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8화 (58/434)

제58화

상상도 못한 지네의 기습.

김은아는 얇은 이불 안에 틀어박혀 마치 스미레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이, 이불 밖은…… 이불 밖은 위험해…….”

“으, 은아 씨? 지, 진정하세요! 지네는 제가 치웠어요!”

스미레가 달래려고 하자. 김은아는 슬쩍-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투정을 부렸다.

“누, 누가 모른대? 그냥 찝찝해서 그러지……. 여긴 왜 이렇게 벌레가 많아? 그리고 왜 하필 다 지네인거냐고. 다리도 엄청 많은…….”

“그래도 색깔은 은근 예쁘지 않나요? 알록달록한 게…….”

스미레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하자.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오! 예쁜 게 다 얼어 죽었냐?”

스미레는 멋쩍게 웃더니 김은아의 옆에 누웠다. 슬슬 잘 준비를 마친 상황. 김은아는 입구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얘는 뭘 하고 오는데 이렇게 늦어?”

“그, 좀 늦, 늦으실 거 에요. 신유성 씨는 이 시간에…… 꼭 수련을 가시니까.”

“참 부지런도 하네. 먼저 자긴 그래서 기다려주는 구만.”

계속 투정을 부리는 김은아.

스미레는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김은아를 바라봤다.

“……그럼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려드릴까요?”

은은하게 웃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스미레.

“뭐, 뭔데?”

처음 보는 스미레의 분위기에 당황하는 김은아. 스미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저희가 지금 있는 에버라인 산에는 신기한 전설이 있다고 해요. 아, 알고…… 계신가요?”

꿀꺽.

괜히 무서워져 꿀꺽- 침까지 삼킨 김은아는 고개를 저었다.

“모, 몰라…….”

“전 일본에서도…… 들은 이야기라.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목소리를 흉내 내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말조차 더듬지 않고 음산하게 웃는 스미레. 김은아는 슬쩍- 스미레에게서 멀어지며 몸을 향해 이불을 잡아당겼다.

“목소리를…… 흉내 내는 귀신?”

“……네. 밤이 되면 산을 방황하며 돌아다닌대요. ……사람들을 찾아서 계속요.”

사아악.

음산한 바람이 텐트를 스쳤다.

평범하게 나뭇잎과 풀들이 춤추는 소리가 김은아는 오늘따라 소름이 끼쳤다.

“왜? 대체…… 왜? 찾는데?”

“목소리를. 빼앗기 위해서.”

스미레의 싸늘해진 눈.

평소와 달리 스미레는 말조차 더듬지 않고 김은아를 바라보았다.

“……그 귀신은 이렇게 저희처럼 밤에도 산에 남은 사람들이 있으면. 익숙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친근하게 부른데요.”

저벅저벅.

스미레의 괴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텐트 밖에서 누군가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스미레?”

텐트 밖에서 스미레를 찾는 신유성의 목소리.

“히, 흐이익!”

스미레가 분위기를 잡는 것도 포기한 채, 울상이 되자. 김은아는 이불을 내팽개치고 스미레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아!! 이거 뭐냐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김은아.

“지, 진짜 있었어!!”

김은아에게 안긴 채, 눈을 크게 뜨는 스미레.

“뭐어!? 네 이야기 듣고 찾아온 거 잖아아!!”

김은아는 얼굴이 창백해져 소리를 질렀다. 김은아에게 만약 벌레가 싫어하는 존재라면. 귀신은 무서운 존재였다.

“은아야?”

텐트 밖에서 신유성이 김은아의 이름을 부르자. 김은아는 질색을 했다.

“너, 너! 귀신 아니지!? 유성이지! 그렇지!?”

“……귀신이라니. 무슨 소리야? 지금 들어간다?”

신유성은 차분하게 대답하더니. 텐트의 지퍼를 내렸다.

드드득!

입구가 열리며 쏟아지는 시원하고 서늘한 바람.

“여, 역시! 유성이였잖아!”

김은아는 신유성을 확인하자 자신의 자리로 재빨리 데구르르- 굴러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신유성이 자신의 이불을 꺼내며 묻자. 김은아는 이불에 숨어 헛기침을 했다.

“크흠! 됐어. 별 거 아니야.”

“은아 씨는 보기보다…… 겁이 많으시네요.”

“……조용히 해라?”

벌써 친한 듯 보이는 김은아와 스미레. 파티장인 신유성은 둘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그럼 이제 슬슬 잘까?”

신유성이 텐트에 걸린 램프에 다가가자. 김은아는 괜히 엄포를 놓았다.

“……야. 미리 말하는데. 이상한 짓하면 알지?”

“신유성 씨는 절대 그런 분이…….”

이번에도 반박을 하는 건 스미레.

김은아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고 스미레를 째려보았다.

“아오! 넌 조용히 해!”

“……헤헤.”

이번에는 놀라는 대신 웃어넘기는 스미레. 신유성은 램프의 불을 끄며 하루의 끝을 고했다.

“그럼 모두 수고했어.”

팟!

불이 꺼지고 암전된 텐트 안에서 김은아는 작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니들도 잘 자라.”

신유성. 김은아. 스미레는 각자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 셋은 어엿한 파티였다.

*     *      *

신성그룹 회장의 사무실.

회장 김석한은 해가 저물었지만 여전히 업무에 미쳐 있었다. 나름의 철학. 김석한은 지금의 사업체를 만들고 다듬은 건 오직 자신의 열정이라 믿고 있었다.

밤이 지새도록 꺼지지 않는 사무실의 불. 보고를 마친 이수현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회장님.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가보도록 하게.”

김석한의 허락에 방을 나가려는 이수현. 하지만 김석한은 뒤늦게 질문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우리 은아 소식을 못 들었군. 교외 활동을 나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가씨께선. 신유성 학생과 함께 협회의 학원 지부에서 몬스터 헌팅을 하고 계십니다.”

이수현의 설명에 김석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지. 하지만 이제 기숙사로 복귀했을 거 아닌가?”

“이번 몬스터 헌팅의 일정은 1박 2일입니다.”

이수현의 담담한 이야기에 김석한은 표정이 굳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핏기가 사라져 창백해진 얼굴의 김석한.

“외, 외, 외박! 우, 우리! 우리 은아가! 외박이라도 한단 말인가!?”

김석한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내려치자. 이수현은 움찔! 몸을 떨며 칼같이 대답을 했다.

“네!? 네네! 그, 그렇습니다만!?”

“아니!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우리 은아한테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알고! 외박! 외박이라니!!”

충격적인 외박 소식과 함께 신유성의 호칭은 ‘잠재력 넘치는 헌터’에서 ‘놈’이 되어 있었다.

“아니! 자네는 우리 은아를 안 말리고 뭐했나! 어!?”

늘 냉정했던 김석한이 호통을 치자. 이수현은 삐질-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하, 하지만…… 몬스터 헌팅은 최소 1박 2일 일정이 기본입니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10대 남자애! 아니! 그냥 남자란 놈들은 다 짐승들이나 마찬가지란…….”

김석한은 한참이나 떠들었지만 이수현은 억울했다.

‘아니 지가 간다는 걸 어떻게 해? 내가 말려?’

하지만 정작 신유성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도와주며 옆에서 부추긴 건 이수현 자신이었다.

만약 그 사실을 들킨다면 손녀 바보인 김석한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절대로 멀쩡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은아는 아직 어리니까! 더 자네가 만류 했어야지! 어찌  남녀가 유별한데 벌써부터 외박이라니!? 그리고 그 나이에는 가을바람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재계 정점. 철혈의 사나이에 설교. 이수현은 정말이지 정신을 놓고 싶었다.

‘제발 퇴근이나 시켜주세요.’

*     *      *

야생에서의 숙박.

본래 신유성은 잠을 자고 있어도 감각을 예민하게 열어뒀다. 무신산에서의 생활로 생겨난 버릇.

하지만 오늘 신유성의 잠을 깨운 것은 적의 기습이 아니었다.

“으, 으……. 가지…….”

시름시름 앓는 누군가의 잠꼬대.

눈을 뜬 신유성은 눈에 마나를 부여했다. 그러자 천천히 밝아지는 시야. 그제야 신유성은 괴로운 얼굴로 자신에게 안긴 김은아가 보였다.

“으, 윽…….”

무슨 꿈을 꾸는지는 몰라도 식은땀을 흘리는 김은아. 이불을 이리저리 걷어찬 잠꼬대를 보니 악몽이 분명했다.

‘……오빠와 관련된 꿈이겠지.’

신유성이 처음 본 김은아는 강했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는 강한 척하고 있었다. 그게 지금까지 유지해온 김은아의 방식.

하지만 정작 신유성이 가까워지며 알게 된 김은아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오빠를 위해 빌런에게 항복하고, 신유성에게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부탁할 정도로. 김은아의 속마음은 연약했다.

“……가지, 마.”

꽈악-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신유성의 옷을 움켜쥐는 김은아. 신유성은 어쩔 수 없이 부드럽게 김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김은아의 오빠인 김준혁이 정말로 이렇게 해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신유성은 나름의 추리로 흉내 낼 뿐이었다.

16594418364138.jpg 

스윽.

그제야 옷을 움켜 쥔 손에 힘을 빼는 김은아. 신유성은 가볍게 김은아를 들어 스미레의 옆자리에 놓아주었다.

본의 아니게 김은아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됐지만 새로울 건 없었다. 신유성은 누구나 마음속에는 말하지 못할 상처가 있다고 믿었다.

강하다고, 늘 강할 수는 없었고.

괜찮다고, 늘 괜찮을 수는 없었다.

‘상처라는 건. 몸에만 쌓이는 게 아니니까.’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이불을 덮은 신유성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김은아에 대해 생각했다.

‘……근데 은아는 정말 잠꼬대가 심하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