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0화 (90/434)

제90화

체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소모해버린 탓인지 신유성은 모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지금이 몇 시지?’

아직 희미하지만 정신이 깨어나니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닫힌 방문 너머에는 누군가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흐흥흥~♪ 흥흐흐……. 흥흐!”

동요를 콧노래로 작게 흥얼거리는 누군가의 소리. 신유성은 살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미레였구나.’

벌컥.

신유성이 문을 열자. 스미레는 화들짝 놀랐다.

“아! ……이, 일어나셨어요!? 마침 딱 맞춰서 오셨네요. 여, 역시 조금 시끄러웠나요?”

“아니. 괜찮아. 듣기 좋았어. 일어나야 했기도 하고.”

신유성은 포켓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9시 10분. 이미 9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스미레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길 잘했는걸.’

간단한 세면과 준비를 마친 신유성이 의자에 앉자. 스미레는 요리가 담긴 접시를 식탁에 올리고 앞치마를 벗었다.

두꺼운 베이컨과 구운 토스트. 따뜻한 우유. 그리고 달걀 프라이.

스미레는 맞은편에 앉아서 은근히 기대에 찬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침이라 최대한 부담 없으시게 준비해봤어요!”

긴장한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보는 스미레. 아침부터 노고를 들여 식사를 준비한 스미레지만 원하는 건 크지 않았다.

‘이, 입맛에 맞으실까?’

스미레가 원하는 건 그저 신유성의 맛있다는 한마디. 신유성은 스미레의 기대 속에서 두꺼운 베이컨을 나이프 질 없이 포크로 집어 한입 씹었다. 무신산에서 나온 탓에 나이프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

“어, 어떠세요?”

기다리고 있던 스미레가 신유성에게 물었다. 스미레에겐 정말이지 긴장되는 순간.

“맛있어.”

신유성의 한마디에 스미레는 지그시 입술을 물고 웃음을 참았다.

아침부터 신유성에게 요리를 해줄 수 있다니 스미레에겐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건 마치…….’

그 때문인지 망상의 스위치가 켜진 스미레.

‘……시, 신혼?’

결국 스미레의 입에선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토스트까지 모두 맛을 본 신유성은 스미레를 살펴보더니 그제야 스미레에게 물었다.

“스미레 네 식사는?”

“아, 아? 저는 유성 씨가 식사를 마치면 천천히…….”

스미레가 먼저 신유성의 음식을 준비한 탓이었다. 물론 스미레는 신유성이 자신의 음식을 먹어주는 장면을 요리하느라 놓치고 싶진 않았다.

“……배고프지 않아?”

목소리는 평소와 같지만 신유성은 은근히 스미레를 챙기고 있었다. 스미레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신유성의 관심이 너무 기뻤다.

“……조, 조금요? 아 근데! 아주 조금이에요! 유성 씨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바로 만들면 되는 거니까!”

결국 스미레는 신유성의 관심에 크게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럼. 스미레. 차라리 같이 먹자. 나도 아침은 반 정도면 충분해.”

“에? 네? 하, 하지만…….”

스미레는 신유성이 자신의 음식을 모두 먹어주는 편이 기뻤다. 하지만 신유성이 포크로 집어서 내밀어준 베이컨은 의미가 남달랐다.

서투른 나이프 질로 잘라낸 두꺼운 베이컨.

“자 스미레.”

신유성이 옅게 웃으며 포크를 내밀었다.

‘시, 신유성 씨가…… 내, 내게 직접?’

스미레로선 절대 거절 할 수가 없는 제안.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냠. 우물우물.

베이컨의 맛을 본 스미레는 고개를 숙였다.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스미레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때? 맛있지?”

“네, 네에, 마, 맛있어요오…….”

“우유랑 토스트는 괜찮아?”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스미레를 쳐다봤다. 스미레도 알고 있었다. 신유성의 행동은 순수한 호의. 그 때문인지 정신을 차린 스미레는 묘한 배덕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데도 스미레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렸다.

“……유, 유성 씨! 그, 그러면…… 토, 토스트도. 조금만…….”

어쩐지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죄인처럼 부탁하는 스미레. 심지어 가까운 거리임에도 스미레는 토스트를 스스로 집지 않았다.

“자. 빵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

결국 토스트를 잡아 순순히 건네는 신유성. 스미레는 행복에 겨운 얼굴로 토스트를 우물우물 받아먹었다.

“지짜……. 정마로 마싯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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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토스트가 얼마나 맛있는지, 행복하다며 찔끔 눈물까지 흘리는 스미레. 신유성은 기뻐 보이는 스미레를 보며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신유성은 이런 소소한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힘이 필요했다.

*     *      *

‘탑의 날’ 축제.

빈 강당에 F반이 준비한 이벤트는 다름 아닌 공포의 집이었다. 테마는 언데드의 묘지.

“그르르…….”

산성액을 질질 흘리는 구울을 보며 이시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너희들은 대체 어떻게 치우려고 흙을 퍼온 거야?”

공포의 집을 관리하게 된 레니아는 학생들의 중앙에서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야! 뒤는 나중에 생각해! 연습을 실전처럼! 몰라!?”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야. 이벤트가 무슨 연습인데?”

학생들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강당의 구석에서 반지로 언데드를 뽑아내는 스미레.

“너, 너는 저기서…… 구석에서 사람들이 나오면 놀라게 해줘. 할 수 있지?”

“따닥! 딱!”

스미레의 명령에 힘차게 턱을 부딪치는 해골. 스미레가 반지를 쥐고 중얼거리자. 다시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갑옷을 입은 데스나이트가 소환됐다.

사아악!

“주, 인님에게 명예를! 무슨, 일이든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아! 데, 데스나이트 씨는…… 저기 구석에…….”

“구, 석으로 오는 적들의 머리를, 베어버리는 거군요! 주, 인님에겐 피를! 적, 들에겐 파멸을!”

대검을 위로 치켜들며 거센 파이팅을 보여주는 데스나이트. 스미레는 질겁을 하며 다급히 양손을 저었다.

“히이익!? 아, 안 돼요! 그냥 놀라게만 해주는 거예요!”

“아, 알, 겠습니다! ……적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 포를!”

데스나이트도 대충 스미레의 뜻을 알아들은 모양. 스미레는 오른손으로 빛을 내뿜으며 몽환의 성에서 쉬고 있던 사역마를 소환했다.

사아악!

“콰작. 아그작.”

편한 자세로 과자를 먹고 있는 릴리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릴리스는 과자 봉지를 두고 다급하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주인님!?”

“아, 죄, 죄송해요! 바쁘셨나요!?”

“아뇨! 아닙니다! 주인님의 명이라면 저 릴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가 필요 없고! 그 어떤 곳이라도 뛰어들 수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어쩐지 기합이 바짝 든 릴리스.

아무래도 과자를 먹다가 강제로 끌려온 모양이었다.

“……얘가 그 서큐버스야? 무슨 5급 보스가 인간들 과자를 먹어?”

이시우는 이제 딴죽을 거는 게 지칠 정도였다. 상식을 벗어난 스미레의 소환수들. 하지만 공포의 집에서 스미레의 존재감은 확실했다.

“꺄아아아아-!”

“으악! 날 잡았어! 이 괴물이 날 잡았다고!”

“이거 소품이 아니잖아!? 시, 시체가 움직인다!”

“해골이 말을 한다!”

공포의 집 여기저기서 터지는 비명들. 스미레는 기분이 뿌듯했다. 손님이 끊이질 않는 대인기에 기획자인 레니아는 스미레에게 다가왔다.

“유성이 아이디어도! 스미레 네 언데드 능력도! 진짜 대박이야!”

“네? 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모두가 열심히 해주신…….”

“그만! 이런 날은 겸손하지 않아도 괜찮아! 으으……. 이런 복덩이 녀석!”

레니아는 화악- 스미레를 껴안아 주었다. 친해진 둘의 모습을 보며 신유성은 살짝 웃었다.

“레니아. 축제 상황은 어때?”

“오전인데! 손님이 벌써 300명! 말했잖아. 대박 중의 대박이라니까?”

레니아의 말처럼 F반이 조성한 공포의 집은 대인기. 반면 같이 공포의 집을 만든 D반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문은 학생들에게만 퍼진 게 아니었다.

“여기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던데?”

“소해정 교수도. 별일이군요. 이런 곳에 올지는 몰랐는데.

린샤오 교관과 소해정 교수.

이제 F반이 만든 공포의 집에 인기는 교직원들에게까지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얘들아! 딱 우리 모두! 오전까지만 고생하자! 그래도 할당량은 뽑았어! 충분해!”

레니아가 기쁜 어투로 말을 하자. F반의 학생들은 환호했다.

“예에에! 논다!”

“대박! 다! 스미레 덕분이야!”

“아니 이건 유성이 아이디어 덕분이지.”

신유성은 가만히 스미레를 바라봤다. 신하윤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신유성에게도 축제로 보내는 시간은 즐거웠다.

김은아와 만남을 약속한 6시까지 남은 시간은 충분한 상황. 신유성은 스미레에게 물었다.

“축제에서 해보고 싶은 거 있어?”

“아, 네? 그건 으으음…….”

스미레는 신유성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역시 저는…….”

생각보다 아주 빠른 대답.

스미레는 신유성과 해보고 싶은 걸 이미 정해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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