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메트로시티의 경기장.
-이 기술을 누군가에게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전력을 다짐한 아델라의 말이 울려 퍼지자. 아덴은 신유성의 실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델라가…… 저렇게 고전하다니. 역시 ……유원학. 너의 제자구나. 정말, 정말 대단해.”
“아직 놀라긴 이르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유성이는 나보다도 강해질 거라고.”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말하는 유원학. 아덴은 아델라를 바라보며 오래된 생각에 빠졌다.
‘……아델라. 즐거워 보이는구나.’
7급 보스.
겨울 마녀 루이스의 재난.
아덴은 손녀인 아델라가 조난에서 겪었던 혹한의 추위 속에서 마음 속 감정마저도 얼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아덴의 입가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아델라의 모습에 아덴은 안도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유원학은 진지하게 신유성을 바라봤다.
‘이번 상대를 넘어서려면 너도 성장이 필요하겠지.’
신유성은 유원학의 품을 벗어나 무신산에서 하산했다. 유원학이 본 신유성의 마지막 경지는 3장.
만약 거기서 성장이 멈췄다면 아델라는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유원학은 자신의 제자인 신유성이 다음 장으로 넘어갈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내게 보여 다오!’
* * *
사아아아!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아델라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멀쩡하게 신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한국을 오게 된 건, 당신을 만나기 위함이었나보군요.”
아델라는 느릿한 속도로 이야기를 마쳤다. 점점 조여 오는 추위. 하지만 신유성은 마나를 두른 채 자세를 잡고 기다렸다.
‘기술의 형태를 보고 피하면 그땐 이미 늦어.’
실수가 곧 패배로 이어지는 고차원의 전투. 신유성은 대기의 마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제가 먼저 가죠.”
아델라가 무표정 해진 얼굴로 가로 그었다. 허공에서 푸른빛을 내며 모여드는 마나. 신유성은 재빨리 아델라를 향해 파고들었다.
파파파팡!!
신유성이 있던 자리에서 생겨난 얼음들이 포탄처럼 터져나갔다. 흩어진 얼음 파편이 남긴 형태는 꽃처럼 아름다웠다.
부웅!
직선으로 파고든 신유성이 주먹을 뻗는 순간. 발밑에서 모여드는 마나가 느껴졌다.
‘……멀티 스킬?’
스킬의 동시 사용.
신유성이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자. 아델라의 앞에선 거대한 얼음송곳이 튀어나왔다.
‘무턱대고 거리를 좁히는 건 힘들겠어.’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신유성은 멀리 거리를 벌렸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공격의 기회가 줄어들지만 상대의 스킬캐스팅도 느려진다.
이건 헌터에게 상식 중의 상식.
‘이미 결계형 스킬을 사용했으니. 마나 소모를 생각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유리해.’
강적을 마주한 신유성의 머릿속은 평소보다 더욱 냉철했다. 아델라는 그런 신유성에게 멍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당신…… 대기의 마나를…… 느끼고 있는 건가요?”
대체 어떻게? 라는 질문이 아델라의 표정에서 번져나갔다. 신유성의 반응은 동체시력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상대는 지금처럼 페이크를 섞은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델라가 본 신유성은 스킬이 발동하기 직전에 정확하게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헌터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신유성의 특성인 집중력 강화는 불가능을 해내고 있었다.
“조금은.”
신유성이 여유를 잃지 않고 답하자. 아델라는 더욱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재밌군요.”
서곡을 사용한 이상 연주가 끝날 때까지 상대를 끝내야했다. 지금부터 아델라에게 전투는 타임어택.
‘만약 끝내지 못한다면…….’
아델라는 생각만으로 즐거워졌다. 지금까지 상대들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패배…….’
서로를 견제하며 가만히 서있음에도 지금의 전투는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아델라는 매순간 신유성의 움직임에 긴장하며 빈틈을 찾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
그러나 신유성을 상대론 빈틈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작전도 떠오르지 않았다.
방금 전 자신의 얼음트랩에 대처해낸 이상. 고속 스킬로 근접 전투의 수 싸움을 하는 건 무의미했다.
지금 의지해야할 건 아델라가 가진 최대의 재능. 타고난 특성의 활용과 압도적인 규모였다.
“Intermezzo(간주곡).”
아델라의 읊조림과 함께 허공에는 무기 형태의 얼음이 생겨났다. 아델라는 지금부터 보여줄 최대의 막(幕)을 위해 마나를 아끼지 않았다.
휘익!
아델라가 절도 있는 동작으로 팔을 움직였다. 손끝이 향한 곳은 신유성의 몸.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얼음 무기들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얼음.
신유성은 마나를 사용해 특성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파아아앗!!
신유성이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체감하는 시간은 점점 느려지더니 멈춰버렸고, 머릿속의 사고는 점점 가속했다.
‘가장 가까운 얼음을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세 걸음.’
타닥!
신유성이 몸을 움직이자 바로 옆에서 떨어지는 얼음.
‘왼쪽!’
사고가 가속될수록 점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신유성이 발을 당기자.
파악!
얼음창이 바닥에 꽂혔다.
‘뒤로.’
다시 반원 형태로 몸을 돌리자.
콰차자작!
옆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얼음.
치명상은 피했지만 날카로운 얼음이 살을 스칠 때마다 신유성의 몸에는 생채기가 생겼다.
‘그 다음은 뒤로 크게 물러난다.’
최대한 공격을 흘려낸 후, 짧은 심호흡을 하는 신유성.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아델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야.’
신유성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전투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신유성과 아델라.
“Aria(아리아).”
아델라가 조용히 읊조리자. 몰아치던 바람이 멈췄다.
적막과 고요.
화아아악-!
그때 신유성을 향해 한줄기 돌풍이 몰아쳤다. [눈의 오페라]의 하이라이트인 여왕의 아리아.
‘이건……. 피할 수 없어.’
투명한 푸른색 결계가 펼쳐지자.
마나를 느끼는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이번 스킬은 발동된 규모가 너무 거대했다.
‘결계에 갇힌 이상. 당신이라도 방법은 없겠죠.’
담담해진 아델라의 얼굴.
신유성이 가진 특성과 아델라의 특성은 차원이 달랐다. S급과 F급을 나누고 싶은 건 아니었다.
S반의 전부가 덤벼도 아델라를 상대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델라가 가진 건 그 정도로 압도적인 특성. 이번에 사용한 [눈의 오페라]는 그런 아델라의 필살기.
분명히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사아아악!
결계는 상대를 끝내기 위해 점점 좁아졌다. 이제 열기로 고조된 막을 끝낼 시간. 아델라는 교차시킨 양팔을 스르르 떨어트렸다.
“Finale(피날레).”
연주의 막.
신유성이 있는 결계 안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이제 얼음파편들이 폭풍에 흩날려 믹서기의 칼날처럼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게 아델라의 [눈의 오페라]의 마지막 장이었다.
‘……결국 여기까지인가요?’
결계를 바라보는 아델라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감돌았다.
신유성과의 전투는 아델라에게 조난 때 먹었던 사탕 같았다.
비록 짧지만 너무나 달콤하고 소중해서 천천히 녹여먹고 싶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
‘하지만…… 그 즐거움도. 여기서 끝이겠죠.’
아델라는 복잡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 * *
점점 강해지는 바람.
이리저리 날뛰는 얼음파편.
끔찍한 지옥도 속에서 신유성의 몸은 멀쩡했다.
팟! 타탁!
마나 배리어 덕분에 얼음 파편들은 닿는 즉시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마나가 아무리 많아도 버틸 수 없었다.
‘기회는 한번이야.’
그러나 아델라는 [눈의 오페라]를 위해 엄청난 마나를 소모한 상태. 지금의 위기는 동시에 기회였다.
신유성이 몸 안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밤낮 없는 수련을 통해 끝없이 반복했던 과정이었다.
최대한의 마나를.
최소한의 집중으로.
‘곧게 퍼트린다.’
기술의 사용에 집중을 쏟자. 신유성의 마나 배리어는 점점 약해졌다.
파앗! 주륵!
상처가 난 팔에선 피가 흘렀고. 다시 얼어붙었다. 고통이 제법이었지만 신유성의 집중력은 흩어지지 않았다.
신유성은 신체의 고통에는 무감해졌다. 그런 아픔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신오 가문에서 버림받은 날.
슬픔을 배웠고.
스승님에게 선택 받은 날.
기쁨을 배웠듯이.
아픔은 경험을 통해, 기억을 통해 무뎌졌다. 물론 그 흔적은 남기 마련. 신유성이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수련의 기억을 일깨우자.
신유성에게 남겨진 흔적들은 계속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신유성 씨가 모두에게 가르쳐주셨잖아요.]
그 중에선 신유성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준 동료도 있었고.
[쯔읏, 귀염성 없는 놈. 그래. 내 말은……. 가끔은 어깨에 힘을 좀 빼야 되는 일도 있다는 말이었다.]
제자에게 여유를 가르쳐주려 했던 따뜻한 스승도 있었으며.
[차라리…… 내 재능이 오빠에게 갔다면. 좋았을 텐데…….]
마음속 깊이 숨겨왔던 고민을 나눈 동료가 있었다. 그건 모두 신유성이 지금까지 목표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러니 신유성에게 목표를 포기하게 만들 문제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모조리 부수어야 할 벽이고, 넘어야할 계단에 불과했다.
기억의 흔적들과 함께 신유성의 몸속에는 곧게 마나가 퍼져 나갔다.
이제는 마지막 차례.
“끌어 올린다!”
신유성이 미간을 찡그리며 크게 소리치자. 몸속에선 푸른색의 빛이 요동쳤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적어도 목표가 있는 이상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신유성은 더욱 강해졌다.
츠츠츠츳!!
거세게 뿜어져 나온 푸른빛은 얼음파편을 튕겨내더니 서서히 검게 물들었다.
투신류 4장 흑룡강신(黑龍强身)
엄청난 기세의 마나.
용의 형상을 한 검은색 기운은 결계를 부수기 위해 하늘로 승천했다.
콰작! 콰자자작!!
[눈의 오페라]의 종막을 내린 건, 아델라가 아니었다.
* * *
쩍! 쩌저저적!
푸른색의 결계가 금이 가며 검은색 기운이 폭발적으로 새어나왔다.
“저건…….”
결계를 바라보는 아델라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 [눈의 오페라]는 아델라가 지금까지 사용한 적이 없는 스킬이었다.
아델라에게 필살기 같은 거창한 스킬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오늘까지의 이야기.
아델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의 오페라]는 부서지고 있었다.
콰앙!!
결계가 부서지며 알에서 부화하듯 흑룡의 기운이 하늘을 향해 용솟음쳤다. 아델라는 그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신유성…….”
차갑게 식은 심장이 뜨겁게 뛰는 기분. 흑룡의 기운은 그대로 하늘에서 낙하해 신유성의 몸에 깃들었다.
츠즈즈즛!!
흑룡강신을 사용한 신유성은 몸에서 검은색 기운을 거칠게 뿜어내고 있었고. 마나를 끌어올린 아델라의 주위에는 혹한의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국의 대표를 건 혈투.
아델라와 신유성이 서로를 바라봤다. 둘에게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상대를 꺾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호승심이 불타고 있었다.
남은 건 결과를 확인하는 것뿐.
신유성과 아델라는 서로를 보며 약속이라도 한 듯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