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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83/434)

제83화

투신류 흑룡암쇄장(黑龍巖碎掌)

그 상상초월의 파괴력에 넝마가 된 서큐버스는 신유성을 바라보며 붉게 물든 눈으로 악을 질렀다.

“쿠, 쿨럭! 네, 네놈이! 감히! 크학! 큭……. 빌어먹을!”

서큐버스는 5급 보스 중에서도 전투력은 한참 낮았다. 서큐버스가 위험한 이유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스킬과 지능 때문.

흑룡암쇄장을 정면으로 맞은 이상. 전투의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서큐버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크흐흣, 정말…… 날 죽여도 괜찮겠어? 으응?”

서큐버스는 신유성을 올려다보며 웃더니 검지로 사쿠라를 가리켰다.

“날 죽여도……. 매혹은 절대 풀리지 않는데? 저 아이. 분명…… 망가지고 말걸?”

서큐버스의 이야기에 세이지는 다급하게 신유성을 말렸다.

“자, 잠시만! 그, 그게 무슨…….”

신유성은 주먹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흑룡포에서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차가운 눈으로 서큐버스를 내려다보았다.

“협박은 통하지 않아.”

“후훗, 협박이 아니야.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마치, 인형처럼 살아 있는 시체가 되는 거지…….”

서큐버스는 붉은 안광을 내며 번뜩이는 눈으로 신유성을 노려보았다.

“저 아이의 입장에선. 차라리 죽는 게 나을걸?”

일촉즉발의 상황.

입구에서 헉헉- 숨을 고르며 뒤늦게 스미레가 들어왔다.

“유, 유성 씨! 저, 저도 왔……. 허억, 헉……. 역시, 너, 너무 빠르세요. 급하게 뛰어서…… 배, 배가 당길 정도예요…….”

헌터지만 신체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스미레는 신유성의 달리기 속도에 맞출 수가 없었다.

지금에라도 도착한 게 다행인 상황. 서큐버스는 숨을 고르는 스미레를 바라보며 바보처럼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라, 라플라스 님?”

서큐버스와 스미레의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 아무것도 모르는 스미레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자. 서큐버스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스미레에게 점점 다가갔다.

“아, 아니……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달라! 마나의 느낌은 비슷하지만 라플라스 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

서큐버스는 스미레의 얼굴부터 다리까지를 순서대로 훑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외모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긴 하지만…….”

서큐버스의 시선은 스미레의 머리띠에서 멈췄다.

“라플라스 님은……. 절대 그런 촌스러운 머리띠를 할 리가 없어!”

“초, 촌스러운…….”

기가 죽은 스미레가 머리띠를 만지작거리자. 서큐버스는 그런 스미레의 모습에 더욱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표정! 라플라스 님은 절대로 너처럼 그런 덜떨어진 표정은 지으시지 않아!”

갑자기 스미레에게 악담을 퍼붓는 서큐버스. 충격을 받은 스미레는 신유성을 바라보며 입을 우물거렸다.

“우, 우으……. 유, 유성 씨……. 아, 아니죠? 저, 저! 그, 그렇게…… 촌스러운가요!?”

신유성은 스미레를 보호하기 위해 옆으로 이동했다.

“스미레에게 다가오지 마.”

사쿠라가 인질로 잡힌 상황에도 신유성은 침착하게 서큐버스의 말을 분석하고 있었다.

‘지금 라플라스 님……. 이라고?’

사악(邪惡)의 마녀. 라플라스.

분명 권왕에게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7급 보스인 라플라스와……. 서큐버스가 무슨 연관이 있지?’

신유성은 주어진 정보로 서큐버스와 라플라스의 접점을 떠올려야 했다. 일단 이곳의 사물들에 깃든 마나의 농도는 이상할 정도로 짙었다.

‘하지만 이곳이 라플라스와 연관이 있다면……. 모두 설명이 돼.’

라플라스가 사용했던 사물이나 장소라면 마나의 농도가 짙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리고 서큐버스는 라플라스와 사이가 깊어보였다.

‘만약 서큐버스가……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가 아닌. 라플라스의 사역마라면…….’

언데드와 사역마 대군을 다루던 라플라스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그럼 서큐버스의 전략이 뛰어났던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라플라스의 곁에서 전투를 치르며 경험이 늘었을 테니까.’

신유성이 추리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 스미레의 오른손에선 환하게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 어라?”

그에 따라 반응하는 서큐버스의 오른손.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서큐버스의 오른손에선 스미레와 같은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이 힘은. 분명…… 라플라스 님의……. 대, 대체 너 정체가 뭐야!”

당황한 서큐버스가 스미레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당황한 건 스미레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도 몰라요.’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는 스미레. 신유성은 스미레에게서 사쿠라를 구할 가능성을 엿봤다.

“스미레. 서큐버스를 네 사역마로 만들 수 있어?”

모처럼 신유성의 부탁이었지만 그건 스미레의 능력을 넘은 일이었다.

“제, 제가 소환한 패밀리어가 아니면 그런 일은…….”

물론 스미레는 편린으로 라플라스의 힘을 이어 받았지만. 그 힘은 어디까지나 새롭게 얻은 스킬에 봉인되어 있었다.

‘만약. 새롭게 얻은 스킬을 사용에 성공한다면 혹시 모를지도…….’

스미레가 고민하는 사이. 서큐버스는 무릎을 꿇고, 애절한 눈으로 스미레를 올려다보았다.

“만약 네가 정말 라플라스 님과 연관이 있다면……. 내 이름을, 진명을 알고 있겠지?”

사역마의 진명.

계약자가 아닌, 스미레는 절대 알 수 없는 이름. 하지만 스미레의 오른손은 서큐버스와 계속 반응하고 있었다.

“스미레! 부탁해!”

멀리서 세이지가 사쿠라를 붙잡고 소리쳤다. 가능성은 오직 스미레에게 쥐어진 상황. 스미레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라플라스의 관…….’

새롭게 얻은 스킬은 이상할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다. 어쩌면 경고 일지도 몰랐다. 편린에 봉인됐지만 라플라스는 어디까지나 마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미레는 손을 뻗었다.

스미레는 도망치기만 했던 자신에게서 변화하기 위해, 일본으로 왔다. 그리고 지금은 신유성이 있었다.

“내, 내게…… 사, 사악의 관을 건네라.”

스미레가 홀린 듯 중얼거리자. 흑백으로 변해 멈춰버린 세계. 스미레가 손을 뻗은 장소에는 검은색 구체가 뭉치기 시작했다.

그, 그그그극!

점점 커진 검은색 구체는 모든 걸 삼켜버렸다. 아무 것도 없는 암흑에서 점점 밝아지는 불빛.

‘여, 여긴…….’

스미레의 주변에 보이는 건, 몰락한 왕실처럼 보이는 고성의 내부였다. 찢어진 깃발과 깨져버린 스테인드글라스. 어두컴컴한 하늘이 합쳐진 을씨년스러운 풍경.

사아아!

음산한 보랏빛의 안개가 걷히고, 왕좌가 드러났다. 그곳에 앉은 고고한 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이곳에 손님이라니. 별난 일도 있군.

스미레를 바라보며 웃는 보랏빛 머리의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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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당신이 사악의 마녀…… 라플라스이신가요?”

라플라스는 왕좌에 앉아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 분명 나의 본체는 그런 이름으로 불릴 때도 있었지.

스미레는 입을 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더니 용기를 냈다.

“제, 제게! 힘을 빌려주세요!”

옅게 미소를 짓는 라플라스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스산하게 울렸다.

-……그건 나의 관을 원한다는 이야기겠지?

마치 몸이 얼어붙는 기분.

그런데도 스미레는 모든 긴장을 꾹 참아내고 몸을 움직이려 애썼다.

끄덕끄덕.

뻣뻣해진 스미레가 몸을 떨며 고개를 움직이자. 라플라스는 미소를 지었다.

- ……좋아. 근데 후후훗, 나에게는 그리 겁먹을 것 없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태도.

라플라스는 오랜 시간 봉인된 덕분인지, 지금의 상황을 유흥거리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나는 편린에 깃든 라플라스의 사념. 너에게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못하니 말이다.

슥.

라플라스가 검지를 들자. 보랏빛 마나가 허공에 뭉쳤다.

사아아!

곧 형체는 가시가 돋아난 왕관으로 변했다. 이것이 바로 라플라스의 힘이 봉인된 관. 라플라스는 왕좌에서 스미레를 내려다보며 무감한 얼굴로 말했다.

- ……나는 진짜 라플라스가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 너에게 이 관을 넘겨줄 수도 있다.

톡톡.

라플라스는 왕좌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스미레에게 말했다.

- 대신, 나의 편린을 모두 모아다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라플라스의 말에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펴, 편린이라면 그…… 비석을?”

- 아니. 내 힘이 깃든 편린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너라면 알 수 있겠지. 넌 나와 어딘가 닮지 않았느냐?

마치 여왕처럼 보이는 라플라스와 소심한 자신이 닮았다니. 스미레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웃자. 라플라스는 투정을 부렸다.

- 자, 이것 보아라! 아무리 사념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곳의 대우는 너무도 박하지 않더냐?

라플라스는 스러져가는 낡은 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도, 힘이 모자라서 말이다. 지금의 나는 이 낡은 성과 왕좌를 유지하는 게 고작이지.

라플라스의 설명에 스미레는 납득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 그럼 제 힘이 닿는 곳까지 최대한…….”

- 좋아. ……나의 편린을 모아온다면 다음에는 차라도 대접하지.

라플라스는 허공에 뜬 관을 가져와 스미레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작게 경고를 속삭였다.

- 그래. 하지만 지금의 너에겐 과분한 힘이니. 너무 남발하진 말거라.

스미레의 머리에 관을 씌워주는 라플라스. 곧 이어 관에선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세상을 환하게 물들였다.

파아아앗!

다시 보이는 몽환의 성의 풍경.

스미레의 머리에는 라플라스의 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건 스미레가 라플라스의 힘을 이었다는 명백한 증거.

“그, 그 관은! 다, 당신은……. 당신은 정말로…….”

마녀의 재림.

화아악!!

스미레의 오른손에서 솟구치는 계약의 술식. 오직 라플라스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스미레는 이어받았다.

‘이게 라플라스의 관…….’

스미레가 나른한 눈으로 서큐버스를 내려다보자. 서큐버스는 스미레를 바라보며 홍조를 띈 채, 입술을 질끈 물었다.

‘상대를 깔보는 고압적인 눈. 여왕님 같은 자태……. 부, 분명해!’

관을 쓴 스미레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차가워진 가슴과 차오르는 우월감. 스미레는 절대 알 리가 없는 서큐버스의 진명을 말했다.

“……릴리스. 당장 저주를 푸세요.”

관을 쓴 스미레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주,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일이든 하겠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진 얼굴로 스미레의 발치로 다가오는 릴리스. 관을 쓴 스미레는 벌레를 보듯 경멸하는 눈으로 릴리스를 내려다보았다.

“……유성 씨에게서 떨어져.”

“네? 아, 아닙니다! 저, 저는 주인님에게!”

말을 그렇게 하며 슬쩍 뒤로 물러나는 릴리스. 정신을 차린 사쿠라는 이마를 짚으며 두통을 호소했다.

“아, 나 죽어어…… 머리가 깨질 거 같아……. 흐으으…….”

“사쿠라! 괜찮아!?”

세이지가 기뻐하며 사쿠라를 반기자. 사쿠라는 넙죽 엎드린 릴리스와 고압적인 스미레를 번갈아보았다.

“이건 또 무슨 상황?”

그렇게 물어도 지금의 상황은 좀처럼 요약이 불가능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스미레는 자연스럽게 신유성에게 팔짱을 꼈다. 싱글싱글 웃지만 평소완 다르게 어딘가 음흉해 보이는 스미레.

“……유성 씨? 제가 전부 해결했답니다?”

이상함을 눈치 챈 신유성은 반대 쪽 손으로 스미레의 머리에서 관을 들어올렸다.

파앙!

스미레의 곁에서 떨어지자 마나로 변해 흩어진 라플라스의 관. 아무래도 스미레는 이 관 때문에 기분이 변한 모양이었다. 관이 사라지자 스미레는 갑자기 붉어진 얼굴로 신유성에게서 후다닥- 떨어졌다.

“으, 으……. 죄, 죄송해요! 제가 무, 무슨 짓을…….”

과정이야 어떻든 스미레가 릴리스를 사역마로 삼으며 성공해버린 5급 던전의 공략. 신유성은 부끄러워하는 스미레를 보며 웃어주었다.

‘……결과만 좋으면 됐나.’

스미레는 방금 전의 기억이 남아 있는지 팔짱을 꼈던 자신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유, 유성 씨와…….’

5급 보스를 사역마로 두게 됐음에도 스미레의 머리에는 오로지 신유성의 생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릴리스는 그런 스미레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라플라스 님이 맡겨주셨던 보물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5급도 아닌, 7급 보스의 보물.

릴리스의 이야기는 신유성마저 흥미가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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