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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69/434)

제69화

5살.

창밖의 풍경은 온통 겨울이었다.

산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였고, 도시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안식처였던 도시에서 조난을 당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 하지만 7급 보스인 루이스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존재 자체가 재앙이었다.

본래 산 정상에 지어진 아름다운 도시 볼테라를 설산으로 만들었고, 몬스터들은 들끓기 시작했다.

루이스가 만들어낸 겨울은 끈질기고 잔인했다. 손발이 얼어붙고 입에서는 김이 새어나오지만, 모든 것은 환상. 저체온증도 동상도 걸리지 않았다.

그저 대상을 괴롭히고 마나를 앗아갈 뿐. 볼테라에 조난당한 생존자들에겐 1분 1초가 지옥.

덕분에 루이스는 인간들의 고통을 양분삼아 점점 강해졌다.

결국 보다 못한 아델라의 부모님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공략을 시도했다. 목표는 루이스의 성.

비록 7급 보스가 상대라도 아델라의 부모님은 현역 중에서도 최상급인 6급 헌터 부부. 분명 가능성은 있었다.

[아델라. 금방 돌아올게 알았지?]

아델라의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었고.

[딱, 3일만. 3일만 혼자서 기다리는 거야. 응?]

어머니는 떠나기 전 아델라를 꽉 껴안아주었다. 추위조차 잊게 만드는 따뜻한 품.

아델라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도 부모님과 떨어지는 건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미안하다. 정말, 정말로…….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어머니는 결계를 펼치고 아버지와 길을 떠났다.

아델라에게 남은 건 혹한의 추위와 곰 인형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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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났다.

어머니가 끓여두신 스프는 차가웠지만 맛있었다.

이틀이 지났다.

혼자서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고 외로웠다.

드디어 약속한 사흘.

하지만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흘이 지났다.

비상식량인 콩 통조림은 정말 맛이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결계는 부서지고, 루이스가 만들어낸 추위는 더 심해졌다.

아델라는 그 추위가 정말 싫었다.

차라리 온몸이 얼어붙었으면.

어떤 고통도 받지 않을 텐데.

하지만 5살에 불과한 아델라에게 무엇보다 괴로운 건 외로움이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땐 이제 자신의 목소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보고 싶어.’

엄마가, 아빠가.

아니,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델라는 집을 떠나 정처 없이 걸었다. 하지만 재앙이 닥친 도시는 고요했다.

이미 모두들 한계였다.

도시에는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자신조차 벅찬 재앙 속에서 5살의 어린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줄 인간은 없었다.

아델라는 그저 정처 없이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도시를 벗어날 순 없었다.

루이스는 자신의 식량이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은 다시 흘러 한 달.

아델라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죽여야 했다. 볼테라에 닥친 외로움과 추위는 망가지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었다.

세 달.

아델라는 더 이상 아빠가 보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어머니의 스프가 먹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찾아온 아델라의 생일.

우연의 일치일까. 아델라는 특성이 발현됐다. 5살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성의 능력은 얼음계열의 S급.

누구보다 추위를 싫어한 아델라에겐 얄궂은 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덴 님! 여기! 아이가 있습니다!]

[아델라!!]

창밖의 풍경은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아델라를 제외한 세상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델라는 그렇지 못했다.

이미 변해버렸고. 잃어버렸다.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두근! 두근!

아델라의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다. 손끝이 저릿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기고 싶어.’

정확히는 자신의 모든 것을 꺼내고 싶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몸 안에 영원토록 새기고 싶었다.

지금의 순간은.

아델라가 그토록 바라던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Fiori d'inverno!(겨울의 꽃)”

아델라가 목청을 다해 소리쳤다.

무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충실한 감정이 마음속을 헤집었다. 즐거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파아앙!

한계까지 끌어내 사용한 마나.

쩌저저적!!

여기저기서 생성된 얼음 조각들이 아델라의 앞에 모였다.

즈즈즛!

아델라의 앞에서 얼음들은 재창조되어 아름다운 얼음 꽃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제 전력입니다.”

마나의 폭풍에 아델라의 머리카락이 뒤를 향해 휘날렸다.

눈앞에서 흐드러진 7장의 꽃잎은 일종의 배리어로 부수지 않으면 절대 아델라에게 접근 할 수 없었다.

사아아아!!

꽃잎이 완성되자. 정중앙에 점점 푸른색으로 마나가 모였다. [눈의 오페라]가 전장을 장악하는 스킬이라면 [겨울의 꽃]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커버하는 스킬이었다.

위이이이잉!!

마나입자가 최대한으로 모여 빛을 발하는 꽃잎. 촉박한 상황에도 신유성은 차분하게 몸 안의 기운을 갈무리했다.

‘시간은 충분히 있어.’

이미 흑룡강신을 사용한 상태.

신유성은 자신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흑룡강신의 힘을 다룰 수 있는 평정심이라고 생각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감각을 일깨우는 집중력.

신유성은 천천히 몸 안의 기운을 움직였다.

다리에서 허리.

허리에서 심장.

심장에서 팔.

팔에서 주먹.

자유분방하게 몸 안에서 요동치는 흑룡의 기운을 한 곳으로 모았다.

‘……힘은 불꽃과 같다.’

신유성은 언젠가 들은 이야기를 되새겼다.

[크하하! 마른 장작을 찾아서 다행이야! 잘 타오르는군!]

[자 유성아! 이 모닥불을 봐라! 힘은 여기! 이 불꽃과 같다!]

[무슨 뜻이냐고? 으음 그건, 네가 크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스승인 유원학의 가르침을 신유성은 이제 알 수 있었다.

불은 그저 타오른다.

작은 바람에도 꺼질 듯 위태하고, 주위의 모든 것을 식별하지 않고 불태운다.

아무리 강한 힘도 제어하지 못한다면 의미는 없다.

신유성은 흑룡강신이라는 강한 힘을 보여줬으니 이제 다음 증명을 할 차례였다.

타앗!

신유성이 섬광처럼 돌진했다.

검은색 기운은 유성의 꼬리처럼 뒤를 향해 흩날렸다.

파아앗!

지금까지 없었던 속도.

흑룡강신의 힘은 신유성의 몸 안을 벗어나려고 폭주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가느다란 긴장을 유지하며 마나를 팽팽하게 붙잡았다.

아직 일렀다. 힘을 해방할 순간은 절대 지금이 아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신유성의 눈앞에 아델라가 펼친 방어막이 보였다. 신유성의 시간은 잘게 쪼개져 더욱 느리게 흘렀다.

“Fioritura!(개화)”

아델라가 손을 펼치자 눈앞에서 빛을 발하는 꽃잎.

[※위험!]

[포탈의 마나수치가 87%에 다 달았습니다!]

둘의 눈앞에 홀로그램의 경고가 차올랐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건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

지이이잉!!

아델라가 발포를 명령하자.

딱 한 장. 피어있던 얼음 꽃잎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지금!”

신유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점멸하는 빛 속에서 손바닥을 뻗었다.

투신류 흑룡암쇄장(黑龍巖碎掌)

콰앙!!

한 순간에 방출된 검은 기운이 푸른빛과 맞닿았다. 하지만 흑룡의 기운은 천천히 푸른빛을 잠식했다.

파앙!!

아델라가 발포한 푸른빛이 빛이 사라지자. 그 다음은 아델라를 지키는 얼음 꽃잎의 차례.

콰앙! 쩍!

금이 가며 얼음 꽃잎이 하나 더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5장.

즈즈즈즉!!

4장.

3장.

2장.

1장

아델라는 마지막 남은 꽃잎을 지키기 위해 체내의 모든 마나를 쥐어짜냈다.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포탈의 마나수치가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이제 포켓은 홀로그램으로 모자란 듯 비명처럼 경고음이 냈다.

집어 삼키려는 흑룡강신의 힘.

지켜내려는 아델라의 얼음 꽃잎.

콰아아앙!!

둘의 엄청난 힘이 격돌하며 폭발을 일으키자. 바닥의 파편이 잘게 부서지며 먼지를 만들었고. 거대한 바람이 경기장을 한 차례 휩쓸었다.

[시뮬레이션 실패]

[포탈을 강제로 종료합니다.]

개최 측인 헌터협회도 예상하지 못한 힘. 아득하게 신기록을 돌파해버린 아델라와 신유성 덕분에 포탈 속의 가짜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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