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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62/434)

제62화

가온의 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보이는 전망 좋은 뷰. 최고급 소파와 각종 비품들이 가득한 부실을 보며 에이미는 혀를 내둘렀다.

“이, 이것도 천만 원짜리 명품. 저, 저것도 명품! 전부다 최고급에 명품 투성이…….”

당황한 에이미를 보며 신유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은아가 투자해줬어.”

“으, 은아요!? 헐…… 은아 스케일이면 분명 비품 준비만 억 소리가 났을 텐데…….”

“맞아, 그 정도야. 한 4억?”

실제로 들은 비품들의 가격은 에이미에게 충격 그 자체.

“커헉! 4, 4억!? 헤에엑……. 학교의 어디에도 이렇게 사치스러운 곳은 없을 걸요?”

충격적인 금액에 에이미가 혀를 내두르자.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너무 과했나? 지금이라도 환불을…….”

신유성이 음- 하고 소리를 내며 고민에 빠지자. 에이미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흐엑! 아뇨! 아뇨! 절대 아니에요! 완전! 너무 좋아요! 특히 이 안마의자!”

에이미는 헤실헤실 웃으며 안마의자에 앉아 힐링을 즐기고 있었다. 학생용 부실에 안마의자라니 이상한 비품이었지만 김은아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 물건은 한둘이 아니었다.

“1학년이 개인 부실을 갖게 된 것도 대단한데……. 이 정도 클라스라니……. 선배들도 따라하지 못할 걸요? 정말 저희들이 최초에요.”

안마의자에 앉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점점 녹아내리는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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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어, 여기가 기숙사보다 더 좋아. 아니 훨씬 좋아. 그냥 여기서 살고 싶을 정도에요.”

스읍- 침까지 흘리며 안마의자에 심취한 에이미는 옆에 놓인 아이스커피를 쭈욱 빨아 당겼다.

“……미쳤어. 여긴…… 천국이 분명해요. 아! 파티장님도 좀 앉으시는 게 어떠세요?”

눈을 빛낸 에이미가 옆에 의자를 손짓으로 가리키자. 신유성은 결국 앉고 말았다.

드드드.

에이미의 말처럼 안마의자의 리듬에 맞춰 점점 녹아내리는 몸. 눈치가 빠른 에이미는 신유성에게 바나나 우유까지 건네주었다.

“에이미. 네 말이 맞아. 이건 정말…….”

그렇게 신유성이 천국을 즐기고 있을 때, 스미레는 부실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왔다.

“펴, 편히 드실 수 있게. 샌드위치로 준비했어요! 그때 드셨던 치킨보다는 맛이 없겠지만…….”

스미레가 눈치를 보며 접시를 가져오자. 샌드위치를 본 에이미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오오! 샌드위치에 돈가스가 들어있네? 주방에서 혼자 만든 거야? 완전 대박!”

명품들로 가득 찬 부실.

안마의자에 앉아 바나나 우유와 돈가스 샌드위치를 먹는 건 신유성에게 비교할 바 없는 힐링이었다.

“후. 근데 긴장되지 않으세요? 내일이 선발전의 출전인데……. 일단 그 아델라가 나오잖아요!”

지금까지 무패의 전적.

아델라는 S급 특성을 가진 학생들 중에서도 단연 최강의 1학년이었다.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한 상황. 에이미는 안마의자에 누워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소식을 듣자하니까. 이노 아카데미의 대표도 장난이 아니래요! 아, 헤헤…… 물론 파티장님한테는 한 주먹 거리겠지만요.”

에이미는 신유성을 바라보며 눈썹을 위아래로 으쓱거렸다. 에이미의 말처럼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실력자들이 출전하기에 선발전의 인원들은 강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신경쓰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어.”

신유성은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전부 쏟아내고, 모두에게 실력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마침 지금의 신유성은 투신류의 4장을 깨우쳐 어느 때보다 강했다.

상대가 어떤 특성을 가졌더라도 신유성은 권왕과 갈고 닦은 자신만의 무기가 있었다.

“……난 최선을 다 할 테니까.”

안마의자에 앉은 신유성의 진지한 이야기. 에이미도 신유성을 진지한 얼굴로 바라봤다.

“진동으로 목소리가 떨리는데. 그렇게 멋있는 이야기를…….”

왜인지는 몰라도 에이미는 신유성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저랑 같이 방송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이 외모에 그 정도 캐릭터면…….”

둘의 대화를 구경을 하던 스미레는 샌드위치를 집으며 조곤조곤 중얼거렸다.

“저, 저도 신유성 씨의 누가 되지 않게……. 더 열심히…….”

그리곤 자신의 비어있는 약지를 보며 실실 웃음을 흘리는 스미레.

“흐힛…….”

각자 힐링의 방식은 달랐지만 신유성에겐 선발전의 전날에 파티원들끼리 보내는 알찬 휴식이었다.

*     *      *

에메랄드로 빛나는 아름다운 엘니도의 바다. 아델라가 유유히 바다 위를 걷자 발이 닿는 표면이 얼기 시작했다.

츠즈즈즛.

그런 아델라를 노리고 바다의 깊은 곳에서 점점 수면으로 올라오는 거대한 무언가.

콰아아앙!!

아델라의 앞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며 고래만 한 물고기가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첨버어엉!!

고수의 정체는 4급 보스. 타이쉬.

빌딩만 한 크기의 물고기로 던전을 벗어나 필리핀 엘니도의 바다에서 온갖 해양생물을 잡아먹으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바다에 가라앉은 타이쉬가 몸을 숨겼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괴수의 습격.

퍼어어엉!

타이쉬는 다시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위로 뛰어 올랐다. 저 어마어마한 덩치가 만들어낸 파도에 휩쓸린다면 바다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

그그그그!

아델라는 다가오는 파도를 보며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사아악!

아델라의 손에서 퍼져 나가는 차가운 한기.

쩌어어억!

순간 파도가 얼어붙었다.

아니, 타이쉬를 포함한 주변의 바다 전체가 빙하처럼 얼어붙었다.

프슷! 프스슥!

타이쉬는 얼어붙은 꼬리를 흔들며 빠져나가려 몸부림을 쳤지만 무의미한 반항이었다. 유유자적 천천히 걸어간 아델라가 타이쉬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쩌적!

공략은 그걸로 끝.

타이쉬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너무나도 강한 능력. 아티팩트인 만년빙정을 흡수하며 아델라는 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이게 바로 아델라가 파티원을 동반하지 않는 이유.

멍한 얼굴로 아델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델라가 풍경에 가진 감상은 없었다.

무감한 얼굴로 포탈을 통과해 복귀하는 아델라. 담당교사인 소해정은 포탈존에서 이미 아델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6분 22초라…… 신기록인걸?”

소해정의 칭찬에도 아델라는 담담하게 답했다.

“4급 보스였으니까요.”

“현역도 힘든 보스를……. 그렇게 쉽게 말하다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해정도 알고 있었다. 출몰한다면 도시 전체에 경계 발령이 내려지는 4급 보스조차 아델라는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선발전에서 아델라의 상대는 신유성. 소해정은 아델라를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이번에도 이기면. 이탈리아로 돌아갈 생각이지?”

소해정의 질문에 아델라는 대답이 없었다. 아델라가 한국으로 온 건 어디까지나 강한 상대를 만나고,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신유성마저 이겨버리면 더 이상 한국에는 아델라의 상대가 없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델라의 담담한 대답에 소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정해진 건 아니지만 왠지 그럴 거 같았어.”

섭섭한 감정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해정은 아델라의 갈증을 가온의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해정.

그녀는 아델라에게 선발전의 참가증을 건네며 웃었다.

“근데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마치 신유성의 승리를 장담하는 듯한 말투. 소해정의 단호한 목소리에 아델라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교수님은 제가 선발전에서 패배할 거라 생각하시나요?”

아델라의 질문은 자만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 아델라는 신기했다. 소해정은 물론 누구도 아델라의 패배를 확신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 아이는 네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었거든.”

이건 소해정이 한명의 헌터로서 느낀 감이었다. 헌터는 패배를 겪어도, 굴하지 않고 수많은 시련을 넘겨야 강해진다.

넘어져야봐야 일어서는 법을 알 수 있다. 짧은 대화였지만 신유성에겐 그런 모습이 보였다.

누구보다 잘 정제된 마나와 완벽에 가까운 신체. 그건 절대 보통의 수련으론 만들어낼 수 없었다.

한계를 뛰어 넘는 가혹한 수련의 결과물이었다.

‘아마도. 그 힘든 과정을 참아낼 수 있었던 건…….’

목표.

그 이유까진 알 수 없었지만 소해정이 본 신유성의 눈에는 뚜렷한 갈망이 보였다. 모든 게 무감해진 아델라는 절대 가져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교수님 말씀대로…….”

아델라는 참가증을 집어넣더니 출구를 향해 걸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요.”

*     *      *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외곽.

낡았지만 역사가 오래된 술집에는 근육질의 두 남자가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웃음으로 변하는 둘의 입가. 은발의 남자는 반가움에 쩌렁쩌렁 소리를 쳤다.

“Perché è così tardi!?(왜 이렇게 늦었어!?)”

“크하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생각보다 제자를 키우는 맛이 너무 쏠쏠하지 뭐냐!”

목소리의 정체는 최강의 헌터라 불리는 권왕이었다. 그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이름은 아덴 오르텐시아. 그는 공용어가 된 유창한 한국어로 권왕에게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10년을 넘게 연락이 없다니. 참으로 섭섭한 일이군.”

아덴이 은은하게 웃으며 잔에 브랜디를 따르자. 권왕 유원학은 브랜디를 병째로 잡아 들이켰다.

벌컥벌컥!

권왕은 스윽 입가를 닦고서 아덴을 쳐다보았다.

“그것보다! 너도 네 손녀를 꽤 괴물로 키워놨더구나.”

“……아, 아델라의 이야기인가?”

아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애석하게도…… 그 아이에게 내가 가르친 건 없네. 만약 가르쳤어도 기본기에 불과하지.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강했거든.”

아덴의 이야기에 유원학은 빈 잔에 콸콸- 술을 따라주며 흥미롭다는 얼굴로 경청했다.

“그럼 어디 네놈 손녀 자랑 좀 들어보실까?”

“하하, 이 친구 설마 염탐이 목적이었나?”

“크하하! 거창하게 목적까지야! 난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네 손녀와 나의 제자!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말이야!”

유원학이 호탕하게 웃자. 아덴은 잔을 기울여 품위 있게 브랜디를 마시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그냥 천재라네. 5살에 이미 특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지.”

“그거 참 흥미롭군. 하지만 특성이 잘난 헌터들은 널리고 널렸다. 네가 호들갑을 떨 정도라면 그 이상의 잠재력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유원학의 이야기에 아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말대로 특성이 강한 헌터는 세계에 널렸지. 하지만 특성의 응용력은 대부분 경험에서 오지 않는가?”

“그렇지. 현역에서 쌓인 경험이 중요한 순간에 헌터의 승패를 좌우하니 말이야.”

권왕이 인정을 하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자. 아덴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델라는 그 경험의 단계가 필요하지 않았네. 마치 태어난 순간부터 알고 있는 듯 했네.”

“……태어난 순간부터 알고 있다?”

유원학의 눈에 진지함이 깃들었지만 아덴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래. 처음 보는 공격의 패턴에도 아델라는 손쉽게 대비했네. 당황조차 하지 않고 말이야.”

이야기를 하던 아덴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게 7살 때의 이야기였지. 상상이 가는 가?”

아덴의 이야기가 끝나자. 권왕은 피식 웃었다.

“그것 참 대단하군. 허세가 아니라면 꽤 까다로운 상대가 되겠어.”

“……아무리 너의 제자라도 아델라의 상대가 되는 건 벅찬 일이야.”

아덴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덧 붙였다.

“그 아이는 헌터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네. 나조차 그런 재능은 본적이 없으니 말이야.”

“크하하! 그건 붙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 유성이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네가 직접 봐야…….”

이번에는 유원학이 신유성의 칭찬을 꺼내려고 하자. 아덴은 말을 끊어버렸다.

“아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네. 아델라. 그 아이를 본 순간 난 알고 말았거든. 천재 위에 천재가 있다는 것을 말이야.”

“아니 글쎄 우리 유성이는 9살에 이미 2급 괴수를…….”

유원학이 다시 제자의 자랑을 늘어놓으려하자. 이미 손녀 자랑에 심취한 아덴은 또 말을 끊어버렸다.

“정말이지. 우리 아델라는…….”

“아니! 이놈이!”

결국 호통을 치는 유원학.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두 헌터는 서로 손녀와 제자의 자랑을 하며 오래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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