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7화 (67/434)

제67화

주최측은 스크린을 반으로 나누어 방송을 틀었다.

산군(山君)을 상대하는 신유성.

화귀(火鬼)를 상대하는 아델라.

마치 합을 맞춘 듯 두 학생이 보스를 쓰러트리자. 스크린과 함께 경기장의 모든 불이 꺼졌다.

약간의 정적.

팟! 팟! 팟!

갑자기 조명이 켜지며 무대 위를 밝히고. 진행자인 유한나가 중앙으로 걸어 나오자. 스크린에는 두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1번 - 신유성]

[2번 - 아델라 오르텐시아]

유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한국을 대표할 선수를 뽑기 위해! 두 명의 진출자를 선별해냈습니다!”

헌터강국들이 포진한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의 이번 선발전은 단연 돋보였다.

정말 한국이 국가대항전의 우승국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 관중들의 기대감은 환호로 변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 와아아아!!

“곧 경기가 진행될 맵을 공개하기 전에 앞서. 선발에 대한 안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한나의 안내에 따라 스크린에는 투표율이 공개됐다.

[1번 - 신유성 0%]

[2번 - 아델라 오르텐시아 0%]

“경기가 끝날 때까지 투표는 불가능하지만. 시민 분들의 투표는 점수가 되어 대표 선발의 채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숨을 고른 유한나가 양손으로 정중하게 VIP석을 가리키자. 이번에는 조명이 VIP석을 향해 비춰졌다.

권왕. 유원학.

은빛바람. 아덴.

협회장. 강유찬.

심안. 쇼이치.

관리위원. 주힘찬.

그 외에도 VIP석에는 이름을 날리는 헌터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두 번째 채점 항목인 심사위원 평가입니다! 이번 심사를 위해 한국은 물론! 각국에서 유명한 헌터 분들을 초빙했습니다!”

팟!

스크린의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대기실 맵에서 진행을 기다리고 있는 아델라와 신유성의 모습이 비춰졌다.

“마지막 채점 항목은 전투입니다! 참가자의 승패와 경기 내용은 채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예정입니다!”

유한나의 말을 요약하자면 선발전의 채점 항목은 총 3개.

시민 투표.

심사위원 평가.

경기 진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자신의 차례가 오자 해설위원인 메이린이 마이크를 잡았다.

“현재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 중 세 번째로 선발전을 진행 중입니다.”

메이린의 말은 사실이었다.

중국의 대항전 대표는 류진.

일본의 대항전 대표는 세이지로 두 국가들은 이미 선발전의 결과가 나온 차례였다.

“선발전은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대표를 뽑는 자리. 참가자들에겐 명예로운 전투를. 위원 분들에겐 공정한 결과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메이린의 말이 끝나자. 관중석의 사람들은 또 환호했다. 경기장의 열기는 그야말로 최고조.

유원학은 흐뭇한 얼굴로 아덴에게 말을 걸었다.

“경기를 보고 있자니. 너와 처음 겨뤘던 날이 떠오르는구나.”

“하하, 그때는 자네가 이겼지만 오늘은 다를 걸세. 아델라는 내가 아니고, 저 아이도 자네가 아니지 않은가?”

아덴의 이야기에 유원학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성이는 내가 아니지.”

권왕의 이명은 ‘전 세계 최강’.

아덴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원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놈은…… 나보다도 더 강해질 거거든.”

유원학의 이야기에 가늘어지는 아덴의 눈. 언제나 최강을 외치던 유원학이 자신보다 잠재력을 높게 친 상대는 신유성이 처음이었다.

‘정말, 그 정도란 말인가?’

신유성이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권왕에게서 느꼈던 그 압도적인 격의 차이를 아직 아덴은 느끼지 못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유원학이 저 나이에 닿았던 경지는 투신류 3장의 근간이 되는 파천의 장. 하지만 권왕은 신유성을 그 이상을 말했다. 즉 그건 투신류 4장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이야기.

생각을 정리한 아덴은 유원학에게 말했다.

“재밌는 경기가 되겠구나.”

기대를 담은 짧은 한마디.

늠름하게 팔짱을 낀 유원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특성이 잘난 헌터놈들을 수도 없이 봤지만. 네 손녀만한 재능은 본 적이 없다. 아주 재밌는 경기가 되겠어.”

신유성의 특성은 F급.

그런 신유성이 아델라를 이긴다면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올 사건이 분명했다.

팟! 드르르르!

주명이 다시 무대 위를 비추자 스크린 속에서 슬롯머신이 돌아갔다. 유한나는 크게 소리를 쳤다.

“그럼! 선발전의 꽃! 결승전을 진행할 맵을 지금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르르르! 르르르…….

[천공도장]

빠르게 돌던 슬롯머신이 멈추고 맵이 선택되자. 스크린에는 구름이 보이는 하늘과 평평한 결투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공 도장은 어떤 지형적 특색도 존재하지 않는 맵. 실력을 비교하기엔 적격이었다.

이제 경기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

유한나는 마이크를 쥐고 크게 소리쳤다.

“자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      *

구름이 가까운 아득한 창공.

하늘 위에 끝없이 펼쳐진 경기장.

아델라는 멍한 눈으로 신유성을 마주보았다.

“당신과 겨루는 건 처음이군요.”

아델라는 신유성이 권왕의 제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첫날부터. 이런 순간을 기대해왔다.

헌터 종주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도 아델라의 재능은 비견할 대상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입이 닳도록 말했던 그 ‘권왕’의 제자라면.

처음으로 자신의 전력을 맞부딪칠 수 있지 않을까?

아델라는 그렇게 기대했다.

물론 아델라에게 지금까지의 대련이란 늘 실망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상대를 만났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들이 짓는 표정은 똑같았다.

경외.

공포.

절망.

압도적인 차이를 느낀 이들의 패배감이 가득한 얼굴을 마주할 때면 아델라는 한없이 실망했다.

결국 아델라는 누구를 상대로도 뜨거워질 수 없었다.

전력을 다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내고.

자신의 한계를 알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모든 것을 맞부딪칠 상대가 없었다. 지금까지 아델라의 전적은 무패(無敗) 최강은 너무나도 지루했다.

“영광이야.”

신유성은 특유의 미소와 함께 한국의 1위에게 예를 표했다.

파아앗!

푸른색의 입자들이 흩어지며 신유성의 몸에 흑룡포가 덧입혀졌다. 그건 신유성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부딪치겠다는 증거였다.

츠츠츳!

공기 중으로 느껴지는 신유성의 정갈 된 마나에 아델라는 자신도 모르게 두근거림을 느꼈다.

“……신기하군요. 그렇게 거센 마나도 정밀하게 다룰 수 있다니.”

점점 차오르는 기대감.

아델라는 어느 때보다 경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신유성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경기 시작까지 3초]

신유성이 자세를 잡았다.

아델라는 한쪽 손바닥을 상대에게 겨눴다.

[2초]

폭발적이던 신유성의 기운이 사라졌다.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했다.

‘기습?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단 몇 초 동안 수없이 이루어지는 심리싸움. 아델라의 머릿속에선 경험하지 못한 시뮬레이션들이 팽팽한 속도로 돌아갔다.

[1초]

살을 에워싸는 긴장감.

서로를 바라보는 아델라와 신유성.

[시작!]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휘슬소리와 함께 아델라는 마나를 방출했다.

파아악!

[공간동결]

아델라의 붉은 눈이 더욱 빨갛게 빛나며 신유성이 있던 장소가 혹한의 한기로 얼어버렸다.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그대로 전투가 끝인 치명적인 스킬.

팟!

얼어붙기 직전.

신유성의 몸이 사라졌다.

아델라의 동체시력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속도. 사라진 신유성은 아델라의 뒤에서 나타났다.

부우웅!

‘뒤인가.’

주먹이 닿기 직전 얇은 얼음막이 신유성의 주먹을 막았다.

쩌엉!

신유성의 주먹에 바스러지며 이리저리 튀는 얼음 파편. 아델라는 신유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지이잉!

허공을 수놓으며 무수히 많은 얼음창이 만들어졌다. 헌터로서 하나하나 특성을 발휘할 공간을 연산하는 건 엄청난 일이었지만. 아델라는 본능적으로 방법을 알고 있었다.

파바바바박!

마치 신유성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지는 창 형태의 얼음. 신유성은 제 자리에서 반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흑룡비천]

흑룡포에서 뿜어진 검은색 마나가 신유성을 휘감아 지켰다. 마나로 이루어 낸 반원의 결계. 아델라의 얼음창은 검은색 기운에 삼켜져 사라졌다.

“이제 내 차례야.”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얼굴.

거리가 제법 벌어졌지만 신유성은 아델라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츠츠츳! 콰앙!

[흑룡비파]

신유성의 마나와 흑룡비천에 흡수됐던 아델라의 마나가 한순간에 방출됐다. 심지어 공격의 형태는 원거리의 파동.

크그그극!

움직여서 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 아델라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색 파동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위험했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

잠깐 빈틈을 보인 순간 이런 공격을 허용하다니. 남들에겐 흔한 전투의 긴장감이 아델라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쩌저저적!

땅에서 솟은 얼음벽이 흑룡비파를 막아냈다. 이젠 아델라의 차례. 아델라는 왼손을 들어 허공에 대각선을 그었다.

[겨울의 땅]

파앙!

아델라에게서 뿜어진 마나가 바닥을 얼리며 퍼져나갔다. 바닥에 발이 닿아있다면 그대로 얼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스킬.

신유성은 땅을 박차 도약했다.

탓!

허공에선 공격을 피할 수 없다. 그게 모든 헌터의 상식. 아델라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신유성에게 겨눴다.

탕!

아델라의 손끝에서 발사된 얼음의 탄환. 찰나의 순간에 신유성은 자신의 뒤에 배리어를 만들어냈다.

‘마나 배리어?’

아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특성도 아닌 단순한 마나배리어로 자신의 공격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거기다 배리어가 만들어진 위치도 신유성의 뒤. 무언가 이상했다.

하지만 신유성의 노림수는 그게 아니었다. 신유성은 허공에서 배리어를 박차고 방향을 틀었다.

파앙!

마치 섬광과 같은 엄청난 속도.

아델라가 쏜 탄환은 신유성을 아슬하게 스쳐지나갔고, 신유성의 손바닥은 이미 아델라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투신류 폭룡암쇄장(暴龍巖碎掌)

상대를 분쇄하기 위한 마나의 폭풍이 느껴졌다. 투막한 마나의 움직임은 눈앞에서 다가오는 믹서기의 칼날 같았다.

‘이건 피할 수 없겠어.’

[서리용의 알]

언제나 여유롭던 아델라가 처음으로 양손을 교차했다.

쩌적!

동그란 푸른색 구체가 아델라를 감쌌다. 비록 폭룡암쇄장을 막아내고 금이 갔지만 아직 구체의 형태는 멀쩡했다.

하루에 단 1번.

아델라가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스킬. 아델라도 대련에서 직접 사용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쩌저저적! 사아아-

구체가 열리며 하얀 기운을 내뿜자. 신유성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저벅저벅.

아델라가 구체에서 유유히 걸어 나왔다. 신유성은 아델라를 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웃는 모습은 처음인데?”

아델라는 신유성의 말에 구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신유성의 말처럼 아델라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의 박동.

긴장감으로 점점 뜨거워지는 피.

그리고 자신은 상상하지도 못한 전투의 방식.

‘재밌어.’

지금 아델라는 신유성과의 전투가 너무나도 즐거웠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강하시군요.”

상대의 실력이 이 정도라면 아델라도 전력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아델라로선 늘 바라던 순간.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로 아델라는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Overtura(서곡).”

아델라가 눈을 감았다.

사아아아-

그에 따라 변해가는 결투장의 모습. 아델라는 눈이 내리는 새하얀 풍경 속에서 감았던 눈을 떴다.

“이 기술을 누군가에게 사용하는 건…….”

혹한의 바람에 아름답게 흩날리는 은발. 신유성을 올곧게 바라보는 붉게 물든 눈.

“이번이 처음입니다.”

겨울의 여왕이 연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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