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9화 (79/434)

제79화

상쾌한 아침.

스미레는 고양이처럼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하품을 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에는 흐릿한 시야. 점점 스미레가 정신을 차리자 처음 보인 건 신유성의 얼굴이었다.

“……어?”

단말마를 뱉는 스미레.

“어, 으어…….”

스미레는 다급하게 껴안고 있던 신유성의 팔을 놓았다. 후다닥- 황급한 스미레의 행동에 다시 잠에서 깬 신유성.

“……아, 일어났구나. 스미레.”

하품을 하는 건 신유성도 마찬가지였다. 경계를 하지 않은 덕분인지 모처럼의 단잠. 스미레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리더니 멋쩍게 웃었다.

“아, 하, 하하……. 죄, 죄송해요. 불편하셨죠?”

스미레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것보단…… 슬슬 공략 준비를 해볼까? 말했지만 이번 던전은 5급이야.”

신유성은 리본으로 머리를 묶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4급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야.”

5급은 현역 중에서도 상위 헌터들이나 도전하는 던전. 하지만 신유성과 스미레는 가온의 대표로서 학생들임에도 실력을 인정받아 공략을 도전하고 있었다.

와작. 와작.

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스미레는 갸웃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おいしい…….(맛있어…….)”

언제 깼는지 쌀로 만든 과자. 센베이를 와작거리며 먹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몸으로 많이도 먹는 스고로. 스미레는 슬쩍 스고로를 들어 방밖에 옮겨놓았다.

“그, 그럼 바로 준비해볼까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 스미레.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쵸텐 아카데미의 포탈존.

사쿠라는 일렬로 늘어선 거대한 포탈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우리 학교지만 참 돈이 많단 말이야. 그치~ 세이지?”

사쿠라는 세이지가 대답을 하지 않자 피식 웃더니. 세이지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잇신 걔 정말 마중도 안 나왔네? 보기보다 뚱한 면이 있단 말이야.”

“하하, 잇신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거야.”

“뭐 그렇겠지.”

사쿠라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포탈존은 시설이 좋은 아카데미의 상징. 학생들은 포탈 덕분에 학교에서도 온갖 던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긴 쵸텐 아카데미의 전통. 쵸텐의 1학년들은 줄을 맞춰 도열을 한 상태로 세이지와 사쿠라를 맞이했다.

- 頂点になれ-!(정점이 되어라-!)

각 반장들의 지도하에 우렁차게 소리치는 학생들. 세이지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포탈의 앞까지 걸었다.

저벅저벅.

맞은편의 통로에서 걸어오는 발소리. 세이지는 웃으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여기야!”

힘차게 손을 흔드는 세이지.

사쿠라는 천천히 걸어오는 신유성과 스미레를 바라보며 세이지에게 속삭였다.

“아델라를 이긴 실력이. 던전에서도 발휘될까? 5급 던전에서 믿어도 되는 거야~? 둘 다 F급인데.”

그렇게 말한 사쿠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여우처럼 웃자. 세이지는 마찬가지로 웃으며 답했다.

“의심은 서로를 갉아먹을 뿐이야. 이제 한 파티가 된 이상. 믿는 수밖에 없어.”

“헤~ 넌 진짜 재미없다니까.”

그렇게 모인 4명의 파티원.

쵸텐의 인솔교사인 야마다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한국어로 짧게 설명했다.

“목적지는 5급 던전 몽환의 성. 보스인 서큐버스를 처리하고 모두 무사히 복귀하길 바란다.”

지이이잉!!

엄청난 소리를 내며 푸른빛을 일렁거리는 포탈. 새롭게 결성된 4인의 한일 연합 파티는 포탈로 들어갔다.

*     *      *

미지의 구조물. 탑.

권왕 유원학은 현존하는 인류 중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헌터였다. 하지만 그가 오늘 서 있는 곳은 시작 장소에 불과한 1층.

“이거 참 오랜만이군.”

유원학은 끝이 보이지 않는 탑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탑은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제로 등반을 해본 헌터들은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탑의 모습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1층.

5층.

10층.

20층.

탑은 층마다 각개 다른 세계가 공존한다. 그러니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늪지대가 펼쳐 질수도, 고딕 양식의 성이 등장할 수도 있었다.

탑을 공략하는 헌터들에게 필요한 건. 미지조차 통하지 않을 압도적인 실력.

“크하하! 협회장이 직접 마중을 오다니. 유찬아 역시 넌 의리가 있단 말이지!”

유원학은 강유찬을 보며 호탕하게 웃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강유찬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나 강유찬에게 의리를 빼면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지.  껄껄!”

그렇게 웃은 강유찬은 유원학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보다 대체 무슨 생각이더냐. 네가 직접 탑으로 오다니? 설마 공략을 도전하는 건…….”

“그냥 생각이 나서 왔다. 곧 유성이가 오르게 될 장소니 말이다.”

유원학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강유찬은 유원학의 옆에서 하늘높이 치솟은 탑을 같이 올려다보았다.

“네놈이 감성적인 모습을 볼 줄이야. 별일이구나. 죽을 때가 된 건 아니겠지?”

유원학과 강유찬은 중국의 검신. 그리고 영국의 마녀와 함께 탑을 공략한 파티. 둘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였다.

“……난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나의 모든 걸 가르친 제자가 탑의 어디까지 올라갈지 말이야.”

“글쎄다. 유성이라면…… 혹시 모르지 않겠더냐? 정말 탑을 공략할지도…….”

“크하하! 그것 참 듣기 좋은 이야기군. 물론 네가 건네준 던전부터 공략하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다.”

유원학의 말에 강유찬은 고개를 저었다.

“넌 생긴 건 호랑이 같은 놈이. 하는 짓은 뱀 같단 말이지.”

“근데…… 원정으로 5급 던전이라니. 너도 꽤 무리를 해줬구나.”

유원학의 말이 맞았다.

겨우 4명의 학생들로 5급 던전을 공략하게 허락해준 건 다름 아닌 강유찬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무리를 했다. 5급은 현역 헌터들도 공략에 실패하는 고난도의 던전……. 학생들에겐 어려운 공략이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보낸 협회장의 생활로. 아니, 헌터의 감으로 강유찬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성이는 인정하기 싫지만 네놈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피식 웃는 강유찬의 웃음에는 유원학을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포기를 모르는……. 강한 역경을 만날수록. 강해지는 눈 말이다.”

유원학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5급 던전은 사악한 난이도로 악명이 자자했지만 자신의 제자인 신유성이라면 분명 성공할 거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공략이 끝나면. 너와 동료들은 훨씬 강해져 있겠지.’

그건 대항전을 위해 꼭 넘어서야할 계단이었다.

*     *      *

고딕 양식의 중세 성.

낮에도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보랏빛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가히 이름처럼 몽환적인 풍경의 성. 사수인 사쿠라는 눈에 마나를 부여해 주변을 훑어보았다.

“확인 끝~ 맵에 적힌 정보처럼 밖에는 적이 없어.”

세이지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이지는 신유성을 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린 후문을 통해서 우측 통로로 들어가도록 할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신유성. 이렇게 거대한 성에서 보스몹인 서큐버스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큐버스의 방으로 향하는 길은 함정과 장치들로 꽁꽁 숨겨져 있다. 결국 흩어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 스미레는 진지한 표정으로 신유성을 바라봤다.

“유, 유성 씨. 그럼 저도…… 작전대로 왼쪽 통로를?”

“그래. 통로를 지나치며 계속 언데드의 숫자를 늘려줘. 그리고 스미레 네가 위험에 처할 상황이면 바로 포켓으로 연락을 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스미레가 힘차게 답하자. 신유성은 정문의 오른쪽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벽을 짚으며 생각했다.

‘……여긴 뭔가 이상해.’

감각이 예민한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몽환의 성 특유의 짙은 마나는 사물은 물론이고, 온갖 장소에 골고루 퍼져 있었다.

‘……이런 장소를 겨우 5급 보스가 유지하고 있다고?’

신유성은 권왕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현실과 동화된 던전은 대부분 보스의 격을 나타낸다고.

4급. 5급. 6급. 7급.

보스들은 자신의 힘에 비례해 격에 맞는 던전에서 등장했다.

신유성이 본 몽환의 성은 뭔가 이상했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의 농도만 보더라도 절대 5급 수준이 아니었다.

‘협회가 조사를 했으니. 몽환의 성을 지키는 보스가 서큐버스인 건 명백한 사실……. 그럼 어떻게…….’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지금은 조사가 필요한 단계였다.

*     *      *

처음으로 도착한 방에 있는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잘 꾸며진 아름다운 방에 놓여 있는 건 정체불명의 언어가 적힌 석판이었다.

“……어?”

마치 석판에 반응하듯 보랏빛을 뿜어내는 스미레의 오른손. 스미레는 발걸음을 멈추고 석판을 바라봤다.

“따, 딱?”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석판이 뿜어내는 마나는 스미레가 사용하는 특성의 힘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웅- 웅!

“이, 이건? 서, 설마…….”

저벅.

스미레가 가까이 갈수록 석판의 마나는 더욱 크게 공명했다. 아티팩트를 얻을 확률보다도 낮은 확률. 스미레는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하지만 모든 징조는 하나의 가능성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딱, 따닥!”

신유성의 해골은 스미레의 옆에서 석판을 삿대질했다. 석판에 다가가보라며 응원하는 모습이었다.

웅웅웅-!

석판이 내는 소리는 더욱 커졌고, 스미레는 마나의 공명에 손이 떨려왔다.

‘뭔가, 뭔가 이상해…….’

스미레의 힘은 흑마술.

이번 보스인 서큐버스는 어디까지나 흑마술이 불러내는 사역마에 불과했다. 즉 이런 힘을 부리는 건 서큐버스를 사역하는 마녀의 영역.

종류가 다른 스미레의 힘이 몽환의 성에서 반응하는 건 뭔가 이상했다.

‘그, 근데…… 멈출 수가 없어!’

하지만  스미레는 홀린 듯 보였다. 스미레의 손은 마치 운명처럼 석판으로 이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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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그리고 스미레가 석판에 손을 얹자 모든 게 명확해졌다.

사아아아!!

석판과 스미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빛. 스미레는 환한 빛에 눈을 감았다. 그리곤 천천히 눈을 떴다.

[포켓에 저장된 정보로 언어를 해석중 입니다.]

[해석이 끝났습니다.]

[해당 물건은 (마녀의 편린-라플라스의 석판)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건 포켓에서 뿜어져 나온 홀로그램.

꿀꺽.

긴장한 스미레는 침을 삼켰다.

[마녀의 편린에 담긴 힘이 각성자의 능력을 인식 중입니다.]

[동화율 계산 중…….]

‘……저, 저질렀다.’

상상도 못한 전개.

스미레는 자신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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