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6화 (46/434)

제46화

조각케이크만 다섯 접시.

신유성은 소모한 체력을 음료와 케이크로 회복하고 있었다. 김은아는 그런 신유성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쯧, 체하겠다. 그렇게 맛있냐?”

“엄청.”

신유성이 다시 스푼으로 티라미수를 떠먹자. 김은아는 턱을 괸 채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어째 커피는 싫어하는데. 티라미수는 잘 먹냐?”

그렇게 물어도 신유성은 맛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부드러운 크림치즈. 시럽에 적셔진 달콤한 빵. 단맛을 잡아주는 씁쓸한 커피가루.

“하나 더 시켜도 돼?”

케이크를 앞에 둔 신유성은 행복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 금욕에 가까운 무신산의 식생활을 거친 신유성에게 바깥의 자극적인 미식은 맛의 횡포였다.

‘천만 원이면 이런 걸 몇 개나….’

신유성은 케이크의 맛으로 김은아에게 다시 감사하고 있었다. 새삼 천만 원이라는 돈의 가치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 마음껏 시키셔. 아니지, 그냥 여길 사지 그래?”

그렇게 빈정거린 김은아는 검은색 카드를 내밀었다. 카페를 사버리라는 김은아의 농담이 신유성은 농담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저런 걸 은아가 말하면 장난 같지가 않단 말이지.’

신유성도 이젠 김은아의 표현에 익숙해져 있었다. 솔직하지 못하고 서툴긴 하지만 지금의 태도는 김은아 나름의 친근한 표현이었다.

재벌 그룹의 외동딸인 김은아는 상대에게 정말 흥미가 없었다면 말조차 섞지 않았다.

지금의 친절은 신유성은 흥미로움 이상의 친근함이 생겼다는 증거.

김은아는 창가를 바라보며 신유성에게 물었다.

“근데 넌 순찰 끝나면 바로 복귀?”

신유성은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야. 은아 넌?”

“나? 난…….”

김은아가 말을 멈췄다. 순찰을 끝낸 김은아의 목적지는 병원이었다. 아카데미로 복귀하기 전에 오빠의 병실에 들리고 싶었다.

하지만 김은아는 신유성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 누구에게도 오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동정을 사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그냥, 쇼핑?”

김은아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하자. 신유성은 김은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정말 가볼까.”

그때.

위이이잉-!!

카페에의 스피커가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렸다. 긴급 상황에만 도시에 울리는 사이렌.

“서, 설마?”

김은아는 포켓을 확인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알림 메시지도 뜨지 않았다.

[메트로시티 전체 방송입니다]

[현재 메트로시티 병원에 빌런이 출몰한 관계로 주변의 시민들은 신속하게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확인한 신유성은 김은아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맡은 구역이 아니야.”

같은 메트로시티라도 병원은 신유성과 김은아의 관할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은아의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창백했다.

“……병원에 빌런이?”

메트로시티 병원은 혼수상태에 빠진 김준혁이 있는 곳, 김은아는 이를 꽉 깨물었다.

‘분명 7층을 노린 거야!’

김은아는 심각해진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뭐해? 빌런이 나타났다고!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해!”

“은아야. 우린 주어진 구역을 지켜야 해. 그게 임무니까.”

병원으로의 출동은 다른 헌터의 몫. 자신이 맡은 구역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지금은 평화로운 도시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순찰자가 자리를 비운 걸 확인하고 빌런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방금처럼 게이트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김은아는 부서져라 꽈악- 어금니를 물더니 신유성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럼 막지나 마. 나라도 갈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김은아는 카페 밖으로 달려 나갔다. 카페의 주인은 김은아가 나간 출구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울리던 사이렌이 오늘은 두 번이나 울렸군요.”

가게 주인의 말에 신유성은 아까 전 김은아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나, 한 잔 더 마실 거야.]

이대로 김은아를 두고 임무를 위해 규칙을 지킬지. 김은아의 뒤를 따라 나설지.

[왜? 산속에만 있어서, 카페도 못 와봤다며.]

평소의 신유성이라면 하지 않을 고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은아를 동료로 원한 건 실력 때문이었지만. 짧은 대화를 나누며 이유는 늘어나 있었다.

[자! 카페에는 케이크도 있고 먹을 게 많으니까. 아무거나 시켜.]

신유성이 눈이 가늘어졌다.

선택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 때 쯤, 문득 김은아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냥, 쇼핑?]

무언가를 생각하며 유난히 깊어진 김은아의 표정. 마음이 약해진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건, 신유성의 나쁜 버릇이었다.

“어쩔 수 없지.”

다짐을 한 신유성은 어딘가로 연락을 걸었다.

*     *      *

메트로시티 병원 5층.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건물의 벽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사아악.

벽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되어 사라지는 먼지들. 곧이어 한 남자가 드러났다.

“으윽! 크으윽…….”

남자는 괴로운 듯 머리를 부여잡고 짐승처럼 신음을 흘렸다. 남자의 핏발이 선 채, 초점이 없는 눈동자는 섬뜩했다.

“크아아악!!”

남자가 괴로움에 포효하자. 파견을 나온 헌터는 공포에 질렸다.

“어떻게 건물을 능력도 없이 맨손으로 가루로 만들어…….”

협회 소속의 3급 헌터. 유애리.

그녀 난생 처음 맡아보는 긴급 출동에 울상이 됐다.

“선배. 5층으로 못 올라와요? 이거 저 혼자 못 막는다니까요?”

-못 간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어떻게든 생포해! 지금 폭주한 놈 누군지 알지? 명심해. 걔 죽이면 너도나도 끝이야!

선배가 무섭게 다그치자 유애리는 울먹이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데. 제가 생포를 어떻게 해요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병원 근처에 파견된 헌터는 유애리와 선배를 포함한 둘. 그 외에는 병원을 지키던 시티가드 정도였다.

‘물, 물론 지금은…… 완전 박살이 났지만.’

남자 주변에 쓰러진 시티가드들을 보며 유애리는 생각했다.

‘이런 놈을 생포라니. 무리라고.’

남자는 갑자기 유애리를 보며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곧 남자는 괴로움에 찬 소리를 지르더니 유애리를 향해 달려왔다

“크으아아악!”

퍼억!

남자의 주먹에 맞은 유애리는 짐짝처럼 벽에 처박혔다.

“커허억!”

단 일격.

유애리는 방금 전 공격으로 내장을 다쳤는지 일격에 피를 토해냈다.

‘……이런 거, 절대 못 막아.’

점점 흐려지는 정신.

벽에 처박힌 유애리의 몸이 시체처럼 늘어졌다. 기절한 유애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자. 남자는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크아악!”

일명 마나 폭주.

지금 남자가 겪고 있는 이상 증상은 헌터들의 고질적인 질환 중 하나였다. 마나 폭주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능력 각성제의 과도한 복용을 이유로 꼽았다.

역류한 마나가 구석구석을 헤집어 신체와 정신을 모두 폐인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순환석을 이용해 폭주를 늦출 순 있었지만 한국에도 몇 없는 보물인데다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크으윽…….”

남자가 발걸음을 출구로 돌렸다. 괴로움에 미쳐버린 남자는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라앉은 목소리의 여성이 남자를 불러 세웠다.

“멈춰.”

단호한 목소리의 정체는 김은아.

“크아악!!”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자. 김은아는 검지를 겨눠 전기를 탄환처럼 만들어 사격했다.

파아앗!

“경고했어.”

“크윽, 크으으…….”

팔을 맞은 남자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자. 김은아는 괴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빠.”

김은아는 엉망이 된 김준혁을 바라봤다. 김준혁은 초점 없는 눈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크, 흐으으, 으윽!”

지금의 김준혁은 김은아가 알던 상냥한 오빠가 아니었다. 김은아는 그런 김준혁을 직접 막아야 했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었지만 김은아는 김준혁을 똑바로 쳐다봤다.

“오빠, 괴롭지? 조금만…… 참아. 곧 헌터들이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크으, 크으으 그륵…….”

김준혁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김은아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움직이지 마!”

김은아는 소리를 지르며 김준혁을 향해 손바닥을 겨눴지만. 김준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김준혁은 김은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김준혁이 혼수상태에 빠진 이후, 김은아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빠가 깨어나길 바랐다.

“크르으으…….”

물론 지금의 김준혁은 김은아가 알던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에게 한소리 들었구나? 그래도…… 울 필욘 없어. 널 아끼셔서 그러시는 거니까. 자, 이리와. 업어줄게.]

김은아가 기억하는 김준혁은 다정하고.

[우와! 또 전체 1등이야? 오빠! 멋있어!]

언제나 김은아의 자랑이었으며.

[하하, 당연히 잘해야지. 기대에 부응해야 하잖아? 부모님에게도 너에게도.]

누구에게나 상냥한 오빠였다.

“내가…….”

김은아는 힘겨운 목소리와 함께 전기를 끌어 올렸다.

“멈추라고, 했잖아…….”

파지짓! 찌릿!

불안정한 김은아의 기분처럼 전기는 이리저리 튀었다.

“크아아악!”

김은아를 향해 달려오는 김준혁.

아무리 헌터를 지망해도 김은아는 고작 17살의 소녀였고, 폭주에 빠졌어도 김준혁은 김은아의 하나뿐인 버팀목이었다.

파즛!

결국 꺼져버리는 푸른빛의 전기.

전의를 상실한 김은아의 기분이 능력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아?”

부우웅! 콰앙!

김준혁의 주먹이 김은아에게 작렬했다. 팔을 교차해 막아냈지만 폭주자의 믿을 수 없는 괴력으로 김은아는 벽에 처박혔다.

“허억! 큭…….”

다급하게 토해내는 숨.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김은아는 무력했다. 방금 맞은 김준혁의 일격으로 팔에는 감각이 없고, 머리에선 피가 흘렀다.

“오빠…….”

김은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김준혁을 불렀다.

“나.”

김은아가 김준혁을 바라봤다.

이제 이렇게 변해버렸구나.

“……실은 알고 있었어.”

왜 김준혁이 각성제에 의존했는지 모른다는 건, 진실을 외면한 김은아의 거짓말이었다.

김은아는 벽에 손을 짚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 충격으로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상관없었다.

“오빠가…….”

아카데미에서 성적을 받는 날.

그 날은 김준혁이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한 부모님에게 칭찬 받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존나 나약하다는 거.”

김은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헌터로서의 실력과 강함은 김준혁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유일한 수단이 됐다.

그래서 김준혁은 헌터로서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 인정하지 않았다.

김은아에겐 주어진 재능이.

누구보다 갈망한 김준혁에겐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김은아는 신유성이 신기했다.

F급 특성을 가지고.

가문에게 버림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강해진 신유성이 신기했다.

“크르…….”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낸 김준혁.

김은아는 벽에 손을 짚은 채, 김준혁을 바라보며 허세를 부렸다.

“……당장 덤벼. 내가 정신 차리게 해줄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