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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56/434)

제56화

솜씨 좋게 피운 모닥불.

김은아는 여울룡을 놓친 게 분했는지 뚱한 얼굴로 불 앞에 앉아 있고, 스미레는 힐끔힐끔 옆에 앉은 신유성을 흘겼다.

‘시, 신유성 씨가 내 옆자리…….’

스미레가 기분 나쁘게 입술을 이죽거리며 실실 웃고 있는 동안. 김은아는 패배의 원인을 신유성에게 털어 놓았다.

“……야, 이번에 나온 여울룡. 아종이더라. 그것도…… 전기 내성.”

신유성은 이제야 김은아가 여울룡을 놓친 이유가 납득이 갔다. 극한의 확률을 뚫고 나온 여울룡의 아종이 하필 전기 내성이라니.

운이 나빠도 너무 나쁜 상황.

신유성은 모닥불을 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었네.”

사실 김은아의 사례는 권왕이 누누이 말한 ‘특성에 의존하는 요즘 헌터들’의 폐해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특성에 의지하는 대신 타고난 체질을 바탕으로 권왕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덕분에 특성에 의지하지 않아도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 여울룡의 서식지를 알아냈잖아?”

“마. 맞아요! 이제 신유성 씨도 같이 있으니까! 부, 분명…….”

스미레의 위로에 김은아는 다리에 붙여진 반창고를 스윽- 눈으로 훑더니 한결 풀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멀쩡해.”

아무래도 김은아는 내심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은빛부리와 아종 여울룡을 만나며 계속 특성이 무력해졌으니 그럴 만도 한 상황.

“쩝…….”

김은아가 분한 듯 입맛을 다시며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스미레는 포켓에서 조리도구와 음식 재료를 하나씩 꺼냈다.

“그, 그래도 맛있는 걸 먹으면 좀 기분이 나아질 게 분명해요!”

쫑긋.

음식 이야기에 반응한 신유성은 스미레를 바라보았다.

“내가 도와줄 게 있을까?”

빠른 조리를 위해 신유성이 돕기로 하자. 스미레는 얼굴을 붉혔다.

“아, 그, 그럼! 채소 써는 걸! 부탁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신유성이 옆에서 돕기 시작하자. 스미레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질끈 물었다.

‘내, 내가…… 신유성 씨랑…… 같이, 요, 요리를!’

남녀가 같이 저녁을 준비한다니.

모닥불에 냄비를 올린 스미레의 망상은 점점 커져갔다.

“흐, 흐흣! 흐흐…….”

이미 망상 속에선 신유성의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는 스미레. 김은아는 공주 취급이 익숙한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포켓으로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은아는 턱을 괸 채 스미레와 신유성 둘을 바라봤다.

“내, 냄비에 버터를 두르고…… 야, 양파가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점점 볶다가…….”

“내가 대신 볶고 있을까?”

“아, 가,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다른 재료를…….”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스미레와 신유성.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은아는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재밌어 보이네.’

미묘하게 느껴지는 소외감.

지금까지의 김은아는 남들과 어울려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감히 김은아에게 무언가를 시키거나 부탁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익숙한 상황에도 김은아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이제 지금처럼 고기를 볶다가 물을 넣고 치킨스톡과 고체 카레를 넣고…….”

스미레는 중얼거리며 온갖 재료들을 넣고 있을 때, 김은아는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야, 뭐…… 나도 할 거 없냐? 걍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더라.”

결국 카레로 눈을 흘기며 넌지시 묻는 김은아. 스미레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김은아를 바라봤다.

“으, 은아 씨가…… 요리를 도, 도와주신다고요?”

“……왜 그렇게 신기하게 보는데.”

“하지만 소문으론…….”

“소문으론 뭐?”

스미레는 김은아의 눈빛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파티원이 된 김은아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세 명이서 제 각각의 몫을 해내어 완성시킨 카레.

스미레는 새하얀 그릇에 신유성의 몫을 담아주며 말했다.

“이건, 신유성 씨의 몫……. 아, 그, 그리고! 밥이랑 카라아게는 집에서 미리 만들어왔어요!”

스미레는 음식 보관 키트에서 잘 튀겨진 치킨 카라아게를 꺼냈다. 배달치킨에 패배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치킨 카라아게였다.

“카레랑 같이 드시면…… 마, 맛있고 정말 잘 어울려요.”

스미레가 신유성의 카레 위에 조심스럽게 치킨 카라아게를 올리자. 신유성은 조심스럽게 카레를 숟가락으로 퍼 올렸다.

마치 승부를 하는 듯 집중한 얼굴로 숟가락을 바라보는 스미레.

우물우물.

신유성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스미레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꿀꺽.

결전의 순간. 카레를 삼킨 신유성.

“이건…….”

신유성의 평가가 시작되려하자 스미레는 꿀꺽- 침을 삼켰다. 사실 오늘의 레시피는 스미레가 필승을 위해 준비해온 회심의 카레.

스미레가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 신유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맛있어.”

신유성의 심플한 한마디.

하지만 스미레의 얼굴에는 모처럼 붉은 기운이 번져나갔다.

“그, 그럼! 그때…… 신유성 씨가 드신 치킨보다도 제 카라아게가?”

스미레는 며칠 전 도시락의 패배를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스미레에게 그때의 기억은 이미 트라우마.

“음…….”

신유성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카레를 합치면 이쪽이 더 맛있는 거 같아. 하지만 단순히 튀김은…… 치킨 쪽이 아주, 아주 조금 더…….”

미안함에 웃고 마는 신유성.

스미레는 신유성의 답변과 동시에 그 자리에 돌이 되어 굳어버렸다. 아무래도 배달치킨의 자극적인 맛은 신유성에게 강렬했던 모양.

“치, 치…… 치킨. 하, 하긴 정말  ……맛있었죠. 그거…….”

결국 스미레는 울상이 된 얼굴로 하하- 하고 억지로 웃었다.

한편 둘의 반응을 본 김은아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숟가락으로 카레를 떠올렸다.

‘……뭐, 나도 배고프니까. 먹을 만은 하겠지.’

신성그룹의 일원으로 어린 시절부터 온갖 산해진미를 먹어온 김은아였다. 김은아는 스미레의 카레에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냠.

하지만 카레를 입에 넣은 김은아는 평소보다 눈이 커졌다.

‘……어?’

스미레의 카레는 김은아가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카레보다 맛있었다.

‘……뭐야.’

힐끔.

김은아가 신유성을 눈으로 흘겼다. 어떻게 이렇게 고급스러운 맛의 수제 카라아게를 배달치킨과 비교하는 걸까. 심지어 깊고 농후한 카레와 매콤한 카라아게 닭튀김의 조화는 최고였다.

닭튀김을 씹으면 씹을수록 베어든 카레의 맛과 본연의 육즙.

가히 스미레의 카레는 김은아에게 천상의 맛이었다.

‘어, 엄청…… 맛있어.’

김은아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카레를 한술 뜨자. 스미레는 한결 풀이 꺾인 얼굴로 물었다.

“으, 은아 씨는 어떠세요? 아, 아무래도 별로시겠죠? 은아 씨는 엄청 부자시니까. 역시 이런 음식은…….”

스미레의 부름에 김은아는 움찔 몸을 떨었다. 미식(美食)의 끝을 본 김은아가 이런 투박한 카레에 반했다는 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일.

하지만 김은아는 스미레의 카레를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깎아 내리고 싶진 않았다.

“……마, 맛있네. 먹을 만해.”

김은아가 카레를 인정하고 무안함에 흠흠- 헛기침을 하자. 이번에는 스미레의 눈이 커졌다.

“저,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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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스미레의 요리는 단순히 맛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스미레의 요리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냠.

다시 카레를 우물거리는 김은아.

김은아는 스미레와 신유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파티라.’

언제부터였을까 김은아는 타인에게 벽을 치고 거리를 벌렸다. 생각해보면 김은아도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하진 않았다.

[하하! 은아양. 회장님께는 제 이야기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아야 우리 그룹에 올래? 서민들이랑 같이 노는 건 창피하잖아.]

다가오는 건 언제나 김은아 자신이 아닌 배경을 보는 사람들.

[걘 그냥 운이 좋은 거잖아.]

[하긴 집안도 특성도 타고난 거지 걔가 뭐가 대단하냐?]

[아빠한테 달려갈 줄이나 알지. 태어나서 노력 해본 적도 없을 걸?]

뒤에서는 자신을 욕하고.

[오늘 시간 있어?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저번에 내가 했던 제안 말이야.]

앞에서는 가면을 쓴 채 친한 척 다가왔다.

반복되는 상처.

어쩌면 지쳐버린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오빠까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까지 약해질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다가가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그래서 김은아는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김은아는 파티원이 되어 같이 움직이고, 상처를 치료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평소라면 유치하고 귀찮다고 치부했던 일들이 오늘만큼은 썩 나쁘지 않았다.

‘뭐…… 어차피 대항전까지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평범한 일상을 통해 김은아의 마음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신유성은 생각이 깊어진 김은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인생을 뒤바꿀 큰 변화도 시작은 작은 계기일 수 있다는 걸. 신유성은 알고 있었다.

*     *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밤이 점점 어둑해지자. 신유성은 아까 봐둔 평지에 멈춰 섰다.

“텐트 위치는 여기로 할게. 모두 상관없지?”

“네, 넷!”

스미레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신유성은 포켓에서 텐트를 꺼냈다.

파아앗!

원터치로 간편하게 펼쳐지는 텐트. 스미레와 신유성이 준비해둔 몇몇 물건을 텐트에 꺼내두자. 김은아는 멍한 얼굴로 둘을 바라봤다.

“뭐야. 내 텐트는?”

김은아의 상식으로 텐트는 1인용을 준비해 각각 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김은아의 질문에 담담하게 답했다.

“이거 4인용이야.”

아니나 다를까 신유성이 준비한 텐트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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