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인질을 구출한 스미레.
포박이 풀린 린샤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좋아. 포박이 풀렸군.”
“린샤오 교관님! 저, 저를 따라 이동 해주세요!”
스미레는 다급해진 상황에 평소보다 말이 빨랐다. 그러나 린샤오는 고개를 젓더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날 구하러 온 헌터에게 협조하고 싶지만. 나는 빌런들의 납치로 오른쪽 다리의 골절이 생겨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네, 네!? 그, 그렇지만……. 교관님의 다리는…….”
울상이 된 스미레가 린샤오의 멀쩡한 다리를 가리키자. 린샤오는 스미레를 무시하고 꿋꿋이 상황을 전달했다.
“자! 그러니 부목과 삼각건을 이용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줘야. 나는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있겠구나!”
“아, 알겠습니닷!”
린샤오의 전달 사항에 따라 스미레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는 린샤오가 준비해둔 부목과 삼각건이 놓여 있었다.
타다닥!
부목과 삼각건을 집어든 스미레가 린샤오의 응급처치를 실행했다.
“여기!? 여기가 아프신가요?”
“무릎이 골절된 상황이 좋겠구나. 골절이 발생한 지 1시간. 상태는 뼈가 갈라진 정도.”
실전주의로 악명이 자자한 린샤오답게 아주 까다로운 요구. 그렇지만 스미레는 누구보다 필기에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알겠습니다!”
덕분에 스미레에게 이 정도 응급처치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순위권에 가까운 실력으로 순식간에 조치를 마쳤다.
“끄, 끝났습니다! 삼각건을 이용해 부목도 고정 시켜둔 상태고, 경과를 보고 골절이 심하지 않다면 추후에……."
모범생다운 스미레의 완벽한 설명에 린샤오는 뿌듯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보였다.
“그만! 이정도면 됐다. 정말 완벽하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칭찬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은…….”
쑥스러워하는 스미레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자. 린샤오는 흡족해 하며 삼각건과 부목을 뜯어버렸다.
“자! 응급처치는 성공이다! 이제! 어디든 따라 가주지!”
“그럼…… 기지로 복귀해야하니 1층으로 이동을…….”
“좋아! 당장 이동해!”
린샤오의 호쾌한 웃음을 뒤로 한 채, 철문을 빠져나가며 스미레는 다짐했다.
‘이제 정말 성공이 코앞이야…….’
이제 구출한 인질을 데리고 기지로만 돌아가면 스미레는 반대항전의 주역이었다.
‘부, 분명…… 신유성 씨도 기뻐해주시겠지?’
계단을 내려가던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신유성이 기뻐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늘 칭찬에 관대했던 신유성. 스미레는 못 참겠다는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이, 이 정도 활약이라면…….’
[잘했어. 스미레.]
스미레의 상상 속 신유성은 그렇게 말하며 스미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힛, 흐히…….”
갑자기 스미레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실실거리자. 놀란 린샤오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가, 갑자기 뭐지? 문제 있나?”
“아니요! 절대!”
스미레는 범행이라도 들킨 듯 입을 꾹 다물고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린샤오는 식은땀을 흘리는 스미레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이상한 녀석이군.’
스미레를 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 그러나 스미레는 린샤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스미레의 머릿속은 신유성에게 받을 칭찬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박하원의 지시로 D반의 상위권 10인은 돌격대를 만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F반의 기지를 점령하는 일이었다.
“지금 휴게실에는 신유성이 없다! 모두 준비됐지?”
“준비는 무슨. F반은 숫자가 많아도 허접이라고.”
“그건 맞지. 랭킹이 전부 100위권 밖이잖아?”
D반의 돌격대는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세븐넘버인 신유성이 없다면 간단히 F반의 기지를 함락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F반에게는 신유성이 남겨둔 작전이 있었다.
절호의 타이밍.
신유성의 명령대로 지휘를 맡게 된 이시우는 씩 웃었다.
“야! D반이 몰려왔다! 레니아!”
“야, 지, 진짜 한다?!”
“말했잖아! 바로 해! 당장!”
이시우의 명령에 레니아는 쌓아둔 바리게이트에 불을 질렀다. F반은 공원에 불을 질러 매복조를 제거한 덕분에 휴게실의 주변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작전이 빛을 발했다.
화르륵! 활활!
거센 불길이 바리게이트를 따라 타오르자, 원형으로 감싼 바리게이트가 휴게실을 지키는 거대한 화염장막으로 변했다. D반은 휴게실로 돌격하기 위해 불길을 소화하려고 했지만 F반은 가만두지 않았다.
“모두! 퍼부어!”
이시우의 신호와 함께 F반의 학생들은 D반의 돌격대를 향해 원거리 공격을 쏟아냈다.
“D반을 박살내자!”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버티기만 하면 유성이가 다 이겨줄 거야!”
파악! 쨍!
이시우의 화살이 돌격대 중 한명의 배리어를 박살냈다. 그건 신유성의 작전인 화염진으로 상대에게 빈틈을 만든 덕분이었다.
“오! 맞췄다!”
꽈악- 주먹을 쥔 이시우가 소리치자. F반의 학생들의 기세는 더욱 올랐다.
“오오! 우리가 이긴다!”
“봤지? 진짜 할 수 있어!”
특성으로 원거리 공격이 불가능한 학생들은 돌팔매질까지 하며 거세게 반격하자, 결국 D반의 돌격대는 패퇴를 선언했다.
“후퇴!”
“일단 후퇴! 모두 후퇴 해!”
점점 멀어지는 D반의 돌격대.
이시우는 뿌듯한 얼굴로 코를 슥- 닦으며 신유성을 생각했다.
‘유성이는 참 대단하단 말이야.’
자리를 비운 신유성의 작전이 기지를 지킨 F반의 모두를 구해냈다. 이 모든 활약은 신유성이 무신산에서 권왕에게 실전으로 병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모르는 이시우는 그런 신유성의 지식이 그저 신기했다.
‘어떻게 작전이 다 들어맞아?’
이시우에겐 좋은 기회였다.
[누군가를 모셔야 한다면 역시 강한 사람이 낫지.]
어릴 때부터 이시우가 해온 오랜 생각. 신유성은 그 생각에 누구보다 적합한 사내였다.
* * *
반장인 박하원은 절망에 빠진 얼굴로 입술을 질끈 물었다.
‘……10초! 3명이서 어떻게 10초도 못 버틴 거야?’
세븐넘버 3위.
요주의 인물이었던 신유성은 역시나 명성대로 강력했다. 그 증거로 신유성은 휴게실을 나오자마자 박하원을 지키던 3명의 학생들을 순식간에 탈락시켰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강함.
기세에 눌린 박하원은 그 사이에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거리를 벌리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하아……, 하아!”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중립지역 근처의 식당. D반의 주요 병력인 기동대를 대기시켜둔 장소였다.
그 덕에 미리 마중을 나온 D반의 학생은 박하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반장! 여기야! 빨리 와! 무전으로 들었어!”
“……하아, 숨차 죽겠네.”
자리에 멈춰 숨을 고르는 박하원.
반장인 박하원은 체력이 좋지 않았다. 사실 체력은 특성에만 의지하는 헌터들의 공통점인 약점이었다.
그런 박하원의 모습을 보며 기동대의 핵심 멤버인 주하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게 체력 좀 기르지 그랬냐?”
“지금 나한테 시비를 걸 때야?”
박하원이 벗었던 안경을 끼며 올려다보자. 주하진은 칫- 소리를 냈다.
“나 말고 진민아랑 성익현한테 작전권을 준 게 누군데?”
“내가 잘못했어. 잘못 했으니까. 지금은 저 괴물을 막을 생각이나 해.”
박하원이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바람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천천히 걸어오는 신유성이 있었다.
“우, 우리 전체를 상대로 덤빌 생각인가?”
“……아무리 세븐넘버라도 이건 너무하잖아.”
“저 녀석. 대체 우리를 얼마나 무시하는 거야?”
웅성거리는 D반의 기동대.
안색이 나빠진 주하진은 반장인 박하원에게 말했다.
“반장인 네가 봤을 땐 어때.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든 막아야지.”
“그래?”
주하진은 포켓에서 알약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알약의 정체는 헌터용품 중 하나인 각성제.
‘원래라면 헌터 협회의 허락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물건…….’
그런데 주하진의 포켓에는 그런 각성제가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자신에게 도착한 각성제는 누가 보냈는지 출처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각성제의 유혹은 컸다.
‘내가 각성제를 먹고, 기동대와 함께 신유성을 친다면…….’
주하진은 다가오는 신유성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주하진은 알약을 꺼내지 않았다.
‘……됐어. 썅. 아무리 이기고 싶어도. 그딴 걸 처먹으면 대체 대결이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척 보기에도 신유성에게서 느껴지는 마나는 엄청났다. 신유성은 주하진이 각성제를 아무리 먹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상대였다.
‘어차피 발릴 거면. 차라리 당당하게…….’
결심을 한 주하진은 피식 웃더니 자세를 잡았다. 반장인 박하원은 기동대 전체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대가 한 명이라 쪽팔리지만. 모두 전력을 다하자.”
저벅저벅. 탁.
기동대를 향해 걸어오던 신유성이 발걸음을 멈췄다. 신유성은 무표정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포켓을 건드렸다.
사아악!
신유성의 교복이 입자로 변해 흩어지며 동시에 고풍스러운 흑룡포가 신유성에게 입혀졌다.
신유성은 새롭게 얻은 아티팩트를 시험에서 사용해볼 생각이었다.
결의를 다지는 D반과 다르게 신유성은 아주 여유로웠다. 이제 신유성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단 1명이지만 신유성은 사냥꾼이었고, 숫자가 많아도 D반은 사냥감이었다. 차원이 다른 강함.
탓!
싱긋 웃은 신유성이 발을 딛자. 신유성의 형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