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태양이 쬐는 워터파크.
이시우는 파라솔 밑의 썬베드에 누워 느긋한 자세로 중얼거렸다.
“흠, 둘이서…… 잘 노는 건 진짜 의외인데.”
이시우의 말에 신유성은 수영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으하핫!”
“히, 히익!”
신나서 추격하는 에이미.
겁에 질려 도망가는 스미레.
둘을 구경하던 신유성의 포켓에서 갑자기 전자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띠링! 파앗!
[교외 임무]
[의뢰자- 진병철]
[의뢰지역- 부산 메트로 시티]
[의뢰종류- 일일 도시 순찰]
[의뢰보상- 200SP]
신유성이 메시지를 확인하자 포켓에서 펼쳐지는 홀로그램. 옆에서 홀로그램을 읽은 이시우는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우와! 보상이 200SP? 그것도 의뢰자가 교장 선생님이잖아!?”
신유성은 의뢰 보상에 적힌 200SP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음- 하고 소리를 냈다.
“……200SP면 많은 거야?”
“당연하지! 200SP면 외출권이 몇 개인데? 그 정도 SP면 아카데미에선 못 하는 게 없다고.”
“그렇구나.”
신유성은 무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우는 그런 신유성이 의아한 듯 물었다.
“유성아 넌 얼마나 모았는데?”
“한 600?”
“허, 헉…….”
트레이닝 룸에서 신기록을 달성하고 얻은 SP. 대련에서 박수현을 이기고 얻었던 150SP. 그리고 반대항전에서 완벽한 승리를 달성하며 신유성은 엄청난 수치의 SP를 모아두었다. 평범한 학생들은 1년을 모아도 달성하기 힘든 수치.
이시우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와, 거의 내 3배잖아?”
교외 임무를 읽어보던 신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보내신 임무. 진짜 목적은 SP가 아닐 거야.’
그 증거로 임무에 적힌 장소는 선발전이 진행되는 부산의 메트로 시티. 장소를 확인한 신유성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꼭 참여해야겠군.’
거기다 의뢰의 내용도 도시의 순찰이라니,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에 이보다 좋은 임무는 없었다.
신유성이 홀로그램에 띄워진 [승낙] 버튼을 누르자. 홀로그램은 파스스- 소리를 내며 입자로 변해 사라졌다.
“휴- 엄청 재밌었다! 더하고 싶었는데!”
“흐우으으……. 더, 더하면…… 저 분명 죽을 거 에요.”
즐거워 보이는 에이미와 반대로 엉망이 된 스미레. 둘은 물놀이를 끝냈는지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이시우는 신유성의 옆에서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흐음. 그럼 유성이 넌 진짜 바쁘겠다. 선발전도 준비해야 하는데 도시 순찰까지 가야한다니…….”
에이미는 이시우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렸다.
“아, 도시 순찰! 맞다~ 파티장님 메트로시티로 교외 활동가시죠!? 거기 은아도 가던데…….”
에이미가 눈썹을 씰룩이며 쿡쿡- 하고 웃자. 이시우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방금 유성이한테 온 메시지인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
“흐핫핫! 방송은 원래 정보력이 생명이야! 학교에서 내가 모르는 일은 없다고!”
에이미가 등을 곧게 펴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허리춤에 손까지 얹은 것이 확실히 신나 보였다.
“그나저나, 전에도 생각했지만 파티장님과 은아의 조합이라니 정말 흥미로워…….”
에이미는 같은 A반 출신인 김은아와 사이가 제법 친했다. 김은아는 어지간하면 상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유독 에이미에겐 경계가 느슨한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A반이였지? 걔는 좀 어때?”
이시우가 썬베드에서 곧게 뻗은 발을 휘적거리며 묻자. 에이미는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에 빠졌다.
“어어…… 은아? 어어, 그러니까……. 어, 엄청 좋은 사람이야!”
에이미가 은근 슬쩍 대답을 얼버무리자. 이시우는 피식 웃으며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좋은데?”
“어……. 겉으론 까칠하게 굴어도 은근 잘 챙겨주는 거? 아, 이건 나한테만 적용인가? 으음…… 그러니까 내 말은…….”
혼자 과부하가 걸린 에이미.
말 주변이 좋은 에이미에게도 김은아를 포장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 * *
인파로 북적이는 워터파크.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학교의 유명인사인 아델라와 김은아가 걸어 나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인파가 갈라졌다.
학년 랭킹 1위 아델라 오르텐시아.
학년 랭킹 2위 신성그룹의 김은아.
선글라스를 낀 김은아는 뚱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채현. 그 년을 아주 반 죽여 놨어야 했는데…….”
아델라는 김은아의 투정에도 무표정했다. 하얀 원피스를 흩날리며 걷는 아델라. 그녀의 이국적인 분위기는 부산의 워터파크를 밀라노의 바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신비한 유학생.
아델라는 김은아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앞을 보며 한국어로 말했다.
“그저 시험일 뿐입니다.”
아델라의 차가운 목소리.
기본적으로 아델라는 타인의 일에 무감했다. 어릴 적부터 쫓아온 아델라의 관심사는 오직 강함이었다. 그걸 제외한 일은 아델라에게 무엇도 흥미롭지 않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는 김은아.
“……그래?”
김은아는 건조한 목소리로 아델라에게 느릿하게 물었다.
“혼수상태인 오빠를 들먹여도?”
저벅저벅.
한동안 두 사람의 주변에는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김은아와 아델라의 얼굴은 아무 일 없는 듯 무표정했지만 주변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굳은 분위기도 잠시.
“……흠, 뭐, 대답은 됐어. 넌 그렇게 말할 거 같았거든. 그리고…….”
김은아는 아델라의 대답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평소의 불같은 성격을 생각하면 신기한 반응. 김은아는 오히려 손에 든 물건을 보며 씩- 하고 웃었다.
“복수는 이미 했으니까.”
김은아는 검지에 걸어둔 포켓을 빙글빙글 돌렸다. 아슬아슬하게 검지에 걸려 있는 포켓은 김은아의 물건이 아니었다.
“이거 보여?”
포켓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었다.
가온의 학생증, 화상 통화, 포탈처럼 연결된 아공간 주머니, 포켓 자체에 내재된 아카데미의 SP, 현금 카드, 그 외에도 포켓의 기능은 셀 수 없었다.
“이게 없으면 그 녀석도 고생 좀 하겠지. 그러게 감히 누굴 건드려?”
그런데 김은아가 검지에 걸어둔 포켓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채현. 시험이 끝난 김은아는 기어코 이채현을 찾아가 자신의 오빠를 들먹인 복수를 한 것이다.
가히 세계 최고의 뒤끝.
아델라는 한숨을 쉬었다.
“기분이 좀 낫던가요?”
“아~ 기분?”
아델라의 질문에 김은아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존나 달던데?”
* * *
아카데미로 돌아가기 전.
테마파크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신유성은 숙소에서 떨어진 숲에서 자세를 취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기행으로 보일지 몰라도 신유성에겐 습관이 될 정도로 익숙한 과정이었다.
그야말로 밤의 수련.
신유성은 손끝에서 흩어지는 마나에 집중했다.
‘……최소한의 집중력으로. 최대한의 마나를 묶어둔다.’
권왕이 말해준 4장의 가르침.
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체질의 신유성에게도 아직 투신류의 4장은 어려운 경지였다.
집중력을 올리면 광범위하게 잡았던 감각이 흩어지고, 집중력을 낮추면 묶어둔 마나가 흩어졌다.
수련에 몰두한지 1시간.
신유성의 몸에서 푸른색의 마나가 일렁거렸다.
사아아.
뿜어낸 마나를 몸 전체에 붙잡아 두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단계는 이제 시작이었다.
‘여기서 뿜어내는 마나를 천천히 끌어 올린다.’
4장을 성공시키려면 지금의 감각을 유지하면서 강도를 올려야했다.
문제는 방출하는 마나의 양이 많아질수록 컨트롤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졌다.
웅웅!
마나를 늘리자. 신유성의 몸을 둘러싼 푸른색의 마나가 진동했다. 붙잡아둔 마나가 형태를 잃고 흩어지려는 상황이었다.
“큭…….”
갑자기 몸에서 역행하는 마나.
신유성은 몸 전체에 퍼지는 엄청난 고통에 미간을 찡그렸다.
파앗!
신유성이 붙잡아둔 마나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고통으로 집중력이 깨지며 기술의 사용에 실패한 것이다.
‘역시 아직은…….’
꽈악- 주먹을 쥔 신유성은 환하게 빛나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신유성은 권왕의 품을 벗어나 하산했다. 경쟁의 장소도 상대도 바뀌었지만.
이곳에 뜬 달도 신유성이 무신산에서 본 달과 다르진 않았다.
‘……달. 그리고 무신산.’
신유성은 몇 년이나 지난 기억을 천천히 더듬었다. 지금처럼 무신산에 환한 달이 뜬 날의 기억이었다.
[오랜만의 휴식인데 잠도 자지 않고 뭐하느냐?]
스승인 권왕이 귀를 후비며 신유성에게 물었다. 신유성은 동굴의 입구에 앉아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크음, 대체 왜?]
모닥불과 따뜻한 모포.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동굴.
무신산에서 이정도의 잠자리면 칠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신유성은 여전히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풀이 죽은 신유성의 모습에 권왕은 쯧- 하고 혀를 차며 모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우락부락한 손으로 소녀처럼 턱을 괸 채, 번뜩이는 눈으로 신유성을 노려보았다.
[설마 수련에 실패해서 그러느냐?]
권왕의 말이 맞았다.
신유성은 권왕이 내어준 수련에 실패했고, 그 때문에 내일의 휴식이 달갑지 않았다. 권왕은 신유성의 풀죽은 모습에 인상을 풀고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이놈아. 한번 실패한 걸로 그리 꿍할 필요까지 있겠느냐?]
신유성은 홀린 듯 여전히 시선을 환한 달에 고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신유성은 달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전…… 강해지고 싶습니다.]
신유성에겐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 덕분에 무신산의 힘든 수련을 참아왔다. F급 특성도 최강의 헌터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그건 특성 때문에 자신을 버린 신오가문에게 최고의 복수였다.
그리고 신유성은 자신을 거두어준 권왕의 명예를 위해, 자신을 위해 강해지고 싶었다.
목표는 좋은 원동력이지만 지금 이렇게 신유성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 또한 목표였다.
자신이 실패 했을 때, 지쳐서 쉬어가고 있을 때, 신유성은 누군가 자신을 앞지를까 두려웠다.
권왕은 그런 신유성의 모습에 입맛이 썼다.
[……이놈, 초조하더냐?]
권왕의 인자한 목소리.
신유성은 그제야 권왕에게 시선을 옮겨 고개를 끄덕거렸다.
[초조합니다.]
권왕은 신유성이 너무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럴 때는 역시 나이에 맞게 한없이 어린 아이로 보였다.
[유성아. 강해지려면 말이다…….]
권왕은 언제 다가 왔는지 신유성의 머리를 투박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가끔은 좀 쉬어줘야 하는 거다.]
스승의 드문 위로.
자신의 머리를 도닥이는 두터운 손의 온기가 신유성은 그저 좋았다.
[그렇지만…… 늘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신 건 스승님 아닙니까?]
한결 기분이 풀린 신유성이 웃자. 권왕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쯔읏, 귀염성 없는 놈. 그래. 내 말은……. 가끔은 어깨에 힘을 좀 빼야 되는 일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들으니……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도 같습니다.]
미소를 짓는 신유성.
그 권왕조차 걱정을 할 정도로 신유성은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덕에 계속해서 한계를 돌파하며 강해졌지만 제대로 된 여유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최선의 마음가짐이, 늘 최선의 결과로 보답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스승님의 말처럼 여유를 가져야만 해결되는 일이 있다고.
17살이 된 신유성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여유.’
신유성은 다잡은 마음처럼 다시 자세를 잡았다.
스윽.
그리고는 마음에서 절박함을 지워내려 애썼다. 남기려는 건 평온함과 여유. 절박함이 강해질수록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마나의 컨트롤에 악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평온함.’
신유성은 자연스럽게 오늘 보냈던 휴식을 떠올렸다. 시끌벅적한 시간이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너무 좋았다.
사아아.
다시 신유성의 몸에서 마나가 일렁였다. 무언가 이전과는 달랐다.
‘최소한의 집중력으로. 최대한의 마나를. 그 다음…….’
마음가짐이 바뀌었을 뿐인데, 호흡이 달라졌다. 몸을 돌아다니는 마나의 움직임도 미세하게 변화했다.
신유성의 몸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끌어올린다!”
파아아악!
푸른색의 빛이 몸 안에서 요동치며 신유성을 보호하듯 감쌌다.
츠츠츠츳! 파앗!
빛은 이내 사라졌지만 신유성은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진짜…… 성공했어.”
투신류 3장을 익힌 지 4년.
비록 잠깐이지만 드디어 투신류 4장을 사용하는데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