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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47/434)

제47화

아름다운 직선의 빛.

김은아가 푸른빛의 잔영을 남기며 김준혁에게 돌진했다.

파앗!

“크아!”

김준혁은 주먹을 휘둘렀지만 김은아는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다. 바람을 따라 뒤를 향해 흩날리는 김은아의 머리카락.

찌리릿!

김은아는 주먹에 번개를 둘러 김준혁의 허리에 적중시켰다.

쩌억! 파지짓!

일반인이라면 순식간에 리타이어 시킬 수 있는 전기. 하지만 폭주를 했어도 김준혁 또한 마나를 가진 헌터였다.

“크그긋!”

김준혁은 강력한 전격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손을 휘둘렀다.

부웅! 번쩍!

김준혁의 공격이 닿기 전에 빛이 점멸하며 김은아는 다시 사라졌다. 김은아는 전기를 이용해 자신의 신체능력을 자극시켜 한계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아까 너무 무리했어.’

덕분에 김은아의 마나는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었다. 헌터에게 마나는 생명. 상황을 끝내기 위한 결정타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파앗!

뒤에서 나타난 김은아가 김준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양 손바닥에 닿은 상처투성이의 등.

‘……오빠.’

김은아는 꽈악- 눈을 감았다.

김은아는 직접 오빠를 공격해야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오빠를 위해서.

도시를 위해서.

예외는 없었다. 김은아는 김준혁을 제압해야했다.

“조금만 자고 있어.”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김은아가 전기를 뿜어냈다. 푸른색 빛은 김은아와 김준혁을 동시에 휘감았다.

파앗! 치지지직!!

전기에 당한 김준혁이 쓰러지려 휘청거리자. 김은아는 기절한 김준혁을 부축해 땅에 눕게 만들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김은아는 꾸욱- 입술을 질끈 물었다.

멀쩡히 있던 김준혁이 폭주를 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순환석이 마나를 정화하는 동안, 폭주 현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의 폭주는 누군가 병실의 순환석을 만진 게 분명했다.

“대체 어떤 새끼가…….”

김은아는 분노에 어금니를 으득 갈았다. 천문학적인 비용의 순환석을 탐내는 빌런들은 많았지만. 신성그룹의 일원인 자신의 오빠를 건드리다니 보통 간 큰 놈들이 아니었다.

자리에 일어선 김은아는 피곤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기절한 유애리가 보였다.

모든 것이 일단락되었다고 안도한 그때 김은아의 뒤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그거 난데~?”

전자음으로 지직거리는 목소리.

놀란 김은아는 눈이 커지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멍청하긴~ 이미 늦었어. 바보.”

치트가 손을 뻗자 김은아의 하얀 목에 바늘이 꽂혔다. 목에서 퍼져가는 이상한 감각.

“너, 이, 이게 무슨…….”

재빠르게 물러났지만 다리에 힘이 빠진 김은아는 휘청거렸다.

“윽!”

치트는 그 모습이 재밌는지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끄하하핫! 진짜 난 운이 좋다니까! 클로 이거 봐! 내가 분명 뭔가 걸릴 것 같다고 그랬지? 원래 기다려야~ 대어를 잡는 법이라니까?”

그렇게 말한 치트의 헬멧 전광판엔 노골적인 비웃음이 떠올랐다.

[ㅋㅋㅋ~♬]

치트는 순환석을 회수했지만 아지트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위층에서 기척을 숨기고 김은아를 기다리다 블링크를 이용해 기습했다.

타고난 치트의 운.

김은아가 메트로시티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병원에 찾아온 건 운이 좋았다. 혼수상태에 빠진 가짜가 아닌 진짜 신성그룹의 후계자라니. 치트는 헬멧 너머의 눈으로 김은아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쿡쿡, 부잣집 아가씨. 피곤하지 않아? 언니 아지트로 안전하게 모셔줄 테니까. 한숨 자는 게 어때?”

“닥쳐! ……너, 목적이 뭐야?”

“생긴 건 제법 귀티가 나는데. 입은 우리 빈민가 애들이랑 다를 게 없네?”

치트는 여유롭게 김은아를 바라봤다. 원래 리벨리온에서 그녀의 임무는 해킹을 이용한 정보전과 첩보. 김은아를 상대할 정도로 전투에 강하진 않았다.

그러나 방금 김은아가 맞은 바늘의 이름은 혼마침. 바늘에 발린 약은 마나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효과가 있었다.

“크윽!”

김은아는 거칠게 숨을 쉬며 어깨를 움켜쥐었다. 바늘은 이미 뽑아냈지만 어깨는 계속해서 욱신거렸다.

“흐음?”

흥미로워하며 치트가 성큼성큼 다가가자. 김은아는 손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찌릿! 팟!

집중력이 흩어져 사라지는 전기.

“포기해. 아가씨. 자꾸 반항하면 나 거칠어진다? 음, 예를 들어서…….”

치트는 자신이 신고 있는 검은색 워커로 김준혁의 지그시 머리를 밟았다.

“나, 너무 짜증나면 이 쓰레기……. 죽여 버릴 수도 있는데? 응?”

“씨발! 죽여 버린다! 당장 발! 쿨럭! 큭…….”

분노에 찬 김은아는 악을 썼지만 치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에이. 무리하게 소리 지르지 마. 그러다 쓰러질라. 근데 이거……. 마나만 실으면 진짜 터트릴 수도 있겠는데? 어때? 우리 내기 할까?”

오히려 툭툭 김준혁의 머리를 건드리며 도발을 계속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인질은 너만 있으면 될 거 같거든.”

더 이상 치트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기가 싹 사라진 말투는 더욱 빨라졌다.

“이 녀석을 없애면 후계자는 너뿐이잖아? 안 그래? 정신도 없는 병신보단 멀쩡한 네 쪽이 협박도 잘 먹힐 테고. 맞네. 얜 죽이면 되겠다. 두 명은 너무 거추장스러웠어.”

광기.

김은아는 단조로운 치트의 목소리에서 헬멧 너머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상대는 순환석을 위해 메트로시티를 침범한 빌런. 지금하는 말은 절대 허세가 아니었다.

투욱.

결국 입술을 지그시 깨문 김은아는 무릎을 꿇었다.

“……큭.”

빌런을 상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김준혁은 김은아에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오빠.

“……알겠으니까. 오빠는 놔줘. 인질은 나로 충분하잖아?”

김은아는 오빠를 살릴 수 있다면 자존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치트는 김은아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제야 발을 거둬들였다.

“……후후, 지금 보니 말이 좀 통하는 아가씨네? 걱정하지 마. 언니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저벅저벅.

모델처럼 절도 있게 또각또각 걸어오는 치트.

‘오빠…….’

김은아는 쓰러진 김준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신유성의 말을 듣고 도시에 남았으면 결과는 달랐을까? 빌런들의 목표는 김준혁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은아 자신의 판단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내가 전부 망친 거야.’

김은아는 남은 마나도 없었고, 혼마침까지 당한 상태였다. 리벨리온의 인질이 된다면 언제 풀려날지는 알 수 없었다. 후계자인 김은아를 빌미로 신성그룹을 끝없이 협박할 게 분명했다.

‘내가 전부…….’

김은아는 눈을 감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희망 같은 건 없었다. 파견된 유애리가 기절한 지금 다른 헌터가 도착하기 전에 상황은 끝날 것이다.

“그러게 처음부터 얌전히 있었으면 좋았잖아. 괜히 아까운 시간만 축내고 말이야.”

치트는 소름끼치는 말과 달리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더니 포켓에서 줄을 꺼내 김은아의 손을 묶었다.

“약속대로…… 우리 오빠는 건드리지 마.”

김은아가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하자. 치트는 뭐가 그리 웃긴지 못 참겠다는 듯 한참을 킥킥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 아까 봐준다는 말? 하, 하하하학! 클로 얘 좀 봐. 나한테 약속을 들먹이는데?”

클로는 대답이 없었다. 무전을 꺼버린 게 분명한 상황. 치트는 굴하지 않고 수다를 이어갔다.

“미치겠다. 정말!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오네. 앗! 헬멧 때문에 닦지도 못하겠어.”

치트는 손가락으로 김은아의 턱을 거칠게 잡았다.

“참…… 역시 학생인가? 너무 순수하다니까. 뭐, 어떤 면에선 부럽기도 해. 그걸 믿다니. 큭!”

치트의 말에 파랗게 질린 김은아의 안색. 치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은아를 내려다보았다.

“부잣집 아가씨. 물건이란 건 말이지? 희귀할수록 좋은 값을 받는 거야.”

“그, 그게 무슨!”

김은아는 뒤늦게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손이 묶인 김은아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처음 겪어보는 굴욕.

쓰러진 김은아는 몸을 가누지도 못했지만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왜, 그래! 약속대로 했잖아! 우리 오빠는 살려주기로…….”

헬멧 위로 검지를 올리더니 쉬잇- 하고 소리를 냈다.

“아니. 널 납치하게 됐으니 이야기가 다르지~ 아까 못 들었어? 물건은 희귀할수록 좋은 값을 받는다고? 그건 인질도 마찬가지란다.”

그렇게 말한 치트는 김준혁을 향해 걸어갔다.

“둘 다 데려갈 수 없으면. 역시 둘인 것보다는 하나가 낫지.”

그 의도는 명확했다. 후계자를 하나로 줄이기 위해 김준혁을 죽이겠다는 이야기였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도 치트에겐 한 점의 죄책감도 없었다.

“학생들이 보기엔 좀 잔인할 텐데. 눈을 감고 있는 게 좋지 않겠니?”

치트가 나름의 배려를 해주며 발을 높이 들었다. 마나를 부여한 발이 기절한 김준혁의 머리를 내려친다면 그걸로 상황은 끝이었다.

“그, 그만해! 나, 돈 같은 건 얼맏든 줄게! 반항도 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김은아는 엉망이 된 표정으로 애걸복걸하더니. 짧게 숨을 흐느낀 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제발. 그러지 마.”

치트는 그 모든 광경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미안. 난 인질이랑은 협상 안 해. 악당이 왜 악당이겠어~?”

그 말을 끝으로 발을 높이 들었다. 치트의 검은색 워커가 김준혁을 짓밟으려는 순간. 김은아는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라도 제발.’

퍼어억! 콰앙!

무언가를 발로 차는 둔탁한 소리.

마치 돌풍이 지나간 듯 시원한 바람이 김은아의 옆을 휩쓸었다. 김은아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눈을 떴다.

“하악! 흐윽…… 흑! 으으흑…….”

김은아의 눈에 보이는 건 예상한 풍경과는 달랐다. 김준혁은 멀쩡했고, 치트는 벽에 처박혀 있었다.

“컥, 쿨럭! 벌써 지원이 도착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내, 내 데이터에는 분명…….”

치트는 여유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땅을 짚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장본인.

김은아는 고개를 들어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유성아.”

김은아는 만류하던 신유성을 무시하고, 작전 구역을 이탈했다. 거기다 오히려 빌런의 인질이 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자신이 생각해도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자신을 구하러왔다. 김은아는 엉망이 된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봤다.

엉망이 된 머리카락.

뚝뚝- 눈물이 흐르는 얼굴.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으로 김은아는 자존심 따윈 내팽겨 치고 간절하게 읊조렸다.

“내가 부탁할게……. 제발……. 우리 오빠 좀 구해줘…….”

신유성은 대답 대신 김은아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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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온 이유가 가족 때문이었군.’

김은아는 눈앞의 남자를 오빠라고 했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병원의 환자가 분명했다.

김은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유. 신유성은 비참해 보이는 김은아의 모습에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의 힘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빌런들은 신유성의 목표와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신유성은 처음 보여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치트를 바라보았다.

‘단숨에 끝낸다.’

마음은 분노하고 있지만 신유성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고요했다. 극한의 수련을 통해 신유성은 격해진 감정이 일을 그르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신유성의 분노가 김은아의 처절한 부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빌런을 체포하는데 이유는 필요 없지.’

신유성이 자세를 잡자. 푸른빛의 마나가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파앗!

신유성이 쓰러진 치트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그러나 치트의 능력은 블링크. 비록 전투에는 약하지만 치트는 도주에 자신이 있었다.

“누굴 잡으려고!”

치트가 빛으로 변해 사라지려 하자.

신유성은 집중력을 순식간에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순간이동 능력자?’

마치 멈춰버린 듯 느려진 신유성의 시간. 치트는 입자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지만 신유성은 치트가 가진 마나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출구에서 코앞이군.’

순간이동 능력은 거리에 제한이 있다. 그러니 기회는 단 한 번. 치트가 블링크를 사용하고 방심한 순간이었다.

타앗!

신유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출구를 향해 뛰었다. 아무리 헌터라도 블링크의 위치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신유성은 집중력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여기다!”

투신류 3장 파천권격(破天拳擊)

결국 블링크의 위치를 감지해내고 출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신유성. 치트는 블링크에 성공하자마자 바로 헬멧에 신유성의 주먹이 작렬했다.

콰앙!

충격으로 헬멧이 깨진 치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신유성의 일격에 기절을 한 것이다. 리벨리온의 빌런이라기엔 너무나도 허접한 최후.

“자, 잡았다!”

눈물로 엉망이 된 김은아가 치트를 바라보며 소리를 쳤다. 학생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빌런 멤버를 생포하다니 김은아의 반응은 당연했다. 반면 신유성은 치트를 내려다보며 의아함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약한데?’

권왕의 수련으로 전투병기가 된 신유성에게 첩보원에 불과한 치트는 너무나도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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