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서울의 자랑. 신성그룹 테마파크.
45만 평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의 땅에는 오직 가온 아카데미의 학생들만이 집합해 있었다.
가온 아카데미의 1학년 반 대항전 시험을 위해, 신성그룹이 테마파크를 빌려준 것이다.
“와, 시험을 테마파크에서 쩐다!”
“선배들은 1학년 때 전부 시험을 무인섬에서 치렀다던데…….”
“역시 은아야.”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신성그룹 회장 김석한.
철혈이라 불리는 그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게 하나밖에 없는 손녀 김은아였다. 지금 1학년들이 온 호화로운 시험 장소는 김석한의 힘이었고, 김은아의 덕이었다.
“이런 테마파크가 이틀이나 쉬면 돈이 얼마인 거지?”
“……스케일이 달라.”
결국 웅성거림이 커지고 학생들의 시선이 모이자. 김은아는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 것도 아닌데 소란은.”
정작 당사자인 김은아에게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교관인 린샤오는 집합한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자자! 다들 숙소는 확인했지? 시간이 되면 워터 테마파크 쪽 호텔로 집결하면 된다.”
학생들이 머무는 장소마저 최신식 호텔. 지도 교사인 소해정은 린샤오의 옆에서 톡톡- 마이크를 체크하더니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반마다 시험 장소가 다르니 바로 확인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미리 모여 작전을 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시험 시간인 내일 오전 11시까지만 모이시면 됩니다.”
오늘은 휴식.
내일은 집합.
소해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신성 그룹의 테마파크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유원지였지만 실력 지상주의인 가온 아카데미에서 유원지에 들뜰 학생들은 적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F반의 분위기가 제일 엄중했다. 최약체라는 평가를 달고 살았던 F반에게 세븐넘버인 신유성의 참가는 절호의 기회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F반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신유성을 위주로 흘러가고 있었다.
“F반에 세븐넘버가 있다니. 진짜 든든하다!”
“저기 유성아! 우리는?”
“일단 뭐든 시켜만 줘!”
“나도! 나도!”
학생들에게 에워싸인 신유성.
결국 몰려드는 인파에 옆에 있던 스미레는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아, 아, 저……. 저기! 저도!”
울상이 된 스미레와 달리 이시우는 눈치 빠르게 자리를 잡고 신유성의 오른팔 노릇을 자처하고 있었다.
“자자! 다들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너희 역할은 우리 유성이가 전부 정해줄 거니까.”
신유성은 학생들의 특성과 능력이 정리 된 종이를 찬찬히 읽더니 입을 열었었다.
“우리는 A지역이었지?”
“응! 맞아! A지역!”
이시우가 재빠르게 답했다.
F반과 D반이 시험을 치루는 장소인 A지역은 대관람차와 사파리 존. 그리고 공포의 집과 대형 수족관인 아쿠아리움이 속해 있었다.
‘……빌런 팀을 상대로 주도권을 지키려면 몇몇 통로는 확실하게 막아내야 해.’
신유성이 확인한 F반의 전투력은 D반의 평균보다 약했다. D반의 2명을 막으려면 F반에선 3~4명이 필요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각반에 주어진 인원은 30명. 거기다 개인 점수를 위한 추가 임무를 생각하면 신유성은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다. 반 대항전의 관건은 다름 아닌 효율이었다.
‘……특성에 맞춰 인원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해야겠지.’
신유성은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인원인 이시우는 대관람차로 보내고, 이제 아티팩트까지 보유하며 제법 강해진 스미레는 특별한 임무를 맡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최대한 능력이나 실력을 균등하게 섞어서. 3인조로 편성해야겠어.’
권왕에게 배운 신유성의 판단이나 전략은 현역에 가까웠다. 신유성은 부족한 F반의 실력으로 D반에 맞서기 위해 특성의 시너지와 인원의 집중을 택했다.
“일단 시우야. 너는 특별히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멤버로 3명을 꾸려줄게. 대관람차에서 D반의 진입을 막아줘.”
신유성이 대관람차를 가리키며 말을 하자. 이시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알겠어!”
“나로 뽑아줘! 마력탄 거리가 300미터가 넘어!”
“나도 특성이 원거리 특화야! 잘 할 수 있어!”
곧 2명의 학생이 협조적인 반응으로 이시우의 옆에 붙자.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관람차를 조종할 순 없으니까. 기둥을 타고 위로 올라가줘. 최상단에서 공격하면 D반은 반격조차 힘들 거야.”
신유성은 권왕에게 전략을 배운 덕분에 인원 편성에도 능숙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원거리 조의 편성이 끝나자. 신유성은 스미레를 찾았다.
“그리고 스미레?”
신유성의 부름에 멀리서 손을 번쩍 드는 스미레.
“시, 신유성 씨! 저 여기 있어요!”
스미레는 학생들이 길을 터주고 나서야 신유성의 근처로 다가올 수 있었다. 신유성은 스미레를 보며 담담하게 설명을 이었다.
“넌 내 곁에 있다가 시작과 동시에 지시를 받고 이동해줘. 특수 임무는 시험이 시작해야 위치를 알 수 있으니까.”
특수 임무의 역할을 줬다는 건, 스미레가 신유성이 가장 강하다고 인정한 팀원이라는 이야기였다.
“제, 제가요!?”
하지만 놀라는 건 잠시.
‘그, 그럼 신유성 씨는 F반에서 날 가장 신뢰…….’
스미레는 곧 기분 나쁘게 실실 웃었다. 시험에서 신유성의 파트너가 된 건 순전히 운이었지만. 이번 반대항전은 아니었다.
오로지 신유성의 선택에 의해 특수 임무를 부여 받은 것이다.
“네! 맡겨만 주세요!”
스미레는 신유성을 향해 오랜만에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그걸 지켜보는 이시우도 변해가는 스미레의 모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뭔가 덜 음침해지고 있네.’
그런 스미레의 변화는 모두 신유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D반의 반장. 박하원.
그녀는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강민수와 함께 시험지역을 둘러보고 있었다. 리더인 그녀가 작전을 짜기 위해 사전조사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테마파크 코스 중 하나인 공포탐험이었다.
입구부터 으스스한 폐병원 컨셉의 건물. 어두컴컴한 복도를 비추는 초록색 빛은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여긴 에어컨을 틀어놨나 왜 이렇게 추워?”
겁에 질린 박하원은 괜히 신경질을 냈다. 반면 강민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했다.
“그래? 난 똑같은데. 무서우면 폐병원은 차라리 지도로 확인하는 건 어때?”
“무서워? 어차피 다 가짜인데 무섭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애들도 아니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하원은 강민수의 교복 와이셔츠를 꽉 부여잡고, 나머지 손으로 자신의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긴장의 증거.
“뭐, 주변도 어두운 게 인질 숨기기에 딱 좋겠네. 방도 많아서 매복에도 적당해 보이고…….”
거기다 박하원은 평소보다 말까지 많아진 상태였다. 강민수는 그런 박하원을 보며 웃었다.
“그렇구나.”
“웃지 말고. 어떻게 반 대항전 이길지 생각이나 해.”
면박을 준 박하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교장은 무슨 생각이야? 아티팩트까지 시험에 사용할 수 있다니. 이거 F반만 좋은 꼴이잖아. 완전 편애고…….”
투덜거리며 박하원이 복도의 중간을 넘자. 갑자기 빔 프로젝트가 작동을 했다.
지잉!
동시에 복도의 벽에 귀신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이를 씩 드러내고 웃으며 흰자위만 가득한 얼굴.
초록빛만 가득하던 복도의 벽에 거대한 귀신 얼굴이 등장하자. 박하원은 뱀을 만난 쥐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마치 석상이 되어버린 모습에 강민수가 물었다.
“안 무섭다며. 뭐해?”
텅빈 복도를 바라보는 박하원.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강민수에게 대답했다.
“나 숙소로 돌아갈래.”
폐병원의 공포가 박하원의 자존심을 이긴 것이다.
* * *
오후 8시.
특별 임무 교육을 끝낸 신유성과 스미레는 다른 학생보다 늦게 리조트로 돌아가고 있었다.
약간의 정적.
워터파크의 풀장 안에서 빛나는 색색의 조명들을 둘러보며 신유성이 입을 열었다.
“수고했어. 스미레.”
아직 신유성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스미레는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F반에서는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특히 신체 능력이 강한 신유성과 스미레의 해골 소환 스킬은 시너지가 좋았다.
스미레가 신유성으로 머리카락으로 흉내 낼 수 있는 건, 신체능력의 3할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시험에선 엄청난 전력이었다.
하지만 스미레는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아? 아, 아니에요! 수, 수고하신 건 신유성 씨죠! 저야 그냥 시키시는 대로 했을 뿐이고…….”
빠르게 말을 뱉던 스미레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꼴등이었던 자신이 신유성과 파트너를 이루고, 원넘버가 되다니 스미레에겐 모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솔직히 신유성 씨에겐 F반의 모두가 엄청 감사하고 있어요.”
직접 말을 하려니 부끄러웠지만 스미레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감사?”
신유성은 그런 스미레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유성은 그저 강해지려고 했을 뿐이니까, 지금까지 오직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미레와 F반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F반에는 전부……. F급 특성을 가진 학생들만 있으니까요. 그, 아시겠지만…… F급 특성을 가진 헌터는 취급이 안 좋잖아요?”
스미레의 말은 사실이었다.
F급 특성 중 유명한 헌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대부분의 헌터는 탑에 제대로 된 도전조차 하지 못하고, 던전 활동 등으로 전업을 해 돈을 버는 게 전부였다. 스미레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시도 많이 당하고, 강해지길 포기한 분도 많았거든요.”
스미레가 시선을 풀장으로 돌렸다.
제 각각의 조명이 켜진 수영장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빛깔, 여러 가지 개성.
“근데 이젠 아니에요. F급 특성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스미레는 신유성을 올려다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신유성 씨가 모두에게 가르쳐주셨잖아요.”
평소와 다른 스미레의 환한 미소.
신유성은 이제 F반은 물론 F급 헌터들 전체의 희망이었다. 버림받았던 신유성에게 권왕이 준 신뢰를, 신유성은 희망과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다른 F급 헌터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저 최고가 되겠다는 신유성의 목표와 가까이 있었을 뿐이었지만. 신유성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험에서 이겨야 할 이유가 늘어난 기분이었다.