들이 맡을 수 있는 의뢰는 대부분 가온에게 맡기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뭐, 됐다. 너희 아버지에겐 빚이 있으니 말이다. 이걸로 갚은 셈 치도록 하지.”

말을 끝낸 김성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신하윤은 김성한을 불렀다.

“잠깐 이야기를 더 하실 수 있을까요? 학생회장……. 아니. 김은아 양의 선배로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싱긋 웃어 보이는 신하윤의 미소.

그건 산전수전을 겪어온 김성한도 섬뜩해지게 만드는 미소였다.

“……은아에 관해서?”

“정확히는 대항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후훗, 아무래도 제 동생의 파티원이니 말이죠.”

신하윤이 김은아의 이름을 언급하자. 김성한은 결국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좋아 들어보도록 하지.”

“후훗, 좋아요. 그냥 효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먹이를 포착한 뱀처럼 눈을 가늘게 뜨는 신하윤.

“은아 양은 신성그룹을 가지게 될 몸이니까요. 헌터처럼 위험한 일에는 어울리지 않죠.”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나 보군?”

김성한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신하윤은 김성한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았다.

“……후훗, 그런 일이 있으셨으니. 누구나 가족을 걱정하게 될 만하지 않겠습니까?”

“……신오가문의 일원이 가족을 들먹이다니. 역시 너의 부모님처럼 아주 훌륭하게 자랐구나.”

김성한의 비꼼에도 신하윤은 그저 웃기만 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역시 은아 양은 대항전에 나오지 않는 편이 좋겠죠.”

“이유는?”

“……제 동생은 탑이 목표입니다. 목숨이 실수 한 번에 흔들리는 위험한 곳. 은아 양을 탑에 보내시기 무섭다면…….”

신하윤은 차분한 목소리로 김성한에게 일러주었다.

“대항전이 시작하기 전에 빠져 주는 게 서로를 위한 일 아닐까요?”

신하윤의 이야기에 김성한은 생각에 빠지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을 그렇게 각별히 생각하는 줄은 몰랐군.”

사실 회장인 김석한과 다르게, 김성한은 김은아가 헌터로 자라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간 닥칠 일이었다. 은아까지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해.’

지금까지 놔둔 건 모두 김은아의 뜻이 완고했기 때문. 김성한은 뒤를 돌아 신하윤을 내려다보았다.

“좋다. 이번에는 속아주지.”

말을 끝낸 김성한은 포켓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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