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일격에 기절한 치트.
전격에 맞아 쓰러진 김준혁.
정작 현역으로 파견을 나온 유애리는 쓰러져 있었지만 병원의 상황은 신유성과 김은아의 활약으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
신유성은 기절한 치트에게 체포용 수갑을 채웠다. 순찰을 시작할 때 유애리에게 받아 포켓에 넣어둔 헌터용품이었다.
‘진짜 사용할 줄이야.’
모든 조치를 끝낸 신유성은 김은아를 바라봤다. 김은아는 신유성이 구속구를 풀어준 덕분에 기둥을 짚고 일어서 있었다.
“……오빠.”
김은아는 괴로운 표정으로 김준혁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김준혁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구조팀이 도착할 때까지 혼수상태 환자는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타다다닥!
점점 크게 들려오는 발소리.
시티가드. 구급요원. 그리고 3명의 헌터들은 뒤 늦게 사건 현장으로 올라왔다.
“이, 이건…….”
하지만 헌터들의 다급한 발걸음은 현장에서 굳고 말았다. 현장에 쓰러져 있는 유애리와 치트. 헌터들의 상급자인 주상혁은 신유성과 김은아를 번갈아보았다.
“……너희 둘이서 치, 치트를 처치했다고?”
학생들이 빌런 단체 리벨리온의 멤버를 쓰러트렸다. 주상혁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때, 김은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신유성에게 눈길을 보냈다.
“……설마 혼자서?”
꿀꺽.
주상혁이 침을 삼킨 뒤 묻자. 김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치트를 처치한 건 신유성의 몫. 김은아는 신유성의 활약에 묻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대단하군. 학생들이 직접 빌런을 처리하다니. 뭐, 어찌 보면 무모하기도 하지만…….”
말을 잇던 주상혁은 신유성을 보며 무언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아! 그렇군! 너! 순찰 지원을 왔다던 그!”
소문만 무성했던 권왕의 제자.
주상혁은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아무리 리벨리온의 빌런이라도 권왕의 제자가 상대라면 이상할 건 없었다.
“……그 권왕의 제자라면 무모한 일만은 아니었군. 좋아. 너희들의 활약은 빠짐없이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지. 뒤는 우리에게 맡겨라.”
주상혁은 그 말을 끝으로 구급대원과 헌터들에게 지휘를 시작했다. 김은아는 들것에 실린 김준혁을 보고 괴로운 듯 고개를 피했다.
긴 적막.
김은아는 신유성을 올려다봤다.
복잡한 표정. 무언가를 말하려던 김은아는 다시 입을 닫고 한숨을 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미안…….”
김은아는 죄인처럼 어깨를 늘어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풀이 죽어 있었다. 처음 보는 김은아의 모습. 신유성은 담담하게 위로했다.
“괜찮아. 가족 때문이었잖아?”
신유성은 김은아의 행동으로 얼마나 오빠를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오빠가 위험에 처했다면 김은아가 구역을 이탈하고 달려 나간 것도 이해가 됐다.
“결과가 좋기도 했고.”
신유성의 위로에 김은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맙다.”
그리곤 이내 진지한 얼굴로 신유성을 마주보았다.
“이번 일은 어떻게든 갚을 게. 난 빚진 건 ……절대 잊지 않아.”
멋있게 말을 한 김은아는 출구를 향해 걸었지만 현기증에 몸을 비틀거렸다.
휘청!
“……윽!”
신유성은 비틀거리는 김은아를 붙잡았다. 김은아는 현기증으로 몰려오는 두통에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됐어. 괜찮아. 그냥 가벼운…….”
김은아는 괜찮다며 억지를 부렸지만 신유성은 김은아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체내의 마나가 대부분 고갈됐어. 치료를 받아야해. 은아 너도 알고 있잖아?”
김은아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신유성은 왜 김은아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오빠 때문이지?”
신유성이 한숨을 쉬며 묻자. 김은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만 확인하고. 진짜 바로 치료 받을게 진짜. 지금 헤어지면 언제 볼지 모른단 말이야…….”
정말 김은아의 오빠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의 모습이 싫진 않았다.
김은아가 오빠에게 보여주는 진실한 애정은 신유성이 동경했던 가족의 모습이기도 했다.
“……업혀. 데려다 줄 테니까.”
신유성은 자세를 낮춰 김은아에게 등을 내주었다.
“나 진짜, 걸을 수…… 하아.”
당황한 김은아는 손까지 저으며 부정을 하더니 말을 멈췄다. 지금 김은아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도 신유성은 오빠를 보겠다는 김은아의 생각을 이해해줬다. 그러니 신유성에게만큼은 더 이상 강한 척 억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좋아. 그럼…… 실례 좀 하자.”
어쩔 수 없이 신유성의 등에 업힌 김은아.
“꽉 잡아.”
신유성이 숙였던 몸을 일으키자. 김은아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신유성의 목을 팔로 감았다.
‘……근데 이거.’
막상 그렇게 업히고 나자 김은아는 생각도 하지 못한 문제에 봉착했다.
‘너, 너무 가깝잖아…….’
몸이 맞닿고 체온이 느껴지는 거리. 김은아는 자존심에 내색조차 하지 못하고 혼자 점점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야, 그, 무…… 무겁지 않냐?”
“별로. 그것보다 진짜 괜찮아? 몸이 엄청 뜨거운데.”
“괘, 괜찮다고!”
괜히 부끄러워진 김은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나이를 먹고 하는 어부바는 생각보다 엄청 창피했지만 김은아는 얼굴이 붉어진 와중에도 아늑함을 느꼈다.
아주 예전에 겪었던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으휴, 어떻게 넌 매일 싸워?]
[걔들이 놀리는 걸 어떻게 해!]
아마도 7살.
아주 어린 시절 업혔던 오빠의 등.
비록 대상은 김준혁에서 신유성으로 달라졌지만 김은아는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표정이 굳은 김은아는 신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야, 유성아…….”
“응.”
저벅저벅.
천천히 걸어가는 신유성. 김은아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냐?”
김은아는 신유성의 그런 점이 신기했다. 신유성은 김은아가 대답하기 꺼려지는 질문은 절대 하지 않았다.
왜 오빠가 저렇게 됐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분이 어떤지.
그런 질문은 물론이고 값싼 동정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오늘 같은 날은. 너도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
김은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묻자. 신유성은 담담하게 답했다.
“네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신유성의 대답에 김은아는 피식 웃었다. 신유성의 말대로 김은아는 오빠에 관한 일을 누구에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달랐다. 적어도 오빠와 자신을 지켜준 신유성이라면 자격이 있었다.
“오빠가 저렇게…… 그러니까, 정신을 잃게 된 건. ……각성제 때문이야.”
헌터용품인 각성제는 일시적으로 특성의 힘을 증폭 시킨다. 하지만 과도한 복용은 절대 금물이었다.
각성제는 알약 하나로 자신의 한계보다 강한 힘을 손쉽게 끌어낸다. 당연히 그런 편리한 물건에는 대가가 따른다.
“존나…… 나약해…….”
김은아는 한없이 슬픈 얼굴로 악담을 퍼부었다. 그렇게 강인했던 오빠가 자신의 증명할 방법이 겨우 헌터로서의 강함이었다니.
“……나약하고, ……병신 같아.”
김은아의 악담은 끝이 없었다.
그런 약을 먹지 않아도, 헌터로서 강하지 않아도 다정했던 김준혁은 김은아에게 자랑스러운 오빠였다.
거기다 오늘 겪었던 일들은 김은아가 가장 피해왔던 생각으로 닿게 만들었다.
“차라리…… 내 재능이 오빠에게 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 말과 함께 김은아가 입을 다물자.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신유성이 입을 열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게 네 잘못은 아니야.”
어쩌면 김은아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김은아는 김준혁이 그렇게 바란 헌터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재능이 김준혁에게 갔다면 각성제를 복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서 끝.
김준혁이 혼수상태에 빠진 건 김은아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은아는 윽-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신유성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간간이 몸을 떨뿐 갑자기 조용해진 김은아.
“울지 마. 은아야.”
신유성이 웃으며 말을 하자. 김은아는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 괜히 화를 냈다.
“씨발……. 흑, 울긴…… 누가 울어? 안 울었어!”
“그래? 이미 등이 축축한데.”
소리를 쳐도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는 김은아. 신유성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온기.
김은아는 오늘 아주 오래전에 느꼈던 포근함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김은아는 한결 부드러워진 어투로 말을 걸었다.
“야, 유성아. 근데…… 우리 순찰 지역은 누가 지키고 있냐?”
절대 추궁하는 건 아니었지만 김은아는 궁금했다. 신유성의 성격이라면 순찰지역을 절대 무책임하게 두고 올 리가 없었다.
“걱정 마. 거긴 안전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신유성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 * *
메트로시티의 도심.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에 사람들은 구름떼처럼 모여 있었다.
“권왕이다!”
“권왕이 순찰을 하고 있어!”
“세상에…….”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권왕 유원학이 있었다. 물론 더욱 신기한 건 유원학은 시티가드의 상징인 배지를 차고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한국의 전설이자 상징인 최강의 헌터가 3급 헌터와 학생들이나 하는 도시 순찰을 하다니.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권왕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러게 병원이 난리기에 거기로 가는 줄 알았더니.”
“촬영 같은 거 아냐?”
“권왕님이 촬영은 무슨 촬영이야.”
“그럼 권왕이 순찰을 도는 건 안 이상하고?”
유명인을 보며 시끄럽게 수군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유원학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이놈은 대체…… 하늘 같은 스승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신유성이 모처럼 연락을 했을 때, 유원학은 진심으로 기뻤다.
[스승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가장 아끼는 애제자의 부탁.
권왕은 당연히 승낙을 했다. 물론 그게 겨우 도시 순찰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투정은 잠깐이었다.
권왕이라 불리는 유원학도 12년을 같이 지낸 신유성에겐 어쩔 수 없는 제자 바보였다.
‘그래도 제자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지.’
오늘의 메트로시티 155번 길은 어느 때보다 안전했다. 감히 권왕이 지키는 도시에 범죄를 저지르는 빌런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