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1화 (41/434)

제41화

시험이 끝난 지 하루.

아카데미로 돌아온 신유성은 평소처럼 교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F반의 학생들이 신유성에게 보여주는 반응은 사뭇 달랐다.

“유성이 왔다!”

“우리 F반의 영웅~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어?”

“소문으론 유성이는 도시락 싸서 다닌다는데?”

아무래도 스미레가 싸온 도시락이 F반에 잘못 소문이 난 모양. 신유성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학생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뭐야, 설마 요리도 잘해?”

“진짜 못 하는 게 없네?”

이전에는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거리를 벌렸다면. 지금의 신유성은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시험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반을 승리로 이끈 활약이 F반의 학생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레니아는 신유성의 팬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신유성 님을 위해 전망 좋은 자리를 닦아 두었습니다.”

레니아는 중세의 귀부인이라도 된 듯 교복 치마의 끝을 한손으로 부여잡고, 고개를 숙여 고풍스럽게 인사를 했다.

“후후, 어찌 이곳까지 친히 행차하셨는지요?”

레니아가 준비한 책상 자리는 기분 좋게 햇볕이 드는 창가자리였다. 거기다 누가 놓았는지 유리로 된 병에는 예쁜 꽃이 꽂혀 있었다.

“귀하신 분께선 라그라스의 꽃말은 아시는지요?”

“그, 글쎄…….”

신유성이 레니아의 과한 대접에 떨떠름하게 웃자. 옆에 있던 이시우는 한술 더 뜨고 있었다.

“유성아. 라그라스의 꽃말은 네 친절함에 감사한다는 뜻이야. 내가 직접 골랐지.”

“유리는 내가 가져 왔어. 진짜 수고했어!”

레니아는 평소의 말투로 엄지를 척 올렸다. 호주에서 온 레니아는 태닝을 한 듯 건강한 구릿빛 피부와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스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고마워. 그래도 시험을 이긴 건 너희 모두의 공이야.”

신유성은 시험에서 대활약을 보여줬음에도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 레니아는 그런 신유성의 겸손한 말에 취한 듯 중얼거렸다.

“인성까지……. 역시 합격.”

“뭘 합격했는데?”

실눈을 뜬 채, 레니아에게 묻는 이시우. 레니아는 신유성을 보며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아핫! 당연히 내 신랑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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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정말 미쳤냐?”

이제 F반에서 신유성의 입지는 가히 종교.

“이번에 선발전도 나간다며? 우리 집 대가족인거 알지? 무조건 너 뽑으라고 할게!”

“허 진짜? 유성이가 선발전을 나가? 나도 무조건 뽑을 거야!”

“야, F반의 자랑인데 당연하지.”

신유성을 향해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자. 멀리서 바라보던 스미레는 신유성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아, 저, 저저…….”

신유성에겐 닿지 않는 스미레의 중얼거림. 평소처럼 다가가려고 해도 세워진 인파의 벽이 너무 거대했다. 하지만 스미레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무언가를 다짐 하더니 낑낑거리며 학생들의 틈을 파고들어 결국 신유성의 옆을 꿰찼다.

“시, 신유성 씨! 여, 여기…….”

스미레가 건네준 물건은 직접 정리한 필기노트. 깔끔한 글씨체로 손수 적힌 공책에는 각 필기시험의 중요한 포인트들이 별모양으로 예쁘게 체크되어 있었다.

“아, 고마워 스미레. 전에 말했던 노트구나? 정말 정리가 깔끔한데.”

“그, 흐히…… 벼,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에요.”

스미레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의 끝이 들썩거렸다. 이시우는 그런 스미레를 바라보며 질색을 했다.

‘역시…….’

이시우가 바라본 스미레는 너무 음침했다. 거기다 평소에는 소극적인 듯 보이지만 신유성을 바라볼 때면 눈빛이 뭔가 음흉해보였다.

‘흐으음……. 역시 음침해.’

스미레는 이시우의 생각은 알지도 못한 채, 신유성의 칭찬에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니에요! 어차피…… 이런 것들은 금방 배우실 수 있는 것들이고!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요!”

스미레의 말이 그저 겸손은 아니었다. 실제로 스미레는 필기 성적은 순위권이었지만 학년 성적이 꼴등이었다. 학생들이 헌터를 지망하는 이상, 아카데미는 무엇보다 실전을 중요시 여겼다.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함.

필기에서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긴 하지만 우선순위는 그 다음이었다.

신유성은 스미레가 준 필기노트를 천천히 넘기며 읽어보았다.

“자자, 모두 돌아가. 유성이 책 읽는다.”

눈치가 빠른 이시우가 바람을 잡자 흩어지는 F반의 학생들. 그러나 이시우와 스미레는 신유성의 곁에 남아 있었다.

[1-1 헌터의 분류 ]

[1-4 던전과 탑의 이해]

[1-5 교외 활동 행동 수칙]

[1-6 …….]

신유성이 목차들을 둘러보며 빼곡하게 적힌 페이지들을 넘기자. 곧 원하던 내용을 찾아냈다.

[1-9 교외 순찰]

필기 노트를 본 이시우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메트로시티 순찰 때문이군.”

“하긴 그렇게 큰 도시를 맡으셨으니……. 그, 그래도 이론에 관한 건 제가 전부 가르쳐 드릴게요!”

스미레는 모처럼 의욕을 불 태웠다. 교과서적인 필기와 이론은 스미레가 신유성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좋아. 스미레. 그럼 부탁 좀 할게. 당장 교외 활동이 내일이거든.”

결국 의자를 가져온 스미레.

‘시…… 신유성 씨의 옆자리…….’

실실 웃음을 흘리는 스미레의 모습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     *      *

반 대항전의 패배.

분위기가 다운된 A반은 조용했다.

“얘들아아아~!”

하지만 에이미는 그런 고요를 놔두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드르륵- 시끄럽게 문을 열며 크게 소리쳤다.

“이 몸 등장!!”

짠- 허리춤에 손을 얹은 과장된 포즈로 에이미가 나타나자. A반에선 학생들의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오늘도 멋있다!”

학생들의 환호에 에이미는 손키스를 날리며 유세를 떨었다.

“땡큐! 땡큐! 다들 오랜만!”

“야 분위기 안 읽어?”

김은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에이미를 쳐다봤지만. 에이미는 오히려 김은아에게 철썩 달라붙었다.

“그런 거 안 읽어~”

에이미가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자. 김은아는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됐다 그냥.”

“근데 너~ 엄청 의외다?”

에이미는 손을 입에 올리고 쿡쿡- 웃었다. 거기다 능글맞게 들썩이는 눈썹.

“뭐가?”

김은아가 찝찝한 마음에 되묻자. 에이미는 김은아의 배를 검지로 콕콕 찔렀다.

“우리 파티장님이랑 하는 교외 활동 말이야! 너 그거 승낙했더라? 흐응 당분간 쉴 거라더니~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야?”

신이 난 에이미의 모습.

김은아는 수다스럽고 귀찮게 구는 사람을 질색 했지만. 이상하게 둘 다 해당되는 에이미를 떨쳐낼 순 없었다.

“뭐, 그냥 흥미롭잖아?”

“흐, 흥미라고!? 어느 부분이? 역시 파티장님의 미모!?”

흥분한 에이미가 눈을 빛내자. 김은아는 에이미의 이마를 꾸욱- 밀어 얼굴을 떨어트렸다.

“……뭔, 그냥 F반인데 존나 세잖아. 그뿐이야.”

“뭐든 좋아! 우리 파티장님한테는 무조건 친절하게 대해 줘야한다?”

“아, 알았으니까 떨어져.”

김은아는 거머리 같은 에이미를 가까스로 떨어트렸다. 그리곤 밝은 빛이 쏟아지는 창가를 바라보며 턱을 괬다.

‘……메트로시티.’

부산의 자랑이자 이번 대표 선발전이 벌어지는 장소. 하지만 김은아에게 메트로시티가 각별한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다.

메트로시티는 오빠의 병원이 있는 곳, 김은아는 오빠가 혼수상태에 빠진 이후 꾸준히 메트로시티로 병문안을 갔다.

그런 도시를 순찰 겸 들릴 수 있다니 김은아에겐 교외 활동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금방 보겠네.’

창가를 바라보던 김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      *

메트로 시티의 고층 빌딩.

푸른색으로 빛나는 포탈을 가리키며 안경을 쓴 남성은 아이처럼 떠들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국가 대항전의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구현해냈습니다! 물론 지금은 비록 일부지만……. 시간만 주어진다면!”

메이린은 그녀의 상징인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었다.

“……걱정 마십시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저희 협회에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메이린은 포탈을 꼼꼼히 살피며 말을 덧붙였다.

“이번 선발전은 협회장님께서도 주목하고 계시거든요.”

“혀, 협회장님께서!”

안경을 쓴 남자는 자신의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한국의 실세 중 하나인 강유찬이 주목하고 있다니, 남자는 긴장감에 몸이 쭈뼛거렸다. 메이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니 절대 실패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번 선발전의 구현에 총력을 쏟겠습니다!”

남자가 군인처럼 과장되게 충성을 하자. 메이린은 꼿꼿한 자세로 턱 끝만 사용해 포탈을 가리켰다.

“마침 포탈을 작동시켰으니 직접 테스트를 해봐도 되겠습니까?”

“네! 준비됐습니다!”

남자의 시원스런 대답에 메이린은 천천히 포탈 속에 손을 넣었다.

사아악!

마치 던전에 입장하듯 메이린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파앗! 사아아!

메이린이 아무렇지 않게 눈을 떴다. 포탈을 통과하자 방금 전까지 보였던 사무실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인적 없는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다.

“어떻습니까? 가상공간이지만 모든 것이 실제와 똑같습니다!”

뒤 따라온 남자가 호들갑을 떨자. 메이린은 가로수 바닥의 흙을 만졌다. 손끝에 머무는 부드러운 촉감. 생생한 도시의 전경. 메이린은 검지에 마나를 부여해 자신의 손등을 스윽- 베었다.

파즈즛!

상처에선 피가 흐르는 대신 홀로그램 입자가 흩어졌다.

“완벽하군요.”

메이린이 무감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라는 듯 거창하게 팔을 뻗었다.

“여긴 그 어떤 전투가 벌어져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 공간!”

남자의 말처럼 이곳은 최첨단 포탈 기술과 아티팩트의 마나로 이루어진 가상의 공간. 치명상을 입으면 포탈 밖으로 퇴출 되는 게 전부였고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헌터 협회에서 저희 기업을 택해주신 건 최고의 선택이십니다.”

남자의 말에 메이린은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거대한 무인 도시.

엘리트인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1위의 자리를 두고 펼치는 처절한 생존 배틀.

‘확실히 재밌긴 하겠군.’

물론 수도 없는 참가자 중에 메이린이 눈여겨보는 학생은 단 하나였다.

‘……신유성.’

권왕 유원학과 협회장인 강유찬이 주목하는 혜성 같은 신예. 거기다 협회가 주최한 던전에서 신유성은 최초로 더블 공략을 성공했다.

그런데도 보유한 특성은 F급에 불과 하다고 하니, 메이린은 절로 흥미가 돋았다.

하지만 선발전에서 신유성의 우승은 아직 미지수였다.

‘아델라.’

가온의 1학년에는 신유성이 입학하기 전부터 최강을 지킨 압도적인 강자가 있었다.

‘과연 둘 중 누가 이길까?’

기대감에 휩싸인 메이린의 입은 가는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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