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사르니아 산 깊은 곳.
안개 낀 숲은 걷는 것만으로 온몸이 습해졌다.
‘시야도 너무 좁고…….’
하지만 이석훈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자신은 미국 아카데미의 출신. 가온이나 이노처럼 명문이라 불리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상위 20명에 들었다.
평소의 자신으로선 상상조차 못할 활약. 물론 정말 우승이 목표는 아니었다. 그저 이번 기회를 살려 관계자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는다면 이석훈은 만족할 수 있었다.
‘이번에 활약하면 누나가 알아서 길드에 넣어주겠지?’
기대에 찬 얼굴로 보스몹의 흔적을 살피는 이석훈. 그때 뒤에서 거친 짐승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크릉…….”
마치 호랑이와 같은 거대한 맹수의 소리. 이석훈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크허엉!”
짐승의 포효와 함께 무언가 이석훈의 팔을 할퀴었다.
촤아악!
“크악! 윽!”
있을 수 없는 일.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석훈의 팔에는 상처가 생겼다. 거기다 이석훈은 분명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무언가의 풍압이 느껴졌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
“서, 설마…….”
팟!
불길한 이석훈의 예감과 함께 포켓에선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참가자 이석훈 학생이 보스몹 산군(山君)을 조우하셨습니다.]
[모든 참가자에게 산군의 현재 위치가 표시됩니다.]
“이, 이런…… 망할. 산군이라고?”
파앗!
이석훈은 미친 듯이 뒤를 향해 뛰었다. 보스몹 산군(山君)은 한국의 헌터 협회가 임의로 붙인 아명이었다. 산군의 진짜 이름은 환비호.
한국에 내려오는 설화처럼 술법을 사용하는 호랑이였다.
그 중 가장 상대가 까다로운 술법은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환술.
‘망할 협회 새끼들! 이딴 걸 준비도 없이 잡으라고?’
보스몹을 잡으려면 그에 대응하는 헌터용품을 준비하는 게 상식이었다. 예를 들어 용품점에서 파는 표식가루만 공기 중에 뿌리면 산군을 식별할 수 있었다.
“헉, 허억……. 헉…….”
한참을 달린 이석훈이 거칠게 호흡했다. 미친 듯이 달린 탓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따, 돌렸나?”
한숨을 쉰 이석훈이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뭇잎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삭.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이석훈. 하지만 역시 이석훈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크르르릉…….”
대신 바로 코앞에서 울려 퍼지는 짐승의 숨소리. 그게 이석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호화로운 신성그룹의 저택.
김은아와 이수현은 사이좋게 소파에 앉아 공식 방송을 보고 있었다.
공식 방송에서 틀어준 건 다름 아닌 4급 보스 산군의 등장.
이수현은 무참히 탈락하는 이석훈을 보며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저 바보 같은 놈! 헌터가 숨 차는 것도 못 참아?”
이수현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자. 김은아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아이씨, 시끄러워 죽겠네.’
근데 짜증을 내고 싶어도 이수현의 기세가 어쩐지 무서웠다.
“어떻게든 도망갔어야지! 아니면 진흙이라도 퍼서 던지던지! 내가 대회에선 뭐라도 하라니까!”
이수현이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치자. 김은아는 슬쩍 이수현에게서 떨어졌다.
“쟤가, 그…… 동생이라고 했나?”
멋쩍어하며 김은아가 물었지만 이수현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
“네. 그렇죠. 하아, 진짜. 저 머저리 같은 놈. 내가 공략 중에는 정신 좀 똑바로 차리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알아 처먹질 못하고…….”
중얼거리는 이수현의 기세는 정말 무서웠다.
“다음에 만나면 머리를 걷어차 버리던지 해야지!”
이수현은 5급 보스도 잡을 수 있는 상급 헌터. 김은아는 이수현의 말이 장난 같지 않았다.
“그, 시,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걷어차기까지 하냐?”
괜히 찔린 김은아가 큼큼- 헛기침을 하자. 이수현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그, 그래?”
김은아는 이수현의 진짜 성격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원래 말로 안 들어먹으면 패야 말을 들어요. 남동생이란 족속이 다 그렇죠.”
이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김은아를 쳐다봤다.
“그래도 누나한테 맞고 외우는 게. 던전에서 비참하게 개죽음 당하는 거보단 낫지 않겠어요?”
“그, 그건…… 그렇지?”
“하아, 그러게 투명몹한텐 뭐라도 좀 던지라니까. 진흙만 묻혔어도!”
계속 화난 얼굴로 중얼거리는 이수현을 보며 김은아는 짜증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뭐, 그래도 네 동생 열심히 했잖아. ……거기다 20위권이고.”
김은아가 툭- 나름의 위로를 건네자. 이수현은 표정이 변했다.
“……네?”
너무나 당황한 얼굴의 이수현.
1위가 아니라면 쓸모가 없다고.
재능이 없으면 포기하는 게 편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김은아였다. 그런데 방금 전의 위로는 김은아가 입에 담을 말이 아니었다.
“……남의 얼굴은 왜 그렇게 신기하게 봐?”
영문을 모르는 김은아가 인상을 찡그리자. 이수현은 흐뭇해 보이는 얼굴로 김은아를 바라봤다.
“변하셨네요.”
“내가?”
“엄청요.”
이수현은 학생인 김은아와 달리 눈치가 빨랐다. 날카롭던 김은아의 성격이 왜 바뀌고 있는지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다. 아니, 눈치를 못 채는 게 이상했다.
신유성은 빌런을 잡아 김은아가 목숨보다 아끼는 김준혁을 구해줬다.
‘처음에는 등에 업혀서. 김준혁의 병실에 왔다기에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추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톱니바퀴가 딱 맞아 떨어졌다. 김은아가 메시지로 씨름하며 고민을 하던 것도, 관심이 없던 선발전을 시청하고 있는 것도.
이유는 신유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게 동료로서의 감정이든, 그 이상이든 그 사실은 명백했다.
“뭐래? 난 변한 거 없어.”
물론 당사자인 김은아 본인은 부정하는 상황.
- 아니 필요 없어.
하지만 방송에서 신유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은아는 고개는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이제 목소리에 반응을 하네.’
이수현은 그런 김은아를 보며 머릿속의 이미지가 점점 바뀌고 있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고양이에서 강아지 쪽으로?’
김석한 회장이 알면 뒷목을 잡겠지만 이수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수현은 김은아의 변화를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전에 그만두지 뭐.’
이수현은 방송에 집중한 김은아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 * *
[Amy♥:보스몹이 하필 산군이었다니… 그럼 역시 마을로 가서 용품 파밍을 하시는 게 좋겠죠?]
[Amy♥:탈락자들이 두고 간 물건도 많을 테고!]
서포터인 에이미의 메시지는 현명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게 정석.
하지만 신유성은 홀로그램을 무시한 채, 여전히 보스몹의 위치로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니 그대로 속행할 거야.”
잠깐의 정적.
[Amy♥: (ˊ•͈ ꇴ •͈ˋ);; 파티장님? 아무리 그래도 산군은 투명 몬스터인데요?!]
에이미가 눈치를 보며 메시지를 보냈지만 신유성의 뜻은 굳건했다.
“괜찮아.”
헌터 용품에 도움을 받지 않아도 산군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공략의 시간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굳이 눈에 의지할 필요는 없지.’
무신산의 동굴.
신유성은 오감을 초월하기 위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전투를 치룬 적이 있었다.
이유는 미지라 불리는 탑.
‘스승님은 소리도, 빛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탑의 시련을 통과하셨지.’
그건 권왕의 철저한 준비 덕분이었다. 준비된 자는 시련을 통과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주어지는 건 오직 죽음.
그래서 권왕은 충분히 강한 신유성을 계속 수련에 매진시켰다.
F급 특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신체의 한계조차 뛰어넘고.
오감마저 초월해버린 경지에 닿기 위해 수련에 힘썼다.
처음은 제자인 신유성을 통해 인류의 비원(悲願)인 탑의 정상에 닿는 게 목표였지만. 12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어느새 권왕은 바뀌어 버렸다.
자식이 없는 권왕에게 신유성은 제자 이상의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뜻은 이어졌다.
권왕은 물론 누구도 신유성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탑의 정상은 신유성의 목표 중 하나였다.
[보스몹이 등장했던 위치에 도착하셨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Amy♥:ㅠㅠㅠ조심하세요! 파티장님! 여기부턴 산군의 영역이에요!]
메시지를 확인한 신유성은 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특성인 [집중력 강화]는 이런 순간 초월적인 힘을 발휘했다.
신유성이 택한 건 청각.
사아악.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
산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작은 동물들의 움직이는 소리까지 집중력을 강화한 신유성에겐 모든 게 선명했다.
파슥!
그 사이에 거대한 덩치가 나뭇잎을 밟는 소리는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산군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덤벼들지 않았다.
저걱. 저걱.
오히려 신유성의 주위를 빙빙 돌며 빈틈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최적의 순간에 신유성을 덮쳤다.
파앗!
“크르렁!”
시야의 사각인 등 뒤.
보이지 않는 상대의 공격.
하지만 신유성에겐 모든 것이 훤히 보였다. 예민해진 감각은 풍압만으로 상대가 어떤 크기인지, 발톱은 어디까지 다가왔는지를 유추해냈다.
그야말로 초인(超人)의 경지.
파앗!
고개를 돌린 신유성은 간결한 움직임으로 주먹을 뻗었다.
투신류 3장 파천권격(破天拳擊)
신유성의 주먹이 보이지 않는 허공을 때렸다. 곧 허공에 주먹이 막히고, 마나가 격돌하며 폭음이 터졌다.
콰아앙!! 투두둑!
강력한 충격에 휩쓸린 잔해가 흩어졌다. 오직 집중력과 청각만으로 보이지 않는 보스를 잡은 것이다.
[사르니아 산의 4급 보스를 잡아 징표를 얻으셨습니다.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탁탁.
신유성은 손에 묻은 산군의 피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냈다.
[Amy♥:세상에… 안 보이는 보스를 한 방에….]
보고도 믿기 힘든 충격적인 광경.
일반인의 상식으로 신유성의 활약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Amy♥:파티장님이… 저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그러니 에이미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