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아델라의 기권.
상상도 못한 결과에 아덴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 정말로…….”
아델라가 졌다.
심지어 신유성이 사용한 건 투신류의 4장인 흑룡강신. 유원학의 오랜 친구인 아덴은 그 기술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크하하! 어떠냐! 우리 유성이의 실력이!”
“……대단하구나. 1학년에 벌써 투신류의 4장까지 닿다니. 너보다 뛰어난 잠재력을 가졌다는 게…… 허풍은 아니었어.”
“그럼. 경기도 끝났으니 다시 한잔 하러 가자꾸나!”
“하하! 좋지!”
유원학과 아덴은 할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아덴은 더욱 그랬다.
“생각해보니 유성이에겐 네가 아버지나 다름없겠구나.”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근데 네놈이 낯 부끄럽게 그런 이야기는 왜 꺼내고 난리냐?”
유원학이 흉악하게 미간을 좁히자. 아덴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 아델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무 생각도 안 한다만?”
유원학이 귀를 후비며 답하자. 아덴은 인상을 썼다.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라!”
“하여간 네놈의 앞서 나가는 버릇은. 쯧쯧!”
예약해둔 술집으로 향하는 유원학과 아덴은 계속 티격태격 거렸지만. 아주 즐거워보였다.
* * *
세븐넘버의 기숙사.
“흐어엉……. 유, 유성 씨가! 유 성씨가…… 정말로 우승이에요!”
에이미의 방송을 보던 스미레가 펑펑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선발전의 우승은 곧 신유성이 1학년 중 대한민국의 최강이라는 뜻.
F급으로선 역사적인 일이었다.
와아아아!!
곧 이어 1학년의 교실에서 들려오는 함성. 스미레는 스크린 속 신유성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나와는 달라…….’
스미레에게 신유성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스미레는 일본에서 ‘폭주 사건’이 터졌을 때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 도망쳤다.
자신 때문에 부상을 입은 반 친구들. 정직을 받게 된 선생님.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미움을 스미레는 버텨낼 수가 없었다.
하는 일마다 망쳐버리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바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숨어버리는 자신이 답답했다.
아마 신유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대로 멈춰있었을 게 분명했다.
스미레에게 신유성은 특별했다.
어두침침한 자신과 다르게 주변을 환하게 비춰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미레는 더 신유성의 곁에 있고 싶었다.
파티원이 되어 도움이 되고 싶었다.
반짝 반짝 빛나는 사람을 돕다 보면 자신도 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 하지만 지금의 스미레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정도도 너무 과분해…….’
스미레는 복잡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딘가 시원해보이고, 씁쓸했다. 생각해보면 스미레의 선택이 늘 잘못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본을 떠나서…….’
비록 도망쳐왔지만 스미레가 도착한 곳은 낙원이었다.
‘신유성 씨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스미레는 그걸로 만족했다.
* * *
신성그룹의 저택.
소파에 앉은 김은아는 눈을 깜박 깜박거렸다.
“허, 진짜…… 졌잖아? 그 아델라가!? 진짜로?”
신유성이 강한 건 알았지만 아델라는 1학년 중에서도 전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학생 중 하나였다.
가온에서도 실력으론 논외의 존재.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앗! 아 뜨거! 후우……. 후우! 후루룩! 대단하깅 항…….”
이수현이 후후- 불었던 면발을 들이키자. 김은아는 질색을 했다.
“아아! 진짜 조옴! 다 먹고 말해! 그리고! 대체 컵라면은 어디서 가져온 거야!?”
“네? 아, 이거 미야가 일본에서 가져 왔더라고요. 성질을 안 내려면 탄수화물도 좀 먹어줘야 해요. 그리고 간식은 괜찮다고 하셨으면서?”
이수현이 실눈을 흘기며 후루룩- 국물을 들이키자. 김은아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컵라면이 간식이야?”
김은아가 성질을 내도 너무 친해져버린 상태. 이수현은 김은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긍데 대단하깅 하네요. 후르릅! 절대 학생들 수준이 아니던데요? 5급 정도는 가뿐하겠어요.”
이수현이 컵라면의 국물까지 모두 접수한 뒤,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하자. 팔짱을 낀 김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도 유성이도 엄청 강하니까. ……뭐, 둘 다 내 라이벌이기도 하고.”
둘을 진지하게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주장하는 김은아.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 이수현은 꾹- 웃음을 참았다.
“그래요?”
“아직은 쪼금 내가 딸리긴 한데. 조만간이지. 나 최근에 아티팩트도 먹었잖아. 하루마다 능력이 세지는 게 느껴지는 거 있지?”
김은아의 몸에서 찌릿찌릿! 빛을 발하는 정전기.
“뭐~ 하여튼 잘 됐네. 괜히 유성이가 여기서 떨어지면 나도 빚을 못 갚아서 찜찜하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면서도 김은아는 내심 기분이 좋아보였다. 기회를 엿본 이수현은 이때를 틈타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근데 아가씨. 대항전이 끝나면 정말 파티에서 나오시게요?”
“어어? ……나?”
고민에 빠진 김은아.
처음의 약속대로라면 분명히 그게 맞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은아는 파티원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다. 하지만 김은아는 파티원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나는…….”
김은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으려 할 때, 이수현의 포켓이 진동했다.
지이잉!
“네 신성그룹 이수현 비서팀장. 통화 받았습니다.”
이수현은 김은아가 시끄럽지 않게 이어폰을 한쪽 귀에 꼽았다. 김은아는 말이 끊긴 게 기분이 나쁜지 뚱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현의 반응은 진지했다.
“그, 그게 정말이야?”
심각해 보이는 이수현의 목소리에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나도 좀 알자. 무슨 일인데?”
김은아의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는 이수현. 하지만 이수현은 결단을 내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그게……. 방금…… 김준혁 도련님이 깨어나셨답니다.”
“오, 오빠가…… 깨어났다고?”
겉으로 보이는 김은아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하지만 몸의 반응은 정직했다. 김은아의 창백해진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말……. 정말이지?”
건조한 어투로 묻는 김은아.
이수현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바로 메트로 병원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 * *
협회에서 마련해준 부스.
방송을 끈 에이미는 더위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의자에 푹 퍼질러져 있었다.
“……후원금이 하루에 6200만 원? 실시간 시청자수가 7만? 나, 이제 죽어도…… 좋아.”
기록을 몇 개를 갈아치운 걸까.
일단 몇 시간 만에 구독자수가 2만 명이 늘었다. 후원금도 최고. 시청자수도 최고.
“흐, 흐흐……. 흐헤헤…….”
플랫폼 수수료를 떼고.
신유성에게 절반을 나눠줘도 엄청난 금액. 거기다 인지도까지. 에이미에겐 방송 할 맛이 나는 대만족의 시간이었다.
“너무…… 너무 좋아……. 흐흐흐, 역시 파티장님은 스타성이 최고야!”
그렇게 다시금 신유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에이미였다.
* * *
경기를 모두 시청한 신하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여운을 즐겼다.
1학년 중 최강이라 불리는 신유성과 아델라의 격돌은 정말 재밌었다.
차기 학생회장인 그녀도 둘의 실력은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에 빠진 것만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신하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큭, 큭큭……. 큭큭큭!”
혼자 남은 신하윤은 미친 듯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신하윤은 한참을 웃고선 기다란 검지로 눈물을 닦았다.
“뭐가 F급이고. 뭐가 자질이 없다는 거야? 절대 헌터는 못될 거라고 장담을 하더니…….”
신하윤은 가주인 아버지를 비웃고 있었다. 신하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실력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신오가문에서 자라왔다.
신오가문의 엘리트주의적인 사상을 누구보다 주입했던 건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그런 주제에 당신이 틀리다니. 제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이잖아.”
신하윤의 악담은 가차 없었다.
“거기에 좋다고 동조한 어머니도. 모두 후훗……. 하나 같이 멍청해.”
눈을 뜬 신하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반달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가주를 맡을 자격이 있는 건……. 나밖엔 없겠어.”
톡톡.
신하윤은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럼 나와 피가 섞인……. 우리~ 뛰어난 동생도 데려오면 되겠다.”
실력이 증명된 것만으로. 신하윤은 12년 동안 소식이 없던 신유성을 친근하게 동생이라 부르고 있었다.
“재밌겠네?”
신하윤은 기사에 첨부된 신유성의 사진을 바라보며 음산하게 웃더니. 화면을 보며 말을 걸었다.
“……어때 유성아? 우리 둘은 좋은 남매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 * *
선발전이 모두 끝난 시각.
신유성은 협회가 준비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우승자 행사도 끝났는데. 나를 따로 찾다니.’
신유성은 심각한 얼굴로 홍차에 각설탕을 빠트리고 있었다. 협회가 준비해준 홍차는 너무 썼다.
신유성은 홍차 향이 첨가된 설탕물을 마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
그렇게 신유성이 당분을 즐기는 사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메이린이 들어왔다.
“우승을 축하합니다. 신유성 학생.”
메이린의 의례적인 인사.
신유성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마련한 건. 공략 의뢰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학원도시의 의뢰인가요?”
신유성은 학원도시에서 여울룡의 퇴치를 맡은 적이 있었다. 파티원인 김은아의 대성장을 이뤄낸 좋은 기회. 하지만 메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번 의뢰는 협회 본사입니다. 목표는 일본에 있는 몽환의 성.”
“그렇다는 건…….”
원정 공략.
신유성도 이미 스미레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선발전의 대표는 협회 측에서 원정 공략을 보낸다고.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국가 간의 화합과 단합.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원정 공략은 각 국가의 헌터가 가진 특색과 교육 방식을 정찰하고 경험하는 헌터들의 유학에 가까웠다.
“……일본으로 원정을 가야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끄덕.
메이린은 거기에 의뢰인의 진짜 정체를 밝혔다.
“협회장님께선 꼭 신유성 학생이 의뢰를 맡아주길 원하십니다.”
협회장 강유찬.
그는 권왕 유원학의 둘 도 없는 동료였다. 신유성에겐 절대 거절 할 수 없는 부탁. 아니, 거절 할 이유도 없었다. 일본 원정은 너무 좋은 기회였다.
“알겠습니다.”
신유성의 흔쾌한 대답에 미소를 짓는 메이린. 곧 포켓은 이번 의뢰의 정보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보스 공략 의뢰]
[출몰 지역: 몽환의 성]
[보스 이름: 서큐버스 퀸]
[난이도: 5급]
[참가인원 2명]
[시간제한: X]
천천히 홀로그램을 읽던 신유성의 눈이 참가인원에서 멈췄다. 메이린은 그 반응에 옅게 웃었다.
“총 참가자는 4명입니다. 한국에서는 2명이죠.”
“그렇다는 건. 나머지 2명은?”
“네. 아무래도 일본의 대표 팀에서 출전하겠죠.”
메이린은 쵸텐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본적이 있었다.
그림자 술법의 세이지.
만개(滿開)의 사수. 사쿠라.
쵸텐의 사무라이. 키리시마 잇신.
거창한 이명만큼 모두 일본에서 초일류로 분류되는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현역인 메이린이 보았을 때 이번 공략의 중요한 부분은 단순히 실력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합.
‘물론 신유성이 일본 파티에게 휘둘릴 것 같진 않지만…….’
일본팀도 나름의 전략과 페이스가 있다. 상대 파티에게 일방적으로 맞추는 건 불가능한 일.
‘서로 다른 두 파티가 과연 던전에서 협력할 수 있을까?’
이건 상대방을 따르게 할 인망. 혹은 팀원들을 휘어잡을 압도적인 카리스마. 그 외에도 중요한 리더의 자질을 가져야만 성공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흔쾌히 답했다.
“금방 공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유성은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