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5화 (85/434)

제85화

원정 공략을 마친 다음날.

부실은 모처럼 시끌시끌했다.

“와! 파티장님이! 돌아오셨다!”

“유성아 스미레. 둘 다 축하해! 5급 공략이라니!”

눈을 빛내며 환대하는 에이미와 이시우. 스미레는 이번 공략의 주역이었지만 환대를 부끄러워했다.

“저, 저는 한 것도 없었어요! 모두 유성 씨가…….”

“뭐, 뭐야, 스미레 너 안 본 사이에 왜 파티장님의 성을 빼고 불러!? 내가 안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에이미가 스미레를 신기해하자. 스미레는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 그건 그냥!”

“야! 일이 있긴 뭐가 있어? 유성이를 뭐로 보고.”

에이미의 의혹을 가볍게 잘라버리는 이시우. 에이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휴, 제가 스케줄로 바쁘지만 않았어도……. 제가 직접 공략을 도와드리는 건데! 아 제 실력도 보여드리고요~”

에이미는 흐흥- 하며 웃더니 신유성의 옆에 다가와서 작게 속삭였다.

“후후, 돈은 확인하셨죠? 이번 선발전에서 받은 후원금은 비율대로 전부 입금해드렸어요! 제가 이런 건 또 철저하죠.”

“고마워. 에이미. 네 후원금은 부실을 관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 덕분에 내가 저축을 할 틈도 생기고 있고.”

“저축~ 좋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미레를 바라보았다.

“헤헤~ 그러고 보니, 원정 공략이면 의뢰금도 엄청 받겠네? 축하해~ 스미레!”

“네? 의뢰금요?”

“그래도 5급 던전이잖아. 시민들의 위험을 제거해 준 거니까. 아무리 적어도 몇 천만 원은 나올걸?”

“네, 네!?”

에이미의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진 스미레.

“……며, 몇 천만 원?”

지금까지 스미레가 번 돈은 세븐넘버의 지원금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집을 위해 대부분을 보내주느라. 세븐넘버치곤 부족한 생활을 유지했던 스미레였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의뢰로 몇 천만 원이라니. 하지만 에이미는 더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주었다.

“부산물이 비싼 곳은, 더 많이 줘. 이 정도면 사실 짠 편이야.”

“도, 돈이 며, 몇 천만 원……. 그런데 이게…… 적은 편?”

스미레가 자본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신유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 이번 의뢰비는 4천만 원 정도였어. 몫을 반으로 나누면. 2천만 원 정도겠지.”

“으, 으으어……. 저, 저는 그런 큰돈은……. 필요가…….”

충격 때문인지 누구보다 돈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거절하려는 스미레.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조건 받아줘. 이건 네 몫이니까.”

스미레는 김은아와 케이스가 달랐다. 김은아는 천만 원을 푼돈이라며 사인마저 귀찮아했던 ‘정말 필요가 없었던’ 케이스. 스미레는 공략으로 얻은 의뢰비가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2천……. 2천만 원…….”

멍해진 스미레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에이미는 홍차를 홀짝이며 신유성에게 물었다.

“저기~ 파티장님? 곧 있으면 ‘탑의 날’ 축제인 건 알고 계시죠?”

탑의 날.

인류가 최초로 탑의 60층을 공략한 전 세계의 국경일. 이날은 특히 헌터들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덕분에 가온처럼 모든 헌터 아카데미는 ‘탑의 날’에는 60층을 공략한 헌터들을 기리고, 기쁨을 나누기 위해 축제를 진행했다.

“학교 축제를 국경일에 한다니. 휴일을 줄이려는 속셈이잖아. 속 보인다니까.”

이시우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에이미는 에이- 하고 웃었다.

“그래도 좋잖아! 다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춤도 추고! 이벤트도 하고! 방송도 하고!”

“……거기에 방송은 왜 넣니? 너 설마 우리 유성이를 방송에 팔아먹으려고…….”

“어!? 아, 아니 뭐…… 파티장님이 인터뷰라도 해주시면 엄청 기쁘겠지만……. 시청자님들도 엄청 좋아하시겠지만……. 흐흐, 지금 물으려고 했던 건 그게 아니거든?”

눈이 가늘어진 에이미는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파티장님은 축제에 누구랑 가실 거 에요? 파티장님은 엄청 인기가 많으시잖아요. 파트너 신청도 엄청 들어왔을 거 같은데…….”

눈썹을 들썩이며 배시시 웃는 에이미.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진 한 번도 없었어.”

“뭐야, 유성이 네가 파트너 신청이 한 번도?”

이시우는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놀랐다. 당연했다. 이시우의 기준에서 신유성이 파트너 신청을 못 받은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그건 엄청 이상한데? 파트너 신청은 나도 3건은 받았는데…….”

“그래?”

신유성은 딱히 축제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파티원들과 보낸 시간과 동료의 유대만으로 충분했다.

반면 옆에서 듣고 있던 스미레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유, 유성 씨의 축제 파트너…….’

이번만큼은 욕심을 부리고 싶은 상황. 스미레는 용기를 내려 했지만 부실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하고 싶어!’

속마음과 달리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스미레. 에이미와 이시우는 그런 스미레의 마음도 모른 채 신유성에게 말했다.

“하긴! 파티장님~ 이미지가 워낙 신비하잖아요? 다가오기 힘들 수도 있죠! 그럼 저랑 방송이나 다니실까요? 인터뷰도 하고!”

신유성은 에이미의 어필에 피식 웃었다.

“좋아. 생각해볼게.”

이 와중에도 지켜보는 스미레의 마음은 계속 초조해지고 있었다.

‘파, 파트너……. 내가 꼭 하고 싶은데…….’

슬쩍 신유성의 옷을 잡으려는 순간. 신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됐네.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정보가 빠릿한 에이미는 신유성이 어디로 가는지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아하~ 사인하러 가시는 거죠!?”

“아, 의뢰비 때문이구나?”

이시우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라며 손을 흔드는 에이미와 이시우.

“그럼. 다녀올게.”

탁.

그렇게 부실의 문을 닫고 나가는 신유성. 기회를 놓친 스미레는 멍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더니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아. 포, 포켓!’

평소의 스미레라면 절대 먼저 메시지를 먼저 보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용기가 필요한 순간.

스미레는 주먹을 꽉 쥐며 포켓을 바라봤다.

*     *      *

저벅저벅.

한국 최고의 아카데미 가온.

이곳은 부지는 물론 학교의 시설도 참으로 거대했다.

‘……학교 내부에서도 거리가 상당한걸.’

길게 이어진 복도의 맞은편에선 두 명의 S반 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쩌겠어. 나도 못 참겠는걸!”

“그래서 말싸움이 벌어진 거야?”

목소리의 주인은 이채현과 신유성과 구면인 민성혁.

“A반 주제에 우리 S반이랑 맞먹으려고 하는 거 있지?”

이채현이 단발 밑의 눈을 잔뜩 찡그리자. 민성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확실히 못 봐주긴 하겠던걸. 아델라가 없어지니까. A반 놈들 아주 기세등등해선…….”

“요샌 김은아도 안 보이니까. 네가 기강 좀 잡아.”

훗- 하고 웃으며 말을 하던 이채현은 신유성을 발견하자. 툭툭 민성혁을 건드렸다.

민성혁은 그제야 신유성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 나 기억하지? 우린 구면인데.”

신유성은 기억하고 있었다. 민성혁은 신하윤을 대신해 동아리의 가입을 제의하러 왔던 학생이었다.

“그래. 기억하고 있어.”

“선발전은 잘 봤어. 아델라를 이기다니. 역시 신하윤 선배가 탐낼 만해. ……최근엔 회장님이 되셨는데 알고 있지? 학생회장 말이야.”

웃으며 보내는 은근한 압박.

가온에서 학생회장이 가지는 권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민성혁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신유성은 선발전의 대표가 될 실력과 강유찬과 권왕이라는 든든한 백을 갖추고 있었다.

“알아.”

“그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이야기해줘. 너라면 언제든 우리 동아리의 문을 열어 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민성혁이 사람 좋게 웃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양할게.”

“……그래?”

민성혁은 신유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아델라가 귀국을 하며 S반의 반장이 됐고, 거기에 회장인 신하윤의 총애까지 받는 학생.

이젠 1학년 중에서 탑급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 녀석은 건드릴 수가 없단 말이지.’

일단 신유성은 너무 강했다.

S반에게조차 경외의 대상이었던 아델라를 이긴 괴물.

‘……굳이 트러블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계산을 끝낸 민성혁은 무안한 척 머리를 긁적이며 하하- 웃었다.

“그래도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니까 무안한데? 천천히 생각해봐.”

그 말을 끝으로 민성혁과 이채현이 사라지자. 신유성은 다시 복도를 걸었다. 몇몇 동아리에선 부실 대신 반을 활용해 축제 준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야, 이렇게 꾸며서 사람들이 무서워하겠어? 이걸론 초등학생도 못 놀래키겠다!”

무안을 주는 D반 반장 박하원과 뚱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주황머리의 주하진.

‘……아, 이벤트 준비구나?’

학교에서 이 정도로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데도 신유성은 그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간 온갖 교외 활동과 스케줄로 바쁘게 지내온 탓이었다.

‘축제라…….’

신유성은 새삼 축제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무신산에선 당연히 축제를 보낸 적이 없지만. 5살보다 오래전 아주 어린 시절. 신오가문에서 지낼 때는 조금의 기억이 있었다.

[알아? 내일은 ‘탑의 날’이야.]

5살이었던 신하윤.

[응? 나, 몰라. 그게 뭐야?]

4살에 불과했던 신유성.

어린 시절의 신유성은 줄곧 누나가 대단했다고 생각했다. 누나인 신하윤은 겨우 1살 차이에도 너무나 많은 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엘리트만 존재하던 신오가문에서 천재라 불리며 신하윤이 떠받들어진 이유였다.

[잘 들어. 탑의 날은 말이지. 탑을 공략한 헌터에게 감사하는 날이야.]

[왜 감사해?]

갸웃.

어린 신유성이 고개를 움직이자. 5살에 불과했던 신하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쁜 듯이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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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 사람들이 대단하기 때문이지. 힘이 없는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남을 추앙하는 거야.]

신하윤은 겨우 5살의 나이에 고등 과정을 공부한 천재. 신하윤의 말은 4살인 신유성에게 너무 어려웠다.

[난. 자알…… 모르겠어.]

[나도 잘 몰랐어. 근데 곧 너도 알게 될걸?]

그 말을 끝으로 웃는 신하윤.

그때의 신유성은 신하윤을 대단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똑똑.

개인용 사무실에 노크를 하는 신유성. 곧 문이 열렸다.

“들어와.”

문을 열어준 상대는 가온의 2학년생인 이혁. 그리고 사무실에서 웃으며 신유성을 맞이하는 상대는.

“……왔네. 내 동생?”

가온의 학생회장.

신오가문의 후계자 신하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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