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0화 (80/434)

제80화

[동화율의 측정이 끝났습니다.]

홀로그램의 안내와 함께 스미레의 오른손에는 통증이 찾아왔다.

욱신!

‘오, 오른손이 뜨거워!’

고온의 목욕물에 갑자기 손을 담군 정도의 애매한 고통. 갑작스런 통증에 찔끔 눈물이 나왔지만 스미레는 꾹 참아냈다.

[동화율을 산정한 방식은 탑의 기록에 저장된 (사악의 마녀) 항목을 참고했습니다.]

홀로그램의 설명이 박차를 가할수록 스미레의 통증은 점점 강해졌다.

“……읍.”

하지만 스미레는 입을 꾹 다물고 버텨냈다. 그리곤 똑바로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마녀 라플라스와 하나지마 스미레의 동화율은 아래와 같습니다.]

[1-정보를 표기할 수 없습니다.]

필기우등생인 스미레도 이해할 수가 없는 이야기. 지금 스미레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

스미레는 불안해 보이는 눈을 한 채, 입술을 질끈 물었다.

‘여, 역시 이상해…….’

사악(邪惡)의 마녀 라플라스.

그녀는 겨울의 마녀를 포함한 다른 마녀처럼 국가급 재앙인 7급 보스에 해당했다. 그런 라플라스의 흔적을 5급 던전에서 조우하는 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2-기준 성격과 성향]

홀로그램은 스미레가 생각에 빠졌을 때도 착실히 정보를 표기했다.

[2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22% 떨어집니다.]

동화율이 떨어졌다.

스미레의 성격과 성향이 라플라스와 다르다는 반증이었다.

[3-능력]

[3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5% 올라갑니다.]

같은 흑마술을 사용하기에 올라가는 동화율. 스미레는 꿀꺽 침을 삼켰다.

‘소문으론 동화율이 50%를 넘어야 적합자라고 들었어.’

[4-마나]

[4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12% 올라갑니다.]

“해골아! 오, 올랐어!”

“따닥!”

기뻐하는 스미레와 신유성의 해골.

하지만 아직까지는 올라간 수치보다 깎인 수치가 많은 상황. 마지막 항목이 남아 있었다.

[5-신체와 외형]

긴장되는 순간.

스미레는 해골의 손을 꼭 잡고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5번 항목에 의거해 동화율이 6% 올라갑니다.]

[최종 동화율 51%]

[적합자로 판정되었습니다.]

[첫번째 마녀의 편린인 (라플라스의 비석)을 얻었습니다.]

[마녀의 편린에 새겨진 흑마술을 동화율에 비례해 흡수합니다.]

주르륵-

홀로그램은 프로그램을 연산하는 컴퓨터처럼 글자들을 표시했다.

파앗!

곧이어 비석에서 뿜어진 빛은 스미레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 흡수됐다.

“으, 으읏!”

스미레는 왜 라플라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도 몰랐지만 결국 흡수에 성공했다. 재앙이라 불리는 마녀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해, 해냈다! 해, 해골아! 나 정말 해냈어!”

스미레가 기뻐하며 신유성의 해골을 껴안자. 신유성의 해골도 턱을 부딪쳤다.

“딱! 따닥!”

스미레가 흡수한 건 무려 7급 보스의 파편. 기존에 가진 특성이 아무리 F급이라도 특성의 잠재력을 한참 격상 시킬 수 있었다.

[마녀의 편린과 기존의 특성이 융화되어 능력이 강화됐습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포켓이 뿜어낸 홀로그램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특성 (망자의 관리자)가 (마녀의 흑마술)로 격상됐습니다.]

[스킬 (망자의 부름)이 (마녀의 부름)으로 격상됐습니다.]

[스킬 (망자의 장막)이 (마녀의 장막)으로 격상됐습니다.]

일부를 흡수한 것만으로 기존의 특성과 스킬들이 모두 업그레이드 된 상황. 옆에 있던 신유성의 해골은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

“딱! 따다닥!”

“화, 확실히 강해진 기분이라고? 글쎄 아직 난 잘 모르겠는데…….”

“딱딱!”

“아, 알겠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을게!”

강해졌다는 해골의 말에 기뻐하는 스미레. 하지만 특성과 스킬이 강화가 되는 건 어디까지나 스미레가 능력의 발전 일뿐. 라플라스의 진짜 힘이 아니었다. 비록 일부에 불과했지만 재앙이라 불린 마녀.

편린에 봉인 된 라플라스의 강대한 힘은 오직 스킬로만 구현 할 수 있었다.

[마녀의 첫 번째 편린. (라플라스의 관)을 스킬로 얻었습니다.]

“……라플라스의 관?”

특성을 통해 얻은 스킬이 아닌.

편린을 통해 각성한 스킬. 그 때문인지 당사자인 스미레도 [라플라스의 관]이 어떤 스킬인지 짐작조차가지 않았다.

“……뭐, 뭔지는 몰라도 강해진 건 확실하니까!”

스미레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강해지기만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신유성의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헤실헤실 웃는 스미레. 사실 지금 스미레가 얻은 기연은 그 정도 스케일이 아니었다.

헌터계 전체의 역사를 뒤져도 보스몹의 편린을 얻은 건, 손가락에 꼽았다. 그건 극악한 확률로 편린을 발견하더라도, 적합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

심지어 특성을 강화 시켜주는 대부분의 편린은 7급 던전에 위치했다.

편린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얻게 되는 건, 정점에 닿은 극소수의 헌터.

학생이 보스몹의 편린을 얻은 건 그야말로 최초.

심지어 스미레가 얻은 건 7급 중에서도 손꼽히는 보스몹인 사악의 마녀 라플라스의 편린이다.

“그, 그럼 해골아 이제 가볼까?”

스미레는 아직 자신이 가지게 된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르고 있었다.

*     *      *

한국팀과 마찬가지로 둘로 나눠 흩어진 일본팀.

사쿠라는 벽에 숨은 채로 어딘가를 향해 활을 겨눴다.

‘……역시 5급 던전인가? 잡몹도 너무 강하잖아.’

화살촉의 끝으로 노려진 건 뱀과 도마뱀을 섞은 형태의 괴수. 바실리스크. 4급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몬스터였다.

‘어떻게든 한 방에-!’

파앙!

사쿠라가 시위를 놓자. 바람의 힘이 화살에 속력을 더했다.

사아아악!! 콰악!

초록빛 마나를 흩날리며 쏘아진 사쿠라의 화살은 정확히 바실리스크의 목을 꿰뚫었다.

“키에에엑!”

바닥에 누워 버둥거리는 바실리스크를 향해 다시 활을 겨누는 사쿠라. 그러나 시위에 놓인 건 화살이 아니었다.

“쉿!”

쌔애액!!

사쿠라는 뭉쳐놓은 마나덩어리를 화살 삼아 쏘았다. 파앙! 발악하는 바실리스크를 형체도 없이 터트려버린 사쿠라의 마나.

“낙승~ 낙승~”

활을 든 사쿠라는 종종 걸음으로 바실리스크에게 다가갔다.

“여긴 처리했으니까. 이제 세이지랑 합류만 하면~”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사쿠라의 뒤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누구 마음대로?”

마치 영혼에 속삭이듯 감미로운 목소리. 사쿠라는 곧 바로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절대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이거 뭐야. 다, 다리가…….’

본능이 도망치라고 소리쳤지만 사쿠라는 뱀 앞에 놓인 생쥐처럼 공포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굳어버렸네? 내 격을 느꼈나보구나. 예민한 아이인 걸…….”

“너, 넌…….”

불쑥.

뒤에서 검은색 장갑을 낀 손이 튀어나왔다. 얼핏 비친 팔은 핏기가 없이 백옥처럼 매끈해보였다.

“……왜? 후훗, 내가 직접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니?”

상대의 물음에 사쿠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질끈 입술을 물었다. 확실히 상상하지 못했다. 던전의 보스가 직접 찾아올 줄이야.

“서큐버스가 지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날 갓 태어난 몽마들과 비교하는 건 섭섭하지. 난 아주 경험이 아주 많은 서큐버스란다?”

장갑을 낀 손은 사쿠라의 어깨를 더듬었다. 서큐버스는 뱀처럼 다가와 천천히 사쿠라를 휘감았다.

“……이상한 곳에 떨어졌지만. 너희 같은 송사리를 요리하는 건 간단한 일이야.”

아웃브레이크로 열린 게이트와 갑자기 생겨난 던전. 몬스터가 지능이 있고 인간에게 호의적인 경우는 공존 할 수 있었지만. 서큐버스는 그러지 않았다.

서큐버스에게 인간의 정기를 흡수하고, 자신의 사역마로 만드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생각을 했어야지. 왜 이 성은 입구가 나눠져 있을까?”

“……왜?”

“이 성의 복잡한 구조는 마치 거미줄과 같단다. 난…… 너희를 사냥하는 거미고.”

서큐버스의 말이 길어지자. 사쿠라는 최대한 온몸에 마나를 퍼트렸다. 몸이 안 움직이는 건, 서큐버스의 스킬 중 하나인 [석화의 시선]의 효과.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해제할 수 있었다.

“이 거미줄 위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오직 나뿐이야.”

점점 움직이는 몸.

사쿠라는 마나를 모았다.

‘상대는 5급 보스……. 어떻게든 도망쳐야해…….’

기회는 한번.

사쿠라는 홱- 고개를 돌리며 서큐버스의 머리를 향해 공기탄을 쐈다.

“하앗!”

파앙!

공기탄은 정말 서큐버스의 머리를 뚫렸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머리가 뚫린 서큐버스는 마치 연기처럼 흩어졌다.

“발악은 그게 끝이니?”

언제 나타났는지 서큐버스는 바실리스크의 시체에 앉아. 여유롭게 웃었다.

툭. 날름.

약지에 바실리스크의 피를 묻혀 혀로 핥아보는 서큐버스.

“맛있네. ……흡혈귀들이 환장하는 이유를 알겠어. 너도 걔네들 밥으로 줄까? 인간의 피라면 사족을 못 쓰던데…….”

섬뜩한 서큐버스의 모습에 사쿠라는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렸다.

‘이런 거, 저, 절대 못 이겨……. 5급 던전은 역시 무리였어…….’

사쿠라의 공포가 강해질수록, 서큐버스가 뿜어내는 마나의 힘은 더욱 강렬해졌다.

뚜둑. 뚝!

등 뒤에서 돋는 한 쌍의 날개.

서큐버스는 흰자가 전부 사라진 눈으로 딱딱하게 굳은 사쿠라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이제 왜 내가…… 첫 사냥감으로 널 노렸는지 알겠니?”

꿈에 나올까 섬뜩한 모습.

사쿠라는 눈물을 흘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모, 몰라! 그딴 거…… 모른다고!”

서큐버스가 뿜어내는 마기에 점점 정신이 붕괴되는 사쿠라. 서큐버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네가 제일 약하기 때문이란다. 강한 척해도 소용없어 본질이란 절대 바뀌지 않거든…….”

그렇게 말하며 서큐버스는 사쿠라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서큐버스의 목소리에 홀린 듯 두 손을 내리고 반항을 포기한 사쿠라.

서큐버스는 입꼬리를 올려 여유롭게 웃었다.

‘준비는 끝났군.’

서큐버스가 집요할 정도로 사쿠라의 정신을 공격한 이유가 있었다. 오롯이 모든 정신의 방벽이 내려갔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서큐버스는 사쿠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사아악!

서큐버스가 사용한 스킬은 [매혹의 키스] 입을 통해 사쿠라에게 핑크빛 마나를 불어넣자. 사쿠라의 눈은 점점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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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지?”

“…….”

서큐버스의 질문에도 대답이 없는 사쿠라. 서큐버스의 매혹에 빠진 사쿠라는 자아가 없는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서큐버스는 그런 사쿠라에게 속삭였다.

“이제 날 도와서……. 침입자들을 전부 죽여 버리는 거야 알았지?”

“……네.”

멍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쿠라. 서큐버스는 흡족하게 웃었다.

“……크흐흣! 벌써부터 놀란 표정들이 그려지는걸?”

상대는 지능을 가진 5급 보스.

한국과 일본이 연합을 했음에도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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