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신유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 믿을 수……. ……다! 포탈의 강제 종료라니!
방송국의 시끄러운 스피커.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청각.
지끈!
약간의 두통.
- 와아아아아!!!
환호하는 대중들의 목소리.
‘이건…….’
신유성이 천천히 눈을 떴다.
경기장의 빛은 온전히 신유성과 아델라를 비추고 있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과연 포탈 속에서 얼마나 많은 마나를 방출시킨걸까요? 두 선수 전부! 결승전에서 보여준 역량이 대단합니다!”
유한나의 호들갑에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미리 두 선수의 역량을 예측하지 못한 주최 측의 명백한 실수입니다.”
하지만 메이린과 협회를 탓하는 대중들은 없었다. 한국의 역량을 똑똑히 확인한 대중들의 분위기는 거의 축제였다.
특히 관심의 중심에는 올해부터 새롭게 떠오른 신유성이 있었다.
‘……점점 몸의 감각이 돌아오는군.’
정신이 돌아온 신유성은 천천히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인파가 외치는 응원은 신유성의 귀에 정확히 들려왔다.
- 멋있다!
- 네가 한국의 대표다!
- 이 정도 실력이면 우승도 가능하지!
꽈악!
신유성이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난…….’
기분이 이상했다.
신유성은 부모에게 버림받았을 때 들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어차피 F등급 특성으로는 신오일가에서 버틸 수 없을 거다.]
특성을 알게 되자. 타인을 대하는 듯 차가운 눈빛의 아버지.
[차라리 헌터를 포기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 떠나가던 어머니. 5살에 불과했던 어린 시절의 신유성은 그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특성이 F급이라서.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그래서 버려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유원학의 밑에서 누구보다 올곧게 성장한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나쁜 건 자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쁜 건 특성으로 급을 나누고. 자질을 논하며 자식을 버린. 신오가문과 가주. 신유성은 자신의 가치를 그들은 물론이고 세상 모두에게 증명했다.
-와아아아!!
신유성이 웃으며 손을 흔들자 대중들은 환호했다. 무대의 주인공 중 하나인 아델라는 오롯이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는 신유성.
아델라는 신유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분명 제 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흑룡강신으로 강화된 신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왜, 제 공격을 정면으로 상대해주신 거죠?”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아델라. 신유성은 멋쩍게 진심을 말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
전투의 박진감.
삐걱거리는 신체.
한계까지 끌어올린 마나.
신유성이 아델라를 상대하며 느낀 건 모든 걸 던져 맞부딪치고 싶다는 헌터의 본능이었다.
적수를 만나 기뻐한 건 아델라만이 아니었다. 무신산에서 하산한 후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보는 신유성도 마찬가지.
“그렇군요.”
대답을 들은 아델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질문을 했다.
“……국가대항전에서 당신의 목표는 우승인가요?”
아델라의 질문에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항전은 국가 간의 힘과 명예를 건 대회. 그 어느 곳보다 강한 학생들을 상대할 수 있는 기회였다.
“……기대되네요.”
생각에 빠져 있던 아델라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저흰…… 다시 보게 될 거 같네요.”
그리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 아델라.
웅성웅성.
VIP석에 앉은 심사위원들의 회의가 끝났다. 학원도시의 지부장인 메이린은 해설을 겸해 심사위원의 자격도 있었다.
“자, 그럼 투표에 앞서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제가 먼저 두 학생을 평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메이린이 입을 열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일반인들과 6급 헌터인 그녀의 시선은 달랐다.
메이린의 평가는 투표에 결과를 줄 게 분명했다.
“대항전은 국가적 행사입니다. 많은 라운드와 시험을 거치죠. 그래서 저는 밸런스와 지구력을 중요시 여깁니다.”
메이린은 전문가의 냉철한 눈으로 아델라를 바라보았다.
“아델라 학생의 특성과 스킬들은 변수 창출에 능해 보였습니다. 뛰어난 잠재력은 물론이고, 대군을 상대로도 효율이 좋아보였죠.”
메이린이 본 아델라는 장점이 너무 많았다. 괜히 아델라가 1학년 중 최강에 자리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단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전투력의 전부를 특성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의 지구력은 좋지 않습니다. 파괴적인 스킬일수록 마나 소모가 극심하니까요.”
“그럼 밸런스는…….”
집중한 유한나의 질문에 메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특성을 파훼 당하거나 상성인 속성을 만나면 분명 위기가 찾아올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학생들 중에선 절대적인 힘이지만요.”
사실 메이린이 억지로 이유를 붙였을 뿐 단점은 크지 않았다.
마나 소모가 크고.
특성에 의존도가 높고.
파훼 당할시 위험이 있다.
이건 아델라가 아니라도 특성이 강한 헌터들의 공통점이었다.
문제는 신유성의 존재.
“반면 신체능력이 뛰어난 신유성 학생은 전투의 지속력이 월등해 보였습니다. 전투력이 동일하다면 특성의 의존도가 낮아 파훼당할 위험도 없고요.”
메이린이 평가를 끝내자. 이번에는 VIP석에서 검은색 안대로 눈을 가린 쇼이치가 일어났다. 심안이라고 불리는 6급 헌터로 실력이 증명된 고수였다.
“내 생각은 다르다. 국가 대항전까지 남은 기간은 길어. 계속해서 성장할 S등급 특성이 가진 잠재력을 생각한다면…….”
쇼이치는 슬쩍 유원학의 눈치를 보더니 흘기더니 소신 발언을 했다.
“……아델라를 뽑는 게 맞지.”
그 다음 차례는 주힘찬.
“안녕하십니까! 주힘찬입니다! 앞에 분들처럼 조리 있게 말은 못하지만…….”
그 다음은 협회장인 강유찬.
“하하! 여러분. 협회장으로서 저의 평가는…….”
20명의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마쳤다. 결과는 10대10. 투표에 결과를 맡기기 위해 심사위원들은 이미 말을 맞춰둔 상태였다.
“놀랍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동률입니다! 한 사람을 택하기 힘들 정도로 두 학생의 뛰어난 활약 때문이겠죠? 하지만 No problem!”
유한나가 검지를 까딱거리자. 스크린에 투표율이 떠올랐다.
[1번 - 신유성 0%]
[2번 - 아델라 오르텐시아 0%]
“방금 합산을 끝낸! 결승전의 투표 결과를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따르르르!!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스크린에 적힌 수치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신유성과 아델라의 투표율은 10을 돌파했고.
20을 돌파했고.
30을 돌파했고.
40을 돌파했고.
결국 거짓말처럼 50을 이뤘다.
[1번 - 신유성 50%]
[2번 - 아델라 오르텐시아 50%]
둘의 투표율은 동률.
“투, 투표율의 결과는 50대 50으로 무승부…… 무, 무승부입니다!”
충격적인 결과에 프로인 유한나가 말을 더듬자. 아델라가 느릿하게 손을 들었다.
아델라에게 집중된 전국의 시선.
하지만 아델라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포탈이 종료되지 않았다면. 결과는 내 패배.’
신유성의 흑룡암쇄권을 정면에서 마주한 아델라만이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마나 대부분을 [눈의 오페라]에 사용하고 승기를 잡지 못한 순간. 사실 아델라도 알고 있었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델라가 선발전에 참여한 건 한국의 대표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다. 부와 명예도 아니었다.
아델라가 원한 건 그저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
신유성은 그런 아델라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물론 미련은 남아 있었다.
아델라는 또 다시 신유성과 맞붙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더욱 한국의 대표가 자신이 되면 안됐다.
‘난 자격이 없으니까.’
긴장감이 감도는 경기장에서 아델라는 작게 속삭였다.
“기권하겠습니다.”
아델라의 말은 스피커를 타고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남은 건 고요한 정적.
꿀꺽.
침을 삼킨 유한나가 마이크를 부여잡았다.
“기, 기권! 아델라 학생이 기권 했습니다!! 신유성 학생이 더 승자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걸까요?”
메이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둘 다 투표의 결과가 50%로 나온 이상 협회에서 1단위까지 확인을 해야 할 상황.
“우승자가 결정되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할 선발전의 우승자는! 신유성 학생입니다!”
유한나는 그저 기뻐했다.
퍼엉! 펑펑!
경기장의 천장이 열리며 화려한 축포가 하늘을 향해 터졌다. 시끄러운 축포와 박수 소리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아델라는 주변 따윈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신유성에게 다가왔다.
“다음에 만나게 될 땐. ……제가 이길 겁니다.”
절대 허세가 아니었다.
아델라는 지금까지 스스로 노력한 적이 없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의 재능은 압도적이었고, 너무나 강했다.
하지만 오늘 신유성을 만났고 패배했다. 처음으로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 때문인지 패배했지만 아델라의 얼굴은 어쩐지 기뻐보였다.
사람을 바꾸는 건 사람이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경험과 관계 속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신유성이 이번 전투로 아델라에게 영향을 준 건 명백한 사실. 아델라는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바람을 따라 아름답게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 아델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Arrivederci(안녕히).”
그건 지금까지 누구도 본 적 없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