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김은아는 푸른색의 보석을 바닥에 던졌다. 보석의 정체는 비구름을 부르는 흑운석. 공방의 마도학으로 만들어진 값비싼 속성석이었다.
물론 신성그룹 회장의 외손녀인 김은아에겐 푼돈에 불과했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이 조각나는 보석. 5마리의 괴조가 김은아의 주위를 포위했다.
“키르르…….”
“키에엑!”
그러나 달려들진 않았다.
김은아가 뿜어내는 마나에 압도된 것이다. 김은아는 괴조들을 무시한 채, 여유롭게 말을 했다.
“야, 협회에서 특성을 어떻게 분류 하는지 알고 있냐?”
“응. 어느 정도는.”
신유성은 스미레의 노트에서 특성의 분류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자세하게는 수십까지의 분류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항목은 총 4개.
“협회에선 범용성. 파괴력. 안전성. 잠재력을 제일 높게 쳐. 네가 싸울 아델라는 전부 S등급이지.”
김은아의 설명은 은빛 부리의 빚 덕분인지 친절했다.
“전부 S등급…….”
가온에서도 손꼽히는 재능.
반면 신유성은 안전성을 제외한 대부분이 F였다. 협회는 신유성이 가진 [집중력 강화] 특성의 가치를 낮게 측정한 것이다.
“근데 가온에는 그런 아델라보다 파괴력과 잠재력이 높은~ 무려 S+의 헌터가 있단 말이지?”
그렇게 말한 김은아가 웃었다.
쏴아아아!!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김은아가 깨트린 흑운석(黑雲石)이 하늘에 먹구름을 부른 것이다.
“그래. 그게 바로 나야.”
자신만만한 김은아의 표정.
물론 안전성이 F등급을 받아 결국 종합 평가는 A등급이 됐지만. 김은아의 특성이 가진 파괴력과 잠재력은 가온의 탑이었다.
‘그럼 실력을 볼까.’
신유성이 김은아를 믿고 안전한 장소까지 물러나자. 김은아는 왼발로 바닥을 찍으며 온몸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콰앙! 즈즈즛!
김은아의 몸에서 번쩍거리는 푸른색의 번개. 김은아의 오른손에는 구슬 형태의 번개가 난폭히 요동쳤다.
파지직! 파지지직!!
“키에에엑!”
이상한 낌새에 눈치를 보던 괴조들이 달려들자. 김은아는 오른손의 번개를 움켜쥐었다.
번쩍! 쿠르릉! 콰앙!!
곧 먹구름으로 어두워진 도로에 번개가 내려쳤다. 일순간에 도로를 밝히는 환한 빛. 도시가 다시 정전으로 어둠에 휩싸였을 땐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번개라는 자연재해를 자신의 마나로 만들어낸 것이다.
“……훗.”
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스케일.
김은아는 검게 그을린 괴조들을 뒤로 한 채 신유성을 바라봤다.
“시험 땐 봐주는 거고. 이게 랭커들의 전력이야.”
신유성이 김은아의 번개를 보며 감탄했다.
‘……이게 가온의 2위.’
그만큼 김은아가 보여준 능력은 파괴력이 엄청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파괴력의 이야기.
전투에선 파괴력이 전부가 아니다. 김은아의 특성은 주변의 동료가 휩쓸릴 위험도 있어 보였고, 기술의 정확도가 낮아 보였다.
‘접전에선 단점이 더욱 크게 다가오겠지.’
무엇보다 김은아의 기술은 발동이 너무 느렸다. 아무리 번개가 빨라도 시전시간이 길면 대처가 쉬웠다. 물론 김은아에겐 그 모든 핸디캡을 뒤엎는 장점이 있었다.
희귀한 전기 속성.
김은아는 물리적으론 수비가 거의 불가능한 속성을 원거리와 근거리 모두에서 광역공격이 가능했다.
‘……그러니 팀원들이 약점만 보완해준다면 엄청난 능력이야.’
신유성은 김은아가 보여준 단 한 번의 전투로 모든 정보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김은아는 그런 신유성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흐흠, 짜식. 엄청 뚫어지겠다. 방금 내가 그렇게 쩔었냐?”
자신의 활약에 기분이 좋아진 김은아. 겨우 이런 일에 콧소리까지 내는 걸 보면 김은아도 나이에 걸맞게 순수한 면이 있었다.
‘은아도 국가대항전에 참여하면 큰 도움이 될 텐데.’
하지만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신유성이 보기에 김은아는 마음의 벽이 두꺼워 보였다.
‘친하지도 않은 내가 파티에 들어오라고 말하는 건. 아직 무리겠지.’
무신산에서 자라온 신유성도 이런 부분에선 눈치가 빨랐다.
“춥지 않아?”
대신 걱정하는 투로 말을 건네자. 김은아는 자신의 젖은 옷차림을 훑어보며 쓰읍- 소리를 냈다.
“……역시 흑운석까지 쓴 건 너무 오버였나? 어!?”
김은아는 신유성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야! 넌 왜 하나도 안 젖었냐!?”
비에 절여진 김은아와 달리 신유성의 교복과 머리에는 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아, 이거?”
자신의 머리 위를 검지로 가리키는 신유성. 김은아가 어쩔 수 없는 신장 차이에 고개를 들자. 신유성의 머리 위에 마나로 이루어진 배리어가 보였다.
“배, 배리어? 비를 피하겠다고 배리어를 만든 거야?”
눈이 커지며 기겁을 하는 김은아.
신유성의 행동은 그만큼 상식 밖이었다. 겨우 비를 피하기 위해 마나배리어를 사용하다니 평범한 집중력으론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야? 배리어는 잠시 유지 하는 것도 엄청 힘든데…….’
놀라는 김은아를 보며 신유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사용하지 않아?”
마나배리어는 신유성의 스승인 권왕이 가르쳐 준 기술이었다.
[이놈아. 비가 온다고 나무 밑에 숨어? 헌터들은 원래 배리어로 비를 피하는 거다.]
비를 피하기 위해 마나배리어를 배운 게 10살. 신유성에게 마나배리어 정도는 숨 쉬듯 익숙했다.
“야, 누가 비를 피하는데 배리어를 사용해!? 그건 너나 가능한 거야!”
김은아와 신유성이 배리어를 두고 티격태격 거리고 있을 때, 무장을 한 시티가드들이 도착했다.
“메트로시티의 가드입니다! 괴수의 인계를 위해 왔습니다.”
20대 중반의 남성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신유성과 김은아는 학생에 불과해도 메트로시티 전체의 순찰을 맡고 있는 헌터. 일부 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시티가드보다 훨씬 위치가 높았다.
“이미 상부에서 전파 받았습니다. 가온 아카데미에서 지원을 와주신 헌터들이시라고…….”
경비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신유성이 귀찮아 보이는 김은아를 대신해 나섰다.
“맞습니다.”
“가온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정말 대단하시군요. 두 분이서 4급 게이트를 공략하시다니…….”
시티가드가 4급 게이트를 처리하는 건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았다. 특히 은빛부리 같은 보스를 잡을 수 있는 건 실력 좋은 헌터들 뿐.
경비대장은 은빛 부리의 덩치를 보더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정도 크기면 은빛 부리 중에서도 최상급이군요. 은빛 부리는 부산물이 비싸니. 청소부들의 몫을 떼도 돈이 제법 될 겁니다.”
괴수들의 부산물이 돈이 된다니 신유성은 경비대장의 말이 신기했다.
‘무신산에선 기껏해야…… 고기로 구워 먹는 게 전부였는데.’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
헌터를 지망하는 신유성에게 돈은 언제나 부족했다. 돈이 많은 학생들은 헌터 용품을 비롯한 선택지가 다양해졌고, 기숙사에서의 생활도 훨씬 풍족해졌다.
‘……역시 돈을 버는 건 교외 활동이 최고구나.’
신유성은 뿌듯해진 기분으로 경비대장에게 물었다.
“이번 괴수는 얼마 정도인가요?”
무신산에서 온 신유성은 몬스터의 부산물에 큰 금액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경비대장이 말한 금액은 충격적이었다.
“음, 게이트의 보상금과 부산물을 합치면 한 분당 못해도 천만 원 정도는…….”
지금 가진 생활비인 200만 원의 무려 5배. 보통 1학년 학생들의 교외활동 의뢰비는 3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10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처, 천만…….”
신유성이 은빛 부리를 보며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신유성이 현역 헌터고, 보스가 국가에서 현상금을 건 경우라면. 이보다 더한 보상금도 받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순수했던 신유성에게 자본의 맛은 달콤했다.
“여기 사인만 해주시면. 나머지 순서들은 정부기관이 모두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적었습니다!”
순순히 이름을 적는 신유성과 달리 김은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인? ……귀찮은데.”
“그래도 헌터분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려면…….”
보상금 지급은 시티가드의 중요한 담당업무. 경비대장이 물러서지 않자. 김은아는 하품을 하더니 팔꿈치로 신유성을 툭툭 건드렸다.
“그냥 잡몹도 네 이름 적어.”
사인 한 번에 천만 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 눈이 커진 신유성은 김은아를 바라봤다.
“그, 그래도 절반은 네 몫이잖아?”
보기 드물게 말을 더듬는 신유성.
하지만 김은아의 경제력은 일반인의 범주로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나? 됐어. ……폼 안 나게. 난 푼돈으론 사인 안 해.”
학교의 시험을 위해 테마파크를 빌려주는 김은아에게 천만 원은 돈이 아니었다.
“가능합니다. 같이 공략한 헌터에겐 보상금을 양도 할 수 있거든요.”
절차를 마치고 싶은 시티가드는 김은아의 말에 재빨리 신유성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신유성이 정자로 올곧게 이름을 적어내자. 시티가드는 다시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그럼 교대까지 수고하십시오!”
갑자기 신유성에게 생긴 이천만원 상당의 거금.
어느새 하늘은 쨍쨍해졌고, 기분 좋은 햇빛이 도시를 비췄다.
“도시에서 게이트가 열리다니……. 진짜 무서웠어!”
“저기 봐! 헌터분들이다!”
155번 길의 도로도 통제가 풀리자. 시민들이 돌아오며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게이트 근처 카페의 점장은 신유성과 김은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게를 안전하게 지켰으니!”
“할일을 했을 뿐입니다.”
신유성의 모범적인 답변에도 중년의 점장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면…… 꼭! 음료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마나로 옷을 말리던 김은아는 그 이야기에 화색이 돌았다.
“오, 카페?”
아까 전부터 카페를 가자며 졸랐던 김은아. 사인 한 번에 천만 원을 꿀꺽한 신유성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가자.”
“원래 뒤풀이는~ 아메리카노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페를 향하는 김은아의 뒷모습은 어딘가 신나 보였다.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의외네.’
천만 원은 귀찮아해도 커피 한잔은 저렇게 좋아하다니. 신유성에게 김은아는 여러모로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