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6화 (86/434)

제86화

의자에 앉아 싱글싱글 웃는 신하윤. 그녀는 누구보다 학생회장의 권위가 잘 어울려보였다. 정말이지 오랜만의 재회.

“후후, 무시인가? 정말이지…… 상처받는데.”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고 여유로운 모습의 신하윤. 그녀에겐 남을 찍어 누르는 강한 기세가 있었다. 하지만신유성은 더 이상 누나에게 휘둘리던 어린 꼬마가 아니었다.

“원정 공략 건으로 왔습니다.”

신유성은 신하윤의 말을 무시한 채 용건을 말했다. 신유성의 반응에 신하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일본 측에 보고 받았어. 몽환의 성 공략. 맞지? 의뢰비도 입금받았고. 곧 너랑 ……스이레? 학생에게 전해질 거야.”

톡톡톡.

신하윤은 책상을 두드렸다. 그녀가 생각에 빠졌다는 증거. 신하윤은 한 장의 서류를 내밀며 신유성에게 말했다.

“이 서류에 체크해.”

어쩔 수 없이 책상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 신유성. 신하윤은 이번 기회를 백분 이용했다.

“그리고 가주님이 널 찾으신단다. 널 많이 보고 싶어 하셔. ……그래도 우린 가족이니까.”

신하윤은 서류를 작성 중인 신유성을 보며 웃었다. 말을 꺼낸 신하윤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신유성은 지금의 관계가 불편했다.

“제게 가족은 스승님뿐입니다.”

신유성에게 F급 특성을 이유로 자신을 버린 신오가문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신유성에게 가족이란 자신을 거두어준 권왕. 그리고 같이 경험을 쌓은 파티원이었다.

“그래? ……이 누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걸?”

하지만 신하윤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신유성은 신오가문의 피를 이었고, 선발전을 출전할 실력을 가졌다. 신하윤이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과실이었다.

“알고 있잖아. 내 성격?”

신하윤의 시선이 신유성을 꿰뚫었다. 어린 시절부터 거역해본 적이 없는 신하윤의 눈. 그러나 신유성은 단호했다.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

반말과 함께 내뱉는 신유성의 매몰찬 거절. 신하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변했다.

“그래?”

하지만 그건 잠깐에 불과했다. 신하윤은 다시 여유로움을 되찾았다.

“……유성아? 분명 후회할 거야. 난 갖고 싶은 건 어떻게든 가져.”

싱긋 지어 보이는 신하윤의 눈웃음. 신유성은 칼처럼 말을 끊고 서류를 내밀었다.

“……말했잖아. 생각을 정했다고. 협박은 무의미해.”

팽팽한 긴장감.

신하윤은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서류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벌컥!

“학생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이노 아카데미에서!”

갑작스런 남학생의 출연.

신하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꽈악- 주먹을 움켜쥐었다.

츠으읏!

신하윤의 손에서 마나가 흘러나오자. 남학생은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렸다.

“윽, 모, 목이…….”

부회장인 이혁은 다급하게 신하윤을 말리려고 했다.

“하윤아! 그건 너무 심하잖아!”

“날 이름으로 부르지 마.”

신하윤은 남학생의 목을 조르면서도 담담한 말투로 이혁에게 물었다.

“이혁. 내가 면담 중에는 늘 노크를 하라고 동아리원에게 말하지 않았나?”

남학생에게 벌레를 보는 경멸의 눈을 보내는 신하윤. 긴장한 이혁은 말을 더듬으며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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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 했지.”

“그럼 동아리원인 이 1학년의 행동은 뭐지? 아…… 나를 향한 도전?”

신하윤이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리자. 남학생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게 바로 신하윤을 최강으로 만든 염동력 특성의 힘.

신하윤이 쥐었던 주먹을 풀자. 남학생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앙!

“허억, 컥! 컥! 죄, 죄송합니다!”

“……시끄럽고 사라져. 동생이랑 이야기 중이니까.”

남학생이 다급하게 방을 나가자. 이혁은 그 뒤를 밟았다. 혼잡해진 상황.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었다.

“유성아. 내 말은 협박이 아니야. 경고도 아니고.”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던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신하윤은 웃고 있지만 기분이 나빠 보였다.

“이건 통보란다.”

톡.

신하윤의 검지가 책상을 두드렸다.

“난 널 알아. 고고하고, 의지력이 강한 너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버텨내겠지.”

톡.

신하윤은 계속 리드미컬하게 책상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 동료들도 그럴까?”

입을 닫고 웃는 신하윤.

신유성을 바라보는 신하윤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톡.

“알 수 있어. 너에게 소중한 아이들이지?”

신유성의 표정이 차갑게 굳자. 신하윤은 자신의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톡.

“큭큭, 그렇게 무섭게 보지 마. 당연한 이야기잖아?”

톡.

“처음 가져 본 동료. 분명…… 너에게는 각별할 거야.”

톡.

“난 알 수 있어. 너도. 나도. 애정과는 거리가 머니까.”

신하윤은 책상을 두드리는 걸 멈췄다. 조용히 말을 할 뿐인데도 몸에서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기세.

“나는 착하지 않아. 넘어가는 일도 양보하는 일도 없어. 가지고 싶은 건 모두 가져야 해.”

자리에서 일어난 신하윤은 신유성의 옆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아주 천천히 괴롭혀줄 거야. 네 소중한 사람들도. 너와 친해지는 사람들도. 전부.”

신하윤은 신유성의 뒤에서 뱀처럼 신유성의 목을 팔로 휘감았다.

“그럼 마음이 약한 넌……. 분명 스스로 찾아와서 내게 부탁하지 않을까?”

파하핫- 웃음을 터트리는 신하윤.

한때 가족이었던 신유성은 알고 있었다. 신하윤의 말은 절대 허세가 아니었다.

“내 파티원을 건드리지 마.”

하지만 신유성은 담담하게 경고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신유성은 굽힐 생각이 없었다. 도망갈 마음도 없었다. 모조리 맞설 생각이었다.

슬쩍.

신유성의 기세에 신하윤은 다시 자리로 걸어갔다.

“후훗, 장난이야. 귀여운 동생한테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그리곤 서류를 집으며 신하윤은 다시 인자하게 웃었다.

“그럼 가보도록 해. 의뢰비는 곧 입금될 거야.”

*     *      *

학생회장 실을 빠져 나와서 복도를 걷는 신유성. 방금 전에 들었던 신하윤의 말은 생각이 깊어지게 만들었다.

‘……가주. 아버지가 날 만나고 싶다고?’

신유성은 가족을 모조리 잊은지 오래였다. 그런데 활약의 소식이 퍼지자마자 다시 연락하다니 신오가문의 행동은 너무 뻔뻔했다.

‘뭐, ……상관없어.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까.’

신유성이 생각을 정리한 그때 포켓이 울렸다.

띠링!

누군가 포켓으로 보낸 메시지.

확인을 해보니 신유성에게만 온 개인메시지가 아니라 F반 전체가 있는 단톡방이었다.

[레니아아니레: 얘드라라라ㄹㄹㄹ 큰일 낫스으으으어어어어어!!!]

[레니아아니레: D반도 축제에서 공포의 집 준비한대!!]

[2시woo: 뭐--? 하필 겹친 거야?]

[레니아아니레: ㅠㅠㅠㅠㅠ 누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메시지의 주인공은 레니아와 이시우. 신유성은 F반이 축제에서 준비하는 걸 이제야 처음 알았다.

‘……우리도 공포의 집이었구나.’

신성그룹의 테마파크에서 체험해본 결과. 신유성도 제법 재밌었던 기억이 있었다.

공포의 집 체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귀신의 분장. 신유성은 좋은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깜빡거렸다.

‘뭔가 떠오를 거 같은데…….’

신유성이 고민을 하는 사이.

누군가 보낸 메시지로 포켓이 다시 울렸다.

[すみれ: 유성 씨! 용무는 끝나셨나요? (๑′ᴗ‵๑?)]

[すみれ: 아, 바쁘세요?]

[すみれ: ㅠ᷄︿ㅠ᷅...역시 바쁘시죠?]

언제 보냈는지 잔뜩 쌓여있는 스미레의 메시지. 신유성의 머리에선 무언가 번뜩였다.

[신유성: 스미레]

이름 세 글자만 적힌 신유성의 메시지. 스미레는 엄청난 속도로 답장을 보냈다.

[すみれ: (��❛ ֊ ❛„) 아! 유성 씨 계셨군요!?]

[신유성: 스미레 부탁이 있어.]

신유성에겐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     *      *

꿀꺽.

[신유성: 스미레 부탁이 있어.]

스미레는 덜덜 팔이 떨리는 상태로 포켓의 홀로그램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건 설마!’

소파에 앉은 스미레는 못 참겠다는 얼굴로 입술을 질끈 물었다.

‘……파, 파트너 신청?’

진정하려고 해도 너무 기대감이 부풀어 버린 스미레. 축제가 코앞인 지금. 신유성의 부탁은 파트너 신청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유성 씨는 나 같은 게 아니라도……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파티원이니까.’

띠링!

포켓에 도착한 신유성의 메시지.

스미레는 도저히 메시지를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 조금만…….’

실눈을 뜨며 조금씩 메시지를 확인하는 스미레.

[신유성: 이번 축제…….]

메시지의 일부분만 확인한 스미레는 제한된 정보로 망상을 시작했다.

‘이, 이번 축제……. 여, 역시! 이번 축제의 파트너!?’

기대에 차서 화악- 메시지를 확인하는 스미레.

[신유성: 이번 축제에서 귀신 역할은 스미레 네 언데드가 맡는 게 좋을 거 같아.]

“아. 으, 우으으…….”

메시지를 확인한 스미레는 울상이 된 얼굴로 답변을 적었다.

[すみれ: 네...! 맡겨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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