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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50/434)

제50화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신성그룹.

김은아는 그런 신성그룹 회장의 애정을 듬뿍 받는 외손녀였다.

아름다운 대리석 바닥과 탁 트인 전망의 거실도 그저 김은아가 누리는 막대한 부의 일부분. 신성그룹의 정식 후계자인 김은아에겐 일상에 불과했다.

홀짝.

김은아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홍차로 입술을 적셨다. 아찔할 정도의 그윽한 향기에도 감동은 없었다.

지금의 김은아에게 홍차의 풍미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

참을성이 없는 김은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포켓의 차단된 메시지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나 신유성의 메시지는 없었다.

‘대체 왜…… 연락이 없지?’

김은아는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물었다.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 결국 눈치를 보던 정장차림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이수현.

26살에 길드장의 비서까지 맡았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 하지만 김은아는 그런 엘리트를 못미덥게 바라보며 물었다.

“없어. 너무 없으니까. 문제라고.”

까칠한 김은아의 말투에 이수현은 사람 좋게 웃었다. 물론 그녀의 생각은 겉과 조금 달랐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이런 어린애 비위나 맞추고 있다니.’

이수현이 김은아의 보좌를 맡은 걸 후회하고 있을 때, 김은아는 사그라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보통, 이렇게 큰일이 있으면 문자 오지 않냐?”

김은아가 처음 보여주는 자신감 없는 모습에 이수현은 흥미를 보였다.

“아가씨께서 기다리시는 연락이 있나보네요?”

“아니, 막, 기다리고…… 그런 느낌은 아니고…….”

김은아는 민망함에 이수현의 시선을 피하며 변명을 했다.

“갚아야 할 빚도 있고 그러니까, 겸사겸사!”

이수현은 김은아의 이야기로 상대를 금방 추리해냈다.

‘……병원에서 활약한 그 헌터 이야기인가?’

아마 신유성이라고 했다.

리벨리온을 체포하고, 김은아와 김준혁을 구한 헌터는 김은아와 같은 가온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자 이수현은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이것 봐라? 저 기센 꼬맹이가 눈치를 다 보고…….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네?’

이수현이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김은아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좁히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날 보면서 기분 나쁘게 웃어?”

“아! 죄송합니다. 다른 게 아니고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아가씨께서 먼저 연락을 하시면…….”

이수현의 대답에 김은아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심각하게 생각했다.

“내가 먼저…….”

지금까지 살아오며 김은아는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 경우가 없었다. 권력과 부유함을 가진 김은아는 관계에서 늘 우위였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잠깐의 고민. 김은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네 말이 맞네. 어차피 빚진 걸 갚기 위해서고…….”

김은아가 수긍을 하자 이수현은 점점 상황을 재밌어 하고 있었다.

“그럼 역시 메시지의 상대는 신유성 학생인가요?”

이수현의 질문에 찔린 김은아는 또 다시 까칠하게 답했다.

“아, 알아서 뭐하게!?”

하지만 이수현은 26세의 노련한 연상. 경험이 많은 그녀에게 김은아를 다루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아, 저는 그냥 제가 아가씨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보기보다 이런 쪽의 경험이 많거든요.”

“무슨 쪽.”

“……사람을 상대하는 쪽?”

이수현이 은근하게 웃으며 여유롭게 답하자. 솔깃해진 김은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옆자리를 허락했다.

“그래? 뭐, 좋아. 그럼 이리와.”

그렇게 사이좋게 쇼파에 앉은 김은아와 이수현. 김은아는 자신이 적은 메시지를 이수현에게 보여주었다.

[KimSilverA: 야, 월요일 날 옥상으로 와라.]

김은아의 메시지에 이수현은 말을 잃었다.

“아, 아가씨? 이건 너무……. 결투 신청 같지 않나요? 좀 더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이수현의 충고에 김은아는 고심 끝에 메시지를 수정했다.

[KimSilverA: 월요일에 옥상으로 와. 이야기 좀 하자. 할 말 있음.]

그래도 제법 나아진 메시지 내용.

이수현은 이제 온힘을 다해 김은아를 도와주고 있었다.

“아가씨! 이제 내용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 하시면!”

“좀 더? 근데 그건…… 어, 너무 간지럽지 않나?”

망설이는 김은아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이수현. 김은아는 결국 메시지의 내용을 또 수정했다.

[KimSilverA: 월요일날. 옥상으로 와서 이야기 좀 해.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장족의 발전.

하지만 막상 메시지를 다적은 김은아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근데 이렇게 쓰면 너무……. 간지럽다니까!?”

“아뇨. 이게 맞습니다.”

그러나 이수현은 김은아를 무시하고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띠링!

이미 신유성에게 발송된 메시지.

김은아와 이수현이 서로를 바라보며 숨이 멎을 것 같은 10초의 긴 정적이 지나고.

띠링!

다시 포켓이 울렸다.

[신유성: 좋아.]

신유성의 명쾌한 답변.

김은아는 이수현을 흘기며 짧게 감탄을 흘렸다.

“……오.”

“이거 보세요!”

메시지를 보며 이수현은 자신의 일처럼 신나 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김은아와 신유성. 단둘의 만남이 체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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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맑고 화창한 날.

학원도시로 놀러 나온 신유성과 일행들의 목적지는 개울가였다. 잔잔한 물소리와 식물들이 내뿜어내는 쾌적한 피톤치드 향.

에이미는 인터넷의 기사들을 읽으며 크게 소리를 쳤다.

“정말, 파티장님은…… 신이에요!”

“그, 그래?”

멋쩍어진 신유성이 겸손하게 웃자. 이시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 기사를 읽어도 믿기지가 않더라니까? 어떻게 빌런을…… 그것도 리벨리온을!”

신유성의 활약에 학교가 웅성거린 건 사실이었다. 콧대 높은 S반조차 이정도의 대활약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는 분석을 보여주겠다며 신유성의 옆자리로 다가갔다.

“이번에 인터넷의 여론을 보니까. 거의 반반 정도까진 온 거 같아요! 아델라가 워낙 유명해서 어려운 싸움이었는데 빌런 체포가 제대로 먹혀들었죠!”

에이미가 홀로그램으로 화면을 띄웠다.  홀로그램에 보이는 뉴스들의 반응은 대부분이 호평 일색이었다.

[피톤치드와피스타치오: ㄹㅇ쩜;]

[DDZ: ㄷㄷ 가온 한 건 했네.]

[엔르: 이 학생이 선발전에도 출전하겠죠? 벌써 응원하게 되네요.]

[B와D사이C: 역시 권왕 제자면 리벨리온 정돈 잡아줘야지!!]

에이미는 등을 곧게 펴고 자신만만한 자세로 말했다.

“전문가인 제 예상으론…… 투표는 이정도면 OK! 남은 건 역시 선발전에서 보여주실 파티장님의 활약이겠네요!”

“고마워 에이미.”

“흐응~ 전 아직 한 게 없는데요? 헤헤, 그래도 역시 어제의 활약을 보니 파티장님한테 줄을 잘 섰다는 생각이…….”

헤실헤실 웃으며 에이미가 능글맞게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이자.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음, 그래도 걱정되는 걸. 대회의 종목은 어떤 게 나올지 모르니까.”

에이미는 신유성의 말에 검지를 저었다.

“어허! 저를 믿지 않으셨군요! 당연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좀 있다~ 정리해서 전부 보내드리려고 했어요!”

에이미의 충격적인 발언에 이시우는 놀라서 되물었다.

“……허,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다 방법이 있는 거야~ 후후후!”

자랑스럽게 웃는 에이미. 신유성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역시 이쪽 계열에선 에이미가 능통하구나.’

잘 정리된 자료조사부터 브리핑.

심지어 고급 정보까지 캐치해서 오다니. 단순히 실력을 넘어 에이미의 능력은 최상이었다.

‘파티로 데려오길 잘했어.’

신유성이 에이미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을 때, 스미레는 신유성에게 눈을 흘겼다.

“……그, 그래도 다치신 곳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스미레는 신유성의 교외활동이 내심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신유성이 무사히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다.

스미레가 새벽부터 무리해서 도시락을 싼 것도 고생을 한 신유성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요리는…… 자, 자신 있어! 엄청 준비했으니까!’

스미레가 모처럼 의욕 넘치는 얼굴로 다짐했다. 신유성이 좋아하는 카라아게를 비롯해 일식과 한식을 준비했다. 남은 건 신유성이 맛있게 먹어주는 일.

스미레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도시락을 꺼낼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을 때, 이시우가 박수를 쳤다.

“아! 맞다! 주문해둔 음식 좀 받고 올게! 바로 옆이야.”

갑작스러운 전개에 눈이 커진 스미레. 이시우는 양손 가득 배달음식을 가져왔다.

“짜잔! 피크닉은 역시 배달 치킨이지! 이거 신메뉴인데 인기 쩔어. 이 맛을 못 잊고 기숙사에서 몰래 시킨 애들은 벌점까지 받았다니까?”

갓 튀긴 치킨의 압도적인 냄새.

신유성은 처음 보는 배달치킨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맛있어?”

신유성이 치킨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스미레는 다급하게 도시락을 꺼냈다.

“저, 저도! 준비…….”

“우와아! 뭐야! 이거어!? 네가 다 한 거야!?”

하지만 반응을 보이는 건 에이미.

신유성은 여전히 배달음식에 눈이 팔려 있었다.

“이 메뉴는 순살이 진짜 맛있다니까. 유성아 하나 들어봐. 이 소스에 듬뿍 찍어서…….”

이시우가 신유성에게 젓가락으로 순살 치킨을 먹여주자. 도시락을 준비한 스미레는 점점 울상이 됐다.

“으, 우으…….”

하지만 상대는 배달치킨.

대기업의 자본으로 만들어낸 그야말로 기술의 집합체. 맛의 폭군이었다. 자극적인 음식과 거리가 멀었던 신유성은 한입에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맛있어.”

“맛있지? 무신산에선 이런 맛 못 느꼈을 걸? 이거 진짜 쩐다니까.”

이시우가 피자를 비롯한 다른 배달음식을 꺼내자. 신유성은 스미레 쪽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저, 저도, 카라아게…….”

스미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필을 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얽힌 건 에이미였다.

“우와 수제 카라아게다!! 나나나!”

신유성은 처음 겪는 맛의 황홀경에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정말…… 정말 맛있어.”

“그치? 그렇다니까! 캬하하!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

신이 난 이시우가 음식들을 챙겨줄수록 스미레의 어깨는 더욱 내려갔다. 자존감이 내려간 스미레는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더니 신유성이 칭찬한 치킨을 한 점 집었다.

이시우가 가져온 배달치킨.

자신이 만든 닭튀김.

그 차이를 알기 위해 스미레는 과감히 치킨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 울상이 된 얼굴로 진실을 알게 됐다.

‘으, 으으…….’

같은 닭을 튀긴 음식이라도 온갖 자극적인 맛으로 점철된 배달치킨은 스미레의 수제 카라아게와 다른 음식이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 스미레는 기가 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으우……. 이, 이런 거 절대 못 이겨…….”

“역시! 맛있다! 카라아게! 일본인이 만든 일본식이라? 이건 굿이군. 오 뭐야, 장국도 있네? 다 좋아!”

그래도 에이미는 스미레의 음식이 마음에 든 모양.

“치, 칭찬…… 감사합니다.”

그러나 고맙다며 웃는 스미레의 얼굴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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