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이탈리아 국제 포탈존.
사아아악!
뿜어지는 빛 속에서 걸어 나오는 누누군가의 모습.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은 부리나케 몰려들었다.
“이탈리아의 대표로 선발전에 출전하는 게 사실인가요?”
“한국에서 다시 본국으로 귀환한 이유가 무엇이죠?”
“귀환의 이유가 한국에서 준우승을 했기 때문입니까?”
유창한 이탈리어로 쏟아지는 질문들. 하지만 협회가 준비시켜둔 경호원들에 의해 기자들은 가로막혔다.
‘이탈리아…….’
모두의 주목 속에서 아델라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본국.
아델라가 돌아온 이유는 명확했다.
신유성이 있는 국가 대항전에 참여하기 위해. 다시 겨뤄보기 위해. 아델라는 선발전의 대표가 되어야 했다. 한국은 이미 선발전이 끝났지만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선발전은 곧 개최될 예정. 공정성이나 원칙. 혹은 복잡한 절차 같은 건 아델라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강력한 실력을 가진 아델라의 귀환은 이탈리아 전체가 반기는 화제거리. 협회는 잡음이 나더라도 아델라의 출전을 택했다.
‘……돌아오라고 한 건. 협회였으니까.’
길게 한숨을 내쉬는 아델라.
“대답을 부탁드립니다!”
“정말 선발전에 참여하는 겁니까?”
시끄러운 질문들을 무시한 채 아델라는 눈을 감았다.
‘휘둘릴 시간은 없어.’
아델라는 신유성과 대결할 날을 기약하며 당당한 걸음으로 포탈존을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 * *
몇 년을 찾아온 메트로시티 병원.
하지만 김은아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외출이라면 절대 입지 않았을 얇은 티셔츠차림. 애써 담담한 척하는 표정. 김은아는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추우실텐데……. 제 외투라도.”
이수현의 걱정스러운 어투에도 김은아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괜찮아.”
띡.
이수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도 없었을 짧은 시간. 하지만 오늘의 김은아에게 그 시간은 영원처럼 길었다.
‘오빠가. 오빠가 정말…….’
생각이 많아 지자 점점 어지러워지는 머리. 오빠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했던 게 언제일까.
그 날도 분명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날이었다. 햇수로는 2년 전.
[됐어. 오빠는 바쁘다며. 안와도 괜찮아. ……또 아빠가 아무 사람이나 보내겠지 뭐.]
말은 그렇게 해도 2년 전의 김은아는 토라져 있었다. 사실 기대를 했었다. 김은아는 운동회에서 반대표로 대련에 출전했다. 타고난 특성과 뛰어난 실력 덕분이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바빴지만 김준혁은 이번에는 꼭 와주겠노라 김은아에게 장담을 했다.
[미안. 은아야. 졸업반이라…….]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사과하지 마. 그렇게 말하면 내가 기대한 거 같잖아. ……애도 아니고.]
그때의 김은아는 실망을 하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대화가 될 줄 알았다면 그런 허세는 부리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든 운동회에 와달라고. 위험한 공략 같은 건 그만두라고 떼를 썼을 게 분명했다.
물론 아무리 후회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김은아의 오빠인 김준혁은 각성제의 과다복용으로 폭주했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때부터 김은아와 김준혁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머리 아파…….’
김은아는 계속 머리가 지끈거렸다. 긴장한 탓인지 속도 울렁거렸다.
“아가씨. ……정말 괜찮으세요?”
이수현의 걱정스런 물음에 김은아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알겠습니다.”
김은아는 생각이 깊어졌다.
평소엔 김준혁과 어떻게 대화를 했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도통 떠오르지가 않았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만 해도 이야기를 나눴던 오빠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그 다음은 원망스러웠다
한번 사용하는 것도 위험한 각성제를 수없이 사용했다는 게.
그 다음은 너무 그리웠다.
5살.
[은아야. 이 꽃 예쁘지?]
[응 예뻐!]
[따라해봐.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의 꽃말이 뭔지 알아?]
[나? 모르지.]
[에델바이스의 꽃말은 소중한 추억이야.]
[소중한 추억…….]
[오빠 멋있지?]
[응! 멋있어!]
[나중에 내가 너한테 사과 할 일이 생기면. 이 꽃을 가져올게.]
[꽃? 왜?]
[바보. 말로 사과하는 것보단 그게 멋있잖아 그지?]
6살.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다 미워. 오늘은 내 생일인데…….]
[어쩔 수 없지. 바쁘시잖아.]
[나보다 일이 중요한 거겠지.]
[원래 어른들은 그래.]
[오빠는? 오빠도 어른이 되면 그래?]
[나? 나는……. 글쎄?]
[오빠 주거.]
14살.
[우리 은아. 중학교 입학 축하해.]
[왜 직접 찾아왔어? 내가 애도 아니고 창피하게…….]
[너 완전 애야. 불만이면 나처럼 얼른 고등학교로 와. 그럼 어른 취급 해줄 테니.]
[뭐래. 내가 가면 이미 없잖아.]
스쳐지나가는 기억들.
생각해보면 그리운 게 당연했다.
김은아에게 유일하게 의지할 가족은 김준혁 밖에 없었고. 소중한 추억은 대부분 김준혁과의 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김은아는 신유성의 호의에도 계속 두려웠다. 파티의 동료들과 친해질수록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또 배신을 당할까봐. 마음을 연 상대가 오빠처럼 떠나게 될까봐. 계속 갖은 이유로 마음에 벽을 쳤다.
터벅터벅.
어느새 문 앞에선 김은아.
이수현은 같이 들어가는 대신 김은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김은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한번 까딱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이잉.
암호도 없이 여릴는 병실의 문.
병실의 침대에는 힘없이 웃어주는 김준혁이 보였다.
“……은아야.”
김은아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김준혁을 바라보았다.
“……응.”
길었던 2년의 공백.
김은아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욱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반겨야 할지. 오빠를 탓하며 원망을 해야 할지. 복잡한 마음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난…… 그러니, 까 2년 전에, 나는…… 나는, 오빠를, 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김은아는 조심스럽게 골라가며 말을 내뱉었다. 낭떠러지에 올라 선 듯 아슬아슬한 기분. 김은아도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학생 때부터 능력 각성제에 의존하며 헌터생활을 한 김준혁.
김은아는 그 사실을 용서 할 수 없었다. 주변의 그깟 기대가 뭐라고 스스로를 버리면서까지 매달리다니.
정말 바보 같았다.
한심했다.
집에 돌아와 정리가 된 오빠의 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기뻤다.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김은아는 너무나 기뻤다.
“근데, 오빠는…….”
떨리는 눈으로 김준혁을 노려보는 김은아.
“……그러네. 그까짓 게 뭐라고.”
김준혁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유리병에 담긴 한 송이의 조화를 꺼내 김은아에게 건넸다.
김은아는 꽃에 조예가 없었지만 알아 볼 수 있었다.
잊을 리가 없었다.
하얀색의 꽃의 이름은 에델바이스.
꽃말은…….
“미안.”
힘없이 뱉는 김준혁의 사과에 김은아는 고개를 낮추고. 옅게 어깨를 떨었다. 점점 붉어지는 김은아의 눈가. 화가 난 김은아는 계속 중얼거렸다.
“바보…… 병신…… 흑! 멍청한 머저리에……. 으흑, 등신 새끼……. 병신…….”
김은아는 울음을 참느라 숨을 흐느끼며 김준혁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 와중에 병신이란 단어는 2번이나 강조했다.
“그리고……. 꽃 줄 때는 사과, 흑, 대신……. 이라고 해놓고……. 그것도…… 기억 못해. 난, 다…… 기억하는데…….”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는 김은아. 김준혁은 그런 김은아의 머리에 손을 얹어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흐윽, 윽으으…… 흐어엉!”
지금까지의 감정이 북받쳐 펑펑 흘러내리는 김은아의 눈물. 김준혁은 울고 있는 김은아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국.
“하하…… 다 기억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우는 건 죽…….”
“죽여 버리기 전에…… 흐윽, 지랄하지 마…….”
김준혁은 9살의 기억을 꺼내며 상황을 풀려고 했지만 오늘 김은아는 난폭했다.
그렇게 5분.
김은아는 자그마치 300초를 펑펑 울더니 붉어진 눈으로 김준혁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고생시키고, 2년 동안 쉬었으니까. 이제부턴…… 오빠가 일해.”
너무 울어 쉬어버린 김은아의 목소리. 김준혁은 떨떠름하게 웃었다.
“으음? 그건 무슨…….”
“재미없는 후계자 교육도 오빠 받고. 자리도. 회사 일은…… 전부 다 오빠가 맡아.”
김준혁은 대답 대신 김은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김은아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김준혁을 노려보았다.
“난 놀 거야.”
“……그, 그래?”
상황이 상황인지라 웃기만 하는 김준혁. 김은아는 손등으로 눈 밑을 닦아내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난, 그런 거 하나도 안하고. 흑, ……잘생긴 남자랑 결혼한 다음에 돈만 펑펑 쓸 거야.”
동생인 김은아의 충격선언.
죄를 지은 김준혁은 퉁퉁 부어있는 김은아의 눈을 보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