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3화 (43/434)

제43화

메트로시티의 오후.

가온의 교복을 입은 신유성과 김은아가 도시를 걸어 다니자.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와, 가온 학생들이네?”

“나!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시민들의 동경 어린 시선.

탑을 공략해 미지의 지식과 기술을 전파하고, 던전과 게이트의 위협에서 세계를 지키는 헌터들은 시민에게 영웅이었다.

물론 지금의 헌터들은 자본의 논리에 강하게 얽혀 있었지만. 그런 부분조차 일반인에겐 동경의 대상인 건 변함이 없었다.

“오와아! 형! 헌터야!? 머싰어!”

신기한지 남자 아이가 눈을 빛내며 다가오자. 김은아는 귀찮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

“얜 또 뭐야?”

“나? 나! 백성일! 5살!”

하지만 김은아의 까칠한 반응은 5살의 남자아이에겐 통하지 않았다.

‘……5살.’

신유성은 꼬마의 나이에 보며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헌터가 멋있어?”

신유성의 질문에 꼬마는 더욱 눈을 빛내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머싯어! 헌터는 무기도 있고! 그리고, 어…… 괴수도 죽여!”

말을 끝낸 꼬마의 관심은 곧 김은아에게 향했다.

“근데에, 예쁜 누나. 누나는 총이랑 검 있어요?”

꼬마의 예쁘다는 이야기에 김은아의 입가가 잠깐 움찔거렸다.

도도한 김은아도 꼬마의 순수한 칭찬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나? 난 없는데.”

기분이 좋아진 김은아가 대답을 해주자. 꼬마는 질문에 박차를 더했다.

“헉! 그럼 괴수 어떻게 죽여요? 괴수 진짜 짱 센데.”

이제 5살의 나이. 한창 호기심이 많을 시기. 김은아는 대답대신 손에 푸른색의 전기를 피워 올렸다.

찌릿! 파지직!

“이걸로.”

김은아가 보여준 전기 능력에 꼬마는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쳐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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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감동한 눈으로 중얼거리는 꼬마. 김은아는 좋아진 기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했다.

“뭐…… 내 특성은 한국에서도 손에 꼽으니까.”

겨우 5살인 꼬마와 김은아는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신유성은 그런 둘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잘 놀아주네.’

어쩌면 둘의 정신연령이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닿았을 때, 꼬마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근데 누나랑 형은 사겨요?”

그렇게 말하고는 신유성과 김은아를 번갈아 보는 꼬마의 시선. 김은아는 미간을 좁혔다.

“뭐!? 내, 내가?”

김은아가 질색한 얼굴로 기겁을 하자. 꼬마는 실망을 했다.

“우음, 결혼 안 해요? 왜요?”

“내가 얘랑 결혼을 왜 해?”

어이가 없는지 눈을 가늘게 뜨는 김은아. 꼬마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둘 다 헌터니까! 그리고 형은 잘생겨쓰니까!”

어린 아이의 단순한 생각.

하지만 패배를 모르는 김은아는 상대가 5살이라도 절대 져주는 법이 없었다.

“야, 꼬맹이. 그거랑 결혼은 아무 상관없는 거야. 알겠어?”

김은아는 어린 아이를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17살과 5살이 벌이는 진귀한 구경거리.

“그럼요?”

하지만 꼬마의 순수한 질문에 김은아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 그러니까 결혼은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이 떠오르지 않자 김은아는 꼬마를 피해 슬쩍- 신유성에게 신호를 보냈다.

김은아의 도움 요청.

지켜보던 신유성은 피식 웃으며 김은아를 불렀다.

“은아야?”

김은아는 자신이 밀린 게 분한 듯 잠깐 꼬마를 노려보더니 도도하게 돌아섰다.

*     *      *

메트로시티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게이트나 빌런 같은 심각한 위협은 보이지도 않았고, 경미한 사고조차 없는 게 현실이었다.

순찰 종료까지 남은 시각은 2시간.

지루함을 못이긴 김은아는 입을 가리고 찢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신유성에게 말했다.

“……커피 한 잔 콜?”

그리곤 김은아가 엄지로 아까 봤던 카페 쪽을 가리키자. 신유성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직 순찰중이야.”

신유성이 느낀 커피의 쓴맛은 권왕이 약초로 달인 비약과 맛이 비슷했다. 커피는 비약처럼 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바나나우유 같은 맛있는 게 있는 곳에서 먹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김은아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을 시도했다.

“야 이것도 순찰이지! 갑자기 카페에 게이트가 나올지 어떻게 아냐?”

어지간히 커피를 먹고 싶었는지 억지를 부리는 김은아.

“엉? 난 진짜 촉이 좋다니까?”

신유성은 김은아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카페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어느 정도 카페에 다가온 그때.

띠링! 팟-!

둘의 포켓에서 소리가 나더니 홀로그램이 공중에 떠올랐다.

《Warning》

─게이트 발생, 위험도 4급

─종류:[던전]

─던전 이름:괴조의 둥지

ㅡ위치: 426-152번 길 카페

김은아가 촉이 좋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위이이잉-!!

메트로 시티에는 미리 설치해둔 스피커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사이렌이 울리며 긴급 상황을 전파했다.

[메트로 시티 전체 방송입니다]

[현재 426번 길에서 게이트가 생성 되고 있습니다. 주변의 시민들은 신속하게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유성과 김은아.

세븐넘버인 둘에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파앗!

신유성이 다리에 마나를 부여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자. 김은아는 자신의 특성인 전기를 이용했다.

파짓! 파지직!

전기에 휩싸인 김은아가 일순 사라졌다. 찰나의 번쩍임과 같은 속도. 순식간에 엄청난 거리를 주파한 김은아는 앞서가는 신유성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나보다 빠르다고?’

신유성의 속도는 김은아가 봤을 때 특성의 힘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신체능력과 마나 컨트롤의 산물.

신유성은 17살의 나이로 현역들도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있었다.

‘대체 정체가 뭐야?’

[게이트 관리국에서 다시 전파드립니다. 현재 426번 길의 균열이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계신…….]

다시 울려 퍼지는 관리국의 방송.

“지, 진짜다…….”

달리고 있던 김은아가 이동을 멈췄다. 지금 김은아에겐 이미 도착한 신유성이 보였고, 그 옆에는 균열이 보였다.

끝없이 공허한 보라색의 포탈.

김은아는 자신의 예측이 맞췄다는 사실에 신나서 소리쳤다.

“야야야! 내가 진짜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지!?”

하지만 들뜬 김은아와 달리 신유성은 표정은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잘했어. 이제 전투를 준비하자.”

이번에 열린 게이트는 4급.

신유성이 지금까지 손쉽게 처치했던 4급 보스들과 비슷한 상대. 그런데도 신유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최대한 도시에 피해가 없이 게이트를 닫자.’

신유성은 게이트의 공략은 물론 도시의 안전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카직! 카지지직!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게이트의 보라색의 균열이 점점 커졌다.

“키익, 끼욕?”

게이트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울음소리. 곧이어 게이트의 균열에서 무언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거대한 머리.

노란색 부리.

2미터는 족히 되는 크기.

“키에에엑! 끼요오옥!”

고개를 내민 괴조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더니 게이트의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 거창하더니 겨우 한 마리?”

김은아가 자신만만하게 웃자, 마치 김은아를 비웃듯 게이트에서 계속 괴조들이 걸어 나왔다.

“끼욕?”

“키엑!”

이제 괴조의 숫자는 총 5마리.

어이가 없어진 김은아는 게이트를 보며 소리쳤다.

“아니 뭐가 자꾸 계속 나와? 4급 게이트 맞아? 아주 이러다가 보스도 쳐나오지 그러냐?”

“키욕!”

“끼요옥!?”

김은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 거리는 괴조들. 김은아의 말이 씨앗이라도 된 듯 보랏빛이었던 게이트가 붉게 변했다.

쿠웅, 쿵!

커다란 진동과 함께 게이트의 밖으로 금속으로 된 부리가 나왔다. 금속을 본 김은아는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포, 포켓. 정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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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은빛 부리

출현 던전 - 괴조의 둥지

위험도 - 4급 보스

분류 - 괴수

정보 - 몸에 두른 깃털이 강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깃털의 무게로 하늘을 날진 못한다.

상세 - 은빛 부리의 깃털은 방어력이 높고, 일부 속성에 항마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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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씨……. 하필!”

김은아가 분한 듯 표정을 찡그렸다. 홀로그램에 적힌 정보가 사실이라면 항마력을 가진 은빛 부리는 김은아의 완벽한 상성. 김은아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이거.’

악재가 겹쳐도 너무 겹쳤다.

이렇게 큰 도시에 게이트가 등장하는 건, 대낮에 벼락을 맞기보다 드문 확률이다. 그런데 등장한 보스가 자신의 상성이라니.

‘……진짜 위험하잖아?’

쿵쿵쿵!

몸 전체를 드러낸 은빛 부리가 김은아를 마주했다.

“키에에에에엑!”

거대한 입에서 굉음이 쏟아져 나오자. 김은아는 겁을 먹는 대신 결의를 다지며 전기를 피워 올렸다.

파작! 파지지지직!

자신은 학교를 대표해 시민들을 지키러 온 헌터. 설령 상성이 불리하더라도 김은아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소리 지르면. 내가 쫄 것 같아?”

신유성은 김은아의 책임감 있는 모습이 의외였다. 김은아는 보스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 대신 시민들의 안전을 택했다.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

신유성은 김은아를 보며 권왕의 이야기를 떠올랐다.

[흐음, 믿을 수 있는 동료? ……이놈아. 그런 구별법을 가르친다면 그건 사기꾼이니 머리를 박살내거라.]

[그래도 스승님은 좋은 동료가 많으셨지 않습니까?]

권왕은 7살의 신유성이 좋은 동료를 구별 하는 법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뭐…… 싹수가 있는 놈 정도는 구별할 수 있지.]

권왕이 말한 싹수가 있는 놈은 순화해서 말하면 ‘잠재력이 뛰어난 헌터’였다.

[꼭! 알고 싶습니다!]

7살의 신유성이 눈을 빛내며 묻자. 권왕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죽기보다 지는 걸 싫어하는 놈. ……바로 유성이 너처럼 말이다.]

신유성은 권왕의 말을 되새기며 김은아를 바라봤다.

“야, 왜 안 덤벼?”

김은아는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몸을 움츠린 게, 누가봐도 긴장한 듯 보였다. 그러나 손가락만은 여유롭게 까딱이며 은빛 부리를 도발하고 있었다.

“쫄았냐?”

신유성은 그런 김은아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전혀 다른 성격의 김은아가 일순간 자신과 비슷하게 보였다.

“은아야. 보스는 내가 맡을 게.”

주먹을 쥔 신유성이 걸어 나오자. 김은아는 한 걸음 물러섰다.

“어? 진짜? 혼자서? 나야 괜찮긴 한데…… 좀 위, 위험하지 않냐?”

“자신 있어. 나머지를 맡아줘.”

마침 보스인 은빛 부리가 전투의 시작을 알리려 크게 울부짖었다.

“키요오옥!!”

쿵쿵쿵쿵!

은빛 부리의 거대한 몸체가 달려들자. 신유성은 자세를 낮췄다.

“키에에!”

달려오는 은빛 부리의 몸이 닿기 직전. 신유성의 시간이 멈췄다. 은빛 부리는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지만 가속되는 신유성의 사고 속에서는 너무나 느렸다.

신유성은 가속된 사고로 자신의 움직임을 정립했다.

‘왼쪽 팔에 다가온 부리를 피한다.’

신유성의 몸이 회전했다.

은빛 부리는 허공을 콰악-! 깨물었고, 신유성은 뒤로 빼낸 왼팔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다음 노려야 할 건 심장.’

그러나 단번에 심장의 위치를 알 순 없었다. 신유성은 특성인 집중력으로 자신의 감각을 일깨웠다.

이제 느려진 시간 속에서 신유성은 은빛부리의 심박이 느껴졌다. 남은 것은 단단한 깃털을 꿰뚫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내는 일.

‘한 번에 끝낸다!’

신유성의 주먹이 은빛 부리를 향해 뻗어나갔다.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오롯이 신유성의 주먹만이 자유롭게 보였다.

투신류 3장 파천권격(破天拳擊)

수만 번을 넘게 휘둘러본 주먹. 실수 따윈 없었다.

사아아악!!

다시 세상의 시간이 빨라졌다. 신유성의 주먹을 따라 푸른색의 마나가 꼬리를 만들었다.

콰가아악!

마나의 파장이 만드는 엄청난 굉음. 곧이어 신유성의 주먹이 은빛 부리에게 적중했다.

파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파.

상대가 괴수인 이상, 신유성은 손속을 둘 필요가 없었다.

쿠궁! 쿵!

도로에 쓰러진 은빛 부리.

거대한 몸이 쓰러지자 먼지가 흩날렸다. 특성이 아닌 강체를 이용한 전투 방식.

“와, 저걸…… 맨손으로…….”

순수한 감탄.

김은아가 신유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보석섬에서도 보았지만 신유성의 전투는 정말 특별했다.

권왕이 만들어낸 괴물. 특성의 도움 없이도 강력한 신유성은 헌터들의 상식을 파괴하는 이레귤러였다.

“끼, 끼욕!”

“키에에엑!”

대장을 잃은 괴조들이 울부짖었다. 방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겁에 질린 울음소리.

김은아는 신유성의 어깨에 불량하게 손을 얹었다.

“잔챙이를 상대로 꺼내는 건 쪽팔리지만…….”

김은아가 신유성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신유성이 보스를 처리한 이상, 전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었지만 김은아는 이래보여도 신성그룹의 일원. 회장인 김석한이 강조한 신성의 가훈은 하나였다.

[은혜는 잊지 않는다.]

김은아는 자신의 차례라는 듯 포켓에서 파란색 보석을 꺼냈다.

“아까 랭커들의 실력이 궁금하다고 했지?”

“아! 설마 끝나고…… 대련을?”

신유성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김은아는 무안한지 신유성의 시선을 피했다.

“그, 그건 아니고…….”

“그럼?”

“아델라랑 나랑 실력이 거의 비슷하거든?”

물론 어디까지나 김은아의 주장.

김은아는 허리를 곧게 펴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보여줄게.”

지금의 김은아는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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