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혼돈으로 뒤덮인 폐병원.
D반의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고 덤벼들었지만 스미레는 언데드들 하나하나에게 정밀한 작전을 내렸다.
“데, 데스나이트 씨! 전방에서 상대를 방패로 밀쳐주세요! 그, 그리고 해골 사수들은 최대한 멀리서 활로 지원을!”
거구의 데스나이트가 방패를 휘두르자. 근접전에 강한 학생들도 모래성처럼 쓰러졌다.
“왁! 커헉!”
대형이 무너지자. 뒤편에서 지원을 하던 학생들은 해골 사수의 화살에 시시각각 배리어가 박살났다.
“아니, F반이 이렇게 세다고?”
“윽! 대체 강민수는 어디 있어?”
언데드들을 이끌며 계속해서 전진하는 스미레. 물론 학생들의 공격에 가끔 쓰러지는 언데드도 있었지만 스미레의 타고난 마나는 아직 넘쳐흐르고 있었다.
사아악!
스미레의 반지가 빛나며 검은색 마나가 흘러나오자. 바닥에서 새로운 언데드들이 솟아났다.
“말도 안 돼…….”
이미 붕괴된 진형.
추가로 스미레의 군세가 밀려들자 D반의 학생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재빨리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려 1층을 벗어나려는 스미레. 린샤오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제법이군.”
까다로운 린샤오도 스미레의 활약을 칭찬할 정도.
“……가, 감사합니다.”
머리를 긁적인 스미레는 벽을 짚었다. 눈앞에 보이는 어둡고 기다란 통로. 이제 이곳만 지나가면 모든 작전이 끝이었다.
‘빨리…….’
스미레는 주력 언데드인 데스나이트와 함께 통로를 나아갔다. 발걸음을 재촉해 통로의 중간쯤 왔을 때, 갑자기 출구의 문이 열렸다.
덜컹! 쿵!
문을 연 사람은 강민수였다.
강민수는 반장인 박하원이 인정한 D반의 2인자. 강민수는 멀리서 스미레를 마주보며 작게 읊조렸다.
“체크메이트다.”
따악!
강민수가 검지와 엄지로 소리를 내자. 어두웠던 통로에 조명들이 켜지며 초록색 빛이 쏟아졌다.
“이건…….”
당황한 스미레는 조명을 확인하자. 강민수는 오른팔로 허공을 꽈악- 움켜쥐며 소리쳤다.
“붙잡아라!”
꿈틀꿈틀!
강민수의 손에서 마나가 퍼지자. 통로에선 덩굴들이 자라나 통로를 휘감았다.
“딱, 따닥!”
“주, 주인님!”
해골들과 데스나이트는 이미 덩굴에 붙잡혔고, 린샤오는 멀쩡한 상태로 신기하다는 듯 조명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리 헌터 용품을 설치했군. 제법이야. 출구라면 분명 이곳을 지나가야 할 테니까.”
“아, 어……, 언데드들이…….”
스미레는 묶여 있는 언데드들을 바라보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강민수의 함정인 식물 트랩에 제대로 당한 것이다.
“……아, 제일 중요한 주인공을 빼먹었군.”
강민수는 스미레를 바라보며 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사아악!
강민수의 마나로 자라나는 덩굴.
식물계 특성인 강민수는 가시덩굴로 스미레의 오른팔을 묶어버렸다.
“흐, 흐끅!”
팔이 타오르는 듯 강렬한 고통.
식물은 스미레의 마나를 불태우며 참기 힘든 통증을 선사했다. 강민수는 차가운 시선으로 스미레를 바라봤다.
“……포기하고 배리어를 꺼. 이 조명을 받고 있으면 내 식물의 힘은 3배나 강력해져.”
포켓의 배리어를 꺼버린다면 시험은 탈락. 그럼 인질을 구출한다는 스미레의 작전도 실패였다.
‘……포기?’
스미레는 아찔한 통증 속에서 신유성을 떠올렸다. 자신을 믿어준 신유성을 실망 시키는 건, 스미레에겐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일이었다.
‘그건, 그건 싫어…….’
식물은 계속 스미레의 팔을 조여 왔지만 스미레는 눈물을 머금은 채, 꾸욱 참아냈다.
강민수는 그런 스미레를 보며 미간을 좁힌 채 닦달했다.
“내 말 못 들었어? 탈락만 인정한다면 이 식물들을 전부 처리…….”
“……시, 싫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스미레가 강민수를 노려봤다. 강민수는 그런 스미레를 비웃었다.
“……너.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꽈득!
팔을 휘감은 덩굴이 더욱 거세게 조여 오자. 스미레는 고통에 찬 숨을 뱉어냈다. 계속해서 팔에서 흐르는 피. 그러나 스미레에게 상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흐윽!”
강민수는 스미레를 한심하다는 듯 깔보고 있었다.
“네가 지금까지 잘 풀린 건. 네 실력이 아니라 모두 신유성 덕분이라고.”
강민수는 비릿하게 웃으며 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네 진짜 실력은 그저 100위권 밖의 F반 수준일 뿐이야.”
꽈아악!
“흐, 아악!”
스미레의 짧은 비명.
덩굴의 날카로운 가시로 스미레의 팔은 이미 엉망이었다. 거기다 마나를 흡수하는 강민수의 덩굴로 스미레는 팔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스미레는 절대 포기를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로 얼룩져 붉어진 눈으로 강민수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그, 그런 거 알고, 있어요.”
강민수가 말하지 않아도 스미레는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었다. 늘 어린 시절부터 용기도 의욕도 목표도 없이 그저 떠밀리듯 살아왔다.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건, 스미레에게 당연한 일. 어쩌면 패배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하필 F급이라니…….]
[뭐? 한국까지 갔는데 랭킹이 꼴등이라고?]
[역시 너는…….]
하지만 상대방의 실망한 표정을 보는 건 언제나 괴로웠다.
‘난…….’
스미레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과분한 생각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칭찬과 신뢰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신유성의 신뢰는 스미레에게 더욱 각별했다.
[……역시 너를 공략에 참여시키길 잘했어.]
다시금 울려 퍼지는 신유성의 목소리. 스미레는 오른손에 힘을 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팔이 끊어질 듯 아파오고, 저릿했지만 짧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참아냈다.
이건 스미레를 믿어준 신유성의 작전이었다. 팔에 생긴 상처는 치료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을 도와준 신유성에게 은혜를 갚을 순간은 지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 못 해요!”
사아아! 화아아악!
그때였다.
갑자기 스미레의 팔에서 몰아치는 마나.
“뭐, 뭐야!?”
강민수는 갑자기 생긴 돌풍에 팔로 얼굴을 가리며 물러났다.
“너! 설마…….”
신이 스미레에게 부여해준 유일한 재능. 마나. 스미레는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장기를 잘 알고 있었다.
‘덩굴이 마나를 흡수한다면…….’
스미레의 팔에서 흘러넘치는 마나. 동시에 요동치는 돌풍.
파아아악!
시끄러운 파공음과 함께 스미레는 몸에 있는 모든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계까지!’
콰앙! 퍼어엉!
통로를 가득 채웠던 조명과 식물들이 모두 터져버렸다. 강민수의 덩굴이 스미레의 마나를 흡수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강민수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스미레를 보며 고장 난 듯 중얼거렸다.
“이, 이럴 수가……. 내, 내 덩굴이 F반 따위에게…….”
스미레는 멍하니 선 채,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몸은 덩굴의 초록색 진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팔은 붉은색 피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통로에는 식물이 없었다.
식물이 묶어둔 언데드들은 풀려났고, 적은 강민수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흐으, 흐, 흐으…….”
엉망이 된 스미레가 강민수를 바라봤다. 스미레의 뒤에는 언데드들이 매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딱, 따닥!”
“대가는 죽, 음으로…….”
결국 강민수는 팔목의 포켓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주저앉았다.
“내, 패배다…….”
스미레는 강민수의 말에 뚝뚝- 눈물을 흘렸다.
“내, 내가…… 이겼어…….”
이번 작전은 스미레가 혼자서 이루어낸 성공이라 더욱 값졌다.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린샤오는 스미레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크흑! 정말, 네 녀석은 정말이지!”
린샤오는 오해하고 있었다.
스미레가 신유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행동이 마치 실전처럼 전력으로 시험에 임한 듯 보인 것이다.
“최고다! F반의 스미레! 네가 보여준 오늘의 전투는 이 교관 린샤오가 평생토록 기억하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확실히 신유성이 협회에 널 데려간 이유가 있었군! 이 정도 결의는 있어야 신유성의 파트너로 손색이 없지!”
“네!? 제, 제가 시, 신유성씨의? ……아, 아흐히 그, 그 정도는!”
입 꼬리를 히죽거린 스미레가 머리를 긁적거리자. 린샤오는 뿌듯한 얼굴로 포켓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이내 표정이 굳었다.
“……내 교관 생활 중에…… 이, 이런 결과는 처음 보는군.”
[D반 기동대 전원 탈락. 탈락자 중에는 D반의 대장도 있음.]
[D반의 인원은 대부분 전멸했고, F반은 안전하게 기지를 지킴.]
[만약 F반이 인질을 되찾았으면 시험을 조기종료 시키길 바람.]
[-교사 소해정-]
린샤오가 읽은 건 교사인 소해정의 메시지였다. 신유성이 활약을 하고 있을 줄은 알았지만 기동대 전원을 이렇게 순식간에 탈락 시킨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린샤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출구로 돌렸다. 신유성은 완벽한 작전으로 F반을 통솔하고 스미레를 강하게 만들었으며, D반을 홀로 전멸시켰다.
‘……대체 신유성의 능력은 어디까지인 거지?’
이정도 활약을 보였음에도 신유성은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다. 신유성의 끝없는 능력은 교관인 린샤오조차 아직 파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