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7화 (77/434)

제77화

단 둘만 남은 방.

스미레는 기대에 찬 얼굴로 신유성을 힐끔 거리고 있었다.

‘유, 유성 씨가…… 내, 방에!’

기뻐서 못 참겠다는 얼굴.

스미레는 기분이 표정에 전부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꽃밭이 펼쳐진 스미레와 달리 신유성은 공략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 그럼 던전 공략에 관해서 회의를 해볼까?‘

“아, 네!”

스미레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신유성의 앞에 앉았다. 하지만 신유성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헤헤…….”

“스미레. 몽환의 성은 보스몹인 서큐버스를 필두로 사역마가 많은 던전이야. 당연히 그 중에는 언데드 몬스터도 있지.”

스미레는 일정량의 마나를 소모해 언데드 종족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망자의 부름]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언데드 몬스터에 한해서 스미레의 능력은 무적.

물론 언데드 중에서도 강력한 보스급 몬스터는 스미레의 능력으로도 통제가 되지 않았지만. 상대는 사역마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번 던전 공략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팀원의 배치야.”

신유성의 설명에 스미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가! 언데드 몬스터가 많은 곳에 가야하는 거군요?”

“응. 하지만 몽환의 성은 거대한 던전이야. 사역마의 숫자를 모두 표기하고 포켓의 맵에 카운트 하는 건 불가능해.”

신유성이 포켓을 건드리자. 몽환의 성 내부가 홀로그램으로 펼쳐졌다. 이건 기존의 선발 공략대가 만들어둔 홀로그램 지도. 신유성은 입구를 손으로 짚었다.

“그러니 출발 장소를 잘 선택해야 해. 스미레 넌 왼쪽 통로로 출발을 해줬으면 좋겠어.”

신유성의 설명에 스미레는 곧바로 눈이 커졌다.

“아, 저! 알았어요! 왼쪽 통로는 지하를 포함하면…… 모, 모든 장소와 이어진 유일한 통로에요!”

필기에 한해서라면 스미레는 엄청난 우등생. 이해력은 신유성의 파티원 중에서 최고였다.

“맞아. 내가 빌려주는 머리카락으로 해골을 만들고, 아티팩트와 능력을 이용해서 언데드의 숫자를 불려줘.”

신유성은 홀로그램에 표시된 중앙 통로를 검지로 짚었다.

“그리고 여기서 만나는 거야.”

공략을 가만히 듣고 있던 스미레는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힐끔거렸다.

“저, 유성 씨. 그, 그게…….”

“응? 문제라도 있어?”

신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스미레는 손을 휘저었다.

“아, 아뇨! 문제 같은 건……. 그, 그냥…… 요전의 공략에서 머리카락을 모두 사용해서…….”

스미레는 배에서 받았던 마지막 남은 머리카락을 여울룡을 공략할 때 사용했다. 그렇다고 신유성의 허락 없이 머리카락을 줍는 일은 절대하지 않았다.

중등부 시절처럼 기분 나쁘다며 미움을 받을까봐 두려웠기 때문.

스미레가 용기를 내서 말을 하자. 신유성은 살짝 웃었다.

“그런 건, 언제든 말해줘. 머리카락이 길수록 효과가 좋다고 했나?”

그렇게 말한 신유성이 리본을 풀었다. 평소와 다르게 풀어 헤쳐진 기다란 머리카락. 스미레는 홀린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 맞아요. 그, 그럼 제가 빗질을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스미레에겐 신유성의 머리카락조차 소중했다. 그러니 절대 억지로 뽑고 싶지 않았다.

“응. 상관없어.”

신유성이 허락을 하자. 스미레는 서랍에서 빗을 들고 왔다.

“유, 유성 씨! 기, 기분이 나쁘시거나. 아, 아프시면…… 꼭 말씀해주세요?”

스미레는 신유성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앉았다. 위부터 아래로 천천히 빗질을 해주는 스미레.

‘내가 유성 씨의 머리카락을…….’

몇 번의 빗질로도 머리카락은 충분했지만 스미레는 멈추지 않았다.

동경하는 신유성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직접 머리를 빗어주는 상황. 스미레는 멈출 수 없었다.

‘이 향기. 나랑 똑같은 샴푸…….’

신유성이 사용하는 건 세븐넘버의 기숙사에 지급된 공용 샴푸. 둘의 샴푸가 같은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스미레는 입술을 히죽거렸다.

‘시간이 멈췄으면…….’

빗질 뿐만이 아니었다.

스미레는 계속 신유성과 자신의 집에서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파티원이나 동료가 아닌 진짜 ‘가족’이 되어야 가능한 일.

“스미레.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신유성이 다시 리본을 매자. 스미레는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네! 이,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유성 씨.”

하지만 그때 스미레의 시선이 신유성의 손으로 향했다. 길진 않았지만 얼핏 보이는 신유성의 손톱.

스미레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용기를 냈다.

“저, 그……. 유, 유성 씨?”

“응?”

“제, 제가! 소, 손톱도 깎아드려도 될 까요!?”

잠깐의 정적.

말이 없는 스미레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손톱?”

신유성이 의아해 하자. 스미레는 당황한 얼굴로 중얼중얼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그! 이, 이상하게 들리셨겠지만 손톱이…… 머리카락보다 해골 소환에 효과가 좋아서……. 손톱 10개면 10번이나 소환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지속시간도 길기도 하고…….”

“아, 확실히 스미레 너에게 들은 거 같아. 좋아. 공략을 위해서니까.”

다행이 신유성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기대에 찬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미레.

신유성은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내가 깎아서 줄게.”

이건 직접 깎겠다는 이야기.

“네!? 아…….”

절체절명의 상황.

스미레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미레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 그래도…… 해골의 능력을 위해선 길이가 일정한 게 중요……. 해서요……. 이, 익숙한 제가 깎는 게. 그…… 좋지 않을…… 까요?”

신유성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네가 사용하는 스킬이니까. 그게 맞겠지?”

신유성이 손을 내밀자. 빠르게 뛰는 스미레의 심장. 스미레가 신유성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누군가 방문을 열었다.

벌컥.

움찔!

스미레는 갑작스럽게 방문이 열리자. 잘못이라도 들킨 것처럼 뒤로 손톱깎이를 숨겼다.

“어? 스, 스구하?”

문을 연 사람의 정체는 9살의 여동생 스구하.

“쨔쟌~ 엄마가 주스 좀 마시고 하래~ 언니 오렌지 주스 좋아하잖아.”

“고, 고마워.”

스구하가 쟁반을 주자. 스미레는 빤히 쳐다보았다.

“스, 스구하? 이제 가도 괜찮아.”

아무래도 스미레는 빨리 동생을 내보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엑? 나도 오빠랑 이야기 하고 싶은데?”

스구하는 버티려고 했지만 단호한 스미레에게 떠밀려 방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하, 아하하…… 그럼 유성 씨 이제 정말로…….”

멋쩍게 웃으며 손톱깎이를 쥐는 스미레. 하지만 방문객은 한번이 끝이 아니었다.

벌컥!

“어머, 아직 안 마셨네? 주스가 별로였니?”

어머니인 스이카가 방문을 열자. 스미레는 울상이 됐다.

“으, 주스는 나, 나중에…… 마시려고 했어요!”

“그래? 후훗, 다른 게 아니라. 마침 그이도 돌아왔고. 스키야키도 준비가 끝나서 말이야. 이번에는 기대해도 좋아. 정말 고급 소고기란다?”

“아, 아버지가…….”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스미레의 얼굴. 신유성은 식사가 준비됐다는 이야기에 주스가 담긴 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키야키.”

“……에?”

스미레는 멍하니 신유성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나중에 하자. 스미레.”

스미레는 애써 섭섭함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소, 손톱을 깎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제, 제가 꼭 기억하고 있을게요!?”

손톱을 깎아주는 일에 끝까지 집착하는 스미레.

‘스미레가 이 정도로 공략에 적극적이라니. ……정말 변했구나.’

진실을 모르는 신유성은 긍정적인 스미레의 변화에 마음속으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     *      *

고위층이 모인 연회.

한 눈에도 고급스러운 연회장에는 새하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반면 연회의 드레스 코드는 정 반대인 블랙.

‘……이런 자리는 질색인데.’

값비싼 고급 정장을 입었음에도 이시우는 옷이 불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편한 건 이 자리의 분위기.

이렇게 유명하고 권위 있는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들여 연회를 벌이는 건 특별한 이유가 아니었다.

서로의 결속을 다지고. 그 힘을 바탕으로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그들은 자리를 마련해 나름의 잣대로 상대를 견주었다.

“여기 있었네? 아까부터 아버지가 막내 널 찾으시는데?”

장남인 이시혁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하자. 이시우는 평소와 같은 웃음으로 넘기려 했다.

“하하, 에이~ 형. 난 그냥 못 본 척해줘.”

저벅저벅.

그때 이 연회장에서 유일하게 흰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이시우를 향해 묵묵히 다가왔다.

“아니 그건 안 될 일이지.”

근엄한 목소리의 정체는 이성환.

이시우는 굳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

“소문은 들었다. 리벨리온을 체포한 파티장의 밑으로 들어갔다지?”

“하하, ……그냥 운이 좋았죠.”

“하지만 모두 쓸데없는 일이다.”

아버지인 이성환이 인상을 찡그리자. 이시혁은 뒤로 물러났다. 이성환은 가족에게도 권위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그건 능력에서 나온 권위.

이성환은 한국의 치안을 담당하는 시티가드의 총장이자. 한국의 기관 중 손꼽히는 무력을 가진 대테러 헌터 부대를 지휘하는 인물이었다.

“지금의 네 역량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삼류 헌터가 끝이다. 이대로라면 남의 밑바닥을 깔아주는 인생이 전부지.”

이성환의 목소리엔 노여움이 없었다. 그는 진정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는다면 결과는 다르다.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만들어낸 네 재능은……. 쯧, 그냥 형을 따라 얌전히 시티가드에 지원했으면 좋았을 것을.”

무감한 눈으로 이시우를 내려다보는 이성환. 옆에선 혀를 차며 차녀인 이선아까지 다가왔다

“하여간 말을 참 안 듣는다니까.”

이선아는 동생인 이시우를 훑더니 픽 웃었다.

“아직도 교외 활동에 장난감 같은 활을 들고 갔다며?”

이선아의 빈정거리는 어투에 이시우는 밝게 웃었다.

“에이~ 내 활이 어때서? 나 대회도 나갔는데?”

“대체 왜? 왜, 어린 시절부터 사용한 총을 두고 활이냐고?”

짜증 섞인 이선아의 질문.

이시우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야…….”

말을 하는 도중에 한숨을 쉬는 이시우. 지금까지 웃기만 했던 이시우는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아악.

푸른색 입자가 모여 만들어낸 건 단조롭게 생긴 권총이었다. 사실 총의 종류 같은 건 상관없었다. 이시우의 포켓에는 종류별로 수십 정의 총이 담겨 있었다.

사실 이시우가 총의 사용을 거부하게 된 건 좀 더 본능적인 이유였다.

차갑게 식어가는 감정.

총을 잡자 이시우는 오래된 기억들이 흘러들어왔다.

아주 어린 시절.

이시우는 이 차가운 쇳덩어리의 사용법을 억지로 배웠다.

그건 모두 아버지의 욕심이었다.

이시우의 특성인 천리안은 F급에 불과했지만 이성환은 알고 있었다.

천리안이 낮은 등급으로 측정된 건 그저 협회의 기준. 살상력이 없다거나 하는 어중간한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이성환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심플했다. 이시우의 특성에게 없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

이성환은 무뚝뚝한 얼굴로 어린 이시우에게 말했다.

[……만약 전 방향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자가. 살상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어떨까?]

바로 그 결과가 총.

이시우는 7살의 나이부터 총을 배웠다. 추억을 쌓는 대신 총에 대한 지식을 머리에 쌓았다.

[가늠자와 가늠쇠로 동심원을 만들어라.]

[범죄자의 머리라고 생각해! 전부 터트려 버리는 거다!]

이성환의 생각처럼 이시우가 가진 특성 [천리안]은 사격술에 그 어떤 특성보다 적합했다.

9살에는 소총으로 1킬로미터 너머의 과녁을 명중시켰을 정도.

이시우는 시티가드의 정점인 이성환마저 인정한 최고의 총잡이였다.

실제로 대테러 부대가 사용하는 빌런 진압 총이나. 몬스터 헌팅에 사용되는 총을 사용하면 이시우는 누구를 상대하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려면 어디를 노려야 하는지. 움직일 수 없게 하려면 어디를 노려야 하는지. 이미 이시우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시우는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

“총을 사용하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잠겨버린 목소리. 이시우는 아버지를 닮은 무감한 눈으로 가족들을 훑었다.

“아주 지긋지긋한 기억들이 생각나거든.”

총을 잡은 이시우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마치 인격이 바뀌어 버린 듯 말투마저 달라졌다.

“잘 봐. 누나. 그렇게 내 사격술이 보고 싶다면 보여줄 테니까.”

탕!!

천장을 향해 발포하는 이시우.

챙! 쩡!

천장에선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꺄아아악!”

“초, 총!?”

비명을 지르며 당황하는 손님들.

이성환은 미간을 찡그렸지만 이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무감한 눈으로 계속 총알을 발포했다.

탕! 탕! 탕! 탕! 탕!

일정한 간격으로 모든 총알을 발포 했을 때, 천장의 샹들리에는 모두 떨어져 있었다. 총을 잡자마자 사람이 바뀌어 버린 모습.

‘……짜증 나는군.’

연회장을 빠져 나온 이시우는 포켓을 확인했다.

배경 화면에 보이는 건 소풍에서 파티원들과 찍은 사진. 이시우는 총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를 후- 불며 생각했다.

‘역시.’

총을 잡고도 이렇게 감상적인 기분이라니, 처음 있는 일. 이시우가 쥐고 있는 권총은 입자로 변해 포켓으로 사라졌다.

‘……같이 일본에나 갈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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