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눈가.
씨익- 웃으며 드러낸 뾰족한 이빨.
헬멧을 벗고 죄수복을 입은 치트는 양팔에 구속구를 차고 머그샷을 찍었다. 물론 그 머그샷은 전 세계를 향해 퍼져나갔다.
[리벨리온 멤버 감옥에 수감!]
[가온의 학생이 빌런을 잡다!]
[치트의 정체는 중국인 해커?]
[유한나의 특급 취재! 리벨리온 멤버 최초 인터뷰!]
[조사에는 불응. 끝까지 입을 다물어…….]
가온의 교장인 진병철은 신유성의 활약이 담긴 기사를 읽으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크하핫! 린샤오 교관! 이것 좀 보게!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뜨겁지 않은가? 우리 유성이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주 가온에 대한 칭찬이…….”
당연한 일이었다.
현역 헌터들도 무서워하는 소수정예의 빌런 단체. 리벨리온. 그런 단체의 멤버를 가온의 1학년인 신유성이 체포했다. 일대에 없던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그래도 걱정되는군요. 혹시! 빌런놈들이 유성이에게 앙심을 품진 않았을지……. 으음.”
“핫핫! 뭐, 헌터들이 원래 그렇지 않겠나? 헌터가 위험에 처하지 않고 어떻게 유명해지고 강해지겠나?”
“확실히 그건 그렇군요.”
린샤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델라의 기사를 가리켰다.
“교외 활동으로 던전을 공략한 아델라의 활약이 비교적 유성이에게 묻히는 기분이군요.”
“잘 된 일이지. 이건 밖에 꺼냏긴 민망한 이야기지만. 내가 자네니까 하는 말 일세…….”
교장인 진병철은 국가 선발전의 종이에 새겨진 아델라와 신유성의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솔직히 아델라보단 유성이가 나가야하지 않겠나? 이탈리아에서 온 유학생보다는…… 한국 출신의 학생이 대표를 맡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일세.”
아무리 아델라가 한국의 대표로 출전하더라도 어떤 국가든 대표는 자신의 나라 출신인 학생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협회는 그런 부분에선 보수적이니까 말이죠.”
결국 린샤오는 진병철의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병철은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유리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지.”
넓은 부지. 아름다운 경관.
진병철은 교장으로서 언제나 실력지상주의를 추구했고, 가온은 언제나 한국의 1위였다.
진병철은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성이와 아델라. 누가 이길거라 예측하고 있는가?”
진병철의 질문에 린샤오는 깊이 생각했다. 확실히 신유성은 강하다. 교관인 자신조차 아직 한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델라의 강함도 1학년 중에선 이미 논외의 존재였다. 헌터들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중국 전체를 통틀어도 아델라만큼 엄청난 특성은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수준은 검신의 제자인 류진 정도군…….’
신유성이 온지 얼마 안됐을 때, 진병철은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신유성과 류진 중 누가 더 강한가?’ 였다.
‘그때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류진이라고 답했지만.’
린샤오의 실눈이 번뜩였다.
아델라인가 신유성인가. 깊은 고민에 빠진 린샤오. 이제 린샤오의 생각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제 생각에는…….”
린샤오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 * *
중국의 자랑. 마천루 아카데미.
100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 꼭대기. 류진은 포켓을 바라보며 잠깐 미간을 좁혔다.
[리벨리온! 학생에게 체포!]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
리벨리온은 테러를 벌이는 강경파 빌런 단체 중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리벨리온을 혼자?’
심지어 치트는 중국에서 각종 정보를 해킹해 현상 수배가 걸려 있는 유명한 빌런이었다. 류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학생의 이름을 확인했다.
“……신유성.”
익숙한 어감.
강렬한 첫인상이 떠오른 류진은 신유성의 이름을 입으로 되새겼다. 류진은 신유성이 F급 특성을 가진 헌터라고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신유성의 스승은 무려 권왕.
류진의 스승인 검신의 몇 없는 라이벌이었다.
‘그런 권왕이 제자로 받았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류진은 신유성의 특성이 비록 F라도 권왕을 사로잡은 재능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 증거로 신유성은 활동을 시작한 뒤,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있다.’
류진은 눈을 감았다.
마천루의 높이 때문인지 강한 돌풍이 스쳤다. 마치, 허공에 떴다고 착각이드는 부유감.
류진은 중국 헌터 협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류진은 자신의 실력으로 중국의 이름은 빛냈고, 중국은 그 대가로 류진이 필요한 것을 제공했다.
순환석.
돌 하나가 빌딩 수 채는 살 정도로 비싼 가치의 물건. 류진의 여동생인 류밍은 불치병의 치료로 순환석이 필요했다.
심지어 순환석의 수명은 1년.
지금 중국이 해주는 국가급 지원이 아니라면 아직 학생에 불과한 류진이 류밍의 치료비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류진은 부유감을 느끼며 여동생 류밍의 모습을 떠올렸다.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던 류밍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나, 병이 다 나으면 친구를 만들래. 그것도…… 엄청 많이!]
류진은 류밍을 떠올리자 무표정했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외로웠겠지.’
당연했다. 회색빛의 병원에 류밍의 또래는 없었으니까.
그때 느낀 류진의 기분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류진은 류밍에게 자상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곤 부드럽게 류밍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렇게 답했다.
[……그래. 꼭 그렇게 될 거다.]
류진은 류밍의 소박한 꿈을 어떻게든 이루어줄 생각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류밍의 소원은.
곧 류진의 소원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화아아악!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돌풍속에서 류진이 눈을 떴다. 홀로그램의 파편이 흩날리며 류진의 손에 쥐어진 은빛의 검.
부웅!
류진은 발을 내딛으며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돌풍도 멎어버린 고요한 세상.
류진의 검로를 따라 구름이 갈라졌다. 이것이 마천루 아카데미 1위의 힘. 하늘을 갈라버린 류진은 검을 집어넣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무뎌졌군.’
류진은 그런 엄청난 실력에도 아직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은 물론. 그 어떤 나라의 대표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 류진은 계속 수련을 거듭해야했다. 그게 류진의 방식이었다.
* * *
호화로운 세븐넘버의 기숙사.
쇼파에 앉은 신유성은 포켓에 적힌 잔액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입금 금액 : 20,000,000]
[총 예금 잔액 : 23,673,000]
게이트를 처리하고 얻은 2000만 원.
현역 헌터들에게도 제법 큰돈이었지만 학생인 신유성에겐 더욱 체감이 컸다.
‘1200원인 바나나우유를 16000개를 사고도 ……돈이 남는다.’
물론 바나나우유를 그렇게 사진 않겠지만 아직 제대로 돈을 써본 적 없는 신유성에게 돈의 가치는 대부분 음식과 비례했다.
막상 받고나니 더욱 큰 돈.
신유성은 다시 한 번 김은아의 씀씀이에 감탄했다.
‘이런 큰돈을…… 푼돈이라니.’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신유성은 돈을 쓸 곳이 따로 있었다.
‘파티의 비품을 장만하려면 지금부터 차곡차곡 모아야겠어.’
신유성은 다른 동아리나 다른 사람의 파티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신유성이 원하는 건 오직 자신의 파티와 부실이었다.
하지만 1학년이 개인용 부실을 가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새로운 부실을 배정받는 데 필요한 SP는 무려 3000. 1학년에겐 너무나 아득한 수치였다.
그래서 보통은 부원이나 파티원을 모아서 SP를 분담하고 부실에 대한 권리를 나누지만. 신유성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파티장이 되어 자신의 계획을 강행하려면 3000SP를 전부 혼자 부담할 필요가 있었다.
평범한 1학년에겐 불가능한 이야기였지만 신유성은 달랐다.
이미 SP를 이미 절반 이상 모았다.
그건 신유성의 활약 덕분이기도 했지만 실은 교장인 진병철의 편애 덕분이었다.
‘벌써 절반 가까이 모았어. 생각보다 SP를 모으는 게 쉬운데?’
신유성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웃었다. 돈을 모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얻은 부실을 덩그러니 놔둘 순 없었다.
아카데미 활동에 필요한 비품과 가구를 사려면 제법 거금이 필요했다.
‘동아리는 비교적 지원이 나오지만. ……파티는 교외 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돈을 채워야 하니까.’
가온은 오직 실력주의. 스스로의 실력으로 쟁취하는 자만이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새롭지 않았다. 무신산에서 12년을 살아남아온 신유성에게 쟁취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래도 내일은 쉬어야지.’
내일은 드디어 주말.
누구보다 활약을 한 신유성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신유성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침대에 눕자. 머리맡에 둔 포켓이 진동을 울렸다.
지이잉!
[Amy♥:파티장님! 저도 촬영 끝났어요! 허거걱!? 이럴 수가! 마침 내일은 주말!!! ヽ(๑╹▽╹๑)ノ]
포켓에 온 건 에이미의 메시지.
내용을 읽자 신유성은 에이미의 장난스런 표정이 저절로 연상됐다.
지이잉!
신유성이 답장을 적으려 할 때, 다시 메시지가 왔다.
[Amy♥:빌런 체포라는 역사적인 대사건을 축하할 겸! 다 같이 소풍은 어떠세요!?(ღゝ◡╹)ノ ♡]
잠깐 동안 고민에 빠진 신유성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답장은 정해져 있었다.
[신유성: 그래.]
역시 휴식은 혼자보다 모두와 나누는 편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