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1화 (61/434)

제61화

아종 여울룡을 처치하고 귀환한 신유성의 파티. 서류를 확인한 메이린은 가늘게 웃었다.

“……역시 손쉽게 처리했군.”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메이린은 품위 있는 손짓으로 어딘가에 연락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메이린의 자세는 한없이 공손해졌다.

“아, 네! 네! 맞습니다. 말씀대로 전부 처리하고. 이제 막 마무리 됐습니다.”

학원도시의 관리자라기엔 초라한 모습.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무려 헌터 협회의 정점인 강유찬. 메이린은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네……. 알겠습니다.”

- 껄껄! 나는 유성이가 성공할 줄 알고 있었지! 권왕이 유성이를 키운 걸 보면 역시 성격은 괴짜라도 내 라이벌이 맞단 말이지.

강유찬은 입이 닳도록 신유성의 칭찬을 하더니. 메이린에게 은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 아,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일본에서 원정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나 특이한 던전이던데 말이야.

“일본은…… 혹시 몽마의 성. 말씀이십니까?”

메이린의 대답에 강유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건 어지간하면 우리 유성이에게 주도록 하게. 헌터들에겐 경험이 무기! ……다른 나라에 원정을 가는 것도 큰 경험이 되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원정도 최대한 신유성 학생에게…….”

- 껄껄! 그거 좋군! 유성이에게는 선발전이 끝나고 말해주도록 하게. 어차피 국가대항전까지 시간이 넉넉하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메이린의 대답을 끊으로 연락이 끊어지자. 메이린은 긴장이 풀려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직급이 높은 메이린이라도 상급자인 강유찬을 맞상대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

그런데 신유성과 관련된 일이라면 강유찬이 계속 안부를 묻는 덕분에 메이린은 매일 같이 연락을 하고 있었다.

‘협회장님께서 뒤를 봐주는 학생이라니. 거기다 스승은 권왕…….’

이렇게 배경이 뛰어난 헌터가 있을까. 덕분에 관리자인 메이린마저 신유성은 까다로운 상대였다.

‘……일이 늘었지만 어쩔 수 없지. 선발전이 끝나는 대로 신유성에게 접촉해봐야겠군.’

*     *      *

현대의 왕족. 신성그룹의 대저택.

이제 김은아는 익숙해졌지만 대저택의 부지는 가온 아카데미와 맞먹는 크기를 자랑했다. 저택은 덕분에 입구부터 저택의 본관까지도 차가 없으면 도착이 힘들 정도였다.

타악.

기다란 리무진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내리는 김은아. 이수현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

“4급 보스의 공략 성공.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후훗, 소문으론 아티팩트도 얻으셨다고…….”

“아, 그거? 뭐~ 별 거 아니었어! 근데 내가 외출권까지 쓰고 왔는데 아빠랑 할아버지는?”

별 거 아니라는 말과 달리 김은아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회장님은 30분 전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회장님께서는 오늘 오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

김은아의 얼굴에 감도는 미묘한 아쉬움. 하지만 김은아는 애써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아빠는 일 때문에 바쁘니까.”

김은아가 야외의 파티장으로 향하자. 회장인 김석한을 비롯한 신성그룹의 일원과 친척들이 김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 우리 귀여운 은아가 왔구나! 얼른! 이 할아버지 옆에 앉으려무나. 우리 강아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철혈의 김석한이 바보처럼 웃자. 신성그룹의 친척들은 모두 눈치를 살폈다.

“은아야~ 할아버지가 널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자랑을 하셨는지.”

친척 중 하나가 운을 띄우자.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 할아버지 그런 말 좀 그만해. 나 창피하다니까.”

“허허허! 그래도 이 할애비는 우리 강아지가 제일 자랑스러운 걸 어떡하나?”

김석한이 김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자. 김은아는 뿌듯한 얼굴이 된 채 등을 곧게 폈다.

“뭐, 이번에는 대단했긴 하지! 상성인 보스도 잡고. 나 아티팩트도 얻었으니까.”

저택의 식사는 이미 김은아의 재롱잔치로 변해버린 상황. 김은아는 포켓에서 새롭게 얻은 아티팩트 뇌룡의 보주를 꺼냈다.

“관계자한테 물어봤는데. 사탕처럼 먹으면 된대. 유성이가 나한테 양보해줬어.”

손녀인 김은아의 자랑에 김석한은 마음이 따스해지고 있었다.

‘……신유성. 역시 얕볼 수 없는 녀석이야. 꽤나 라인을 탈줄 아는 놈이란 말이지.’

김석한이 나중에 신유성에게 한몫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김은아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벌레가 많긴 했는데. 생각보단 외박도 재밌더라? 텐트가 좁은 건 흠이었지만.”

별 생각 없는 김은아의 말에 김석한을 비롯한 일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친척 중 한 명은 김석한의 표정을 살피더니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 그, 그럼 회장님! 음식이 식기 전에 이제 식사를…….”

스윽.

손바닥을 내밀어 제지하는 김석한.

“……허허. 그, 그게…… 무슨 말이더냐 은아야? 텐트라니?”

한없이 인자한 김석한의 물음에 김은아는 포크로 음식을 집으며 대답을 했다.

“아! 그거! 아니, 나도 남자랑은 한 텐트에서 절대 못 잔다고 했는데…….”

김은아는 뒤늦게 문제를 깨달았는지 표정이 굳었다.

“얘가 텐트를 하나만…….”

우물우물.

김은아는 일부러 랍스터 샐러드에 고개를 고정하고 김석한의 시선을 피했다.

“이거 괜찮네! 할아버지 우, 우리 걍 식사나 하지!?”

김은아는 샐러드가 마음에 든 모양. 김석한은 최대한 자신을 억누르며 부드럽게 물었다.

“그, 그래! 먹자꾸나! 근데 은아야. 그래서…… 외박을 텐트에서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아, 아니! 근데 뭐 밖에서 잘 순 없으니까! 그, 그리고 스미레라고 다른 여자애도 있었어! 걱정하지 마! 별일 없었다니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점점 얼굴이 붉어지는 김은아. 김석한은 흉흉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감히 신성그룹의 후계자인 금쪽같은 손녀딸과 텐트에서 외박. 그것도 다른 여자 인원까지 있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김석한의 눈에 신유성은 음흉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신유성! 이놈-!’

김석한은 오늘부로 신유성의 이름 세 글자를 다시 갈아 새겨 넣었다.

16594418497882.jpg 

*     *      *

교장의 편애.

부실을 구매하려면 아직 SP가 부족했지만 이번 교외 활동과 선발전을 이유로 신유성은 진병철에게 모자란 SP를 전부 지원 받았다.

‘……그래도 돈을 모으는 건. 더 고생을 할 줄 알았는데.’

텅 비어 있는 동아리의 부실.

누가 버리고 간 낡은 의자에 앉아 신유성은 생각에 빠졌다.

“으음…….”

2천만 원은 1200원짜리 바나나 우유를 약 16000개를 사고도 남는 돈이다. 그러니 하루에 3병을 10년 이상 마셔도 남는 숫자.

그럼 4억은 얼마나 큰돈인걸까.

[입금 금액 : 400,000,000]

[총 예금 잔액 : 422,523,000]

신유성은 심각한 얼굴로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4억을 아무렇지 않게 줄 정도라니.  물론 신유성은 거절했지만 김은아는 단호했다.

[야, 빨리 받아. 누가 아티팩트 때문이래? 난 싸구려 부실에선 못 지낸다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은아는 신유성을 챙겨주는 게 분명했다. 파티가 활동하려면 부실이 필요하고, 부실을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SP와 돈이 든다.

물론 신유성은 진병철의 무한한 푸시 덕에 SP가 넘쳐흘렀지만 돈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확실히 걱정은 덜었네.’

그 부담을 김은아가 덜어준 것.

신유성이 부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자. 누군가 문을 열었다.

“여기로 정했구나?”

가온의 교사 중 하나인 소해정.

그녀는 감회가 새로운 듯 부실을 둘러보며 옅게 웃었다.

“햇볕도 잘 들어오고.”

이곳은 그녀가 졸업을 하기 전에 사용했던 부실. 늘 사무적인 소해정도 오늘만큼은 감성적인 기분에 취해 있었다.

“……제법 괜찮은 부실이지.”

신유성도 부실의 밝은 일조량이 마음에 들었다.

“네 여기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신유성이 결정을 내리자. 소해정은 서류에 무언가를 적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졸업할 때까지 여긴 네가 사용해도 괜찮아. ……그런데 정말 대단하네. 졸업반도 얻기 힘든 개인 부실을 1학년이 얻다니.”

소해정의 이야기는 칭찬이 아닌 감상이었다. F급 특성을 가졌지만 입학하자마자 세븐넘버가 되고. 가장 약한 F반을 승리시키고. 교외 활동에서까지 활약을 보였다.

소해정도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 학생은 처음이었다.

“계속 열심히 해. 넌 아무리 봐도 큰일을 할 거 같거든.”

훈훈한 분위기.

“감사합니다. 소해정 교수님.”

신유성이 이름을 불러주자. 소해정의 사무적인 표정에도 옅게 흐뭇한 기운이 감돌았다.

“……담당도 아닌데. 이름을 기억하고 있네?”

소해정은 파티원의 명단을 훑더니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재주도 좋다? 이 말괄량이를 파티원으로 넣고.”

말괄량이는 김은아의 이야기였다. 배경과 능력이 좋고, 성격이 강한 김은아는 교수인 소해정조차 컨트롤하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곧 선발전이라지? 그럼 아델라와 겨룰 테고?”

소해정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주제는 소해정이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굳이 직접 신유성을 찾아온 이유였다.

“아델라는 내 담당 학생이거든.”

씁쓸하게 웃은 소해정이 안경을 벗었다.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녀는 신유성을 똑바로 쳐다봤다.

“난 네가 꼭 이기면 좋겠어.”

소해정의 이유는 복잡했다.

신유성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소해정은 담당 학생인 아델라에게 더 많은 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소해정은 신유성의 승리를 원했다.

“그 아이는 강하지만. 보고 있으면 어딘가 위태위태하거든…….”

신유성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자. 소해정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금 그 아이는 모든 게 지루한 거야. 새로운 적이 나타나지 않는 시시한 게임 같은 거지.”

지금의 신유성은 공감할 수 없었다. 권왕의 곁에 있으며 신유성은 아무리 강해져도 새로운 배움이 있었고, 새로운 적이 있었다.

강해질수록 최강이라는 자리는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아델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목표를 잃고 말았다.

목표에 몰입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강함을 알고 말았다.

지금의 아델라에게 그녀가 가진 무패의 기록은 새롭지도 명예롭지 않았다. 그저 지루하고 시시했다.

소해정은 흐릿한 시야에도 신유성과 눈을 맞추려고 했다.

“……물론 난 평범해서 천재의 외로움 같은 건 모르지만.”

무표정해서 무섭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의 진심이 신유성에게 닿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외롭다는 건 알아.”

소해정이 어딘가를 보며 씁쓸하게 웃자. 신유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담담한 신유성의 대답에 소해정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교수인 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지만. ……넌.”

그렇게 말한 소해정은 신유성의 옆을 똑바로 쳐다봤다.

“첫 시험에 학년 랭킹 3위. 반 대항전의 승리. 협회에서는 더블 공략. 거기다 빌런의 체포까지……. 뭣 하나 빠지는 게 없었어.”

소해정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델라는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천재라는 이름으로도 부족한 천재들의 천재. 아델라는 가히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아델라에게 필요한 건 작은 계기. 소해정은 교수로서 신유성에게 진심으로 부탁했다. 

“분명 너라면 가능할 거야. 아니, 가온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 건 너밖에 없어.”

심각한 소해정의 이야기에 신유성은 떨떠름하게 미소를 지었다.

“교수님. 전 여기…….”

“아. …‥그래? 크흠! 내가 눈이 나빠서…‥.”

자신이 지금까지 허공을 보고 이야기했다니. 당황한 소해정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충분히 신유성에게 전해져 있었다.

평소엔 무뚝뚝해 보이는 소해정도 학생들을 위하는 좋은 교수. 그 모습에 신유성은 권왕을 떠올리며 힘차게 답했다.

“네. 제가 이기겠습니다.”

물론 아델라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소해정의 부탁이 없었어도 신유성은 줄곧 달려온 자신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