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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55/434)

제55화

김은아는 운이 좋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재계의 정점인 신성그룹의 일원이었고, 대한민국 최고의 잠재력 중 하나인 전기 능력을 타고났다.

예를 들면 간식에서 경품이 당첨 된다던지 하는 소소한 일이라도. 김은아의 타고난 운은 잊을 만하면 발휘됐다.

하지만 타고난 운이 늘 행운으로 흐르는 건 아니었다.

“이게 말이 되냐고…….”

에버라인 호수의 보스.

여울룡의 아종이 태어날 확률은 약 0.03% 그러나 김은아는 여울룡의 아종을 조우했다.

거기다 수많은 속성 중에 자신의 상성인 전기 저항까지 가진 보스몹을 만날 확률은 몇이나 될까?

하지만 김은아는 해냈다.

“왜 하필! 전기 내성이야!”

“크오오오!!”

쩌렁한 분노를 담아 포효하는 여울룡.

김은아는 다시 전기로 여울룡을 공격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파지직! 지지직!

여울룡의 황금빛 비늘은 전기 공격을 모조리 흡수했다. 김은아의 전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

쿠우웅! 콰앙!

땅을 내려치는 여울룡의 거대한 발톱에 파지짓- 소리를 내며 노란색 전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크윽!”

특성에 의존하는 헌터에게 해당 속성의 내성을 가진 몬스터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김은아는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뒤를 향해 달렸다.

“아아아! 진짜! 짜증나아아!!”

“쿠오오오!”

쿵쿵쿵쿵!

양발로 땅을 헤집으며 엄청난 속도로 김은아를 쫓는 여울룡.

부웅!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를 내며 발톱이 다가오자. 김은아는 재빨리 앞으로 밑으로 숙였다.

화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머리 위를 스치는 여울룡의 발톱. 이쯤 되니 김은아는 싸움 좀 하는 평범한 여고생과 전투력이 비슷했다.

“아이씨! 특성만 통해도 저딴 도마뱀은!!”

부우웅!

여울룡이 다시 손톱을 휘두르자. 김은아는 체면도 포기하고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하악! 학-! 허억!”

사족 보행으로 다다다- 속력을 내던 김은아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안쓰럽기까지 한 장면.

“쓰읍!”

김은아는 어떻게든 숲을 향해 도망쳤고, 곧이어 도착한 스미레는 김은아를 보며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으, 은아 씨!?”

“야야야! 나 죽어! 나 좀 구해줘!”

거지꼴이 된 김은아가 부리나케 달려오자. 스미레는 진지한 표정으로 여울룡을 가리켰다.

“데스나이트 씨! 부탁드려요!”

“주, 인, 님의…… 뜻대!”

퍼어억!

여울룡의 거대한 발이 데스나이트를 짓밟고 말았다.

“흐에에엑!”

스미레가 비명을 지르자. 데스나이트는 끝까지 스미레를 걱정했다.

“주인, 님! 도망가십시오!”

“데스나이트 씨-!”

눈물 없인 보지 못할 신파극.

김은아는 울먹이는 스미레를 챙겨 들고 숲을 향해 달렸다.

“이리와! 뭘 멍하니 있어!”

“그, 그렇지만! 데스나이트 씨가!”

“괜찮다고! 이미 죽은 애잖아!”

김은아가 울상이 된 스미레를 데리고 숲을 향해 몸을 숨기자. 멀리서 여울룡이 포효했다.

“크고오오오-!!”

쿵쿵쿵!

그리곤 다시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 여울룡. 아종인 여울룡은 4급 보스 수준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훨씬 상격인 5급 보스와 비견할 정도였다.

“……하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엉망이 된 김은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은 여울룡에게 전기를 흡수당해 도망조차 힘든 상황.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스윽.

눈치를 보던 스미레는 김은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어……. 괘, 괜찮으세요? 허벅지에 피가…….”

허벅지의 얕은 상처.

아무래도 김은아는 바닥을 구르면서 나뭇가지에 긁힌 모양이었다.

“……아까 좀 긁혔나?”

“그럼 빨리 치료를…….”

스미레의 걱정 어린 표정에 김은아는 고개를 돌렸다.

“됐어. 호들갑 떨 정도는 아냐. 돌아가면 치료받지 뭐.”

“그, 그건 안 돼요!”

김은아가 일어나려고 하자 갑자기 소리치며 팔을 붙잡는 스미레.

“어, 엉?”

“아,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세균이 들어가기 전에 소독을 하는 게 중요해요!”

늘 소극적인 갑자기 스미레가 강하게 나오자. 김은아는 스미레의 페이스에 휘말려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그, 그건 그런데. 나중에 나노머신으로…… 치료받으면.”

“……안 돼요. 그때까지 괴로우시잖아요.”

꾹- 김은아의 팔을 붙잡고 단호한 얼굴로 바라보는 스미레. 김은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진짜 별거 아니라니까…….”

김은아의 투덜거림에도 스미레는 진지한 눈빛으로 구급용 키트를 꺼냈다.

“가, 가장 처음은 상처 부위를 알코올 솜으로 소독해야 해요!”

김은아는 알코올 솜이 상처에 닿자. 소독의 아픔에 옅게 신음을 흘렸다.

“읍! 으읏……. 흐읍! 스, 스톱! 야, 어, 엄청 쓰린데!?”

“그, 그래도 소독은 중요해요.”

스미레는 나름 단호한 표정으로 김은아를 타이르더니. 깨끗한 솜에 연고를 짜내 김은아의 상처에 발랐다.

“새살아…… 솔솔…….”

그 다음 스미레가 주문처럼 외며 반창고를 붙이자. 김은아는 창피함에 새빨개진 얼굴로 질색했다.

“아이 씨! 뭐해!?”

“죄, 죄송해요! 동생들한테 해주던 버릇이…….”

“됐어! 내, 내가 어린애냐!?”

김은아는 씩씩거렸지만 눈은 반창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스미레의 처치는 꼼꼼했다.

하지만 한 소리를 듣고 축 처진 스미레의 어깨.

슬쩍.

김은아는 슬쩍 스미레를 흘기더니. 신경이 쓰인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고, 고맙다.”

김은아와 눈을 마주친 스미레.

감동을 받은 스미레가 입을 벌리고 멍한 얼굴로 올려다보자. 김은아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스미레를 내려다봤다.

“뭐하냐? 오늘은 그른 거 같은데. 돌아가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스미레.

야영지로 돌아가는 내내 스미레는 계속 중얼거렸다.

“흐, 흐흐……. 은아 씨 같은 분이 저 같은 거한테 고, 고맙다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기 시작하는 스미레.

“야! 제발! 기분 나쁘니까! 그만 중얼거려!”

김은아는 질색을 했지만 길이 좁아지자. 둘은 어쩔 수 없이 딱 붙게 됐다.

“그, 그리고 어, 엄청. 좋은 향기도 나요. 흐, 흐흣…….”

“……으.”

스미레의 음침함은 김은아의 말을 멎게 할 정도였다.

*     *      *

아무리 둘러봐도 신유성이 고른 호수의 주변에 여울룡의 흔적은 하나도 없었다.

‘……여긴 없어. 여울룡은 다른 호수에 살고 있나보군.’

어차피 위치를 파악해도 아침이 되어 여울룡이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넉넉했다. 물론 늦은 오후에도 육지에서 사냥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드문 경우였다.

결국 남는 시간을 이용해 신유성은 주변을 둘러봤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좋은 약초가 많군.’

신유성은 무신산의 생활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약초를 알게 됐다. 야생에서 동식물의 성질을 파악하는 건 중요한 생존 기술이었다.

신유성은 몇몇의 약초를 골라내 꺾더니 포켓에 넣었다.

‘점성초와 스티러스. 이 정도 양이면 충분하겠지?’

점성초는 줄기의 진액이 이름처럼 끈끈한 점성을 가진 약초였다. 그리고 스티러스는 돌로 짓이기면 회색빛의 진액이 나왔다.

약초를 충분히 챙긴 신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폈다.

그 외에는 공복에도 먹을 수 있는 약초나 나물들도 보였지만 신유성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다른 약초는 필요 없어.’

지금의 신유성은 약초나 야생동물에 만족하던 그때의 신유성이 아니었다. 스미레의 도시락과 자극적인 배달음식들로 신유성은 입맛이 까다로워진 상태였다.

이전까지는 몰랐던 맛의 즐거움.

‘오늘은 스미레가 요리를 해주기로 했으니까. 슬슬 돌아갈까.’

담담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신유성은 스미레의 요리를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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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그때 신유성의 포켓이 울렸다.

[KimSilverA: 여울룡. 내가 온 곳에 있었음. 먹이 먹고 있더라.]

간결한 김은아의 메시지.

여울룡이 육지에서 식사를 할 확률은 극히 드문 걸 감안하면. 아주 좋은 기회였다.

거기다 아종이 아닌 이상 물에 사는 여울룡은 전기 속성에 취약하다. 그러니 신유성은 김은아가 여울룡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은아는 정말 운이 좋네.’

신유성은 포켓을 조작해 김은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유성: 잡았어?]

갑자기 흐르는 정적.

김은아에겐 아무런 답변도 오지 않았다.

띠링!

이번에 메시지를 보낸 건 스미레.

스미레의 답변은 심플하게도 이모티콘이었다.

[すみれ: ㅠ᷄︿ㅠ᷅...]

어느 정도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 신유성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메시지를 입력했다.

[신유성: 지금 갈게]

비록 잡는 것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순식간에 여울룡의 서식지를 찾아낸 걸 보면. 역시 몬스터 헌팅은 파티원과 함께 하는 게 훨씬 유리했다.

그리고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좋은 동료를 가졌는지에 관한 차이는 극명해진다.

늘 고독을 추구했던 권왕도 탑에 오르기 위해 검신과 마녀를 동료로 뒀을 정도니 알만했다.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어.’

처음 도움을 준 건 신유성이었지만 F급이라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스미레와 학년 랭킹 2위인 김은아를 동료로 맞이한 건 최고의 기회였다.

저벅저벅.

신유성은 야영지를 향해 걸어가며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밝은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떠있었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며 변화한다. 그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아 물들어간다.

그래서 신유성은 누구보다 만남의 소중함을 알았다.

신유성 자신이 스승인 권왕을 통해 바뀌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네.’

깊었던 혼자만의 생각이 끝나자. 옅게 미소를 지은 신유성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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