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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52/434)

제52화

신성그룹의 회장. 김석한.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라 불리며 사업에 관해선 철혈이지만 그는 엄청난 손녀 바보였다.

“우리 은아 반응은 어떤가? 그런 일을 직접 봤으니 그 아이도 충격이…… 컸을 텐데!”

이수현은 그런 김석한이 참 신기했다. 타인을 대할 땐 한없이 강한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손녀에겐 이렇게도 약할까.

이수현은 생각과 달리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주말 동안 뵀던 아가씨는 평소와 같아 보이셨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똑똑한 아이니까 말이다.”

김석한은 한숨을 돌렸다.

조사를 해본 결과 김은아를 구해준 헌터의 이름은 신유성. 놀랍게도 신오가문의 출신이었다.

‘근데 참 신기하군. 권왕이 거둬들일 정도의 실력자를 버리다니.’

김석한은 예리한 감으로 상황을 추리하기 시작했다. 소문으로 신유성은 F급 특성의 헌터.

김석한이 만났던 신오가문의 실력주의를 생각하면 F급 특성인 신유성을 버리는 건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신오가문에게 버림받은 신유성이 권왕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신유성. 그 학생은 필시 권왕만 볼 수 있었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김석한은 피식- 웃으며 혀를 찼다.

“그나저나 웃긴 일이군. 안 그런가? 이비서?”

“네? 어떤 점이…….”

“신오가문은 그렇게 강함을 추구했으면서 원석을 스스로 버리지 않았는가? ……신오가문의 눈도 믿을 건 되지 못하는 군.”

김석한의 이야기에 이수현은 고개를 숙여 대답을 대신했다. 김석한의 말처럼 신유성은 학생이면서 리벨리온의 빌런을 잡은 실력자였다.

그런 실력자를 놓치는 건 신오가문답지 않은 실수였다.

“……그래서 말인데. 은아를 구해준 김에 차라리 우리 쪽으로 거두는 것도 생각해봐야겠군.”

한국 재계의 정점인 신성그룹이 물질적인 스폰서가 되어준다면 거절할 헌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김석한이 눈독을 들이는 건 신유성의 실력보단 배경이었다.

“이 비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수현은 김석한의 의도를 눈치채고 자신의 분석을 말했다.

“확실히…… 가문에게 버림받은 헌터가 은둔의 고수인 권왕에게 거둬져. 강해진다. 대중들의 호감을 사기엔 더없이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래. 거기다 F급 특성을 가진 헌터들의 지지도 얻게 되겠지. 희망적인 아이콘으로 내세워 이미지를 만들면 정말 완벽한 모델 아닌가?”

역시 김석한의 사업수완은 진짜였다. 자신의 손녀딸이 얽힌 사건의 위기를 김석한은 기회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이수현은 그런 김석한의 모습에 아까 전에 가졌던 의심을 버렸다. 아무리 손녀바보라도 김석한은 사업수완 하나로 신성그룹을 재계 1위에 올린 인물이었다.

‘……역시 무서운 사람.’

이수현의 시선에 두려움과 존경이 어리자. 김석한은 마지막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바로 홍보팀을 보내서 섭외하도록 해봐. 이번 일의 보상으로 두둑하게 챙겨주고 말이야.”

“아, 저 그게…… 보상과 관련해서는…… 절대 신유성 학생과 접촉하지 말라고 아가씨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수현의 다급한 이야기에 김석한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음!? 우리 은아가 부탁했단 말인가? 대체 왜?”

“그, 그게…… 이번 일은 직접 처리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김석한은 이수현의 이야기에 인상을 찡그렸다.

“……직접?”

직접 보상을 한다니.

김석한이 아는 거만하고 게으른 김은아의 성격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손녀지만 김은아의 성격은 누군가에게 직접 감사를 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직접…… 그렇게 말했단 말인가?”

“네. 이번 일로 고마우신 마음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수현의 이야기에 김석한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저 기우라고 넘기기에는 찝찝한 기분.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를 표하는 게 당연하지만 김은아가 한다고 하니 김석한은 기분이 이상했다.

“……이 비서.”

진지해진 김석한의 목소리가 근엄하게 울렸다.

“네. 회장님.”

“우리 은아는 신성그룹의 후계자일세. 자네도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장남인 김준혁이 혼수상태에 빠진 이상. 지금 신성그룹의 정식 후계자는 명백히 김은아였다.

김석한은 이수현을 보며 진지한 눈으로 당부했다.

“지금 나이는 은아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란 말이지……. 원래 어린 애들이 그렇지 않은가? 사소한 감정을 착각해서 일을 크게 부풀리곤 하니까 말이야. ……그 아이에게 그런 징후는 없었겠지?”

김석한이 이수현에게 무엇을 묻는지는 명확했다. 눈치가 빠른 이수현은 마른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김은아가 신유성을 좋아하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수현도 김은아가 저택에서 메시지로 보여줬던 반응을 보면 짚이는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의 분위기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간 누구 하나가 경을 치를 게 분명했다.

“제가 보았을 땐 그런 쪽의 분위기는…… 저, 절대 아니었습니다.”

김석한은 이수현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래! 하하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우리 은아가 얼마나 눈이 높은 아이인데. 어릴 때부터 날 보고 자랐지 않은가?”

이수현은 김석한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냥 억지로 웃었다.

‘……진짜 뭐라는 거야.’

하지만 이수현도 김석한의 걱정이 이해는 갔다. 한쪽은 신성그룹의 후계자. 나머지 한쪽은 버림받은 고아.

‘절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긴 하지.’

회장실에서 나간 이수현은 포켓으로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었다.

- 어! 웬일?

하지만 이수현은 반가워하는 남자의 인사에도 용무만 답했다.

“……됐고. 회장님 지시니까. 가온 아카데미의 1학년 신유성. 네가 가서 섭외해와.”

이수현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김은아의 당부가 걸리긴 했지만 역시 이수현은 회장인 김석한의 말이 우선이었다.

*     *      *

약속했던 월요일.

아카데미의 옥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사아아-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김은아의 머리카락. 김은아는 들어오는 신유성을 향해 담담하게 말을 걸었다.

“왔냐?”

평소와 같은 말투.

처음 봤을 때처럼 여유로운 표정. 김은아는 고개를 돌려 철창 너머로 아카데미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뭐 때문에 불렀는지는 알지?”

“……교외 활동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지?”

신유성의 대답.

김은아는 고개를 돌려 신유성을 마주보았다. 그리곤 마음에 든다는 듯 훗- 하고 웃었다.

“좋아. 이야기가 빠르겠네.”

김은아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가 말했지? 난 빚지곤 못산다고.”

“그랬지.”

신유성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김은아는 신유성의 앞으로 다가왔다.

“나와 오빠를 구해줬으니까. 네 요구가 뭐든 흥정할 생각은 없어. 자, 나한테 뭐든 말해봐.”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김은아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국의 재계 1위인 신성그룹의 후계자.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부를 가지고 있었다.

“……글쎄.”

하지만 신유성은 명쾌하게 자신의 요구를 말하지 않았다.

“그래? 정말 뭐든 들어주는 거지?”

신유성이 확인을 위해 되묻자. 김은아는 답답하다는 듯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전부 내가 들어주겠다고. 나 돈 많아! 내가 말만하면 뭐든지…….”

김은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유성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 파티에 들어와 줘.”

신유성의 충격적인 발언.

김은아는 3초간 벙 찌더니. 얼얼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뭐라고?”

“은아 네가 들은 게 맞아. 내 파티에 들어와 줘.”

“나!? A반의 반장인 날 파티에?!”

김은아는 어이가 없었다.

F반인 신유성의 파티에 A반의 반장인 김은아가 들어가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파티의 멤버가 되는 건 파티장의 소속이 된다는 것, 넓게 보면 신유성이 김은아의 상급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김은아의 학년 랭킹은 2위. 3위인 신유성보다 한 단계 높았다.

“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알고 있어. 하지만 난 정말 네가 필요해.”

신유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김은아와 눈을 맞췄다. 숨이 닿을 정도로 너무 가까운 거리. 당황한 김은아는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알겠으니까. ……일단 떨어져. 너, 너무 붙잖아.”

신유성의 갑작스런 제안에 김은아는 생각에 빠졌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파티에 들어오라니.’

하지만 고민은 잠깐.

김은아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신유성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다른 걸 말해. 얼마든지 낼 테니까 차라리 돈이라거나…….”

“내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은아 너처럼 실력 좋은 파티원이야.”

신유성의 은근한 칭찬에 김은아는 입술 끝이 조금 씰룩거렸다. 그래도 역시 아닌 건 아니었다.

“대체 파티는 왜? 국가 대항전 때문이야? 그런 거라면 참가자 하려는 애들은 얼마든지…….”

김은아가 다시 반박을 하자. 신유성은 또 김은아를 향해 직구로 칭찬을 던졌다.

“그래도 너만큼 잠재력이 뛰어난 사람은 없어.”

“뭐, 그건 확실히 그렇지……. 그래도 반장인 내가 다른 반의 멤버가 되는 건 좀…….”

한결 기세가 꺾인 김은아.

김은아는 의외로 칭찬에 약한 타입이었다. 거기다 신유성의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는 건 그녀가 신유성을 인정했다는 증거.

신유성은 제대로 마침표를 찍기 위해 카드를 뽑아 들었다.

“다른 부탁은 없어.”

신유성의 단호함에 김은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정말 내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를 보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응. 분명 받을 거라고 생각해. 은아 넌 빚은 꼭 갚으니까.‘

김은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짚었다. 확실히 김은아가 신유성에게 진 빚은 어마어마했다. 신유성은 치트에게서 김은아를 구해줬고, 김준혁의 목숨도 지켜줬다.

김은아에겐 둘도 없는 은인.

김은아의 성격으론 목숨을 빚지고 절대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결국 김은아는 이마에 손을 대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키 차이에 신유성을 올려다보았다.

“너……. 국가대항전이 끝이 아니지? 이번 학년의 목표가 어디야?”

김은아는 신유성의 목표가 국가대항전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목표가 어딘지는 몰라도 신유성이 그 정도로는 만족할 것 같진 않았다.

진지한 김은아의 표정.

신유성은 김은아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탑.”

“……탑? 몇 층?”

김은아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신유성에게 물었다. 전 세계가 등반에 도전하는 탑의 위험성은 ‘층’의 높이로 결정된다.

1층은 초심자인 헌터도 가볍게 공략할 수 있지만. 60층부터는 권왕과 검신을 비롯한 최강의 헌터도 넘어서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신유성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탑의 공략은 이미 무신산에서 권왕과 약속을 한 지 오래였다.

[유성아! 적어도 1학년이 졸업하기 전에 탑은 꼭 20층을 뚫어 놓아라. 탑은 그나마 덜 바쁠 때 뚫어 두어야 하는 법이다. 알겠느냐?]

[네 스승님. 알겠습니다.]

신유성이 배워온 상식은 어디까지나 권왕의 기준.

“음…… 한 20층?”

신유성의 충격적인 대답에 김은아는 기겁을 했다.

“20, 20층!? 이런 미친! 거긴 현역들도 삐끗하면 죽어나가잖아!”

김은아도 신유성이 상식 밖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알지 못했다.

김은아는 지쳤는지 후우- 하고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돌렸다.

“……야.”

그리곤 다시 철창 너머를 내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좋아 그렇게 해줄게.”

하지만 김은아는 이내 단호한 어투로 신유성에게 경고했다.

“……대신 딱 국가대항전. 그거 끝날 때까지다. 알았냐?”

자존심이 강한 김은아의 성격을 생각하면 많이 타협한 결과. 신유성은 김은아의 옆으로 다가가 마찬가지로 철창 밑을 내려다보았다.

탁 트인 풍경 아래에는 가온 아카데미의 드넓은 부지가 보였다.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가온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강해진다는 도착지는 같았지만.

바깥은 무신산과는 달랐다. 신유성은 여러 가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신산과 다르게 이곳에서 신유성은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산다는 건 절대 실력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 기회로 시간은 주어졌어.’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김은아를 비롯해 다른 파티원들을 진정한 동료로 만드는 건, 오직 신유성의 몫이었다.

지금의 신유성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되는 법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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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렇게 하자. 내 파티원이 된 걸 환영해.”

결정을 내린 신유성이 악수를 건네자. 김은아는 흔쾌히 손을 잡았다.

“야, 미리 말하는데. 약한 모습 보이면 그걸로 끝이다 알지?”

“……응. 믿어줘.”

기분 좋게 미소를 지은 신유성은 김은아를 내려다보며 바로 다음 스케줄을 일러주었다.

“아, 그리고 파티 일정은 바로 내일이야.”

“어? 일정이 내일이라니?”

“보스 퇴치가 있거든. 간단한 생필품을 챙겨서 학원도시로 오면 돼.”

“뭐!?”

김은아는 놀라서 소리를 쳤지만 신유성은 개의치 않았다. 신유성은 파티로 지내는 기간 동안 김은아의 노동력을 잔뜩 뽑아낼 생각이었다.

적어도 신유성의 파티가 된 이상, 재벌 그룹의 후계자로 공주 취급을 받던 김은아는 영원히 작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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