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테마파크의 휴게실 건물.
진입조를 제외한 F반의 인원은 반듯하게 줄을 맞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건 학년 랭킹 3위의 신유성.
‘아직 기회를 기다려야 해.’
신유성은 사방이 탁 트인 1층 로비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순차적으로 점수를 따내거나,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헌터 팀과 달리 빌런 팀은 기지를 점령하는 순간 끝이었다. 만약 신유성이 인질을 구하거나 대장을 잡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지가 점령되면 시험은 그걸로 끝.
신유성은 기회가 올 때까지 수비를 택했다.
리더인 신유성이 수비조 인원과 휴게실에 있는 이상 D반이 기지를 점령하는 건 불가능했다.
신유성은 포켓을 활용해 인원들에게 실시간으로 명령을 내렸다.
“원거리조는 상대방이 보이는 대로 보고해 줘.”
이시우는 신유성의 명령에 힘차게 답했다.
-좋아! 나만 믿어! 유성아!
이시우는 활을 다루는 사수.
이시우에게 관람차의 높은 위치는 엄청난 무기였다. 거기다 이시우는 천리안 스킬을 통해 시야의 범위가 넓었다. 덕분에 F반은 관람차 상대팀보다 훨씬 정보 파악에 유리했다.
신유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전장을 파악했다.
‘관람차 주변은 원거리조가 확실하게 장악했어.’
이제 문제는 D반의 인원을 분산 시키는 것. 지금 수비조의 인원에서 신유성이 빠지면 D반에서 10명의 인원만 몰려와도 기지가 전복당할 위험이 있었다.
‘F반의 3명이서 힘겹게 D반의 2명을 상대할 수 있어.’
그건 당연히 D반보다 F반의 평균 실력이 낮기 때문이었다.
‘대항전에서 이기려면 상대보다 더 효율적으로 인원을 이용해야해.’
신유성은 포켓에 표시된 인질의 위치를 확인했다.
[특별 임무]
[내용: 헌터 팀은 빌런 팀에게 납치된 인질을 구하라.]
[위치:공포의 집]
[남은 시간: 60분]
원래 D반이 맡은 빌런 팀의 인질극은 F반에게 엄청 위협적인 임무였다. 핵심인 신유성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고,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60분을 버틴 D반의 승리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비장의 카드는 있지.’
신유성이 미소를 지으며 포켓을 활성화 했다.
“스미레. 인질의 위치는 공포의 집이야.”
-네, 넷! 알겠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하나지마 스미레.
보석섬 시험을 치루기 전엔 1학년 최약의 학생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어엿한 세븐 넘버인 랭커. 그런데도 스미레의 평가는 최하였다.
‘D반은 놀랍도록 스미레를 견제하지 않고 있어.’
보고를 받은 결과.
스미레는 D반의 별 다른 견제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D반은 전력을 휴게실에서 잠자코 있는 신유성을 견제하기 위해 배치했다.
덕분에 정작 공포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스미레는 뒷전이었다.
‘잘된 일이지.’
D반은 스미레와 신유성의 머리카락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그리고 새롭게 얻은 아티팩트의 힘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을 테니까.’
신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F반의 학생들의 얼굴에는 어느 때보다 열정이 넘치고 있었다.
신유성은 그 중에 학생 한 명을 콕 짚었다.
“레니아?”
“으, 으응!?”
신유성의 갑작스런 물음에 멍한 표정으로 있던 레니아가 움찔거리며 대답을 했다.
“불 관련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아, 마, 맞아! 용케 기억했네! 페널티도 많은 F급 특성인데…….”
레니아는 신유성이 자신의 특성을 기억해준 게 기뻐보였다. 레니아의 특성은 붙잡은 사물을 태우는 것으로 순수한 화염은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전투에 사용하기엔 페널티가 많았지만 신유성은 곧 바로 사용할 방법을 찾아냈다.
“휴게실 주변은 풀숲으로 이루어져 있었지?”
“그렇지? 공원이니까.”
휴게실 옆의 공원은 제법 큰 수풀들이 우거져 있었다. 아주 관리가 잘된 초록의 숲이었다.
신유성은 밖을 가리키며 웃었다.
“전부 태워버려.”
약간의 정적.
레니아는 얼이 나간 얼굴로 신유성에게 되물었다.
“으잉? 공원을…… 전부?”
“할 수 있지?”
“할 순 있지! 할 순 있는데…….”
갑자기 공원을 태우라니 당황한 레니아가 어버버 거리자. 옆에 있던 남학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레니아! 지금 리더님이 말씀하신데 토를 다는 거야?”
남학생이 소리를 치자. 놀란 레니아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아니이…… 불을 지르면 방화고 그건 범죄잖아!?”
레니아의 말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레니아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교수님들께선 시험을 실전처럼 하라고 말씀하셨지?”
실전처럼 임해라.
가온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였다. 신유성의 스승인 권왕의 가르침도 그랬다.
[내 수련은 언제나 실전이다. 유성아! 그러니 늘 실패는 죽음이라고 생각하며 수련에 임해라!]
권왕은 9살인 신유성에게 2급 괴수를 처치하게 만든 괴짜였다. 제자인 신유성도 마찬가지. 실전에 임하는 신유성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없었다.
“어, 으응…….”
레니아가 기세에 밀려 뒷걸음질을 치자. 신유성은 또 한걸음 다가갔다.
“그럼 실전에서 헌터가 빌런들을 상대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불을 지르는 게 방화일까?”
“아, 아니…….”
“레니아. 실전에서 적당히 같은 건 없어. 이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써야하는 거야.”
신유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조곤조곤 말을 했다. 레니아는 신유성의 얼굴을 보며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시험은 실전처럼……. 적당히는 안 돼…….”
레니아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할 수 있지?”
“좋아! 할 수 있어!”
시험을 위해서 방화를 저지르다니 전력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광기 어린 신유성의 실전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뭐해, 다들 움직여! 리더님께서 불을 지르라잖아!”
“빨리 다들 태울 거 가져와, 레니아는 촉매제가 있어야 한다고!”
“우리 바람 능력자도 있지? 태우면 연기는 바로 날려버리자.”
F반 학생들은 승리를 위해, 오히려 앞장서서 공원에 불을 질렀다.
신유성의 주도로 테마파크의 공원에선 그렇게 유례없는 초대형 캠프파이어가 벌어졌다.
* * *
어두컴컴한 공포의 집.
포켓을 본 박하원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저게 뭐야?”
포켓의 영상에선 휴게실 주변의 공원이 활할 타오르고 있었다.
“무슨 시험 치르다가 불을 질러!”
박하원은 신유성의 기행에 빼액 소리를 쳤다. 그녀의 포켓에선 여기저기 시끄러운 무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숲에 숨어 있으라며! 숲이 불타고 있다니까!?
-반장! 어떻게 해? 매복조가 숨을 곳이 없어!
-매복조 중 한 명이 상대 원거리조한테 당했어!
박하원은 인상을 찡그리며 후퇴 명령을 내렸다.
“……신유성 아무리 그래도 시험 중에 무슨 이딴 명령을 내린 거야?”
박하원이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을 때, 옆에서 인질의 역할을 맡은 린샤오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신유성 학생은 똑똑하군. 일부러 빌런 팀이 매복하기 좋은 휴게실로 기지를 골랐는데. 공원을 태워버릴 줄이야.”
“아니 그래도 매복조를 잡자고 공원을 불태우는 게 정상이에요? 이건 시험인데?”
박하원이 안경을 만지며 인상을 찡그리자. 린샤오는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 하원 학생이라고 했나? 나 린샤오는 말이지.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곤 박하원을 바라보며 갑자기 열의를 불태웠다.
“실전에서 실전을 연습하면 그땐 이미 늦다고! 시험이라고 과감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과연 실전에서 저런 행동이 나올 수 있을까?”
“그, 그건…….”
박하원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자. 린샤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절대 아니다! 시험에서 실전을 연습하지 않으면 실전에선 결국 실수를 하고 만다! 과연 헌터가 실전에서 한 실수를 시민들에게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아, 아니 그…….”
“네 실수 때문에 구할 수 있었던 시민이 목숨을 잃는다면?”
“그건…….”
박하원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가자. 옆에 있던 강민수도 이번에는 린샤오를 거들었다.
“린샤오 교관님 말씀이 맞아. 어차피 신성 그룹이 장소를 제공해줬으니. 신유성도 전력을 다한 거지.”
“아니 그냥, 내 말은…….”
일명 멘붕 상태가 된 박하원.
-반장 듣고 있어?
-쟤네 불을 질렀다니까? 어떻게 하냐고!
-후퇴한다?
거기다 매복조의 무전은 끊이질 않았다. 시작부터 생각도 못한 돌발 상황에 박하원은 한걸음 물러섰다.
“……매복조. 전부 후퇴해 공원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다가 신유성이 어디로 가는지. 위치만 파악해.”
박하원은 전략에서 밀렸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억지를 부리다간 더 큰 실책을 할 수 있었다.
‘신유성…….’
하지만 그래도 박하원의 눈은 승리에 대한 열의로 불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