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이미 박살이 난 건물.
D반의 반장 박하원은 억지로 눈을 떴다.
“아, 뭔…… 기절이야.”
주위에는 흙먼지가 날아다녔고, D반의 기동대는 모두 뻗어 있는 상황. 박하원은 그 중에서도 주하진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바닥에 누운 채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아니……. 신유성 한 명한테…… 전부 탈락했네.”
박하원은 그제야 깨달았다. F반을 이기는 전략은 오직 기지를 점령하는 법밖에 없었다는 걸.
‘저런 괴물이랑…… 전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안일했어.’
박하원은 다리가 부서진 안경을 코 위에 올리더니 비틀비틀 일어났다. 박하원은 흙먼지조차 묻지 않은 신유성을 바라보자 이상한 감정이 솟았다.
‘저 녀석은, 왜 나보다 낮은 F급 특성으로도 저렇게 강한 거야?’
열등감에 휩싸인 박하원은 괜히 화가 나서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야! 네가…… 무슨 F반이야?”
박하원은 너무 억울했다.
D반이 F반을 이기는 건 당연한 수순. D반의 학생들은 이번 시험도 당연히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그런 세간의 상식을 산산이 부숴 놓았다. 박하원은 짜증이 몰아쳤지만 왜 신유성에게 화를 내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쏟아낼 뿐이었다.
“너 F급 특성 아니지? 이렇게 강한데 F급 특성일 리가 없잖아! 사기 친 게 분명해!”
박하원의 말에 신유성은 아무런 대답 없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주먹 하나보다 큰 신장의 차이. 신유성의 분위기에 압도된 박하원이 뒷걸음질을 치자.
“……윽.”
신유성은 그런 박하원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박하원은 방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눈치를 보며 신유성을 흘겨보았다.
“내, 내 말이 틀렸어?”
용기를 낸 박하원이 반항 아닌 반항을 하자. 신유성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틀렸어. 헌터에게 중요한 건 특성의 등급이 아니야.”
이 말은 권왕의 가르침이자, 신유성이 걸어온 십여 년의 길이었다. 신오가문은 F등급 특성인 신유성을 버렸지만, 권왕은 신유성의 빛나는 재능을 발견해, 개화시켰다. 그때부터 신유성은 믿었다. 헌터의 가치는 협회에서 매기는 등급으로 짐작할 수 없다고.
“그건…… 잘난 네 생각이겠지.”
하지만 박하원은 신유성의 이야기에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F등급은 약하다. S등급은 강하다. 그게 모두가 아는 상식이야! 그냥 너 같은 변종이 이상한 거라고!”
박하원이 열을 올리며 소리치자. 신유성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 누구에게나 주어진 재능은 있어.”
신유성은 숨을 골랐다.
그리곤 박하원과 시선을 맞춘 채,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노력이 언제나 결과로 돌아오진 않으니까.”
박하원은 신유성의 이야기에 숨을 멈췄다. 재능과 노력은 늘 박하원을 좌절시킨 단어였다. 죽을 만큼 노력해도 세븐넘버는 고사하고 10위권의 근처로도 가본 적이 없었다. 박하원은 그 이유가 자신이 D등급 특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S등급 특성을 타고났다면 분명 달랐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F급 특성으로도 엄청난 실력을 가진 신유성의 존재는 박하원의 열등감을 자극시켰다.
그리고 신유성의 존재는 강해지고 싶다는 박하원의 열망도 동시에 자극시켰다.
“그래도 특성의 등급에 얽매여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는 마.”
박하원은 분함을 삼키려 입술을 잘근거렸다.
“……말은 쉽지.”
시험으로도 시험의 외적으로도 신유성에게 완벽히 패배한 것이다. 박하원은 부러진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 *
한국 최고의 아카데미 가온.
그 중에서도 엘리트인 S반과 A반의 시험은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정도였다. 당연히 송출권을 가진 K채널은 이런 행사를 놓치지 않았다.
“말씀드리는 순간! S반이! A반의 진형을 정면에서 무너트리기 시작했습니다!”
K채널에서 파견된 유한나.
그녀는 마이크를 쥐고 리포터로 활약을 하고 있었다. S반과 A반에는 강력한 학생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학생은 단연 세븐넘버인 아델라와 김은아였다.
“아! 아델라 양의 독주입니다! 혼자서 벌써 다섯 명을 탈락시켰습니다!”
유한나의 말처럼 아델라는 얼음으로 A반의 진형을 휩쓸며 학생들을 대거 탈락시켰고.
“김은아 학생! 똑같이 정면에서 돌파합니다! 아델라 학생을 노리는 것 같은데요!”
김은아는 전기를 내뿜으며 자신에게 적들이 다가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파지직! 파직!
김은아가 뿜어내는 전기는 닿기만 해도 상대의 배리어를 파괴할 만큼 강력했다. 거기다 사정거리까지 길고 범위까지 넓으니 S반의 학생들도 김은아를 제압하는 것엔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오! 김은아 학생! 강력합니다! 단단한 S반의 가드를 뚫으며 대장인 아델라 학생에게 다가갑니다! 혹시 A반의 역전극인가요?”
사실 유한나의 이야기와 다르게 A반의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확실히 김은아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븐넘버인 김은아의 실력.
S반의 나머지 학생들은 이미 A반을 압도하고 있었다. 거기다 랭킹 4위인 민성혁은 김은아의 뒤를 잡는데 성공했다.
“어딜 우리 대장한테 가려고?”
퍼억!
투명화를 사용했던 민성혁이 뒤에서 발로 걷어차자. 중심을 잃은 김은아는 땅바닥을 세차게 뒹굴었다.
“흐이약! 푸흡, 퉷!”
헝클어진 머리를 부여잡고 흙을 뱉는 김은아.
“이게 진짜…….”
표정이 굳은 김은아가 자신을 올려다보자. 민성혁은 갑자기 뒷골이 서늘해졌다.
쿵!
김은아가 발을 구르자. 바닥에서 일어난 전기가 민성혁에게 직격했다. 민성혁은 전기를 피하려 몸을 틀었지만 전기보다 빠를 순 없었다.
“커걱!”
전기에 당한 민성혁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민성혁을 처리한 김은아가 고개를 돌리는 찰나.
쉬이익! 핏!
뒤에서 날아온 단검이 김은아의 볼을 스쳤다. S반인 이채현의 단검이었다.
“……하.”
씨익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김은아. 이채현은 포켓에서 새로운 단검을 꺼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날뛰는 건 여기까지 하지?”
“누구 마음대로?”
김은아가 자신을 바라보자. 이채현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채현은 김은아의 특성이 왜 A등급인지, 약점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야, 고릴라처럼 날뛰는 모습을 보면. 잘난 네 오빠가 싫어하지 않겠어? ……아! 맞다.”
말을 하던 이채현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아직 혼수상태라고 했나? 잘됐다. 그럼 네 꼴은 못 보겠네.”
이채현의 도발.
김은아는 굳은 얼굴로 이채현을 노려보았다.
“……너, 뭐라고 했냐?”
쿠릉! 쿠르르응!
마치 폭우 속의 번개.
김은아가 화를 내자.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전기가 절제되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마치 김은아의 특성인 전기가 주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듯 보였다.
이게 바로 이채현의 노림수.
이채현은 아직도 모자라다는 듯 더욱 김은아를 도발했다.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까?”
"다 들었어! 이 미친년아!"
김은아가 쩌렁하게 소리치며 이채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파직! 파지지직!
김은아의 주먹을 따라 파괴적인 전기는 매섭게 튀었지만 이채현에게는 스치지도 못한 채, 흩어졌다.
“대체 어디를 노리는 거야? 응?”
이채현이 웃으며 단검을 던지자. 단검이 김은아의 허벅지에 스쳤다.
파앗! 주르륵.
새하얀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
분노한 김은아는 상처를 무시하고 이를 갈며 이채현에게 달려들었다.
팟! 파지지직!!
하지만 김은아의 분노가 강해질수록 전기는 더욱 거세게 날뛰었다.
“아~ 역시 세븐 넘버라도 A반은 A반이네? 적중률이 이게 뭐야?”
이채현은 계속해서 도발을 하며 김은아를 붙잡아두고 있었다. 이채현이 원하는 건 김은아의 탈락이 아니었다. 1대1로 전투를 한다면 당연히 이채현의 필패. 지금 이채현의 행동은 S반을 위해 에이스인 김은아를 붙잡아두는 게 목표였다.
파직! 파지직!
유한나는 그런 둘의 전투를 보며 열띤 중계를 이어나갔다.
“A반의 에이스인 김은아 학생이 이채현 학생에게 묶여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A반의 양상이 불리해지는 가운데…….”
번쩍!
마른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더니 일순간 김은아의 몸이 사라졌다.
파앗!
김은아가 이채현의 뒤에서 나타났다. 번개가 맞지 않자. 근접전으로 승부를 보려 한 것이다.
콰아앙!
푸른색의 번개를 내리치며 나타난 김은아.
“잡았다.”
“무, 무슨 속도가!”
이채현이 방심을 한 게 아니었다.
전기 특성인 김은아의 고속이동은 이채현의 동체시력으로 감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콰악!
이채현의 멱살을 움켜쥔 김은아.
“커, 커헉! 끅!”
숨이 막힌 이채현이 끅끅 소리를 내자. 그런 이채현을 바라보는 김은아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파직! 파지직!
김은아의 주먹에 푸른색의 번개가 휘감기고, 김은아는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넌 뒤졌어!”
콰창!
그때 김은아의 주먹 앞에 얼음 구체가 생기더니, 맞부딪친 김은아의 팔이 얼어붙었다.
쩌저적!
“크읏!”
중심을 잃은 김은아의 몸이 기울자 뒤이어 날아온 얼음이 김은아의 다리를 맞췄다.
퍼억!
“컥!”
짧은 숨을 뱉으며 쓰러진 김은아.
곧이어 바닥에서 피어오른 한기가 김은아의 다리를 붙잡았다.
“……너, 너!”
분노에 휩싸인 김은아는 난동을 부렸지만 얼음에 붙잡혀 몸을 움직일 순 없었다. 김은아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이채현에게 시간을 빼앗긴 동안 A반은 전멸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S반의 완벽한 승리.
저벅저벅.
S반의 대장인 아델라는 씩씩거리는 김은아를 내려다보았다.
생각을 읽기 힘든 아델라의 표정.
곧 이어 아델라가 말없이 자리를 떠나자. 켁켁거리며 숨을 고른 이채현이 김은아에게 걸어왔다.
“아~ 죽는 줄 알았네! 후후, 은아야. 미안~ 많이 화났어?”
김은아를 보며 웃는 이채현.
얼음에 붙잡힌 김은아가 이를 갈며 올려다보자. 이채현은 김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미워하지 마. 다~ 시험 때문에 그런 거니까. 너도 헌터니까 이해하지?”
웅크리고 앉은 이채현은 김은아를 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이 기회에 그 불같은 성격 좀 고치자. 너 화나면 똑바로 능력도 못쓰잖아~ 다~ 널 위한 거야. 알았지?”
그렇게 말한 이채현이 김은아의 볼을 잡아당기자. 김은아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김은아는 여전히 얼음에 묶여 있었고, A반은 패배했다.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팀을 패배로 이끈 것이다.
김은아는 들것에 실려 가는 A반의 학생들을 보며 질끈 입술을 물었다. 그리곤 건조하게 감정을 뱉어냈다.
“기분 더럽네…….”
방금 전 너무 강하게 깨물었던 탓에 김은아의 입술에선 피가 흘렀다.
“진짜…….”
꽈악.
김은아가 자신의 앞머리를 움켜쥐었다. 잘 관리된 머리카락이 헝클어졌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오빠를 욕보인 이채현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김은아를 괴롭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