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5화 (45/434)

제45화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카페.

김은아는 쾌적한 바람을 맞으며 빨대로 주으읍-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였다.

“아아~ 진짜 이 맛이지.”

김은아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행복한 표정을 짓자.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너무 쓰던데.”

“햐, 짜식. 나처럼 어른이 되면 이런 쓴맛도 즐길 수 있는 거야.”

김은아는 의기양양해하며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반면 신유성은 휘핑크림이 뿌려진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고 있었다.

‘엄청 달아.’

신유성은 김은아가 시켜준 음료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난 이게 좋아.”

김은아는 피식 웃더니 턱을 괸 채 신유성을 훑어보았다.

“흐음, 근데 넌 어떻게 그 나이를 먹고 카페를 처음 오냐?”

“음, 아무래도 5살부터는 쭉 무신산에서 지냈으니까.”

“5, 5살? 그때부터 지금까지?”

놀란 김은아는 물고 있던 빨대를 놓쳤다. 5살부터 17살까지 12년을 산에서 보냈다니. 김은아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 말도 안 돼.”

아무리 권왕의 제자라지만.

가끔은 무신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김은아는 신유성의 이야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럼 그렇게 쭉~ 산에 있었으면 가족들은? 진짜 아예 안 봐?”

김은아가 도저히 믿지 못하는 물어오자. 신유성은 담담하게 답했다.

“쭉 무신산에 있었어. 내게 가족은 스승님뿐이거든.”

짧은 정적.

김은아는 신유성이 권왕에게 거두어진 것만 알았지. 고아원 출신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 아, 그, 그래? 생각해보니까. 산도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일단 공기가…… 좋잖아?”

당황한 김은아는 태연하게 대응 하려했지만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즈으으.

김은아의 빨대에선 아메리카노 대신 공기 소리만 요란했다. 카페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

“난 괜찮아.”

신유성의 아무렇지 않은 대답에 김은아는 지그시 물었던 입술을 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 됐어.”

어색한 듯 테이블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김은아의 손가락. 김은아는 유리 너머의 밖을 바라보며 최대한 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억지로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2년 전 혼수상태에 빠진 김준혁.

김은아는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에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 ……미안하다. 내가 괜히 떠올리게 만들었네.”

김은아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소심하게 사과를 했다. 지금처럼 김은아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건 아카데미에서 신유성이 최초였다.

‘의외로 섬세하네.’

처음 보는 김은아의 모습이 신유성도 새롭긴 했지만 그래도 김은아를 자책하게 둘 순 없었다.

“아니. 정말 괜찮아. 음…… 일단 살아 계시기도 하고.”

신유성이 웃으며 말을 하자. 김은아는 미간을 좁혔다.

“음? 아까는 없다며?”

김은아의 말에 신유성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두 멀쩡해. 이젠 가족이 아닌 것뿐이니까.”

“그럼…….”

김은아도 이제야 신유성의 처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난 가문에서 버림받았거든.”

신유성의 담담한 이야기에 김은아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신유성이 무신산에 들어갔다고 말한 나이는 5살. 김은아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참……. 이상하네.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5살을 버리냐?”

둘을 제외하면 손님이 없는 게 다행인 상황. 김은아는 이야기를 꺼내는 게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신유성은 과거에 대해 숨길 생각이 딱히 없었다.

‘친해지기 위해선.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게 유리할 테니까.’

그리고 묻어둔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 건,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었다.

“가문은 F급 특성을 가진 후계자를 원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버렸다고?”

작게 한숨을 내쉰 김은아는 신유성을 마주보았다. 헌터 강국인 한국에서 명가로 인정받으려면 확실히 후계자들의 힘은 중요했다.

‘그래도 그렇지…….’

하지만 그런 이유로 버리기까지 하다니 김은아는 입맛이 썼다.

“근데 가문? 너 그럼 혹시……. 명가 출신이야?”

‘신’이라는 성을 쓰면서 김은아가 기억할 정도로 유명한 헌터명가. 그런 가문은 한국에서 단 한 곳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신오가문?”

김은아의 질문에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빨대를 문 김은아는 생각에 잠겼다.

‘설마 했는데…… 진짜 신오가문 출신이었다니.’

신오가문은 신성그룹의 회장이자, 김은아의 할아버지인 김주혁이 인정한 헌터 명가. 탑과 던전에 거대 길드의 레이드가 벌어지면 꼭 그 사이엔 신오가문의 출신이 있었다.

‘권왕의 제자에 신오가문의 핏줄이면…… 진짜 쩔긴하네.’

생각에 빠졌던 김은아는 무언가 떠오른 듯,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야 근데 신오가문이면…… 2학년 중에도 있잖아!?”

신하윤.

2학년의 랭킹 1위.

차기 학생회장.

그리고 가온에서 5급 보스를 사냥한 유일한 학생.

김은아의 생각은 신하윤까지 닿은 모양이었다. 김은아도 신하윤의 명성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이젠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신유성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은아는 엄청나게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래서 넌 버리고 신하윤은 키웠대? ……특성이 S급이니까?”

꾸깃-

김은아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자 사정없이 구겨지는 종이컵. 김은아는 비스듬히 턱을 괸 채 신유성을 바라봤다.

“넌 참 사람도 좋다. 그걸 어떻게 참았냐? 나였으면 아주 그냥…….”

“괜찮아. 그 덕분에 난 스승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신유성의 말은 진심이었다.

실력지상주의로 찌든, 신오가문의 사람보다 신유성은 스승인 권왕의 쪽이 더욱 가족 같았다.

주으읍.

‘이제 가볼까.’

어색한 기류 속에 들리는 공기 소리 신유성이 다 마신 컵을 내려놓자. 김은아는 신유성을 불렀다.

“야.”

툭.

김은아는 손가락 사이에 검은색 카드를 끼워 내밀었다.

“……나, 한 잔 더 마실 거야.”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의 김은아.

“왜? 산속에만 있어서, 카페도 못 와봤다며.”

“그건 그렇지만.”

신유성은 재촉하는 김은아를 보며 떨떠름하게 웃었다. 민망한지 화나 보이는 얼굴로 계속 카드를 흔드는 김은아.

“자! 카페에는 케이크도 있고 먹을 게 많으니까. 아무거나 시켜.”

신유성은 김은아의 재촉에 카드를 받아들었다.

‘……설마 이게 챙겨주는 건가.’

신유성이 보았을 땐 김은아의 표현방식은 너무나 미숙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결국 신유성은 김은아의 카드를 받아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아.”

재벌가의 외동딸인 김은아와 고아원 출신의 신유성. 아무런 접점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조금은 친해진 순간이었다.

*     *      *

메트로시티 병원의 7층.

일반인들에겐 출입이 불가능한 폐쇄된 장소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빌런이 병원을 찾아온다고. 여기만 2년째 지키고 있으니 원…….”

시티가드(City Guard).

20대로 보이는 그는 도시 경비대 출신의 엘리트 경호원이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고작 교대로 7층의 병실을 지키는 게 전부였다.

“투정 부리지 말라고. 위험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돈을 챙겨주는 곳이 흔한 줄 알아?”

옆에 있던 경호원이 무안을 주자. 이야기를 꺼낸 남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아, 솔직히 위험할 일이 없어서 꿀인 건 맞는데. 그래도 너무 심심하잖아요.”

“하긴…….”

“그리고 어떤 정신 나간 빌런이 메트로시티 같은 대도시를 노리겠습니까? 이 병원만 해도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데.”

경호원은 포켓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각은 3시간. 보이는 생물이라곤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간호사들 표정 못 봤어요? 7층만 오면 진이 다 빠져서 나간다니까.”

“하하! 입장 절차만 5분이 걸리니. 그럴 만도 하지.”

두 남자가 떠들고 있을 때, 뒤에서 둘의 사이로 헬멧이 튀어나왔다.

불쑥!

“아하하항~ 맞아! 맞아! 여긴 심해도 너무 심하더라! 네 말대로 진이 다 빠지더라니까?”

헬멧에서 들리는 노이즈 섞인 활발한 목소리. 경호원은 뒤늦게 허리춤에 손을 뻗었지만 무기는 없었다.

“큭, 어느 틈에!”

당황한 경호원은 소리를 쳤지만 위협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헬멧을 쓴 빌런은 양손에 든 물건을 보란 듯 자랑했다.

“어라, 혹시 오빠들 지금 찾는 게 요거~ 맞나? 아하핫!”

헬멧녀가 들고 있는 건 경호원들의 총이었다.

“이 자식이!”

경호원을 비웃듯 헬멧의 검은색 전광판에 떠오르는 푸른색의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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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도 없이 지금 나한테 맞서는 거야? 오빠는 진짜~ 용감한데?”

[ ^o^ㅋㅋ]

헬멧녀는 입을 가린 채 웃더니 경호원들에게 총을 겨눴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솔직히 난 좀 섭섭해. 장난 좀 쳤다고 이렇게 무서운 물건을 꺼내려고 한 건, 너무하지 않아?”

수다스럽게 떠들던 헬멧녀가 총을 겨누자 경호원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시티가드 출신이라도 둘은 헌터가 아닌 일반인. 총알을 맞으면 절대 멀쩡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보안 시스템을…….”

20대인 경호원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눈앞의 빌런은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경비를 뚫고 접근했을까.

헬멧녀는 경호원을 보며 비스듬히 웃었다.

“궁금해? 아~ 솔직히 폼나는 건 비밀이라면서 멋지게 떠나는 건데. 헤헤,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안 어울리더라고. 음, 굳이 따지자면 보스 옆에 있는 범생이 정보원?”

정신 사납게 수다를 떤 헬멧녀는 허공에 뜬 홀로그램 창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난 말이지? 보기보다 두뇌파라. 이런 게 주특기거든. 어때 신기해?”

헬멧녀의 말에 허세는 없었다. 그녀의 단순한 손놀림에 7층의 모든 경비 시스템이 해제됐다.

위이잉! 철컥! 철컥! 철컥!

닫혀 있던 문들이 전부 열리고,  복도를 비추던 모든 불이 꺼졌을 때 20대 경비원은 헬멧녀의 정체를 알아챈 듯 중얼거렸다.

“치, 치트다…….”

“설마…… 리벨리온의 해커!”

악명 높은 빌런 단체 리벨리온.

치트는 그런 리벨리온의 소속으로 중국에서 기밀을 유출해 현상수배가 걸린 해커였다.

“헐, 나 벌써 그렇게 유명해? 그럼 안 되는데? 아핫핫! 난 이제 시작이걸랑!”

“닥쳐라!”

신이 나서 웃어재끼는 치트. 경호원 중 한명은 치트를 향해 몸을 던져 달려들었다.

파앗! 스스스!

하지만 치트의 몸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대신 다른 경호원의 옆에서 나타나 낄낄거리며 웃었다.

팟!

“아항? 난 여긴데~?”

블링크.

그녀의 특성 스킬으로 텔레포트의 일종이었다. 경호원들은 뒤늦게 포켓에서 무기를 꺼내 휘둘렀지만 그럴 때마다 치트의 몸은 수없이 점멸했다.

파앗!

“아 느려.”

팟!

“방금 건 좀 위험했네.”

치트에게 지금의 상황은 전투가 아닌 그저 유흥. 두 남자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치트는 블링크를 사용해 뒤를 기습했다.

퍼억!

“커억!”

“컥!”

치트의 손날치기에 두 명의 경호원은 맥없이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무방비하게 병실에서 누워 있는 김준혁.

저벅저벅.

치트는 느릿한 걸음으로 문이 열린 병실에 들어갔다. 현대의 기술은 그녀의 해킹에 너무나도 취약했다. 차라리 아무런 전자장치도 없는 단순한 철문이라면 나았을 상황.

치트는 커다란 병실을 둘러보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참, 역시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니까. 내가~ 광저우에 있을 땐 말이지? 앗, 클로 듣고 있어?”

치트는 여전히 수다스럽지만 생각에 빠진 탓인지 평소보다 이야기가 느릿했다.

“대답이 없네? 듣고 있는 거 맞지? 나 말한다?”

치트가 계속 누군가를 찾자. 곧 슈트의 포켓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순환석은 확보했나?

치트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김준혁을 내려다보며 킥킥 거렸다.

“그건 나중에. 일단 들어봐.”

치트는 김준혁의 옆에 있는 장치에 손을 뻗었다. 거대한 기계에는 순환석이라고 불리는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내가 어릴 땐 말이지. 하루 잘 곳이랑, 그날 먹을 거, 구하는 게 제일 걱정이었거든? 근데 이 병실에서 하루 묵을 돈이면 티엔허에서 1년 동안 딤섬을 먹을 수 있다고.”

치트는 기계에서 순환석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역시 불공평하지? 응?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치트가 계속 수다스럽게 떠들자. 의문의 남성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일축했다.

-다시 묻겠다. 순환석은 확보했나?

치트는 헬멧의 안에서 보이지 않게 웃더니 순환석을 움켜쥐었다. 리벨리온에 모인 빌런들의 목표는 제각각으로 다르다.

하지만 그녀가 리벨리온에 들어온 이유는 언제나 하나였다.

-다시 묻겠다. 순환석은…….

“아아앗! 좀 보채지 마! 챙겼어!”

치트는 머리를 흔들며 짜증을 부리더니 김준혁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파짓.

[ Sorry~♥ ]

[ ㅠㅅㅠㅋㅋ]

그 다음 김준혁을 내려다보며 헬멧의 전광판에 메시지를 띄웠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에 대한 그녀 나름의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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