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8화 (78/434)

제78화

화목한 거실의 식탁.

스미레는 신유성의 옆자리에 앉은게 마냥 기뻐보였다.

‘유, 유성 씨와 스키야키…….’

스미레에게 스키야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특별한 날 가족들이 함께 먹는 음식이었다.

“어이! 스구하! 내가 멋대로 방에 들어오지 말랬지!”

“근데?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스구하를 노려보는 스이토.

9살답지 않게 여유로운 스구하.

“おいしい…….(맛있어…….)”

5살인 스고로는 스키야키 대신 손바닥을 날계란에 찍어 먹었다.

“야! 계란은 스키야키랑 먹어!”

그 모습에 스구하가 질색을 하자. 어머니인 스이카는 마냥 웃었다.

“후훗, 우리 스고로가 배가 많이 고팠나보네?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렴. 모처럼의 스키야키니까.”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냄비속의 스키야키. 2층의 계단에서 차분한 발걸음으로 누군가 걸어 내려왔다.

“이거 참……. 이렇게……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다니.”

안경을 쓴 느긋한 인상의 미중년.

“아빠!”

반가워하며 손을 흔드는 스미레.

아버지인 신타로는 느릿하게 걸어와 스미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 그래. 그래!”

신타로는 손님인 신유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신타로는 사람 좋은 웃과 함께 생각에 빠졌다.

‘이 학생이…… 스미레의 파티장.’

신유성에 대한 소문은 신타로도 익히 들었다. 권왕의 제자. 리벨리온의 체포. 국가대항전의 우승. 신유성의 활약은 스미레의 아버지인 신타로가 모를 수 없었다.

‘스미레와 같은 F급 특성으로 그렇게까지 강할 수 있다니…….’

신타로는 스미레의 특성이 F급 판정을 받았을 때 크게 고민에 빠졌다. 애지중지하는 스미레가 가진 건 겨우 F급 특성. 신타로는 F급 특성을 믿고 스미레를 목숨이 걸린 위험한 현장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역시.’

하지만 신유성의 활약을 보며 신타로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건 F급 특성도 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고, 위험한 일이 닥쳐도 신유성이 지켜주지 않을까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정말…… 든든하군.’

신유성을 바라보는 신타로의 흐뭇한 표정. 물론 고마운 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신유성과 함께 지낸 이후 확연히 밝아진 스미레.

‘그 사건’ 이후, 걱정이 많았던 신타로에게 신유성은 은인이었다.

“자 그럼, 식사를 해볼까요?”

신타로가 웃으며 말을 하자. 스이카는 입을 가리고 호호- 하고 웃었다.

“자~ 다들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먹으렴.”

웃고 있던 스이카가 국자를 놓자마자. 기회를 엿보던 스미레는 냉큼 국자를 잡았다.

하지만 자신 있게 잡은 것치곤 스미레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스키야키에서 고기를 풍족하게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

결국 아버지인 신타로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고기는 충분하니까. 손님께 마음껏 대접하렴.”

스미레는 그제야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그럼! 유성 씨는…… 고기를 제일 좋아하시니까. 듬뿍! 그 다음은 버섯…….아, 두부도 맛있어요!”

신타로는 적극적인 스미레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고기를 많이 준비하길 잘했구나.”

“어머 얘도 참…….”

스이카도 스미레의 행동에 기뻐하는 건 마찬가지. 신유성은 앞 접시에 담겨지는 스키야키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냄새가 좋은걸.’

무신산의 생활로 신유성의 후각은 누구보다 발달해 있었다.

‘파와 두부는 구워서 넣은 건가?’

신유성은 스미레와 지내며 미식가에 버금가도록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우물.

젓가락으로 소고기를 집어 입에 넣는 신유성.

‘……이거, 정말 맛있어.’

스미레의 말이 맞았다. 비 오는 날 부실에서 먹었던 스키야키도 맛이 좋았지만. 함께 먹는 스키야키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

그 모습을 안절부절 하며 쳐다보던 스미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떠세요?”

“맛있어.”

신유성의 담담한 대답에 구원 받은 표정의 스미레.

“정말요? 그, 그럼 이것도!”

기뻐한 스미레는 자신의 젓가락으로 소고기를 집어 날계란을 묻혀 신유성에게 내밀었다.

우물.

스미레가 건네주는 고기도 곧잘 받아먹는 신유성. 스미레는 그 모습을 보며 바보 같은 얼굴로 히죽거렸다.

‘우리 집에서…… 스키야키를…… 유성 씨에게……. 내가 직접?’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스미레.

신타로와 스이카 부부는 기뻐하는 스미레를 보며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헤헤, 언니 표정 바보 같아.”

“그러게. 누나 완전 바보 같다.”

하지만 그런 스미레를 놀리는 스구하와 스이토. 막내인 스고로는 또 손바닥으로 날계란을 찍어먹었다.

“……おいしい!(……맛있어!)”

신타로와 스이카 두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스이카가 먼저 신호를 보내자 슬그머니 부엌으로 향하는 신타로.

스이카는 모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신타로에게 말했다.

“여보. 역시 스미레는…….”

“유성 학생을 좋아하는 거겠죠?”

“그러니까요. 저 소극적인 아이가 저렇게 티를 낼 정도면…….”

스이카는 턱을 괴고 멀리서 스미레를 바라봤다. 기뻐 보이는 스미레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 스이카.

“역시 어쩔 수 없겠네요. 여기 있을 때라도 응원해줄 수밖에요.”

스미레의 짝사랑을 응원하는 건 스이카처럼 신타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요. ……일본에 있을 때라도 우리가 응원해줍시다.”

*     *      *

식사가 끝나고.

약속한 대로 스이카와 신타로 부부는 신유성에게 과할 정도로 친절히 대했다.

[호호, 불편한 건 없죠?]

걸핏하면 다가오는 스이카.

[……신유성 학생? 필요한 게 있다면 편하게 말해줘요.]

사람 좋게 웃는 신타로.

[아~ 그리고 목욕물을 데워 놨으니. 준비되면 말해줘요? 후훗~]

스이카의 친절한 이야기에 신유성은 욕탕에 들어왔다. 스미레의 집은 비록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그건 검소함이 몸에 밴 신타로의 영향이었다.

‘……가족이라.’

신유성은 살짝 웃었다.

호화로운 세븐넘버의 생활도 좋았지만 스미레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그에 못지않았다.

스미레의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은 어딘가 따뜻하고 기분 좋은 충만감이 있었다.

스으윽.

신유성은 목욕을 마치고 욕탕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포켓에서 꺼낸 건 흰색 티셔츠. 생각해보면 이것도 스미레가 선물해준 옷이었다.

생각에 빠졌던 신유성은 티셔츠에 그려진 해골을 보며 피식 웃었다.

‘……확실히.’

이제 신유성은 동료들이 없는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벌컥.

신유성이 방문을 열자. 스미레는 해골이 그려진 잠옷을 입고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끄, 끝나셨어요?”

옆에서 자고 있는 스고로가 깰까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스미레.

“응. 덕분에.”

신유성은 바닥에 깔린 두꺼운 솜이불을 내려다봤다. 세 개. 하나는 신유성의 것이고, 나머지는 스미레와 스고로의 것으로 보였다.

눕자마자 느껴지는 포근한 이불의 솜. 스미레는 불을 껐다. 어두컴컴해진 방. 스미레는 안 보이는 와중에도 용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 스미레는 캄캄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그렇게 말한 스미레는 표정이 보이지 않음에도 배시시 웃었다.

“파티를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을 간……. 명백히 제 잘못이지만. 그래도 유성 씨가 편이 되어주셔서. 정말로 엄청…… 기뻤어요.”

스미레의 이야기에 신유성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스미레 네가 모욕을 받는 건. 볼 수 없었어.”

고개를 숙인 얼굴이 화악- 붉어지는 스미레. 신유성은 평소와 같은 어투로 말했다.

“우린 같은 파티니까.”

기뻐하던 스미레는 신유성이 덧붙인 말에 왜인지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그렇죠? ……저흰 같은 파티니까.”

스미레는 왜인지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신유성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스미레가 파티원이기 때문. 그 대상이 김은아가 됐든 에이미가 됐든 똑같이 행동했을 게 분명했다. 어디까지나 신유성과 스미레는 파티원의 사이.

‘……기분이 이상해.’

행복할 정도로 기쁘면서도 가슴 한편이 콕콕 찌르는 이상한 기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스미레는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10분. 30분. 천장만 바라보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툭.

“……에?”

갑자기 신유성의 손이 스미레의 손을 덮었다. 명백히 느껴지는 손의 촉감. 스미레는 입술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도 기척조차 없는 신유성. 스미레는 꿀꺽 침을 삼켰다.

‘……서, 설마. 주, 주무시는 건가?’

아무래도 방금 전의 행동은 잠꼬대인 모양. 스미레는 좀처럼 맞닿은 손을 빼지 않았다.

‘가, 갑자기 손을 빼버리면 유성 씨가 잠에서 깨실 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을 하지만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선이 예쁜 기다란 손가락. 하지만 수련으로 단련된 단단한 손.

스미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꾸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는 게 괴로웠다.

‘이, 이게 유성 씨의 손…….’

그저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 평온해지는 마음.

‘너, 너무 좋아아…….’

스미레는 마법처럼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들었다.

*     *      *

“짹, 짹짹!”

창문에서 지저귀는 새의 소리.

모처럼 깊은 잠에 빠졌던 신유성은 느릿하게 눈을 떴다. 몸도 정신도 컨디션은 최고조. 하지만 유독 한 쪽 팔이 무거웠다.

‘피가 안 통하는 느낌인데…….’

신유성은 이질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건 당당하게 자신의 이불로 넘어와 있는 스미레.

심지어 스미레는 신유성의 팔을 붙잡고 착 달라붙어 있었다.

“스, 스미레?”

신유성이 불렀지만 스미레는 미동조차 없었다. 결국 슬쩍 팔을 당겨버리는 신유성. 그러자 스미레는 잠결에 소리쳤다.

“안 돼!”

단호한 스미레의 목소리.

콱!

스미레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몸에 힘을 주어 더욱 신유성의 팔을 끌어안았다.

“흐흐, 너무 좋아…….”

그 다음 입을 벌리고 헤헤- 하고 웃으며 만족한 표정의 스미레. 신유성은 결국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지. 한 시간만 더 자야겠다.’

오늘은 신유성의 기록적인 첫 늦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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