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외출이 금지된 오후 10시.
그러나 김은아는 숙소에서 나와 1층으로 향했다. 로비를 지키고 있던 소해정은 김은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돌발 행동이지? 소등 이후에는 나갈 수 없…….”
“허락 받았는데요.”
하지만 김은아는 소해정의 말을 끊고 여유롭게 웃었다.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한 모습에 소해정은 어이가 없었다.
“뭐?”
“글쎄 몇 번 말해요. 허락받았다고요. 교장 선생님한테.”
“……교장 선생님?”
띠링!
마침 소리를 내는 휴대폰. 소해정은 설마 하는 얼굴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진병철: 은아 학생이 아주 급한 용무가 있다고 하니. 그냥 보내주도록 해요. 내가 허락한 거니까 절대 신경 건드리지 말고!]
교장인 진병철도 창피한 건 알았는지 학교의 메신저가 아닌, 개인 문자로 한 통의 연락이 와 있었다.
“……그러게 진작 말해두라니까.”
김은아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소해정을 보며 웃었다.
“그럼 가도 되죠?”
소해정은 김은아의 행동에 기가 찬 듯 웃음을 흘렸다.
“……하.”
학교 시험을 거대한 테마파크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신성 그룹의 지원 덕분이었고, 가온 아카데미는 신성 그룹에게 엄청난 후원을 받고 있으니 진병철의 허락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소해정은 김은아의 태도가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 교장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가보도록 하렴. 그게 규칙이니까. 근데…….”
소해정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덧 붙였다.
“너 정말 버릇이 없구나?”
그러나 김은아는 겁먹기는커녕 여유롭게 답했다.
“그런 거 없어도 괜찮아요. 돈이 많으니까.”
김은아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로비를 향해 걸었다. 그러자 마중 나온 훤칠한 키의 경호원이 로비의 문을 열었다.
“아가씨. 리무진 준비됐습니다.”
20대 중반인 경호원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자. 김은아는 무언가 못 마땅한 듯 고개를 비스듬히 했다.
“어, 그래. 근데 같이 다니기 쪽팔리니까 밤에는 선글라스 좀 벗어.”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김은아와 경호원. 담당 교사인 소해정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싸가지.”
* * *
부산. 메트로 병원.
김은아는 따라오는 경호원을 복도에 세워두고 단호하게 일렀다.
“야, 절대 들어오지 마.”
김은아는 겁을 주듯, 미리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강제로 병실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도 없었지만 김은아는 매번 꼭 당부했다.
“네.”
경호원도 익숙하게 대답을 하자. 김은아가 입구에 패스카드를 댔다.
지이잉!
두꺼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드러나는 50평의 방. 마치 호텔과 같은 호화로운 설비였지만 분위기는 더없이 싸늘했다.
김은아는 병실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익숙하게 주황색 조명을 키고, 창가 위의 꽃병에 물을 주었다.
병실에 들어온 김은아는 모든 행동이 능숙했다.
그럴 만도 했다. 김은아가 병원에 들르게 된지도 오늘로 2년.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김은아는 창가의 근처.
정확히는 병실의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누워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나 왔어.”
의자에 앉은 김은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상대는 기계에 장착된 순환석의 힘이 없다면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1급 환자였다.
김은아는 지금의 상황이 익숙한지 담담하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나, 이번 시험은 부산에서 치른다?”
오빠인 김준혁이 11살.
동생인 김은아는 7살이었던 자그마치 10년 전 일이었다. 김은아는 빛바랜 기억을 되새겨내 담담하게 뱉어냈다.
“……우리 같이 물놀이 했던 곳. 그때 나 완전 죽을 뻔했는데.”
하지만 그런 오래된 기억도 김은아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게 얕은 곳에서 놀랬잖아. 큰일 날 뻔했네.]
[끅! 흐윽! 이렇게…… 끅! 깊은지 끅! 몰랐단…… 말이야!]
[7살한테 수영장 물이 깊지 얕아? 그리고 살았는데 울긴 왜 울어? 원래 눈물은 죽었을 때 흘리는 거야.]
정말 바보 같고 이상한 위로.
김은아는 10년 전 그때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오빠인 김준혁의 말처럼 김은아는 이전처럼 울지 않았다.
‘……대체 왜.’
김은아는 2년 전 그 날부터, 늘 의문이었다. 왜 오빠인 김준혁은 위험한 각성제를 복용했을까?
적어도 김준혁이 일어날 때까지 김은아는 정답을 알 수 없었다. 그저 김은아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지금처럼 강하게 신성 그룹의 후계자로 자리를 지키는 것.
하이에나 같은 자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김은아는 누구보다 강해져야 했다.
언젠가 일어날 오빠에게 잘 버티고 있었다고. 당당히 말해주기 위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누구보다 단단한 갑옷을 입어야 했다.
“……그럼 난 간다.”
지잉.
11시에 맞춰 진동이 울리자. 김은아는 출구로 몸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다 쉬면 빨리 돌아와. 빈자리는 그때 동안만 지켜주는 거니까.”
말을 하던 김은아는 이유도 없이 코가 시큰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강한 사람이라고, 늘 강할 수는 없었다. 잠깐 슬퍼지더라도 다시 강해지면 된다.
눈을 감고 짧은 심호흡.
지이잉.
문이 열리고 모든 걸 정리한 김은아가 병실을 나왔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경호원에게 김은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해. 빨리 돌아가자.”
병실을 나온 지금의 김은아는 여느 때와 같았다.
* * *
온갖 대형 놀이기구가 즐비한 곳.
F반과 D반의 학생들은 회전목마의 근처에서 정렬을 하고 있었다.
F반의 학생 30명.
D반의 학생 30명.
소해정은 양측의 학생 숫자를 맞춰본 후, 입을 열었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규칙을 설명하겠습니다.”
소해정이 허공을 터치하자.
사아악!
[1학년 반대항전 규칙]
1. 보급형 배리어가 부서질 경우 시험에서 제외 처리되고, 대기실로 이동해야합니다.
2. 리더를 탈락시킬 경우 추가 점수를 얻게 됩니다.
3. 부상이 심한 학생은 치료를 위해 이송됩니다.
4. 헌터 용품과 아티팩트의 사용은 반마다 최대 2개입니다.
학생들의 포켓 위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규칙을 읽은 D반의 반장 박하원은 맞은편에 있는 신유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티팩트 제한이 2개…….”
이번 시험 최고의 변수.
하나만 있어도 전장을 바꾸는 아티팩트를 F반은 무려 2개나 갖고 있었다. 물론 박하원도 포켓에 헌터 용품을 챙기긴 했지만 F반의 아티팩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소해정은 학생들의 확인이 끝나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건 빌런 팀의 승리조건입니다.”
빌런 팀(D반)의 승리조건은 아래 3개입니다.
1. 헌터 팀의 기지점령 하기.
2. 인질을 1시간 동안 지키기.
3. 헌터 팀의 리더를 제압하기.
다시 포켓 위에 홀로그램이 떠오르자. 박하원은 머리를 굴렸다.
‘일단 1번……. 신유성이 기지를 비우면 혹시 가능할지도 몰라.’
1번과 2번. 승리조건에 대해 간략하게 분류를 정하면 D반의 입장에서 1번은 공격. 2번은 수비였다.
원래 F반의 기지를 빼앗는 건 간단했지만 문제는 강력한 신유성의 존재였다.
‘신유성이 자리를 비웠을 때, 기지를 빼앗거나. 아니면 우리 인질을 지켜야 해.’
박하원은 머리를 굴렸다.
견제할 사람이 신유성 밖에 없으니 답은 간단했다.
“아까 말했듯이 인원은 반으로 찢어서 이동한다.”
박하원은 공격조에게 숨어 있으라는 작전을 내려놓았다. 신유성이 인질을 빼앗으러 오면 그때 F반의 기지를 점령해버릴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신유성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인질을 1시간 동안 납치한 D반의 승리였다.
“3번은 노릴 생각도 하지 마. 저거 완전 괴물이니까.”
박하원의 브리핑이 끝나자.
반장의 오른팔인 강민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경고를 했다.
“단독 행동은 용서 안 해. 절대 신유성에게 혼자 덤비지 마.”
신유성은 D반에게 공포 그 자체로 군림하고 있었다. 신유성의 활약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 D반의 승리조건 확인이 끝나자. 소해정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 확인할 건 헌터 팀의 승리조건입니다.”
헌터 팀(F반)의 승리조건은 아래 3개입니다.
1. 헌터 팀의 기지를 지키기.
2. 납치된 인질을 구출해 1시간 동안 지키기.
3. 빌런 팀의 리더를 제압하기.
신유성은 홀로그램을 확인하며 스미레를 바라봤다. 이미 F반도 승리를 위한 작전은 짜둔 상태였다.
F반에겐 D반이 상상도 못할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신유성이 시선을 돌려 스미레를 바라보자. 늘 소심하던 스미레도 오늘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F반에 나타난 신예이자, 세븐넘버인 신유성을 막기 위해 D반은 전력을 다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스미레는 사정이 달랐다.
그녀가 시험에서 세븐넘버를 달성했음에도 D반은 물론, 다른 학생들은 신유성이 강했을 뿐, 스미레는 그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스미레는 F반에서도 꼴등을 유지할 정도로 약했으니까.
그러나 신유성의 머리카락을 가진 스미레는 이야기가 달랐다.
신유성의 능력치를 3할 정도 흉내내는 해골. 그리고 사령술사인 스미레는 던전에서 언데드 강화 아티팩트까지 얻은 상태였다.
F급 특성을 가졌지만 그 잠재력을 백분 활용한 것이다.
“그래. 믿을게.”
신유성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스미레는 점점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신유성 씨가…… 나를 믿어?’
고개를 숙인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움찔거렸다.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는 스미레의 의욕은 평소보다 몇 배나 올라가 있었다.
“다들 준비됐지?”
리더인 신유성이 말을 하자. F반의 학생들이 하나처럼 쩌렁하게 대답을 했다.
“네!”
짧은 시간 동안 힘을 내준 리더에 대한 예의였다. 소해정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의욕이 없기로 유명한 F반이었는데 단합력이 엄청나네?’
신유성은 죽을상이던 F반의 학생들을 카리스마로 이끌고 있었다.
‘강한 게 끝이 아니라. 파티장의 자질도 가지고 있는 건가.’
소해정은 신유성이 마음에 들었다.
신유성을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누군가를 따르는 것엔 이유가 있었다.
‘저 아이도 다른 학생들을 휘어잡는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F반의 시험이라 큰 기대가 없던 소해정도 흥미가 돋았다. 신유성의 활약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특수 임무 등 활약이 높은 학생들은 교사의 판단에 따라. 개인 점수로 보너스가 측정됩니다. 그럼…….”
말을 하던 소해정은 팔을 들어 학생들에게 시작을 알렸다.
“이제 반 대항전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띠링!
[600초]
[599초]
곧 포켓의 홀로그램에서 10분의 시간이 카운트됐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10분의 짧은 평화.
반대항전은 신유성에겐 첫 단체전이었다.
‘……국가 대항전도 단체전이지.’
자신의 자질을 시험하기에 이보다 좋은 무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