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가온에 조성된 숲.
얼핏 보이는 밤의 호수에는 아름다운 밝은 달이 잠겨 있었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적막. 신유성은 정신을 집중했다.
‘……강해지고 싶어.’
신유성은 충분히 강했다.
헌터 강국인 한국에서도 1학년으로선 유례가 없을 강함. 하지만 신유성은 알고 있었다. 누나인 신하윤은 학생회장이 되고 5급 던전을 클리어 했지만 그건 신하윤의 절대 실력의 전부가 아니었다.
[아직은 이 정도가 전부에요.]
5살의 나이. 신하윤은 염동력으로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며 아버지인 신강윤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정도? 아니! 너의 특성은 이 신오가문에서도 독보적이다. S급의 위가 있다면 그건 바로 너의 염동력이겠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인 신강윤의 앞에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던 신하윤. 그리고 신강윤이 돌아가자. 5살인 신하윤은 표정이 변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 손을 드는 신하윤. 신유성은 그런 신하윤을 멍한 얼굴로 바라봤다.
[……풋.]
신하윤 그렇게 조소를 지으며 손을 움켜쥐었다.
[콰작! 바자자자작!]
겨우 5살의 나이.
신하윤은 염동력으로 거대한 나무를 한 손으로 으깨버렸다. 나무의 몸통도 나뭇잎도, 뿌리도, 모조리 응축시켜 하나의 구체로 만들어버렸다.
[다들 바보 같긴.]
그게 겨우 5살의 나이. 4살에 불과했던 신유성은 이유도 모른 채 신하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신하윤은 웃으며 4살에 불과했던 신유성에게 말했다.
[너, ……봤지?]
5살의 나이에도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이는 신하윤.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못 밧서…….]
[거짓말. 근데 유성아. 상관없어. 네가 뭘 봤든……. 세상의 그 누구도 네 말을, 아니 내 힘은…… 믿지 않아.]
신하윤은 시종일관 계속 웃고 있었다. 신유성은 신하윤의 그 웃음이 참 무서웠다.
[‘누나는 즐겁지도 않으면서 왜 웃는 걸까?’]
신하윤을 볼 때면 신유성은 머릿속에 물음만이 가득했다.
4살의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신하윤은 뭔가 달랐다.
[으, 으응…….]
힘이 풀린 신유성이 주저앉아서 고개를 끄덕이자. 신하윤은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췄다.
[그러니까, 난 말이지. 유성아.]
마치 비밀이라는 듯, 쉿- 하고 검지를 자신의 입에 맞추는 신하윤. 이번에도 신하윤은 즐겁지도 않으면서 다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모두를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어, 나약한 수준 미달들에게 군림하기 위해서 말이야.]
5살에게 주어진 너무나도 비상한 머리. 괴물 같은 특성. 신하윤은 너무나 이상했다.
‘겨우 5살 때부터, 누나는 힘을 숨기고 있었어.’
신유성은 신하윤이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대항전에서도 기권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보기에 그건 거짓이었다.
신하윤은 마음만 먹는다면 대항전의 어떤 국가라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하윤은 어디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전부 공개 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카드를 숨긴다. ……그게 누나의 치밀함이지.’
그런 신하윤이 신유성을 목표라고 칭했다. 조건은 신유성을 가지는 것. 어쩌면 신오가문 때문이 아닐지도 몰랐다.
‘아마 원하는 건…….’
신유성의 완전한 복종.
가온에서 여황으로 군림하는 신하윤에게 신유성은 반역자에 가까웠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신하윤에게 의미는 없었다.
절대 포기할 리는 없다.
결국 신하윤에게서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그런 신유성에게 필요한 건 힘.
‘무언가를 지키고 싶다면…….’
신유성이 눈을 감았다.
스산한 바람을 따라 여러 가지 기억들이 스쳤다. 버림받은 기억. 스승과의 수련. 처음 함께하게 된 동료들. 그리고 스미레와 김은아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
이제 주어진 결과는 명확했다.
‘상대보다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신유성은 강해져야 했다.
무신산의 하산이란 신유성의 완전한 자립을 의미했다.
원래 마주해야 했던 운명을 5살이 아닌, 지금에서야 뒤늦게 마주했을 뿐이었다.
‘……신오가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유성은 천천히 손으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리곤 투신류의 동작과 함께 주변을 향해 아주 천천히 퍼트렸다.
사아아!
신유성의 손을 따라 흩어지는 아름다운 불빛은 마치 반딧불 같았다.
캄캄한 동굴에서 신유성은 권왕 유원학에게 길을 밝힐 횃불을 받았다.
이제 어두컴컴한 미지를 향해 스스로 걸어 나설 차례였다.
‘계속 나아가기 위해.’
자세를 잡은 신유성이 움직임을 멈췄다. 투신류의 4장을 배웠지만 만족하고 멈춰 서지 않았다.
신유성은 이제 투신류의 5장을 깨우치기 위해 새로운 흐름을 찾아내고 있었다.
‘……생각하자. 그리고 떠올리자.’
어떻게 해야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투신류의 5장에 닿을 수 있는가. 하지만 주어진 정답은 없었다.
[흐음…… 잘 들어라. 유성아! 4장을 깨우치게 되면 알게 될 거다. 투신류는 나의 신체에 맞추어 만들어 낸 무술. 5장부터는 너의 재능에 맞게 길을 새로이 개척해야 한다.]
신유성은 유원학이 했던 말의 의미를 지금에야 알게 됐다. 당장 투신류의 4장만 하더라도 신유성은 자신의 방식으로 기술을 재창조해냈다.
유원학의 투신류 4장은 체내의 기운으로 공격 튕겨내고 버텨내는 호신강기(護身罡氣). 하지만 신유성은 체내의 기운을 수비는 물론이고, 공격에도 사용하는 흑룡강신(黑龍强身)을 사용했다.
그러니 이제 이정표는 필요하지 않았다. 유원학의 가르침과 지금까지 기록된 경험들을 토대로 새로운 길을 걸어나갈 차례였다.
‘나만의 투신류…….’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신유성은 타고난 특성을 떠올렸다. F급에 불과한 특성의 이름은 [집중력 강화]였다. 신유성은 무신산의 수련에서 알게 모르게 특성을 사용해왔다.
언제나 한계라고 생각한 순간 발휘된 초인적인 집중력은 신유성을 계속 힘든 수련을 버텨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만약 나의 특성을 투신류에 접목하면 어떻게 될까?’
신유성은 눈을 뜬 채로 특성을 사용했다. 이젠 마나를 부여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집중한다]라는 감각만으로 사고는 가속되고 세상은 느려졌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신유성은 사고를 계속 가속시켰다. 집중력을 발휘해 온몸의 감각을 한계까지 폭주시켰다.
즈즈즛!
멈춰버린 세상에서 가장 처음 신유성을 자극한 건 소리였다.
푸드덕! 푸드덕!
지금의 신유성에겐 나방의 날갯짓이 느릿하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제 이곳은 신유성의 작은 세상. 지금 이 공간에서 신유성이 느끼는 감각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혹은 전부였다.
‘……내 주변의 진동은 뭐지?’
늘려진 시간 속에서 신유성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느꼈다.
그 정체는 마나 입자.
아까 전 신유성이 방출했던 공기 중에 흩어진 마나의 입자들은 아주 미미한 진동을 가지고 뛰고 있었다.
‘이건…….’
마나에 민감한 타고난 체질.
감각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집중력 강화. 이건 전 세계에서 오직 신유성만이 느낄 수 있는 파장이었다.
‘마나가 진동하고 있어.’
이건 마치 나방의 날갯짓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일정하고 규칙적이었다.
‘이게…… 내가 가진 마나의 파장인가?’
신유성은 다시 손끝으로 마나를 방출했다. 몸을 타고 흐르는 마나의 느낌이 선명했고, 방출된 마나의 움직임이 천천히 보였다.
……드드. 드드.
그리고 이번에 느껴지는 진동은 뭔가 달랐다. 다른 헌터는 절대 느끼지 못할 차이. 하지만 신유성의 [집중력 강화]로 예민해진 감각은 이번에도 차이점을 찾아냈다.
‘얼마만큼의 마나를, 어떻게 방출하냐에 따라. 진동이 달라!’
신유성의 머리에는 번뜩 생각이 스쳤다. 만약 방출해낸 마나와 똑같은 파장을 낼 수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유성은 아주 오래전 유원학에게 ‘마나 공명’ 현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나 공명은 아주 드물지! 헌터의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다!]
유원학의 이야기에 의하면 마나 공명은 방출된 마나의 파장이 서로 맞을 때 생기는 현상으로. 직접 보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막상 마나공명이 일어나면 현역 헌터들도 크게 당황하고 만다.
[마나가 이상한 곳으로 튀거나, 통째로 사라지는 일도 흔하다. 그러니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면 죽을 수도 있는 현상이지.]
‘만약……. 마나 공명 현상을 내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신유성은 더욱더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아까 방출해낸 마나의 파장을 똑같이 손끝으로 뿜어냈다.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계처럼 정밀한 작업.
……드드. 드드. 팟!
신유성이 방금 방출 해낸 마나는 이전에 방출한 마나와 같은 진동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자가 서로 닿자. 마나 입자는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화아아악!!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신유성의 체감 시간.
“윽…….”
무리한 수련 탓에 신유성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신유성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방금 본 현상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건…… 분명 마나공명 현상이었어. 내가……. 직접 만들어낸 거야.’
우연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생동안 한 번도 보기 드문 현상을. 신유성은 타고난 감각과 특성인 [집중력 강화]로 컨트롤에 성공했다.
‘만약 이걸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그럼 스승의 말처럼 신유성은 오직 자신만의 투신류의 5장을 개척할 수도 있었다.
힘이 겹지만 그래도 뿌듯한 얼굴.
‘이제 10시구나. 돌아가야겠는걸.’
신유성이 시간을 확인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띠링!
[すみれ: 유성 씨 내일 9시!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すみれ: ㅠ᷄︿ㅠ᷅... 혹시 배가 고프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셔야 해요?]
[すみれ: ᕕ༼✿•̀︿•́༽ᕗ]
신유성은 스미레의 메시지를 보며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메시지로는 긴장을 하지 않는구나?’
성공적인 수련 때문인지 충만한 기분. 신유성은 내일이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